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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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48회 작성일 22-04-12 12:47본문
동백이 어느 집 딸 아이가 십년 공부 하면서
펑펑 터졌을 코피를 닦은 휴지 뭉치처럼 떨어지는데
그믐밤, 달빛을 물어 뜯는 개거품처럼 거리 거리에
부글부글 피어오르는 꽃을 사쿠라라고 부르고 싶은 밤이다.
그 아비는 재작년 겨울 폭설에 부러져 설해목이 되었다 하나
설해목을 말려서 장작을 지피면 아궁이에 불이 잘 붙는다하니
훗날 아랫묵에 앉을 때마다 그 이름 기리겠지만
기계톱으로 밑동을 켠 나무처럼 쓰러진 아내와
사방 팔방 36방에 쳐놓은 거미줄에 걸려든 딸아이만 애꿋다
사쿠라라는 것이 본디 푸른 잎을 모르고 덥석 꽃을 피우다
채 봄이 무르익기도 전에 조락하는 꽃인데
피떡처럼 검은 버찌를 품기 위해 마지 못해 잎을 두더니
푸른 잎 아래 하루도 머리 두기 싫다며
이내 비늘이 다 떨어지고 뱀이 될 용처럼 남의 굴을 가로채고는
실눈을 뜨고 살모의 꿈을 꾸는 밤이다.
귀가 시들어 햇빛을 들을 수 없는 누런 잡초들이
햇빛을 향해 떡잎을 여는 파릇파릇한 새잎들을 가리고
바람이 불면 서걱서걱 잎마른 소리를 내며
진실이 내는 생명의 소리를 가려도
마른 땅에 피를 뿌려주려고 오월은 어김없이 오는 법,
아직 4월이 다 가기전에 이미 부서져서 흩어지고 있는
색바랜 꽃이여!
사쿠라가 분분히 지고 있는 봄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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