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릇, 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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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흙피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3회 작성일 23-05-01 10:14본문
노릇노릇,
명태전이 노릇노릇,
부추전도, 산적도, 생선도
노릇노릇
사람도 익으면 노릇, 노릇을 한다
엄마 노릇, 딸 노릇, 며느리 노릇,
사장 노릇, 알바 노릇, 친구 노릇
노릇, 노릇은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다
사람이 익은 모습,
사는 일은 사람이
노릇, 노릇 하게 익어가는 일
느긋하게 불을 낮추고
찬찬히 들여다 보고
마음이 골고루 닿도록 뒤집어 주고
따뜻할 때 내어 주는 일,
노릇, 노릇 못 하면
기가 찰 노릇
섭섭할 노릇
서러울 노릇,
역할, 의무, 본분 같은 말을
따끈하게 달궈진 팬 위에 쏟아 붓고서야
가쪽 부터 가운데로 익어가는 경지
내가 사람 노릇하고 살도록
제 심장 데여가며 가슴을 달궈놓고
여지껏 기다려 준 사람들
참 고맙다.
오랫만이다. 시여!
머리카락이 다 빠진 라푼젤이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첨탑의 창살 밖으로 내밀어 보는 기분이다.
내가 앉은 벙크 침대의 창 밖으로는 거의 구십이 다 되었다는
노인이 새벽마다 어김없이 나와서 밭을 돌본다.
사람들은 영감이 귀가 먹고 치매가 왔다고 하는데
노인에게 그 밭은 그 시간에 만나기로 한 애인 같은 존재다.
애인 같은 것이다, 라고 쓰려다 애인 같은 존재다 라고
쓴 것은 것은 그 노인의 애착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할 수
없지만 존재는 노인의 애착에 대해 살아 있는 반응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와 무관하며 상호 관계할 수
없는 것은 존재라 하지 않고 것이라고 나는 표현한다.
시가 내게 그 노인이 돌보는 밭이였던 적이 있었다.
자나 깨나 시를 생각했고, 자나 깨나 시에게로 와 있었다.
그 무렵 시는 내게 존재였다 시는 나에게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 깨어 있는 시간이 모자라 잘 때도 시를 생각했었다.
나는 시에 대해 아무런 목적이 없었다. 그저 시 자체가
목적이였다. 시와 사랑에 빠졌고, 시는 내게 팜므파탈 같았다.
나는 기꺼히 파멸 되었고, 파괴 되었으며 파열 되었다. 시는 내게
성령 같기도 했다. 내가 시에서 벗어난 생각이나 행동을 할 때
시는 내게 끊임없이 시에게로 돌이키라고 속삭였다. 그러던 어느날
부터인가 시가 나를 떠났는지, 내가 시를 떠났는지 알수없게 되었다.
몇 년이 그렇게, 서로 잊은듯이 흘러갔다. 별다른 실마리도 없이
기억상실증에서 문득 깨어난 사람처럼 나는 시를 떠올렸다.
아! 그래, 나는 시를 쓰고 살았지. 어쩐 일인지 그렇게 살았지,
시 쓰는 사람 말고, 나는 아무도 아니였지. 나는 아무도 모르는
시인이였지만, 시인 말고는 정말 아무도 아니였지.
이젠 잠이 온다. 오늘은 문득 벽은 온통 하얗게 칠해버렸다.
독일 냅킨 명화들은 구질구질한 기억들처럽 내가 칠한 페인트에
다 묻혀버렸고, 창틀을 필름처럼 에워싼 고호와 한쌍의 홍학,
세잔의 꽃 그림, 누구의 그림인지 알 수 없는 달맞이 꽃만
남겨 두었다. 갈치상자로 만든 화장대는 흰색과 초록색을 섞어
만든 소라빛으로 칠했다. 고양이 발코니 두 개도, 원목 파티션
테두리도 소라빛으로 칠했다. 손가락 끝이 소라색과 흰색 페인트와
아크릴 물감으로 떡이 졌다. 역시 행복이란 언어가 만든 신기루다.
덕지덕지 붓질을 할 때 나는 마음이라는 공간이 사라져버리는 것 같다.
기분이라는 것이 없어져 버리고, 내가 칠한 흰색이 더해지는만큼
어쩐지 자유로워진다. 그런것을 행복이라 부르는 것은 과장인 것 같다.
그런 것은 어떤 것으로도 불릴수 없는 텅 빈 것이다. 사람들은 있지도
않은 것을 인생의 목적처럼 떠들어대고 있는 것 같다. 정말 좋은 마음은
기쁨도 슬픔도 아닌,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순간과 순간과 순간들이다.
진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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