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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을 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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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진흙피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8회 작성일 23-05-0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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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바이올린 연주곡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늘 남편의 팔베개를 하고 자는 고양이가 오늘은 나의 팔베개를 하고

이층침대에 깔아 놓은 양털 깔개위에 녹은 치즈처럼 늘어져 누워

눈을 감고 꼼짝도 하지 않는다. 평소 때는 제 몸에 손도 못대게 하는

녀석이 배를 드러내고 배를 만져도 게슴츠레 감은 눈을 뜨지 않는다.

왜 고양이의 평화로운 모습은 이 세계의 평화를 인증하는 것 같은지,

거의 열번은 넘을 것 같은 덕구의 출산에 남편은 신경이 많이 쓰이는지

자신의 술안주를 하려고 사두었던 치킨너겟과 고등어, 고기 따위를

일부러 구워서 젖이 딸릴 덕구를 위해 던져 주고 있다. 평소때 내가

고양이들에게 그짓을 하면 사람 먹는 것을 준다고 역정을 내던 그가

참 많이도 변했다. 같이 산 십년의 세월이 서로에게 베여서 우리는

섞여진 물감처럼 알게 모르게 동색이 되어 온 모양이다. 마당에 밥을

먹으러 오는 고양이들 때문에 걱정이 되어 이사를 가지 못하겠다는

나의 말이 점점 그의 마음이 되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고보니

나도 참 복도 많다. 새로 가는 공장 구내 식당은 제법 먼 거리인데

기름값이 아깝다며 시외버스를 타고 갈까 어쩔까 궁리할 겨를도 없이

일을 마치고 나오는 길가에 그의 트럭은 서 있다. 얼마 전 방지턱을 넘다

앞으로 확 쏠려버린 나의 이마에 부딪혀서 앞 창에 커다란 거미줄 하나가 쳐진듯

금이 가버린 낡은 트럭이 창피할 때도 많지만, 버스를 세번씩이나 갈아타는

수고에 비하면 다 배부른 투정이다. 아마도 그의 직장이 변변하다면 누릴

수 없는 복일게다. 이제는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을 필요가 없을 나이다.

물이 별로고, 정자가 별로이면 좋은 산만 즐기면 된다. 물만 좋고 둘이 다 나빠도

마찬가지다. 둘이 별 볼일이 없어, 하나가 더욱더 빼어나게 느껴진다. 생선 냄새도

맡지 못하던 그가 오늘 마당에 앉아 가스버너 위에 고등어를 굽고 있었다 뒷산에

가서 손수 머위잎도 따다가 쪄 두었다. 돈 번다고 자기 주는 것도 아니고 늘

친정이야, 아이들이야, 괜히 내 논앞을 에둘러가는 물에 지나지 않는데도

고생한다고 집안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세상에 내게 남은 친구라곤

여고때 친구 세명이랑 그 밖에 없다. 나는 세상에서 이 네 사람 말고 만나고 싶은

친구가 없다. 술을 함께 마시고 싶은 친구도, 어디 함께 놀러가거나 밥을 먹고 싶은

친구도 이 네 사람 뿐이다. 늙은 엄마와 아들 둘, 혈육 같은 친구들,


사랑을 치다가 사람으로 치는 경우도 있고, 사람을 쳤는데 사랑을 치는 경우도 있다.

사랑이 사람을 만들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그로인해 내가 참으로 사람이 많이 되었구나하고 느껴질 때가

많다. 한참 색칠하고 만드는 일에 빠져서 냄새 나는 갈치 상자를 주워다가 이런 저런

물건들을 만들어 용감하게도 내 방에 들인 적이 있었다. 락스에 담궈서 몇 번을 말리고

씻고를 반복 했지만 나무에 베인 갈치 냄새는 나의 방을 커다란 갈치 상자로 느껴지게

만들고 말았다. 그 때는 어떻게 그렇게 대책없이 미쳤었는지, 환기를 시키고, 향수를 뿌리고

오만 궁리를 다해보아도 갈치 썩는 냄새는 더 짙게 베여드는 기분이였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몇 해가 흐르고, 이제 내 방에서는 더 이상 갈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는 갈치 상자로

만든 화장대에서 은은하게 내가 쓰는 스킨 로션 냄새가 난다. 나는 어쩐지 내가 그에게 그 갈치 상자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돌아보면 정말 사람도 아니였던 것 같다. 내가. 그런데 그와 십년 가까이를

살면서 내게 질퍽질퍽 찌들어 있던 상한 진물들이 뼛속까지 마르고 조금씩 조금씩 옅게 한 겹씩

한 겹씩 은은하게 그가 내게 베여든 것 같다. 비록 갈치 상자가 되었지만 어떤 나무 조각은 무늬결이

예쁘고 매끄럽고 단단하다. 이제는 가까히 코를 대어보면 은은한 솔 냄새가 나는 나무도 있다.

옹이 구멍이 나 있는 것도 있고, 짙은 외피가 그대로 간직되어 있는 것도 있다. 이렇게 조금씩 천천히

옅게 나도 그에게 베여들어갔을까? 그는 한쪽 귀에 피어싱을 하고 눈썹을 문신 했다. 그리고 천이 너덜

거릴정도로 매고 다니던 가방도 바꾸었고, 내가 그에게 올 때 가지고 온 책들 중 여러 권이 그의 정신을

이루게 되었다. 그냥 그저 외로워서 어디라도 기대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에게 존경이라는 형태의 이전에

가져 본 적이 없는 좀 고귀하게 느껴지는 감정이 생겼다. 사랑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사람을 만드는 것

같다. 그로인해 된 사람, 내가 요즘은, 옹이 구멍 많은 갈치 상자 화장대처럼, 불완전하게 나마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로 느껴진다. 첫째로 말이 없어졌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게 내게 피부처럼 착 달라붙어 있던

거짓이나 허영, 객기, 얕은 취기들이 거의 다 사라진 것 같아 홀가분해졌다. 그것이 거짓말은 커녕 진실도 말을 더듬어서 잘 말하지 못하던 그에게 내가 받은 선물이다. 그는 나의 너무 오랜 성장기를 지켜보고 함께

하며 함께 아파해왔던 것 같다. 나의 어처구니 없는 어리석은 일들을 그는 다 알고 있었지만 단 한마디도 

아는체를 하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말 없이 덮어주고 기다려 주었던 것이다. 그것을 아는데 아둔한 나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가끔은 그와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결혼 할

때가 다 되었는데, 낯 뜨겁다 싶기도 한데, 이제는 그의 진짜 부인이 되고 싶은 모양이다. 같이 사는게 결

혼이지, 내가 언뜻 말을 꺼내보면 그가 하는 대답이다. 나 또한 일 벌일 엄두가 나지 않아, 하긴, 뭐..하고

지나치게 되기도 한다. 아직 봐줄만 할 때 드레스도 입고 사진도 찍고 하면 좋을텐데 싶기도 하고,


사랑한다는 말은 함께 십년을 살고 나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인간이랑 살면서 죽도록

개고생을 해보고 죽이고 싶도록 미워도 해보고 원망도 해보고, 술 한 잔 되면 유리창에 한 쪽 구두를

던져서 박살도 내보고, 쌍욕도 해보고, 보따리는 열만번도 더 싸보고, 그래도 사랑하는 것이 사랑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요즘엔 자주 든다. 


그는 내가 자신에 대해 이렇게 심한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를 박박 갈며 코를 골며

방귀를 끼며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그의 이마에 키스를 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게 되어야 사랑하는 것이다. 잘 자라. 서방아. 나의 서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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