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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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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44회 작성일 18-04-25 07:41

본문

오전반 사장 언니의 딸이 낮에 두세 시간 알바를 하고 간다.

오전반 사장 언니의 언니가 그렇게 할 때보다 훨씬 일이 잘 돌아간다.

칠십이 다 되어가는 할머니가 식기 세척기에서 꺼낸 그릇 더미를

들어 옮기고, 홀의 그릇들을 걷어 오는 것이 마음 쓰였는데

서른이 갓 넘은 새댁이 오니 이제는 거의 정확하게 두시 반에

일을 마칠 수 있게 되었다. 구인 광고에 연령 제한을 두는 이유를

알겠다. 그리고 두렵다. 내가 나이를 먹어가는 일이. 개나 소나 한다는

식당일 마저 버겁게 되는 일이

 

오늘은 식당 사장의 큰 언니에게 가입했던 보험 선물을 받으러

비온다고 집에 쉬고 있는 큰 아이를 불렀다. 거의 이십년 전에

지도에서 사라진 윤양 병원 앞에 기다리고 있다고 그녀가 말했기

때문에 거의 이십년 전 내 머리속의 지도에 있는, 갤러리아 백화점

쪽에 있는 윤양 병원 쪽으로 아이를 닥달해서 차를 몰았다. 그런데

윤양 병원은 그 반대 방향, 남강 다리목 가는 쪽에 있던 병원이였다.

시내라고 차 돌릴데가 마땅치 않다는 초보 운전자를 당혹스럽게

만들며 번잡한 시장 안쪽 길을 돌아 찾아 간, 이십년 전의 윤양 병원

앞에 이십년 전의 지도 속에 살고 있는 그녀가 한 꾸러미 선물들과

함께 서 있었다. 사람들은 같은 공간에 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노티 안경원과 농협 사이에 아이는 차를 대었고, 이전 톰 보이 매장과

윤양 병원과 멘다롱 따또라는 그 때로서는 부시맨 마을의 콜라병 같은

음식 햄버그를 팔던 가게가 한 길에 있던 거리에 나는 내렸다.

그 무렵 삼십대나 사십대였던 그녀도 나와 한 지도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차원이 다르다는 말을 쓰는데 정말 사람들은 같은 시공에서

다른 차원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물이라 해서 요즘엔

인터넷으로 삼사만원이면 사는 봄이불이나 프라이팬 셋트 같은 것을

기대 했던 나와, 집채 만한 박스에 화장지와 십 년은 족히 쓸 것 같은

치약을 잔뜩 담아 놓은 꾸러미를 지키고 있는 언니의 생각이 다르듯

우리는 절대 마주칠 수 없는 차원을 살며 몸을 마주치고 있는 것 같다.

어쟀거나 고마워 하는 일이 어긋난 길을 마주치는 방향으로 휘어가는

일일 것이다. 아이들 집 욕실장이 붙박혀 있는 것이 용할 정도로 많은

치약이 집에 쌓여 있었지만, 평생 쓰면 되겠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침에 오전반 식당에 출근하니 입구에 vip석처럼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던

원탁이 화장실 앞으로 옮겨지고 네모 탁자 두개가 빚을 받으러 온 떡대들처럼

눈에 익지 않은 각을 잡고 있었다. 그 부자연스러운 구도를 잡느라

언니가 아끼는 돈 나무 화분이 깨지고, 내가 사준 황초롱 꽃들은 흙을 잔뜩

뒤집어 쓰고 있었다. "이렇게 하니까 더 낫지?" 무엇이나 좋다 이쁘다 맛있다

하는 내가 대답이 없자 눈치 빠른 언니가 말했다.

"이상하나? 그런데 어쩌지? 바빠서 원위치 할 시간이 없는데...

맘에 들지 않으면 니가 바꿔봐"

나는 다시 이 집 단골 손님들인 시내의 늙은 건달들이 내가 없는 오후반 동안

마신 맥주병과 소주병을 한 아름 세워놓는 원탁을, 한참 때 그들이 즐겨 앉던

스쿨 버스 맨 뒷좌석 같은 입구의 코너에 되돌려 놓았다. 익숙한 것은 좋아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원래 하나의 원탁과 두개의 사각 탁자가 그렇게 배치 되는 것이

미적인 질서에 맞는 일이였을까? 확 뒤집혔던 내 눈은 그제서야 안정을 되찾고

황초롱 꽃에 앉은 흙먼지를 털어 내고, 다급하게 우산꽂이에 심겨진 돈 나무를

옮겨 심을 화분을 머릿속에서 찾아 내었다. 재작년 봄,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다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온, 세개의 다리가 높은음자리표처럼 생긴 화분에 흰 페인트를

칠하고, 식당에서 모주를 담으며 동동주와 함께 삶았던 계피를 말려 두었다. 한가할 때

방에 들어온 물건에는 무조건 흰칠을 하곤 했었다. 문장에 글을 쓰서 받았던

재래시장 상품권으로 샀던 극세사 이불이 깔린 침대와 흰칠이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아깝긴 하지만 실내에 있으면 돈이 들어온다고, 언니가 좋아하는 돈나무의 마당으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실내에 있으면 돈이 들어 온다고 열변을 토하던, 가사원 이모의

말을 믿는 언니의 천진함이 참 좋다. 나는 녀석의 이름이 그 지긋지긋한 돈이여서

물을 줄 때 녀석에게 별로 따뜻한 기도의 말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언니는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녀석에게 각별히 신경을 썼던 것이다. 그리고 남은 페인트를 가지고 가서

철재로 된 언니의 낡은 우산 꽂이도 하얗게 칠해 주어야겠다. 내 집이 따로 있나?

하루 여섯시간 보내는 곳이 내 집인 것이다. 하루 여섯 시간 날마다 보는 사람들이

내 식구이고, 하루 여섯 시간 날마다 부딪히고 담기는 마음의 공간이 가정인 것이다.

그곳이 따뜻하고 편한 곳이 되면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다.

 

오후반 언니의 심하게 혀가 짧은 소리가 점점 정겨워져 간다.

열두시가 되면, 언니의 특별한 부탁이 있지 않는 한, 늦게 들어 온 손님때문에

붙박혀 있는 언니를 혼자 두고 퇴근을 하는데 여간 걱정이 되고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몇 해 전이였던가? 대전에서 시를 쓰던 한 언니가 혼자 운영하던 까페를 지키다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청년들의 칼에 찔려 목숨을 잃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자전거를 잃어버려 단잠에 빠졌을 남편에게 데릴러 오라고 전화를 한 뒤에

젊은 손님 한 명이 들어와서 마치는 시간을 물었다. 내가 지금 입니다. 하고 말하려는데

언니가 앉으시라고 권했다. 나는 언니에게 "언니 잠깐 앞에 나갔다 올께" 하면서 큰 소리로

가짜 인사를 하며 눈을 깜빡였다. 정이 드는 것은 걱정이 느는 일인가보다.

집 앞에 당도한 트럭 소리를 듣고 난이가 트럭에서 내리는 내 발밑에 까지 달려 나와 있었다.

꺽꺽 숨이 넘어가는 숨소리를 내며 손님들이 남긴 닭다리와 나막스 따위가 담긴 봉지를

흔들며 걷는 나를 따라 들어왔다. 다른 녀석들에게는 벗뻣한 나막스 대가리를 던져 주고

난이에게만 손끝으로 뜯어서 닭다리를 먹였다.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누구도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몰라서 사랑할 수 없는 누구도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

누가 아프다는 사실도 기억하기 싫어서 그 길로 극세사 이불 속에 스며들어

잠이 들었다.

좋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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