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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그 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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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295회 작성일 18-07-26 17:31

본문

두 편의 시가 무슨 문예지인가 하는데 실렸다.

원고료를 보낼 수 있는 계좌를 보내 달라 했는데

아직 입금 되지 않았다.

무작위로 보낸 글들 중 아무거나 골라 실어라 했는데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시 두 편이 실렸다.

보는 눈들이 모두 다른 모양이다.

내가 좋아하는 김수우 시인의 시가 내 작품 바로 뒤에

나온다.  기분이 좋다. 내 시가 도통 머구리는 아닌 모양이다.

 

난 폭염이 견딜만하다.

매우 추운날도 그러했지만 삶이 주는 극단이 온도가

도자기나 쇠처럼 사람의 정신을 연단하는 것 같아 좋다.

정말로 견딜만큼 견디면 시원해지고

추위또한 견딜만큼 견디면 작은 온기도 고맙게 된다.

선풍기를 켜놓고, 욕실을 왔다갔다 하다 이도 저도

시원치 않아, 은하철도 999의 메텔처럼 오리털 파카를

껴입고 시를 쓴 적이 있다. 금새 이미 각오해버린 더위가

만만해지더니, 털옷을 벗어버렸을 때의 그 시원함이라니

체감 온도가 우리들 대부분을 속이는 일이 많은 것 같다.

먹방 규제는 참 좋은 것 같다. 그림 속의 산해진미가

내 밥상을 초라하고 싱겁게 만드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던

차였는데 그런 규제가 국민들의 식탐을 순화 시키기를 바란다.

그런기 지향하지 않아도 알아서들, 살이 쪄서 주체를 못할

정도로 잘들 먹는다. 메스컴의 선도성을 낭비하지 않는

건강한 규제인 것 같다. 선정적인 방송이 규제 되어야 하듯

원색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다른 방송도 규제가 되는 것이

마땅 한 것 같다. 정히 먹는 자유를 원한다면 인터넷 먹방도

많고, 개인적인 취향과 편집증을 만족시킬 경로는 요즘

차고 넘치는 것 같다. 굳이 공중파 방송까지 기름끼 좔좔 흐르는

본능을 자극하는, 없는 집 많은 동네에서 좀 산다고 밤낮 없이

고기 굽는 냄새 풍기는 것 같은 프로그램이 자제 되는 것은

좋은 현상인 것 같다. 먹고 마시고 탐닉하는 정서를 순화 시키면

이 폭염에 폭발할 것 같은 욕구불만들도 많이 순화가 되어질 것이다.

 

서른 두살부터 시를 쓰서 지금 오십 한 살, 내가 쓴 시가 책에 실린 것이

다 털어서 열편은 될라나 모르겠다. 언젠가 누군가가 말했다. 글 쓰는

여자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고, 그때 참 부끄럽고 창피하고 미안했다.

지금도 그 부끄러움, 창피함, 미안함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 아니라 그릇 씻고, 상 차리고, 홀 바닥에 밀걸레질 하는 사람이다.

글을 쓰느라 내 돈을 쓰본 적은 많지만, 글을 썼다고 돈을 받은 적은

그리 많지 않다. 내가 무엇을 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건 간에 내 삶의

중심이 이 빌어먹을 짓거리인 것은 사실이다. 이 빌어먹을 짓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바꾼 직업들은 많다. 지금은 그가 글을 쓰는 여자와

친구가 되어 있기를 바랄 뿐이다.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쓰긴 쓴 것 같은데

나를 글을 쓰는 사람이라 말하는 일은 사기를 치는 일 같다. 사기를

친다는 것은 그 사기라는 형태의 행위나 말을 통해 무슨 이익을 얻는

일일 것이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 말한 적도 없고, 뭘 얻

을 생각은 더더욱 없었는데 마치 내가 사기라도 친 것처럼 글을 쓰는

여자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고 그가 기쁘한 것이다. 시야, 어떤 이유로라도

어쩐지 놓지를 못하고 살았지만 한번씩, 내가 사기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진다. 글을 쓰는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글을 쓰지 않으면

살아 있을 까닭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나 자신을 생각하긴 한다.

 

무슨 노동운동 관련 문예 잡지인 것 같다.

내 필명이 적힌 페이지를 접어 놓았다.

꼭 그렇게 내 팔목이나 발목을 꺽은 것처럼 아팠다.

그렇게나 간절히 내 삶은 종이 위로 입주 하고 싶었다.

처음 시를 쓰서 상을 받았던 것이

쳣 남편이 다니던 종이 공장 사보에 낸 글이였다.

그런 까닭인지 내 삶을 잘게 잘게 찢거나 갈아서

그 마른 펄프와 한 장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요즘 오후반은 거의 막노동보다 더하다.

시와 헤어져 있는 시간이 너무 길고 힘에 부친다.

그래도 내 행복은 매운 진하고 순도가 높은 것이다.

마치면 시를 쓸 수 있는 것이다.

마치면 돌아 올 시가 있는 것이다.

손님이 조금 뜸 한 시간에는 멸치 똥을 까며 그리워 할 시가 있고

내 키 만큼 쌓인 그릇을 씻으며,

그 그릇 밑바닥에서도 보이는 시가 있고

아직도 오늘 걸을 걸음이 남았나 하며,

밤 열 두시에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밤 하늘의 별이나 달이나, 우수수 폭염에 데쳐진 산을

쓰다듬어 일으키는 바람의 찬손에게 건 낼 시가 있는 것이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시가 씌인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하꼬방에 대를 꽂고 울긋불긋한 신화를 모시고

맞히지도 못하는 점을 치고 사는 돌팔이 무당처럼

그래도 씌인 시를 모시고 사는 것 같다.

꿈을 꾸거나 이른 아침에 깨어 있거나

조금이라도 한적한 쉼표, 한 알 끼여드는 시간에는

그 시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목소리로

건내오는 말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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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버퍼링님의 댓글

profile_image 버퍼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축하드립니다~
제게는 공덕수님 시 한편 한편이 다 가슴에 팍팍 와닿았으며 어떤땐  탐복하다가 질투 하기도 했었었는데요
분명 더 좋은 날이 있을 겁니다. '시에 씌였다' 와 정말 딱 맞는 말씀이네요 역시나 멋진 표현이구요.
날씨가 무지 무지 찌는데 건강조심하시고 늘 행복하세요~

공덕수님의 댓글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감사합니다. 버퍼링님1 늘 응원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가끔 시가 따먹지 말라한 그 과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득 부끄러움을 알게 되어 풀잎 옷을 걸치게 만드는


늦게 답을 드립니다. 덥습니다. 더위와 맞장 뜨기엔
너무 덥습니다. 시원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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