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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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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플루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67회 작성일 19-06-1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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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인지 구조인지 정말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자정 넘은, 논두렁 개울가에서 주먹보다 작은 고양이 한마리를 보고

저 녀석, 나랑 같이 살면 좋겠다 생각하는 순간과

아직 단맛 들지 않은 삐삐풀 같은 연하고 갸날픈, 애절한 연두 같은

울음 소리에 대해서 무슨 조치를 취해야한다는 순간이 그기서 그기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어미가 사냥을 나갔다, 먹이를 구하러 나갔나 가정하며 한참을

녀석이 맞는 일생일대의 대환란 같은 시간 곁을 서성였다.

어미는 오지 않고, 녀석의 울음 소리는 받지 않는 전화의 수신음처럼 처량했다.

난 순간 녀석을 손으로 잡고 말았다.

아침 저녁으로 너다섯마리의 고양이에게 밥을 먹이지만(단 우리 마당에 살고 있는)

녀석들은 내 그림자만 비춰도,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도망을 간다.

나는 그 매끄러운 털뭉치들을 꼭 한번 안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 까슬까슬한 혓바닥이 내 손등을 핥는, 까슬까슬한 촉촉함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의 연민 넘치는 구조 의지는 납치로 변하고 말았던 것 같다.

녀석을 들고 집까지 걸어가며 녀석의 찢어지는 울음 소리를 듣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가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고양이가 목젓이 찢어져라 울어대는 통에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서 다시 고양이가 있었던 허허들판 개울가로 갔지만, 새끼 목숨보다

자신의 목숨이 귀했던지, 아니면, 새끼 하나를 구하려다 나머지 새끼도 잃겠다는 판단을

했던 것인지 그 길가에 그렇게도 흔하던 고양이들이 단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오고만 피치 못할 상황을 살을 덧붙여가며 열렬히 설명했지만

남편은 내가 친 사고에 대해서 이마에 손을 얺고 골치 아파할 뿐이였다. 고양이는 밤이 새도록

울었고, 내 살을 두 발로 파헤치며 어미의 젓꼭지를 찾았고, 젓꼭지도 아닌 맨살을 쪽쪽

소리가 나도록 빨아대었다. 난 밤이 새도록 새끼에게서 어미를 뺐고 어미에게서 새끼를 뺏은

측량할수 없는 양의 죄책감에 뜬눈으로 보냈다. "아니야, 이건 명백한 구조일 뿐이야. 고양이는

절대로 새끼를 열린 공간에, 그것도 혼자 버려두지 않아. 내가 오늘 녀석을 데려오지 않았다면

녀석은 저체온으로 죽었을거야" 교회에서 말하듯이 사탄인지, 고양이를 한마리 키우고 싶은

나 자신의 욕망인지 모를 목소리가 내 잠을 재촉하기도 하고 깨우기도 했다. 그러나, 그 뒷날

오전반을 하는 로타리 가에 있는 펫 마트에서 나는 한통의 분유와 젓꼭지를 샀고, 그것을 

녀석의 입에 물리며, 그냥 납치범이 되기로 결심하고 말았다. 그 작은 입으로, 젓꼭지를 빨고,

그 작은 입으로 하품을 하고, 눈을 게슴츠레 뜨고, 가르렁거리다, 내 손바닥을 침대 삼아

소르륵 잠이 드는데, 그냥, 내가 평생 책임질께!하는 외침이 절로 터져 나왔다. 녀석이 사랑스러운만큼

녀석에게서 어미의 젓과 품을 뺏은 것이 미안했지만, 이미 내 마음속은 루비콘 강 건너였다.

녀석이 도대체 태어나서 얼마나 살았는지를 짐작하기 위해 온갖 고양이 관력 검색창을 다 열어 보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고, 앞 이빨이 아주 작게 나있고, 네 발로 어기적어기적 걸었고, 배변 유도 없이도

소변을 보았다. 그러니 이래저래 삼사주는 되었을 것 같았다. 아직 예방 접종을 하기에는 이른 시기 같았고,

녀석은 털에 윤기가 나고 눈꼽이 없고, 설사도 하지 않고, 매우 건강했다. 아마도 내가 한 것이 구조가

아니라 납치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증명해주는 사실 같았다. 녀석은 마치 멀지 않은 전생을 사람으로 살았던

것처럼 나와 우리집에 대한 적응이 빠르다. 심지어는 혼자 두는 것이 불안해서 예쁜 목욕 바구니에 담아

오전반 일하러 갈때도 데리고 가는데 눈치가 빠른건지, 생존 본능인지, 내가 상추를 씻고 족발 배달 음식을

담고, 모든 일을 끝낼 때까지 울음 소리도 내지 않고 쿨쿨 자는 것이다. 그리고 동생들과 밥을 먹기로해서

장어집에 갔는데도, 자리 파할 때까지 목욕 바구니 밖으로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내가 고양이를 납치해서

받아야 할 벌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받은 축복은, 아! 미칠 것 같다.내 몸에 털이 송송 돋고

고양이 입에 맞는 작은 젓꼭지도 돋았으면 좋겠다. 젓을 흘려서 누렇게 떡진 젓꼭지들을 출렁이며

달려가 누워 젓 한통 실컷 먹이고 싶다. 녀석이 무럭무럭 자라서 혼자 두어도 불안하지 않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예쁘다. 정말 예쁘다는 말이 녀석을 위해 생긴 것 같다. 이름을 지어주었다. 명이 길어라고

명길이라고 지었다. 새끼 고양이들이 잘 죽는다는 끔찍한 말을 들었기 때문에, 어쨌거나 명만 길어라고

명길이라고 지었다. 명길이는 나를 첫 아이 엄마의 시절로 돌아가게 만들어 준다. 나는 몸에 젓이 돌고 젖이

차오르는 어미처럼 온통 녀석에게 쏟아지는 걱정과 연민과 찬탄과 예쁨으로, 녀석이 보이지 않으면 아프다.

세상은 온통 어두운데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젖병을 빨고, 하품을 하고, 두 앞발을 쭉 뻗고, 그 앞발을 그 작은

입으로 핥고, 내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 사이를 쭉쭉 빨며 잠드는 녀석에게 쏟아진다. 길가에 버려진 고양이

새끼 한마리 조차 이렇게 경이롭게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 것들은 왠만하면 계속 이 세상에 머물려고

하는 것이다. 언제 어미에게서 그렇게 많은 것을 배웠는지 제 작은 몸을 구석구석 핥고, 똥이 마려우면 바닥을

발톱을 세워 긁고, 생명체가 할수 있는 예쁜짓은 혼자 다하고 있는 것이다. 


명길아!  로또 복권 않되고, 너와 인연이 되어 다행이다. 한  일주일 먹여주고 했다고, 나를 어미처럼 쫄쫄 따라

네 발로 어기적어기적 서툰 걸음을 나를 향해 떼는 너를 보면, 정말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너 진짜 너무 예쁘다.

너와 콧망울을 맞추고, 네 작은 입술의 이빨들이 내 코를 깨무는 것이 참 좋지만, 혹시 네게 나쁜 병이 옮을까봐

숨도 쉴수 없다. 난 널 구조한게 아니라 명백하게 납치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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