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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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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31회 작성일 18-04-22 00:24

본문

나는 멸치의 천적이다 
오전반에는 생멸치, 오후반에는 건멸치, 
오전반에는 생멸치 대가리를 따고 
오후반에는 건멸치 대가리를 딴다. 
오전반에는 생멸치 조림을 반찬으로 내주고 
오후반에는 건멸치를 안주로 내준다. 
생멸치나 건멸치나 등을 쪼개고  대가리를 따고 똥을 빼낸다. 
살아서는 가장 중요한 부위들이  죽어서는 가장 쓴맛을 낸다
나를 나로 만들고, 나를 채우던 부위들이 
남에게는 가장 성가신 부위가 된다. 
그러나 허기를 밀어내기 위해 뱃속에 똥을 채우고
수압에 눌려 압사하거나 침몰하지 않기 위해
잠결에도 잔머리 굴리던 나를 지나오고서야 
남의 미락(味樂) 속으로 흡입되어 남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자칫하면 사리, 사욕, 사심이 되는 내면의 부위들도 
한 때는 그 생을 끌어가던 가장 절실한 동기나
동력이였을 것이다.
멸치는 갓난 아기들 새끼 손가락 크기가 
오후반 술 안주로 쓰이고, 오전반 밥 반찬으로 
쓰이는 생멸치도 어른들 검지나 중지 정도의 
크기고, 볶음용으로 쓰이는 멸치들은 깍아놓은 
엄지손톱 크기도 있다. 멸치 한 상자가 모여도 참치 
한마리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멸치는 소확어다. 
작지만 확실한 물고기다. 아무리 작은 멸치도 
따야할 머리가 있고, 빼야할 똥이 있고, 생멸치 
초무침에 쓰이는 생멸치처럼 등을 갈라 빼야할 
제법 유서 깊은 집안의 가풍처럼 곧고 날선 뼈대도 
있다. 쓰레기 뒹구는 길가에 누가 먹다 흘린 과자 
부스러기 같은, 멸치 안구 크기의 풀꽃들도 
나름대로의 잎차례와 꽃차례가 있고, 뿌리와 
미세한 향기를 가지게 만든 신의 손재주에 종일 
탄복하는 일이 요즘 나의 일이다. 건 멸치는 
똥이 몸의 삼분의 일을 차지 한다. 어쩌면 우리를 
이루는 삼분의 일도 사실은 쓴맛만 우려내는 
똥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간과 피조물의 맹점도

제법 따끔하게 멸치 가시에 찔릴때마다 느껴진다.
 생멸치보다 건멸치의 똥이 월등히 크다. 
비교적 생존 상태에 가까운 생멸치는 내장인지 
똥인지 분간이 잘가지 않지만, 말라비틀어진 건멸치 
가 되고서야 똥인지 된장인지가 분명해지는 것 같다. 
나도 똥만 커다란 문장들을 쓰느라 멸치 같은 재능을 빌어 
죽을 때까지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 
그리고 쓴맛이 받힌다고 똥을 빼긴 하지만, 멸치 똥을 
손톱 끝으로 파내다 보면, 오래 도 닦은 스님들처럼 
더러움에 대한 분별이 없어진다. 뇌경색에 걸린 아버지가 
일주일 가까이 똥을 누지 못하자 엄마는 맨손을 항문에 
넣고 아버지의 굳은 똥을 파내었다,. 정말 중요한 문제들 
앞에서 가장 무기력해지는 것이 우리들이 호들갑을 떨어대는 
더러움들이다. 우린 살기 위해서 얼마나 자주 더러운 꼴을 
보고, 더러워진 기분들을 씻어내느라 소주를 마셨던가? 
처음엔 깨끗한 것만 골라 먹은 것이고, 종일 뱃속에 담고 
있던 것인데, 내가 뭐 그리 성스러운 공간라고, 나를 떠났다고 
더러움이 되는 것이 똥이다. 내 침은 입에 머금고 살지만 
남의 침은 신발 밑창에 묻어도 더럽다고 느낀다. 
한마디로 인간에게 청정구역은 오로지 자기 자신 밖에 없는 것이다. 
똥은 내가 까먹은 포도의 껍질이며 씨앗 같은 것이다. 다시 세상에 
뿌려져서 내가 깨끗한 것이라고 골라먹을 음식의 양분이 될 것들이다. 
연탄도 발로 함부로 차지 말아야겠지만, 
똥 밟았다고 재수 없다며 침을 퇴 뱉지도 말아야 겠다. 
내 부모 내 자식, 내 애인, 내 친구를 먹여 살린 우주의 선물이라고, 
손님이 오지 않는 시간, 호프집 카운터에 서서 출근 한지 
이십일이 지나가는데 단 한번도 바뀌지 않은 음악을 들으며 
멸치 한마리를, 멀리서 보던 별처럼 가까이 가서 커대한 항성이나 
행성으로 부풀리는 것이 나의 일이다. 그놈의 여수 밤바다를 
훗날 들으면 함께 케이블 카를 타던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고 
그 밤바다의 해수를 나눠 마시고 아무리 버둥거려도 멸치였던 
나 같은, 내 손끝에 따지고 보면 죄로 가득하던 머리와 내장을 
바치며 죄사함을 받고 음식으로 구원을 받던 멸치 비린내가 
날 것 같다. 그 자잘한 멸치 중 유난히 덩치가 크고 비늘이 
반짝이는 멸치들은 육수용이라고 따로 가려 모아, 이웃의 
분식점에 오뎅 육수 끓이는데 쓰라고 준다고 했다. 
무더운 여름날 국수 육수를 내며 멸치로서는 
거구인 육체들을 아미로 건져 내며 왜 돔이나 광어 같은 큰 
물고기들을 육수로 만들지 않고, 멸치를 쓰는지 궁금했다. 
그것은 큰 물고기는 그 덩치만큼 강한 맛을 우려내기 때문에 
음식의 맛을 가리고, 음식의 맛을 탁하게 만들기 때문일거라고 
나름 생각을 했었다. 
자잘하고 소소하게 마주치는 시간이 품은 언어를 은근히 우려내어

