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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꽃보다 훌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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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플루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51회 작성일 19-04-17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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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반은 같은 얼굴의 손님들을 부모 형제보다 더 자주 본다.

이제는 손님이 말하지 않아도 무슨 안주를 시키는지,

맵게 혹은 짜지 않게 한다거나, 마른 안주에 나가는 마요네즈와

고추냉이에 땡초(청양초)를 다져 넣을 것인지, 고추냉이에 간장을

넣지 않을 것인지, 술은 무엇을 드시는지를 다 안다. 손님이

마시는 술의 이름은 그 손님의 별명이 되기도 하는데 에스필

아저씨는 에스필이라는 맥주만 마시는 아저씨이고, 카스 형부는

카스만 마시고, 땡칠이 아저씨는 술 한 병을 주문할때마다 숟가락으로

병을 두드리는데 땡하고 친다고 땡칠이고, 육포만 주문하는 아저씨는

육포 아저씨, 엉덩이가 너무 큰 여자 손님은​ 빅방(큰 방댕이),

얼굴이 넙데데하고 이것 저것 달라는 것이 많은 여자 손님은 몽골 공주,

애인과 와서 복분자 두병을 마시고 가는 언니는 복분자 언니다.

출근하면 여섯시간이나 단 둘이 얼굴을 보고 호흡을 맞추는 사장 언니와

나는 손님들 흉을 보거나 이야기를 할 때 별명을 부른다. 별명은

손님들이 우리의 말을 들어도 누구를 이야기 하는지 알수 없게 만드는데

참 유용하다. ​멸치 한 마리를 머리, 몸통, 똥, 부스러기, 그릇 네개에

따로 따로 분리해서 따는 우리 사장 언니는 내가 태어나서 만나본 사람 중

가장 깐깐하고 꼼꼼한 사람인데, 나는 내가 태어나서 만나본 사람 중

가장 허술하고 칠칠 맞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언니는 내게 돈을 주고

나는 언니에게 돈을 받는 입장이라 나는 돈을 주는 언니의 요구와 바램에

거의 99% 나를 맞추며 일년을 보냈다. 누군가 그곳에서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매우 꼼꼼하고 치밀한 사람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장 언니가 원하는 내 모습이다.  우선 머리 모양부터 그렇다. 미용사는

일률적으로 둥근 볼륨이 들어가는 단발 머리가 촌스럽고 노티 난다고

반쯤은 안으로, 반쯤은 밖으로 c컬이라 불리는 웨이브를 넣어 주었지만

언니는 핀을 야무지게 찔러서, 젊은 미용사의 발랄한 감각을 아무도 느낄수

없게 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내 머리는 하루 중 여섯 시간은 스프레이와 핀에

고정 되어 거의 박제 상태로 있다. 퇴직금을 타게 되었던 불과 보름전까지

나는 사장 언니와 성격이 맞지 않아 호프집을 그만 두는 일을 두고 골머리를

싸매며 고민을 했었다. 밤 열두시가 넘어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감아서

털털 털어버린 내 머리카락처럼, 재빨리 제멋대로의 나로 돌아오는데,

옷을 벗어서 홀랑 홀랑 아무데나 던져 놓고, 남편이 집안 구석구석 숨겨 놓은

술을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서 찾아 내고, 잘 밤에 배가 터지도록 술과 안주를

먹으며 스트레스를 푼다. 뭐든 언니가 정해준 자리에 물건을 놓고, 뭐든

언니가 정해준 대로 움직이고 말하고, 여섯시간 동안 나는 언니가 쥐고 있는

리모컨으로 작동 되는 로봇같다. 항상 언니는 옳지만, 또한 훌룡하지만

항상 옳고 훌룡한 언니로 인해서 왜 그렇게 숨이 막히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옳기가 싫고 훌룡하기가 지긋지긋하다. 대충 좀 넘어가고 싶고

손님의 지나친 갑질에 선을 그어 주고 싶다. 가끔 뚱하니 입을 꼭 다물고

언니를 최대한 사무적으로 대하며 언니에게 일종의 시위 같은 것을 하지만

그 뒷날이 되면 결국 언니가 옳다는 것을, 옮음을 넘어 훌룡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고 미안하게 되고 만다. 더우기 오늘 같은 날은 언니에 대한

오늘 같은 마음이 콘크리트처럼 딱딱하게 굳어지기를 기도하기 까지 한다.

오늘 우리가 중앙 무대라 부르는 10번 테이블 손님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직 젊은 언니의 남편이 있는 치매 요양원 원장 선생님이였다. 몇일 전,

남편을 면회하러 갔던 언니가 뇌가 5% 밖에 남지 않았다는 남편에게

"우짜든가 말 잘듣고, 먹으라면 먹고, 앉으라면 앉고, 자라면 자고,

우짜든가 시키는대로 하이소"라고 말하며 감정이 복받혀 울었다는 것이다.

