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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잠도 다 달아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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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95회 작성일 15-07-15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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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는다. 종일 식당에서 일하고 하루는 죽음을 향해 전진했지만 삶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일보도 전진하지 못한 것 같아, 잠으로 하루를 끝내는 것을 아까워하다 그만 때를 놓친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의 메뉴는 샤브샤브다.  언젠가 월남쌈 샤브샤브에 나오는 라이스 페이프를 시제로 시를 쓰보리라 생각했고,  놋 솥단지를 씻는 물레를 돌리며 방아 찧는 물레 방아, 실 잣는 물레, 도자기 빚는 물레, 왜 돌아가면서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변화 시키는 물건들을 모두 물레라 불렀을까 궁금했고, 내 통밥으로 매출이 오십만원도 되지 않는 것 같은데 직원 세 사람을 쓰면 인권비나 나올까 걱정했고, 내가 계속 시를 지켜 나갈 수 있을까 고민했고, 식기 세척기에 그릇을 채우며, 놋 솥단지를 닦으며 간간히 아이들을 키우며 너무나 철이 없었던 순간 순간을 후회 했다. 손은 계속 밥을 빌었지만, 머리는 계속 시를 기웃거렸다. 선풍기가 하나 뿐인 아이들에게 선풍기를 갖다 주었고, 너무 과식하는 큰 아이가 접시에 산더미처럼 쌓아 둔 만두를 나도 먹고 개에게도 주며 큰 아이가 다 먹지 못하도록 축내었고, 큰 아이에게 삼천원을 주었고, 수영씨와 집에 돌아와 수영씨가 시켜주는 목욕을 했고, 수영씨가 구워주는 빵을 먹었고, 수영씨가 끓여주는 우유 커피를 마셨고, 수영씨가 보여주는 대기업 총수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고, 수영씨가  잠을 푹 자야 한다며 억지로 데리고 간 침대에서 잠이 들려고 오랫동안 뒤척이다 수영씨가 잠든 사이 시를 쓰려고 몰래 빠져 나왔다.  꿈에 관하여 몇 줄의 행을 늘리다가 휘리릭 날려버리고, 정확히 말하자면 억지로 잡으려는 나비 같아 놓아 줘버리고, 일기를 쓴다. 화가가 캔버스 속에 이생의 자신을 놓아두고 가듯, 나도 내가 쓰는 문장 속에 하잘것 없는 이생의 나를 놓아 두고 가고 싶다. 완전연소를 꿈꾼다. 이생은 이생에 다 살아버리고 저 생은 완전 새것으로 태어날 것,  업이 있다면 내 글로 모두 옮겨 이생에 두고 가고 싶다. 업을 지우는 글이라면 반성, 또 반성, 죄송, 미안, 그저 고맙고 죽을 죄를 지었고,  힘 닿는데까지 지은 죄만큼 세상을 따뜻하고 착하게 돌려 놓아야 할 것이다. 나에게도 누구에게 던질 돌이 있었던가? 일단 손에 쥐었던 돌을 놓아야 할 것이고, 발 밑에 놓여진 돌을 치워야 할 것이고, 돌을 맞을까봐 웅크린 여인에게 손을 내밀어야 할 것이고, 이미 내가 던진 돌에 맞은 상처에 묻은 흙을 조심스럽게 털어내어야 할 것이고,  요드징크라도 꺼내와서 발라 주어야 할 것이고, 다른 사람이 손에 든 돌을 말려야 할 것이다. 다음 생에 내가 맞을 돌을 치워야 할 것이다.

자주 숨이 막힌다.  숨이 명치 아랫쪽에서 막혀서 올라오지 않아서 식도까지 끌어 올리는데 용을 쓰야한다. 그러면 옆구리가 쑤신다. 수영씨가 오늘 내 보험을 두개 들어 주었다.  그도 두개의 보험을 들었는데 사망시 보험금 수령인을 내 이름으로 했다. 그러면서 내 이름으로 든 보험의 사망 보험금은 내 아이들 앞으로 해두었다. 난 병원에 가보아야하는데 혹시 병에 걸렸을까봐 가지 못한다.  죽어야 한다면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을 것이다.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더 이상 시를 쓸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봐 가지 못한다. 나는 지금 무명, 유명 따윈 아무 문제가 아니다. 죽으면 아무것도 더 이상 쓸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난 몸에 실이 달라붙어버린 누에처럼 내가 풀어내야할 시를 풀어내지 못하고 풀어내지 못한 시에 똘똘 감겨서 죽게 될 것 같다. 요즘은 자주 죽음을 생각한다.  보험을 생각하듯 종교도 생각하고, 내가 살았던 삶이 자주 부끄럽고, 내가 만났던 사람들에게 자주 죄송하고, 지금부터라도 잘하고 싶어도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내 무능이 한스럽다. 내 잘나가는 화가 친구가 말했다. 번뇌의 기쁨이라고....기쁨에 도달할 수 있는 번뇌를 하고 싶다. 그녀의 그림은 이 삶을 완전연소 시키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숯불 가마솥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숯의 뜨거움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나중에 그녀의 그림 앞에서 손을 쬐게 될 것 같다.

내일의 메뉴도 샤브샤브다.  다행히 홀이 아니라 주방이라서 홀보다 좀 더 단순 노동이다.  오늘 부족한 수면은 브레이크 타임에 채우면 된다.  음악을 듣고 싶다.  자꾸 들어서 우리들의 정신이 되버린 모국어처럼 음악도 자꾸 들어서 음악이 나의 내면이 되어 버렸음 좋겠다. 바이올린과 여자의 소프라노가 좋다. 예민하고 팽팽하고 부드럽고 가늘면서 강하고 차가우면서 뜨겁다. 마리아 칼라스보다 쥴리아 하마리에가 좋고 멘델스 존이 좋다. 망사가 붙은 분홍색 엘지 오디오가 갖고 싶다.  한 곡이 끝날때마다 음악에서 깨어나 다시 스마트 폰을 뒤지다 만사가 귀찮아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냥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일하러도 가지 말고 시도 쓰지 말고, 밥도 먹지 말고, 술도 마시지 말고 음악만 듣고 싶다. 백조의 호수에 빠져 죽고 싶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들으며 홀로코스트 소설을 읽고 싶다.  모짜르트의 레퀴엠을 들으며 사이코 패스 영화를 보고 싶다. 음악은 신을 가장 많이 닮은 예술이다. 형상이 없고, 말도 없고, 영혼을 가진 공기 같고, 아무것도 없는데 따뜻한 햇빛 같고, 서러워서 아름다운 연민 같다. 신의 허밍 같다.
그러나 신이 내게 허락한 소리는 딩동댕 딩동댕, 손님이 주문한 음식 이름이 찍힌 포스가 뜨는 소리, 놋 솥단지를 닦느라 시꺼먼 거품을 일으키며 물레가 돌아가는 소리, 식기 세척기속의 태풍이 쳤다 잠잠해지는 소리, 얼갈이 배추를 씻는 물소리, 먹고 사느라 배고픈 짐승처럼 발을 동동거리는 내 마음의 소리....내 음악은 시와 팔자와의 불협화음이다. 잘못 놓여진 바늘처럼 울퉁불퉁 돌아가는 텐테이블 위에서 나는 찌직찌직 비명을 토해 낸다. 이젠 정말 자야겠다.  시도 잠도 다 달아나고 참 난감한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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