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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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흙피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7회 작성일 23-05-02 23:19본문
오늘은 고호의 해바라기와 세잔과 인어공주를 지웠다. 나비 그림을 사와서
바니쉬를 발라 벽에 붙였는데, 또 구질구질을 반복하는 것 같아 다시 젯소를
발라 뭉개버렸다. 파티션에 칠한 밝은 소랏빛을 만들려고 밝은 초록과 하양을 섞었는데
아무리 이것저것 섞어 보아도 어제의 그 밝은 소랏빛이 되지 않아, 뭔가
마음에 차지 않는 어정쩡하고 탁한 연두로 선풍기를 칠해 버렸다. 물감이 아까워서
그랬지만 곧 후회 막심이였다. 할수 없이 올 여름은 어정쩡하고 탁한, 기분 나쁜
연두빛 바람으로 더위를 식혀야 겠다. 고호와 고호, 또 고호와 고호들 사이에 하얀
젯소를 칠했더니 왠지 고호가 성스럽게 보인다. 식당에서 얻어 온 맥주 상자에
밝은 소라빛과 하양을 칠하고 화사한 목단 같은 꽃에 나비가 앉은 냅킨 그림을
바니쉬로 발랐더니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그 위에 주인집 아들이 집 주변에 쌓아 놓은
대리석 하나를 얹었더니 책이나 커피잔을 올릴수 있는 작은 테이블이 되었다. 내일도
가능하다면 하나라도 더 칠해서 지워버려야겠다. 지우면 지울수록 벽과 천정이 깨끗
해보인다. 깨끗하다는 것만큼 좋은 치장은 없는 것 같다.
요즘에는 물질이 넘친다. 사람들은 물질의 홍수에 휩쓸려서 허우적거린다. 너무 쉽게
사고 너무 쉽게 버린다. 버린 것들은 대량의 쓰레기가 되어, 또 돈을 쓰게 만든다. 시간이
나면 버리는 세제통으로 돼지 저금통을 만들어 보아야겠다. 락스통은 파란 색이고
식기 씻는 세제통은 노란색이다. 내가 궁리를 해서 거두면 뭐라도 구실을 하며, 어딘가에
쌓여서 골칫덩어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소중히 여기지 않는 마음들이 세상을 함부로
대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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