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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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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플루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2회 작성일 19-03-10 13:48

본문

나의 봄은  수도관을 타고 온다..

날마다 한 박스의 상추를 씻는 ​주방 개수대,

이제는 손이 시리지 않다.

다른 일은 고무 장갑을 끼고 할수 있지만

상추를 씻는 일은 한 겨울에도 맨손으로 한다.

오전반, 오후반, 허드래로 들어오는 청소일까지

쫓겨 다니며 하다보면 꽃이 피는지 눈이 오는지

낙엽이 지는지 모르는데, 상추를 씻는 물의

온도로 나는 계절을 느낀다. 또한 오후반 호프집

손님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여름이 가까워져 가는 것이고

과메기 안주가 개시되면 겨울이 가까워 가는 것이다.

이제 계절은 마냥 예쁘고 분위기 있는 모습이 아니라

허드래 패딩 조끼와 안에 담이든 장화를 벗은 모습이나

바구니에 한 줄의 상추를 줄세우고나면 뜨거운 물에

손을 담궈도 뜨겁지 않은 모습으로 온다. 돈이 굳으면

빌딩이라도 지어야 마땅한데, 어쩐지 내 돈은 응고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흘러가는

 물이라도 퍼 담을 두 손바닥이 있으니, 돈으로 세수도

하고, 목도 축이고, 밥물도 끓인다. 이전에 다니던

멸치 쌈밥집 언니가 오전에 청소만 해줄 사람을 구해서

늘 손님으로 오는 입 비뚫어진 언니를 소개 시켜 주었는데

십일을 겨우 채우고 그만두었다. 청소 두어 시간만 해주고

한 달에 오십만원이라는데,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일할수

있어서 좋겠다 싶었는데, 힘이 들다며 그만둔 것이다.

할 수 없이 사람 구할 때까지 내가 대신 해주기로 했는데

막상 일을 해보니 시간도 짧고 수월해서 그냥 내가 하기로

했다. 일에 치여 살다보니 일에 대해 내성이 생긴 것이다.

그 언니에겐 열흘도 끔찍한 힘겨움이 내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힘겨움도 때론 선물을 주는구나 싶었다.

요령이 없어서 힘들었던 것이다. 그 언니는 다리를 절었다.

그래서 그 좁은 홀이 넓게 느껴진 것이다. 내가 아직

건강하다는 것이 얼마나 천운 같은지, 다행히도 힘 닿는데로

내가 하는 일을 도와주는 남편이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태워다주고, 아무도 없으니까 청소도 함께 해주었다.

내가 돈을 더 벌게 되면, 일자리를 못 구하고 있는 아이에게

짜증도 덜내게 될것이다. 새벽반 50만원, 오전반 70만원,

오후반 130만원(한 달에 네번을 쉬는데 두번을 쉬지 않으면

140만원도 받을수 있고, 연장 근무를 하면 시간당 만원을

더 벌수있다.)


돈독이 올랐다. 그래 독기라는거, 내 생에는 잘 없던건데,

주독 뿐이던 내 생에 독 하나가 더 오른다니 좋다.

열심히 일하니까 좋다.  화장품 가게를 개업한 친구에게

한번 갈아 줄수도 있고,  백수 아들 차 기름값도 한 푼

더 줄수 있고, 백년을 채워 살게 되더라도,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을수 있다. 지금이니까 열심도 되는것이지

십년후면 열심도 않듣는다. 몸이 열심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시가 고맙다.  이런 척박한 내 삶을 떠나지 않고 함께 해주어 고맙다.

어쩌면 시가 이 삶을 지탱해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가 이 삶을 즐기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가 없다면

내가 씻는 상추 한 잎의 싱그러움과 파들파들한 생명력을

손끝으로 만지고 누리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멀리 눈을 들어 천지에 지천인 꽃을 보지 않고도, 내 삶에

가만히 고개숙이고 볼 수 있는, 그래서 나만의 것이 되는

소소한 발견들로 내 의식을 새롭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시를 쓰기 위해 시의 장치가 되는 의식들로 주변을 인식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내 삶을 새롭고, 신선하고, 따뜻한 시각으로

보게 된다.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를 살게 되는 것이다.

시가 스친 자리는 안마하는 두 손이 머물던 자리처럼

살기와 경계가 풀어지고 식고, 막혈던 혈이 돈다. 그런 시를

쓰야하고, 그런 시를 쓰려면 그런 시를 살아야 한다.

족발집도, 호프집도, 인력 공사 이삿집 청소도 모두 돈내고

일부러 해보는 체험 현장처럼 신기하고 신이 나게되는 것이다.


오랫만에 일기를 쓴다.

일기는 내 마음을 디자인 하는 행위다.

실제로 느껴지지 않더라도

반성과 설득으로 내 마음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일기라는 친구가 내게 있는 것은 행운이다.

어떤 좋은 친구가 생겨도 이 외로움이라는

친국를 배신하지 않게 되어 감사한다.


비가 온다.

내게 허락된 모든 물이 나는 좋다.

봄이, 오랫동안 잡은 손을 어루만지듯,

한 박스의 상추를 다 씻을때까지 내게 머룰고

우산도 없이, 차를 타러가는 길에,

단풍잎이 닯발처럼 오그라든 단풍나무 잔가지에

조랑조랑 물방울 꽃을 피우고,

개수대에 내 가슴께로 쌓여있던 그릇들을

하나 하나 씻어 끝내 바닥을 보여주는 물이 나는 참 좋다.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신다는데

내 생이 이 진자리에 있어

누군가 마른 자리에 들수 있는 것이다.

아직은 뜨거운 것이 좋은 전기 장판에서

밤이고 낮이고 복부에 둥근 해가 뜬 것처럼

스민 물자국이 선명한 옷들을 벗어 던지고

종일이 질어서 더 뽀송뽀송한 내 생의 마른 자리에

잠깐 들면, 하루 종일 굶었다 먹는 밥처럼

잠이 맛있다. 인체의 70프로가 물이고,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거의 종일을 물을 첨벙거리는 내 팔자는

생명의 원천으로 끊임없이 회귀하는 시인의 팔자다.

어쩌면 아직 팔딱거리는 시를 방생하기에

내 삶의 물은 아직 모자라는지도 모른다.

더욱더 열렬히 구정물이나 찬물이나 더운물이나

내 삶에게 주어진 물과 사랑에 빠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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