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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게서 사람이 걸어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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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플루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25회 작성일 19-04-2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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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반 족발집 일이 진도가 나가지 않아

비가 와서 집에 쉬고 있는 남편을 불렀다.

소스에 들어가는 사과 껍질을 좀 깍아 달라고 했다.

어제 엑스필 아저씨가 새로 나왔다는 버드와이저를

마시자고 해서(버드와이저는 일반 맥주 보다 도수가

1% 더 높다) 목넘김이 좋다며 벌떡벌떡 마셨더니

아침까지 꽐라가 되었다. 엑스필 아저씨는 무슨 까닭인지

내가 앞에 없으면 술을 마시지 않는다. 나는 바닥도

청소해야 하고, 술도 냉장고에 채워 넣어야 하고

할 일도 많은데, 커피만 마시는 사장 언니와는 술친구가

되지 않는지 바쁜 나를 계속 불러댄다. 낮에 사장 언니랑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던 전직 음악 선생과 건축가 아저씨는

예의가 바르고, 박식해서 배울 점이 많은 분들이였다.

나는 해어화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웃었다. 문재인 정부가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고 있다는 말도 되지 막걸리에도

웃음과 침묵을 잃지 않았다, 나는 나보다 많이 배운 사람을

나보다 많이 가진 사람보다 존경하는 버릇이 있다. 고등학교

교사를 했던 직업병 탓인지 많은 말들을, 누군가를 가르치듯이

했지만 나는 학생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질문을 했다.

교회 성가대 지휘를 하고, 젊어서는 꽤나 많은 합창단을 지휘

했던 음악 선생답게 음악에 대해서 해박했다. 나는 무엇인가를

배울수 있는 만남을 참 좋아한다. 남자의 돈을 탐해 본 적은

없지만 남자의 지성을 탐해본 적은 많다. 그러나 지금은

이 지구상에 남자라는 느낌이 드는 남자 사람은,

남자답지 못하게도 오전반 사장 몰래 내가 일하는 족발집에

와서 양파 껍질을 벗겨 주고, 빨간 방수 앞치마를 두르고

설겆이를 해주는 내 남자 뿐이다. 나는 연애 감정의 본질을

알아버린 사람이고, 이제는 여성성으로부터 해방된 사람이다.

폐경이란 참 감사한 현상이다. 남자는 평생이 가임기라

죽을때까지 남자로 살아야 하지만 여성은 폐경이 있어

남성보다 빨리, 훨씬 빨리, 자신의 성별로부터 놓여나

사람이 된다. 여자는 평생 꾸며야 한다거나, 여자는 평생

예뻐야 한다거나 하는 말은 여자는 평생 여자로 살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 내게 씨알도 먹히지 않는 말이다. 한달에

한번 임신이 될수도 있었다는 신호로 피를 흘리고

그것이 재수 없게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일까봐 흰 바지를

입지 못하고,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잘못 먹은 것도 없는

배앓이를 하며 여성성이라는 불편을 감내하지 않아도 되었다니

나의 육체가 드디어 철이 들어, 자신이 여자라는 주장을

하지 않게 되었다니,  남성을 만나도 그저 사람을 만나는

홀가분한 기분이 참 좋다. 아직도 끈적한 시선으로

내 몸이 간직한 여성성을 스캔하는 진화가 덜 된 종족들을

마주치기도 하지만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내 정신은 애벌레를 지나온 나비처럼

꽃들의 머리 위를 비행하는 기분이다. 어느 게이 가수가

"나는 생식기가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는데 생식 능력과 결별해가는 내게서 어떤 조건과

한계에서 자유로워지는 한 사람을 본다.

봄도 산행이 힘겨운지 지리산 팔부능선쯤에 겨우 봄은

당도 해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백숙 집에는 이름 모를

산나물들이 많이 나와서 별로 대화꺼리가 없는 어색함을

떼울수 있었다. 다래순, 우산 나물, 땅두릅...두 손님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나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다투어

열거 했고, 호프집 사장과 종업원은, 사실을 알고 있는

나물 이름을 모르는체 하며 두 손님의 박식에 혀를 내두르는체

했다. 정말 모르는 나물에 대해서 이야기 해줄때는

더 놀라운척 호들갑을 떨었다. 내려오는 길에 음악 선생이

다윗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수십명의 처첩을 거느리고

많은 궁녀들에게 둘러싸여 살았던 다윗왕이 나이 70이 넘어

신하들의 권유로 식은 몸을 덥히기 위해서 나이 어린 동녀들과

동침을 했다는데, 다윗왕은 그녀들과 상관치 않고, 그저

가만히 품고 잤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우스개 소리로

"남자가 나이 어린 동녀를 품고 잠만 잤다면 다 되었다는

이야기 아닌가요?"라고 말하자 지리산에서 하산하는 차가

들썩일 정도로 큰 웃음이 일었다. 갈 때가 되어서

삶을 마무리 하지 않고 뿌려대는 것은 추하다고 선생과

선생 친구가 말했다. 여성은 마무리 하기 좋게 솔기가

말끔하게 박음질이 되고, 남성은 술을 늘어뜨린 청바지

끝처럼 끝없이 올이 빠지는 형국이다. 평생을 정욕에

휩쓸려 살았는데, 죽을때까지 그기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

죽는 것은 참 안된 일인것 같다. 때가 되어 육체가 노쇠해가는

것은 사람에게 참 고마운 일인것 같다. 혈기방장한 동물을

빼고 남는 인간을 스스로 만날수 있기 때문이다. 껍데기와

씨와 과육을 빼고 남는 포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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