얼마전 텔레비젼에서 치매 환자를 때리는 요양원 직원들 이야기를 보고는

아직 신체가 건강한 남편이 행여 맞고 살지는 않나 싶어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 아마도 그것을 직원들이 원장 선생님에게 전해 주었던지

원장 선생님과 그의 사모님이 간곡하게 걱정하지 말라고, 정말 잘 돌봐

드리겠노라고 침이 마르도록 약속을 하고 또 하더라는 것이였다. 그렇다

언니는 요즘 보기 드물게 훌룡한 여성이다. 멀쩡하게 직장 잘 다니던 남편이

다단계를 한답시고 집을 나가서 빚만 지는데, 마트에 다녀가지고는

답이 없어서, 호프집을 시작해서, 두 아들 서울 공부를 대학원까지 다 시키고

 남편이 진 빚도 모두 갚았다. 그리고 언니는 호프집을 한답시고

손님들에게 전화를 주고 받거나 하는 일이 절대로 없다. 물론 손님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는 일도 없고, 손님과 낮에 만나 밥을 먹거나 놀러를 가는 일도

없다. 또한 일년 내도록 가게 문을 닫는 일도 없다. 다만 언니가 하는 일이라곤

좋은 재료를 쓰서 안주를 맛있게 만들고, 친절하게, 옆에서 지켜만 봐도 스트레스

받을만큼 철저하게 서비스하는 것 뿐이다. 다 망해가던 가게를 언니가 인수해서

시내 요지의 왠만한 호프집들보다 훨씬 대박을 내놓은 비결은 생각보다 기본적이고

단순한 것이다. 성실하고 정직하고 친절한 것이 전부다. 내가 종업원 입장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언니의 훌룡함에 진저리를 치지만, 내가 손님이라고 생각해보면

정말 깨끗하고 믿을만한 것이다. 언니가 다 망해가는 가게를, 여름에는 앉을

자리가 없어서 손님을 돌려 보내는 대박집으로 만든 비결과 한 직장에 두 달

넘기기가 어려웠던 나를 1년 동안 머물게 한 비결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른

어느 식당 사장들에게서도 본 적이 없는 순수한 기본들이, 사흘들이 진저리를 치면서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녀는 단 한번도 손님 앞에서 웃지 않은 적이 없다.

냠편이 빚을 지고, 아이들 밑에 한 달에 몇 백씩 학비가 들어가고, 급기야 아직 젊은

남편이, 부랴부랴 결혼을 시킨 아들을 하객인줄 알고 인사를 하고 악수를 하며,

자신의 얼굴을 잊어버려서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도둑이라며 물건을 집어 던지고

거울을 깨고 난동을 피우고, 머릿속의 모든 단어들을 다 잃어버리고, 아, 어,우,오,

빈 독에 몇 톨 남은 쌀알처럼 몇 개의 모음만 웅얼거리는 지경에 이르렀어도

백화점에서 미소상을 받았다는 그 환한 미소를 눈물에 적시거나 일그러뜨려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동네에 남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남편이 아픈데

눈도 깜짝하지 않는 독한년"이라고 수군대며, 돈 욕심이 목구멍까지 찼다고 뒷말이

무성 했다고 했다. 언니의 신조는 내 집에 오는 손님에게 인상을 쓸려면 문을 열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연중무휴는 하루 돈 못벌게 되는 것 때문이 아니라

내 집에서 술 먹겠다고 왔던 손님 발길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 미안해서라고 했다.

누구의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고 했지만, 장사를 하는 언니의 사전에는 no라는

단어가 없다. 앉아서 술 한 잔 하라는 주문에 대해서도 단호한 노가 아니라

원래 술을 못 마신다는, 간곡한 양해의 미소를 보인다. 기본 안주로 나가는 멸치를

볶아주고, 땅콩도 볶아달라면 볶아주고, 계란은 몇 개를 더 달라고 해도, 다시

삶아서라고 준다. 거의 무한리필 수준이다. 이런 언니의 노력 덕분인지 객지라

변변한 연고도 없는 사람이 거의 99% 단골 손님만으로 가게가 가득 차게 되었다.

나는 이런 강인하고 훌룡한 여성과 함께 살며, 지구의 자전축처럼 삐딱하던 중심이

점점 12시 시계 바늘처럼 곧게 서 간다. 여전히 무수한 계절을 거느리던 자전축의

각도로 다시 기울어지려는 관성으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기는 하지만, 그 스트레스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 자전축의 변화로 인해 가장 타격이 큰 것은

시다. 누가봐도 상식적이고 정상적이며 이전보다 훨씬 훌룡한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

내 안의 시는 왜이렇게 불편하고 혼란스러운지 알수가 없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그 훌룡함의 교본 같은 언니로부터 벗어나면 막걸리나 소주나 맥주나 닥지는대로 술을

마시게 되는 것이다. 옛날에 상도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기에 나오는 임상옥의

어머니를 참 닮았다 싶은 사장 언니를 만난 것은 내 인생에게 참으로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솔직히 든다. 임상옥이 큰 부자가 되었음에도 계속 주막집을 하며 아들에게

기대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던, 나 문희씨가 연기해서 더 감동적이던 그 어머니,

오후반 사장 언니는 내가 실제로 만나본 사람, 혹은 여성 중에서 가장 훌룡한 사람

인것 같다. 난 훌룡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거의 질색이였지만, 처음으로

훌룡한 사람이 좋아지는 것 같다. 숨이 막히지만, 점점 막히던 숨이 다시 열려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녀를 통해 나의 시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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