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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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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콜키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00회 작성일 22-09-26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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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세상 어느 모퉁이에서 만나 나이만 같아도 친구를 먹는 세상에서 유독 우리 네 사람을 친구로 부를때만 철석처럼 견고한 실재감에 부딪히게 된다. 하필이면 돌아오는 길이 비슷하다는 것이 우리가 이 철석처럼 견고한 관계를 시작한 가장 첫번째 이유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십년 가까이 유지되어 온 이 관계를 성립시킬만한 다른 이유가 하나도 없다. 네명 다 멀리서 보면 자매들처럼 누구하나 중력이나 나이나 거스른 것이 없어 보인다. 다행히도 누구하나 걸망스럽게 생긴 얼굴이 없어 토종 마늘처럼 조막조막 생긴 얼굴들이고, 고해의 바다라 불리는 이 세계에서 가라안지 않기 위해 배에 두른 튜브처럼 제법 두툼한 뱃살들이 있고, 서로 눈에 익은 우리들 끼리는 "우리는 참 않 늙는다 그자, 우리 또래 다는 애들 보면 진짜 할머니들 같던데.."하면서 서로 서로 자위를 하지만, 정말 처음보는 눈으로 우리를 보면 고만고만 나이값을 하고 있는 모습들이다. 그럼에도 그 모습들 안에 자리한 성격들은 모두 제각각이라 만날 때마다 서로 부딪히고 깨질 것 같은데, 거의 일년에 네번 거의 계절별로 만나서 어디서든 일박을 하고 돌아오는 우리들은 소리내어 부딪히거나 누구하나 깨져서 돌아오는 일이 없었다. 이해를 하고 수학을 푸는 것과 암기를 하고 푸는 것은 다를 것이다. 조금만 돌발상황이 생기고 응용을 해야 되는 순간에는 암기를 하고 답을 쓰는 아이들은 여지없이 깨질 것이다. 그러나 이해를 하고 푸는 아이들은, 지금의 우리 네 사람처럼 유연하고 무리없는 관계에 이를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이해를 가슴의 영역이라고 판단하지만, 나는 이해를 뇌의 영역이라고 본다. 머리가 나쁘면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해하지 않는 것을 무조건 가슴에다 떠맡기는 습관은 건강에 나쁠 것이다. 머리에서 이해하면 가슴이 따뜻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서로를 알고 있다고 믿어도 되는 것이다. 사실 그 중에서 가장 난해하고 별난 친구는 나다. 세 친구는 소주 한 잔을 주면 내가 그기 있는 소주를 다 마시고, 신랑이 먹다 남겨 둔 양주를 바닥내고, 이제는 담아 놓은 과실주 두껑을 열려고 하는 순간까지 잔을 다 비우지 못하고 있는 요조숙녀들이다.게다가 모두들 일부종사(정말 낭만적인 이야기다)를 하며 아이들의 아빠와 살고 있는데 나는 일부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고 지금이 몇 부째의 인생인지 헤아리기도 힘든 것 같다. 그리고 계금을 모아서 모이는 것이라면, 이름난 맛집에 가서 맛나는 것을 먹고 사진을 찍고, 전국 각지의 축제나 관광명소들을 탐방해야 하는데, 우리는 죽으나 사나 여름이나 겨울이나 가을이나 그 중에서 가장 지독한 요조숙녀가 살고 있는 거제도 그녀의 집이고, 김밥을 말아주는 그녀의 집이 우리들 최고의 맛집이다. 그 사실에 대해서 불평을 하는 사람은 나뿐인데, 그마저도 "우리니까 이렇게 놀지, 참 우리 답다. 몇 달만에 한 번 계금 모아 만나서 김밥이나 싸먹고, 미용실이나 가는 우리 친구들 정말 소신있고, 자기 스타일로 놀줄 아는거야"라며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게 끌리는 수수한 여자처럼 우리들의 관계에 끌려가고 만다. 이런 우리의 만남에 대해서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한 경상도 남편들이 누구하나 반기를 들지 않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어느샌가 우리의 관계 자체가 보증수표가 되버린 것이다. 대체로 술 좋아하는 나의 다른 친구들을 질색을 하는, 나의 남편도 어쩐일인지 우리들을 만난다고 하면, 그 먼 거제까지 태워주고, 다 놀고 나면 태우러 올만큼, 오히려 나보다 더 우리 친구들을 믿는 것이다. 이런, 술 안주도 되지 않는 김밥같은 우리들의 만남에 큰 이변 같은 일이 생겼다. 거제 친구가 단골인 미용실에서 친구 세명이 단체로 예약을 해두었다. 깐깐하고 왠만해선 곁을 내어주지 않는 거제 친구가 머리카락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개를 시켜주는 단골 미용실이라 각자의 단골 미용실이 있는 우리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머리를 맡긴 것이다. 비교적 모발이 굵고 숱이 많은 편인 나와 거제 친구는 어느 미용실을 가도 별 탈이 없는데 숱이 적고 모발에 힘이 없는 사천 친구는, 하필이면 웨이브 머리를 질색하는데, 거의 초면인 미용사가 짠하고 내 놓은 작품은 요새 아이들 중에서도 좀 튀이는 아이들이 하는 베이비 펌이였던 것이다. 어디에서나 튀이기를 싫어하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 내면까지 철저히 무난한, 아니 무난을 어디에도 팔아먹을 수 없는 보물단지처럼 지키며 살아가는 그녀에게 베이비 펌이라니, 어디를 가나 이런저런 요구사항이 없는 그녀의 원래 성향을 알길이 없는 미용사가 그녀의 동글동글한 이미지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은 파격을 과감하게 실현해버린 것이다. 중화제를 하고 샴푸를 하고 머리에 뒤집어 쓴 캡을 벗고 거울 속의 자신과 마주한 그녀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사진에 담아두지 못해서 아깝다. 원체 남 듣기 싫은 말을 하지 못하는 그녀인지라, 우물우물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그녀의 두 눈에 글썽이는 눈물이 내게는 배를 잡을 만큼의 큰 웃음을 유발 시켰다. 사실 그 미용사가 사천 친구의 외모를 보고 한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의외로 그 파격적인 머리는 

