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은 잠을 잘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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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계절은 죽었다.
그래도 나는 산다
내게서 하루 하루 다른 계절이 생겨나고
하루 하루 다른 나만의 계절을 산다
신이 사람에게 준것을 즐기는 시절은 갔다.
사람이 스스로 만든 것을 향유하며 살듯,
난 창밖의 물나른 꽃들과 아무 상관도 없이
행복하다. 아무 느낌도 없는 것도 행복이다.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나의 열망은 사는 것 뿐이다.
살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도
살아서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도 없다.
다만 살아 있으면 천천히 무슨 생각이라도 해낼 것 같다.
사랑이 다 채워진 여자는 무의미다.
그는 새벽에 같이 새벽반 일을 가서 청소를 해주고
오전반 족발집에서 미니 스커트가 되버린
앞치마를 입고 기름때가 덕지덕지 앉은 그릇들을
씻어 주었다. 그의 키와 쌓인 그릇의 높이가 비슷했다.
그런 그를 두고, 시가 될만한 어떤 사랑을 염두에라도 두겠는가?
죄는 이전의 분량으로도 족하다.
돈을 많이 벌어주지 못하는 것은 사랑에 있어서
죄가 되지 못한다.
일을 하러가면 일을 하면 되듯,
사랑에 있어서는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어제는 밤 열 두시에 일을 마치고 왔는데 종일 국수 한 그릇 밖에
먹지 못해서 배가 고팠다.
그 시간에 그가 잠을 깨고 일어나 김치 찌개를 끓이고,
꼬막과 콩나물 반찬으로 밥을 차려 주었다. 잠을 푹 자라고
소주도 큰 잔에 한 잔을 곁들어 주었다. 이쯤 되면 나는 시를
잘 쓸수 없어도 족한 것 아닌가 싶었다. 시가 괜한 욕심이 아니라면
나는 내 생의 시가 충족되고 만것이다. 그와 시가 물에 떠내려가면
나는 또 그의 손을 잡을 것이다. 그와 아이들이 떠내려 가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말듯, 그는 그의 어머니가 낳았지만, 아이는 내가 낳았기 때문이다.
큰 아이는 처음으로 대리운전을 했다고 말했다. 조심하라고 했다.
소형차만 몰아서 큰 차가 어렵게 느껴졌다고 했다. 사랑이 걱정뿐이어서
미안하다. 아무리 너 알아서 살아라고 다짐해도 자꾸 걱정 되는 것을
사랑이라고 짧게 말하기도 하는 것 같다.
잠을 한 숨 자야겠다. 아침 여섯시는 내게 너무 이른 기상 시간이다.
나는 세상에서 보기드물게 행복한 여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처음만나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것이야 그렇다 치지만
이제 만난지 십년이 훨씬 넘었고, 함께 산지가 오년이 다 되어가는데
처음 만난 사람들이 가지는 사랑의 징후들이 더욱더 뚜렷해져 간다면
사랑을 한번 믿어봐도 그르칠 것이 없을 것 같다.
그는 내가 낮에 막걸리를 마실까봐 술이란 술은 죄다 감춰둔다.
난 오늘 용케도 한 병을 찾아내었다.
그가 오기 전에 자고 있어야겠다.
행복한 사람은 잠을 잘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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