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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리나가 있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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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진흙피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8회 작성일 23-06-0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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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했던 오카리나가 왔다. 짙은 보라색의 목에 금빛 무늬가 있는 도자기 오카리나가 왔다. 

이제껏 프라스틱 오카리나를 불었는데, 이제는 정말 흙 피리가 왔다. 그러나 사실은 오카리나를

불었던 적이 한참도, 정말 한참도 더 되었다. 인터넷을 찾아보고 더듬더듬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약간 변주도 할 수 있었던게 이년 전이고, 이제는 그 조차도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내 집에 소리가 엄청 고운 보라빛 새 한마리가 날아든 것 같다. 남편이 귀신 나온다고 말렸지만 우선 무엇이

무엇이 똑 같을까, 학교 종을 불어 보았다. 기초적인 운지법 조차 새의 몸통을 한참을 이리저리

더듬고서야 기억을 해내었다. 아니 높은 음은 아예, 아직도 기억할 수가 없다. 내가 따뜻한 숨을,

날숨이 되면 노래가 되는 애절한 숨을 자꾸 불어 넣으면 새는 온 몸에 피와 온기가 돌아 내 손바닥을 박차고 날아오를수 있을 것 같다. 


새로 가기로한 식당은 강을 뒤로 한 어탕집이다. 강숲이 삼면을 에워싼, 요즘 아이들 말로 뷰가 정말 좋은 곳이다. 그 뷰란 것이 돈을 내고 밥을 먹는 홀쪽보다 내가 설겆이를 하는 주방쪽이 훨씬 좋다는 것이, 아! 어제 도자기 오카리나가 온 것 다음으로 큰 행운이다. 도자기 오카리나는 내가 돈 주고 구입한 행운이고, 뷰가 좋은(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은행나무의 울창한 품속에 서서

뚝배기와 앞접시와 찬그릇들을 씻게 된 것이다) 주방에서 일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행운이다. 62세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처럼 흰머리를 고스란히 드러낸 여사장은 키가 크고, 몸매가 아름답고, 지적인 느낌이 드는 여자다. 미리 체계적으로 준비가 된 음식을 하지 않고, 두서없이 닥치는데로 음식을 해내는데도 분명 그녀 자신처럼 매력적인 맛이 날 것 같다. 메기 어탕과 쏘가리

피리 튀김, 아무 양념도 되지 않은 곰탕과 어탕국수, 홍어 따위가 그녀의 손과 혀를 거쳐서 나간다. 나는 메기 어탕에 열다섯 조각의 수제비를(추가 주문엔 스무 조각이다) 뜯어 넣거나, 전식으로 나가는 전을 부치거나, 곰탕에 나가는 부추를 양념해주고, 설겆이를 한다. 떨어진 야채나 어탕을 가지러 가는 주방 뒤란에는 요즘 인테리어 소품으로 비싸게 팔리는 기왓장으로 경계를 만든

텃밭이 있고, 늙은 개가 있다는 왼편 숲이 보이는데, 좀 아쉬운 것은 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햇볕이 짱짱하고 바람이 시원하다. 가사원 소장에게 소개비를 떼어주지 않아도 되는 곳이라

더 좋다. 나는 한 동안 그기 머물 것이다. 마치고 돌아오면 다시 제대로 된 운지법을 배워서 오카리나를 불 것이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고, 양희은이 노래한 아름다운 것들, 그리고 섬집 아기, 더 욕심을 내자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불 것이다. 어쩌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불어야 할지도 모른다. 다음에 내가 살 것은 노트북과 라탄 그네 의자다. 노트북을 사면 뒷산에 올라가서도, 비오는 마당에 텐트를 쳐놓고도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라탄 그네 의자에 앉아 넷플릭스영화를 보고 싶다. 육십이 넘어도 칠십이 넘어도 노후를 대비해서 일한다고 했다. 도대체 언제 부터가 그대의 노후냐고 묻고 싶어진다. 이미 육십이 넘으면 그대의 시간은 노후에 당도해 있는 것이다. 얼마나 늙어야, 늙은 후가 되는 것인가? 내 나이 오십여섯이다. 더 이상 더 늙은 후를 대비하며 인생을 어디다 잡혀먹어서는 않된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업을 지어서도 않된다.

모르겠다. 내생을 믿는 것인지,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내가 더 오래 존재한다는 이유로 불편해지거나 상처 받는 인생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내게서 나는 소리가 한 소절 쯤은 새들의 소리처럼

예쁘고 맑은 것이였으면 좋겠다. 아! 또 출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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