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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무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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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진흙피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0회 작성일 23-04-3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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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슬고슬 갈아 엎어져서 품을 씨앗을 기다리는 봄흙은 침바른 손 끝에 묻혀 혀에 대어 보면 

달달하게 녹을 것 같은 쵸코렛 색이다. 비닐을 뒤집어 쓴 흙 위에 총총히 꽂힌 지줏대들이

올 곧은 선생님들처럼 기대어 세워 줄 줄기들을 기다리 있다. 이른 봄에 심은듯한 마늘과 파

또한 거두어 줄 손길을 기다리고 있고, 창틀에 줄로 매단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며

벙크 침대 이층에 앉은 나는 출근 시간을 기다린다. 이렇게 마지막 눈감을 때도, 싹이 나기를

기다리는 저 봄의 흙처럼 고요히 기다릴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나이 오십이 넘어, 이제는 오십

보다 육십에 더 가까운 나이가 되어 나는 아직도 벙크 침대 이츰에 앉아 아무도 받지 않을 편지를

쓴다. 끊임없이 나에게 드는 나이를 상기 시켜 주고 싶어하는 몸이 무릎을 시켜 불편함을 호소한다.

벙크 침대 계단을 밟을 때 체중이 아래로 쏠려서 발도 아프다 무릎다 아프다 좀 나이에 맞게 살자

한다. 문구점에서 굵은 삼끈을 한 다발 사다가 쇠파이프로 만든 계단에 칭칭 감아 두었다. 나이에

맞게 살지 말고 나에게 맞게 살자 하고, 나는 나이의 나라에 사는 몸에게 엥긴다. 의자 등받이 커브로

뜨게질 한 것을 꺼내어 이층 침대 난간에 삼끈을 엮어 매고 고양이 해먹을 만들어 주었더니 고양이가

비비고 뒹굴고 좋아서 죽는다. 시누이에게서 얻어 온 장스탠드는 하얗고 너무 밋밋해서 문구점에서

비즈와 새의 깃털들을 사와서 촘촘히 끼우고 수를 놓았다. 불을 켜면 색색의 깃털들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벽에는 고흐나 클림트, 세잔 같은 화가들의 그림이 있는 독일 냅킨들을 붙이고 그 위에 젯소를 발라서

나만의 미술관을 만들어 놓았다. 남편과 어머니는 무당집 같다고 하는데, 나는 이 무당집 이층 침대에 앉아서 동네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리며, 더 빨리 그릇을 닦으면 더 빨리 시간이 가는 것처럼 온 종일

그릇을 닦아댄다. 잠을 청하려고 불을 꺼면 우리 동네 저수지 앞에 있는 한 개의 교회와 한 개의 기도원에서

빨간 십자가 하나와 하얀 십자가 하나가 불을 켜고 있다. 저수지 옆의 가로등도 땅별들처럼 띄엄띄엄 빛을

발하고, 어둠은 빛 때문에 더욱더 깊어보인다. 가끔은 외로운 생각이 들어 내가 일을 마치는 아홉시 열시 이후의 시간을 짜내어 만든 나만의 까페이자 미술관이자 골방이자, 도서관인 이곳에 친구를 불러 함께 차를

마시는 공상을 하지만, 인테리어 시공업체나 도배쟁이들이 티끌하나 없이 말끔하게 붙여놓은 벽을 보며 사는 존재가 사람이라고 믿는 친구들의 견고하게 고정된 생각들에 부딪힐 것 같아, 그냥 고양이와 나를 벗으로 삼는다. 그런 눈으로 둘러보면 군데군데 고양이가 발톱으로 뜯어놓은(특히 모나리자와 귀걸이를 한 소녀는 이 무당집에서 가장 원한이 많은 귀신들로 보인다) 그림 냅킨들과 내가 갈치 상자로 만든 화장대와 고양이를 위해 만든 출렁 다리와 고양이를 위해 만든 갈치 상자 발코니가 괴기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나는 어차피 고양이와 한 방을 쓰기 때문에 고양이의 취향을 존중할 수 밖에 없다. 이제는 고양이가 창가로 갈 때 키보드를 밟고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창가로 직통할 수 있는 고양이 미로를 하나 설치해야 할 것 같다. 고양이가 한번 지나가고 나면 세시간 동안 머리에서 기름처럼 짜내었던 시가 날아가버리고, 한참 클라이막스로 넘어가는 영화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쓰던 글은 $%^^&&**(()() 같은 고양이 언어로 번역이 되버린다. 그래도 나와 남편이 일하러 나가면 온 종일 혼자 있는 고양이에게 화를 내면 고양이가 심장이 상할 것 같아서

고양이를 안아준다. 아마도 고양이는 키보드를 후두둑 밟고 지나간 자신의 행동이 잘 한 것이라고 믿을 것 같다. 내가 무슨 대단한 글쟁이라고, 그깐 글줄들은 다시 쓰면 되는 것이고, 고양이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 썼던 기억을 더듬는 것이 치매 예방에도 좋을 것 같다. 


오늘은 아홉시 삼십분에 동네 입구에 있는 편의점 앞에서 출근하는 차를 기다려야 한다. 단성과 원지 사이에 있는 한우 고깃집이라고 했다. 나는 열 두 시간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야 다시 이곳 나의 무당집으로 돌아 올 수 있다. 오월은 한숨으로 시작한다.  어린이와 어버이에게 쓰게 될 돈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숨이 찬다. 어린이들은 이미 서른이 넘었고, 어버이는 팔십이 다 되었다. 서른이 넘으면 녀석들도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어린이날이 다가오면 지갑을 점검하게 되고, 어버이는 또 한 해 더 늙어서 염려도 한 시름

더하게 된다. 조카며 외삼촌이며, 시어머니, 시이모, 그래도 오월은 아름다운 근심을 하게 되는 달이다. 내

주면에 이렇게 챙겨야할 소중한 사람들이 많았다니, 나도 인생을 그리 나쁘게만은 살지 않은듯하기도 하다.


오늘 갈 식당은 어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사실은 사람이 징그럽다. 또 사포처럼 거칠게 스쳐갈

인연들, 그렇지 사포가 거칠게 지나간 나무는 표면이 매끄러워지고, 쇠는 녹이 닦이지. 스치고 또 스쳐서

나에게 돋힌 가시를 없애고 나를 광택에 이르게 해 줄, 고마운 이들, 웃기 싫어도 웃자. 말 섞기 싫어도

말하자. 뭐 사랑 씩이나,  그저 미워하거나 무심하지 말자. 그들 또한 하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 홀로 앉을 이층 침대가 있을 것이고, 덕지덕지 자신을 발라서 만든 무당집이 있을 것이고, 밤새 천정을

올려다보며 그림들을 붙여도 함께 봐 줄 이 없는 외로움들이 있을 것이다. 공중에 쑥 나타나 돌벽에 글자를

새기는 손이라도 나타나 쓰다듬어 주지 않으면 존재하지도 않을 썸뜩한 존재들,  그럴수 없다면 손내밀지

말자.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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