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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풍경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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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콜키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1회 작성일 22-08-21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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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의 사성함에 갔던 길에, 또 쓸데 없는 것을 산다는 핀잔을 받아가며 

기를 쓰고 샀던 풍경,

실내에는 바람이 불지 않아 울리지 않나 싶어 마당에서 녹슬어 가며

여름이면 호박이나 오이 넝쿨을 받아 올리며 서 있는 남편의 운동 기구에

걸어 놓았다. 그런데 벌써 십년이 다 되어 가지만, 어떤 태풍과 비바람에도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않는다. 추가 너무 무거운 것일까? 어쨌거나 풍경의

오래고 오랜 침묵에 지질데로 지쳐서 다이소에서 오천원을 주고 나풀나풀

콧김에도 소리를 낼 것 같은 풍경을 하나 더 샀다. 개앵갱, 마침 말복을 지나고

처서를 지나고 있는 무더위에 선풍기를 켜 놓은 탔인지, 곰 같은 마누라 대신

데리고 온 여우 같은 마누라처럼 애살이 장난이 아니다. 비 내리는 밤이면

누워서 창밖을 보려고 남편을 졸라 구입한 벙커 침대의 이층 난간에 매달아 놓으니

내가 앉아서 책을 읽고 컴퓨터 화면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공간이 높은 가을 하늘

을 향해 날아 오르는 처마 밑인 것 같아, 스르르 내려 앉던 눈꺼풀이 처마처럼

들리기도 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성당이나 절에서 울리는 종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여름날 가로수에서 들리는 매미 소리도 소음으로 분류한다는 세상이

특정 종교인들의 마음을 울리는 소리를 곱게 들어 줄리 만무하다. 자신들이 내는

자동차 경적 소리나 도시의 곳곳을 땜질하는 소리들은 그대로 두고

내가 어떤 종교를 믿든지 늑골 저 안쪽가지 맥노리가 전해져 오는 깊고 두터운

소리는 소음이라고 규정해버린 것이다. 어쩌면 세상의 어떤 소리보다 먹고 살기

위해서 내는 소리들이 아름답고 거룩하다고 여기는지도 모른다. 사실은 이 도시의

밑바닥에 살면서 그 누구보다 먹고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나는 왜 이렇게

사치스러운 귀를 가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먹고 사는 일이 다급한 형편이기

때문에 먹는 장면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 먹방이 싫듯이, 식기 세척기 돌아가는 소리

물소리,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 그릇 부딪히는 소리등, 먹고 살기 위해 나는 소리가

누구보다 치열한 나는 먹고 사는 것을 초월한듯한 소리들에 목이 마른지도 모른다.

작은 종의 입구를 처마 삼아 매달린 세개의 얇고 더 작은 종들이 프라스틱 옥구슬에

부딪혀서 나는 가볍고 얇은 소리가 잠을 설치게 할 때도 있지만, 나는 그래서 설치는 잠도

어쨌거나 깨어 있는 모습인 것 같아 좋다. 풍경은 악기처럼 맑은 소리를 내지만

그것은 사람이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연주하는 것이다. 사람의 비린내와 

사람이 먹은 음식냄새, 사람의 숨 냄새가 아닌 가을 하늘 새털 구름의 향기,꽃의 향기

솔잎 향기, 허공의 텅 빈 향기가 훅 끼치며 울리는 타악기다. 굳이 사연 많은 멜로디와

어우러지려 들지 않는 홀연하고 자유롭고, 외로운 소리다. 가끔씩 너무 소리를 내지 않는

마당의 풍경이 어디로 떨어져 나가 버렸나 하고 운동기구 손잡이 끝에 달아 놓은 풍경을

찾는다. 어쩌면 바람이 불어도 틱 소리도 내지 못하는 저 벙어리 풍경이 내 목소리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합금이 잘 못 되었을까? 놋이나 불순한 금속이 너무 많이 섞인 것일까?
늘 발바닥이 부어서 절룩거리며 어깨가 축 쳐져서 돌아오는 퇴근길의 나처럼, 벙어리 풍경은

제 무게에 겨운 몸에 바람을 들이지 못하고 매달려 있다. 아무리 기다리도 울리지 않는 저 풍경을

떼어버리지 않는 것은 내게 저 침묵을 듣는 귀가 생기기를 기다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벙어리 소녀와

눈이 마주치면 날 것 같은 그렁그렁한 소리를 내가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내 귀를 단련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쩜 내가 깊이 잠든 어느 밤에는 나즈막한 목소리로 바람의 말을 전했는지도 모른다.

아침에 고양이들 밥을 주러 마당에 나서면, 새소리를 내 안에 들이려고 열었던 귀 한 켠을 그 풍경에게도

열어 준다. 유독 말이 없고 수줍은 친구의 눈웃음 소리 같은 것이 들리기도 한다. 그러니까 한적한

슬픔 같은 것이 내 안에서 맥노리를 치는 것이다. 출근 시간 다 되었다는 남편의 고함 소리를 들으며

종일 땀으로 뒤범벅이 될 얼굴에 얇은 분칠이라도 하고 갈거라고 부랴부랴 화장대 앞으로 달려오면

쿵 하고 문 닫는 역풍에 자지러지게 풍경이 울린다. 어쩌면 내 안에도 두 개의 풍경이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말문을 열고 싶지 않은 벙어리 풍경 하나와, 어서오세요, 네, 아! 삼겹살 삼인분! 내장탕 2개,

육개장 하나요? 네, 소면 육수 하나는 따뜻하게, 또 하나는 차게요? 네!네! 맛있게 해드릴께요! 딸랑 딸랑

배가 고파서 오는 누구에게나 딸랑거리는 다이소 풍경 하나가 함께 매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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