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 편지·일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편지·일기

  • HOME
  • 창작의 향기
  • 편지·일기

☞ 舊. 편지/일기    ♨ 맞춤법검사기

  

▷ 모든 저작권은 해당작가에게 있습니다. 무단인용이나 표절을 금합니다

얼굴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9회 작성일 23-01-10 22:22

본문

얼굴

=鵲巢**

 

 

    매트릭스가 언뜻 스쳐 지나간다. 가방은 호박과 김치 각종 식자재를 담은 것 하나와 가방은 간편하게 입을 옷가지들이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니, 받지 않으신다. 보험회사 출근 후, 곧장 가보았다. 집에 들르니 안 계시기에 요양원에 가셨나 했다. 이불을 들어내고 방을 닦았다. 부엌도 청소하고 설거지도 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혹시나 해서 요양원에 전화를 할까 하다가 어머니께 먼저 전화를 해보았다. 오랫동안 신호음이 가다가 어떤 남자분이 받으신다. 여기 북삼 지구대입니다. 전화 거시는 분은 누구시냐고 묻는다. 보호자입니다. 어머님이 여기 계시니 모셔가라 한다. 너무 놀랐다. 지구대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또 욕설을 퍼붓고 왜 이제 왔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집으로 가는 길, 어머니는 배가 몹시 고프다고 했다. 각종 나물 반찬에 밥을 비벼 드렸다. 아주 맛있게 드셨다. 설거지하고 국수를 삶기 시작했다. 혹여 드시거나 나중에라도 드시기 편하게끔 놓아둘까 싶어 건져두었지만, 어머니는 국수 삶았거든 좀 내어오라 하셔 그것도 비볐다. 한 그릇 게눈 감추듯 금방 비우셨다. 집안 정리하고 어머니 모시고 오후 일을 볼까 싶어 경산으로 갈까 했지만, 어머니는 내내 통장을 찾고 계셨다. 통장을 어디에다 두었는지 이 가방 저 가방 모두 뒤져보기 시작했고 가방마다 뒤져보았지만, 어머니가 원하는 통장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가라 하신다. 조금 전까지는 경산 가서 팥빙수도 먹고 맛있는 것도 먹자며 하시더니 갑자기 마음이 바뀌신 거다.

    대문을 나서자 옆집 아주머니(은주 어머니)께서 나와 계셨다. 인사를 드렸다. 옆집 아주머니는 말씀이 느리고 어눌하다. 늘 그랬다. 엄마 괜찮냐며 말을 건넨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고 했더니, 얼마 전에 동사(경로당)에 와서 욕설을 퍼부었고 난리가 났다며 한 말씀 주신다. 거기다가 우리 큰 엄마, 치매야 치매, 거기도 요양원에서 사람을 주 패다가 쫓겨 다른 요양원으로 옮겼어, 그러니까 동료 다른 할머니를 때리고 욕설을 퍼부었다는 얘기다. 요양비 꽤 나왔어, 하며 덧붙였다. 얼마 나왔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한 이백만 원 나왔어 그러셨다. 에구 동구가 애먹겠어요. 그래 사람이 너무 오래 살아 힘들어, 옆집 아주머니도 올해 일흔여섯이다.

    조선시대만 해도 평균 수명이 20~30세였다. 조선 말기, 일제 강점기, 해방 전후 약 40대 전후로 수명이 늘기 시작해서 인간 수명이 80세까지 온 것은 근래의 일이다. 이렇게 오래 살아 본 일이 없어 모든 것이 새롭기는 마찬가지다.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정신이 중요하지만 우리는 그렇지가 못하다. 아들이 머리 허옇게 세, 아들인지 분간이 안 가는 시대에 눈만 말똥말똥하다가 이방인처럼 이방인으로 오인하다 겁을 먹는 시대가 왔다.

    그나저나, 어머니는 아침에 보일러 작동 버튼을 잘못 눌러 밤새 냉방에서 지내셨던 것으로 보인다. 북삼 지구대 앞은 동생 내외가 살기도 해서 그쪽으로 가셨던 것이다. 차마, 들러지는 못하고 북삼 지구대로 들어가셔 실내 온기에 잠시 앉아 계셨던 것이다. 집에 모셔놓고 보일러가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며 절대 못 만지게끔 했다. 그러나 분명 기름값 든다며 또 꺼놓을지도 모른다.

 

   얼굴

    희미하게 떠오른 얼굴이 있습니다 말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도 누를 수 없으니 아예 그림처럼 벽에 걸어둡니다 잊어버리고 싶은 얼굴이 잊고 싶은 기억으로 못 박아 둡니다 기어이 겨울은 아무런 말이 없었고 여린 목소리는 저기 저기가 태양을 가리키며 발걸음을 놓습니다 세상은 따뜻한데 듣고 싶은 발소리는 없고 지우고 싶은 발자국만 남아 있을까요? 잊어버리고 싶은 목소리가 기어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밤새 흐물거렸던 겁니다 새벽은 그 거리를 좁혔지만 결국은 닿지 않는 진실에서 마주 볼 용기가 없었습니다 새벽이지만 눈은 더욱 어둡고 보이지 않는 것들만 눈 속에 아른거리는 현실에서 거저 외딴곳에서 주저앉아 어색한 온기에 그 긴 여행을 끝내며 쉬고 있었던 겁니다 왜 왔느냐, 왜 이제 오는 것이냐,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못해 다만 겨울 같은 손만 잡았습니다 필요한 말은 감추며 어색한 말만 이어가는 것도 들을 수 있어 잠시 불안은 걷을 수 있었습니다 깊숙이 파고드는 겨울은 여리게 뛰는 심장에 담아 둡니다. 벽처럼 그림처럼 말입니다 


    23.01.10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4,270건 4 페이지
편지·일기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열람중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0 0 01-10
4179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0 0 02-07
4178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0 0 03-26
4177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1 0 12-22
4176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1 0 01-24
4175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1 0 02-04
4174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1 0 02-18
4173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1 0 02-25
4172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1 0 03-17
4171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2 0 02-11
4170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2 0 03-06
4169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3 0 07-22
4168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3 0 01-09
4167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3 0 01-13
4166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3 0 01-15
4165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3 0 01-25
4164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3 0 02-28
4163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3 0 03-03
4162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3 0 05-14
4161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4 0 12-24
4160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4 0 01-14
4159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4 0 01-26
4158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4 0 02-05
4157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4 0 02-21
4156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4 0 03-10
4155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4 0 03-24
4154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4 0 04-15
4153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4 0 04-24
4152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5 0 12-25
4151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5 0 02-20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