무난 덩어리인 그녀에게 거의 명중이라 싶은 스타일이였다. 너무 귀엽고 발랄해 보이고, 생기 있어 보이는 것이였다. 우리는 모두 이구동성으로 야! 너무 잘 어울린다. 정말 저 미용사 여기 있기 아깝다. 너한테 딱 필요한 분위기를 딱 집어 냈다. 야...너 한테 이런 이미지가 숨어 있었다니, 약간 악동 같기도 하고..너무 좋다야. " 그러나 사십년 만에 거의 처음 보는 그녀의 화난 얼굴은 말했다. "너그들 머리카락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도 되나? 아! 진짜!"

우리는 그날 거제 친구의 집으로 가서 족발을 시켜 놓고 술을 마시며(나만 마시는 것 같지만) 그녀의 머리가 그녀에게 너무 잘 어울린다는 것을 설득 시키며, 잘 어울리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그녀의 반론과 함께 새벽 세시가 되도록 웃고 떠들다가 잠이 들었다. 우린 일년에 네 다섯번 이렇게 수학 여행 온 여고생으로 돌아 온다. 어디 낯선 축제와 도시도 좋고, 맛집들도 좋지만, 우린 우리에게 낯익은 시절로 여행을 오는 것 같다. 그 시절 거제 친구는 시내에서 큰 점포를 가지고 있던 큰어머니 댁에 얹혀 살고 있었는데, 우리는 자주 그 집에 모여서 김밥을 싸막곤 했었다. 김밥을 싸다가 계란이나 오뎅이 떨어지면 남은 재료들을 몽땅 말아서 볼이 미어져 터질 만큼 큰 김밥을 싸서 먹곤 했는데 그 이후로 어디에서 김밥을 먹어도 그 영상은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이 되었다. 


또 출근 시간이라고, 그 시간에 맞춰 놓은 알람이 울린다.

고 1이던 열여덟으로 돌아가서 이틀을 보내고 온 탓인지,

열여덟처럼 두려움이 사라진 것 같다. 먹고 사느라 일터에서 만나는 자질구레한

부딪힘과 깨어짐들을 견디게 나의 내면이 익숙하고 점성이 강한 행복으로 코팅이 된 것 같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바깥에서 안을 돌아보는 것,

열여덟이 되어서 오십 너머를 바라보니

오래 쓴 그릇들이 품은 균열과 낡음들이 마술처럼 복구되는 느낌이 든다.

일단 일을 하고 와서 

오랫만에 만나서 김밥이나 먹고, 미용실이나 가는 친구들과의

행복을 다시 되새김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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