삶의 참맛을 드러내는 시가 멸치 육수 같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잘 듣기 위해 음악을 낮추듯, 잔잔하고 은은한
맛이 국수나 찌개나 탕의 본맛을 가리지 않도록 나라는 재료가
내고 싶은 맛을 절제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드디어 영혼을 모두
우려주고 펄펄 끓는 수면위로 공중부양하는 띠포리의 육체처럼
시인의 결구도 숭고한 가벼움에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아미로 건지면 바로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도 아깝지 않은 삶을 살아야 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바로 여기에 진국을 다 빼놓고 가야겠다고,

그 어딘가에 있다는 천국에 나를 가져가기 위해 머리 따로, 내장 따로, 똥 따로

놀다 갈 것이 아니라 내 전부를 온전히 이 세계에 투신하고 가야겠다고

마른 멸치처럼 굳은 결심을 하기도 했었다.

고호를 믿고 내가 생전에 유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듯,
멸치를 믿고 내가 위대하거나 큰 인물이 아니어도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 했었다.
메인 안주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맥주 한모금에 실려 무심코, 뱃속으로

방생되는 멸치처럼 행인 1,2,3이나 광장에 모인 군중 엑스트라의 관점으로

건데기를 보듯, 주인공을 보듯 대단하게 마주한 세계를 살려내는 것이

시라고 생각 했었다.

멸치는 대부분 몰골이다.

생멸치는 생멸치데로 살이 거의 짓무른듯 물러터져 있고

건멸치는 건멸치데로 삐쩍말라 비틀어져, 마른 멸치는

그렇게 생긴 사람들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

누구도 멸치를 장만하겠다고 도마를 눕히거나 칼을 들지 않는다.

멸치는 누군가의 전의를 불러 일으키기에 너무 하잘 것 없는 것이다.

그런 멸치의 관점이 번쩍이는 비늘과 화려한 지느러미와

날카로운 이빨로 무장된 대어들의 관점에서 만날 수 없는 바다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 했다.

그래서 내 삶의 몰골들이 초무침처럼 피칠갑인 날도,

누군가의 무심한 손끝에서 대가리 떨어져 나가는 짓무른 날도

말라비틀어진 생의 잔상들이 남의 술안주나 되어 씹히는 날도

시를 밥상처럼 염두에 두고 견뎌 왔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생멸치도 건멸치도

대가리도 똥도 만지지 않는 날이다.

거의 일주일만에 아이들 집에 와서 된장국을 끓이고

순두부 국을 끓이느라 냉동실에서 더욱 딱딱해진

멸치를 쌀뜨물에 놓아 끓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멸치가 되었어야 했다.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내가 멸치처럼 자잘해지지 못했고

아이들을 멸치 육수처럼 만들고 내 삶을 건더기처럼 여기며 살았다.

지금부터라도 날마다 멸치를 만지고 다듬으며

달마가 서쪽으로 간 까닭을 묻듯, 멸치가 밥상으로 가는

까닭을 화두 삼아야 할 것 같다. 고래 같은 욕심으로, 조련사들의

손짓에 길들여진 시를 버리고, 신발을 신고 들어오세요 라고

쓰붙인 팻말을 손님들이 신발을  한짝 벗고서야 발견하는,

생멸치 쌈밥 개시라는 플랭카드가 돛처럼 봄바람을 안고

가끔 만선이 되는, 고만고만한 하루를 건너는 나룻배 같은 밥집과,

베드민턴 동호회와 탁구 동호회 회원들이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혀야 저공이라도 지킬 수 있던 하루를 셔틀콕처럼

바닥에 내려놓고, 탁구공만한 땀방울을 써브하며 탁구공처럼

튀어 나갈듯 부라리던 동공을 취한 눈꺼풀로 닦는 호프집

막간에 서서 짝다리를 바꿔 짚으며,졸음으로 성겨진 사유의 그물을 깁어가며

흑백 텔레비젼의 파광처럼 팔딱팔딱 튀는 멸치의 시를 잡아야 겠다.

가장 하찮고 하잘것 없는 쉽게 짓무르고 수분 없는 일상에서 건조 된

그 모양 그대로의 시를 쓰야겠다. 그 모양 그대로 시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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