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흙이 마르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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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흙피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9회 작성일 23-06-06 07:21본문
오카리나를 불 시간이 없었다.
다육이가 너무 자라서 옮겨 심을 화분을 만드느라
일을 마치고 온 시간 중 하루를 보내고
또 하루는 그냥 잤다.
오백원짜리 찰흙으로 오면을 각각 만들어 가장자리에 구멍을 뚫고
그것을 삼끈으로 묶을 생각이다. 사두었던 찰흙의 양으로는
삼면 밖에 만들 수 없어 작업은 중단 되었다. 오늘은 남편에게
찰흙을 사두라고 졸라서 꼭 밑면과 남은 한 면을 만들 참이다.
한 이틀 말려두었더니 흙이 굳었다. 가마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마당에 굴러다니는 삭정이들과 화분을 만들고 남은 갈치 상자
조각들, 동네 담벼락마다 서 있는 파레트 따위에 불을 지피고
그 안에 올려 놓아도 진흙은 구워진다. 애써 만든 화분들을 볕에
내어놓았다가 퇴근해보니 한낮에 잠깐 다녀간 비에 녹아 내려
속이 상했던 나는 남편과 모닥불을 피워놓고 술을 한 잔 하다
여자 얼굴 모양으로 빚은 화분 하나를 그 불 속에 넣어 보았다.
그런데 그 여자 얼굴은 거의 삼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마당에서
비바람을 맞고 있다. 불을 지난 흙처럼 단단해져야지 하고 살지만
나는 여전히 소낙비에도 녹아내리며 산다. 좋은 점도 있다 물을 더 붓고
이개면 또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질수 있으니 좋기도 하다. 누군가
벽돌로 쌓아 올린 가맛불이 아니라 그렇지 나 역시도 마당에 무심히
붙인 모닥불 같은 자잘한 불들을 견디며 살아 왔는지도 모른다. 골고루
구워지지는 못해도 어느 부분은 단단해지고 어느 부분은 쩍하니 쪼개져
나갔을 것이다. 그래도 화분의 형상을 이룬 것이 기특해서 깨지면 깨진
데로 마당 한켠에 내버려 두었던 화분처럼 나 역시도 불속에서 깨진
조각들로 이 세계에 내버려져 있는지도 모른다. 새로 나간 어탕집 저온창고
가는 길에 깨어진 장독 뚜껑에 흙을 담고 꽃씨를 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깨어지면 깨어진데로 껴안을수 있는 꽃들이 있는 것 같다. 깨진 것이
깨어진 형체로도 기어히 꽃과 풀과 다육이를 품고 있는 모습은 멀쩡한 화분들의
멀쩡한 모습들과는 차원이 다른 매력을 가진다. 어쩌면 껴안는 쪽은 화분이 아니라
꽃인지도 모른다. 꽃을 품지 않으면 흉물스러운 파편에 지나지 않는 것이 꽃을
품고서야 번들번들 유약을 바른 비싼 화분들이 흉내낼수 없는 운치가 되는 것이다.
화분이나 장독이나 그릇이나 원래 내게로 흘러드는 인연을 담고자 하는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꽃이나 풀들은 주어진 자리가 어디든 뿌리를 내리고 선 자리에서
꽃을 끌어올리고 열매를 맺으려는 의지를 가진 것이다. 그렇게들 서로를 만났으니
우리는 우리들 자신도 모르게 극한의 의지를 담은 드라마를 무심코 보게 되는 것 같다.
갈치 상자 화분은 그 틈새가 많아 비가 오면 많은 흙들이 쓸려내려간다. 그 얇은
흙에도 뿌리를 내리고 싹을 피우는 모습에서 보게 되는 인간극장도 있다. 정신지체아
엄마와 아빠 사이에 태어난 정신 지체아 아이가 어두침침한 반지하 방 책상에 엎드려
일그러진 얼굴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떤 꽃들은 갈치상자의 윗칸과 아랫간 틈새로
뻗어 나온다. 열 구멍 다 막아도 시작되는 피리의 도음처럼 호흡을 불어넣는 신이
있기 때문에 생명은 틈을 열고 만다. 깨어진 화분은 꽃을 보듬고 꽃은 깨어진 화분을
보듬는다. 보듬는다는 말은 참 예쁘고 둥글고 따뜻하다. 껴안는다는 말도 좋지만
보듬는다는 말은 멍들까 다칠까 꽃잎을 만질때의 느낌 같다. 가장 자리에 구멍을
뚫고 삼끈으로 오면을 묶으면 화분이 될 것 같은데 좋은 가마가 없는 길바닥의
싼불을 잘 견뎌주면 좋겠다. 세상에 정해진 것이란 모두 지어낸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해지고 옳은 것이 된다. 사방의 틈새로 풀이 돋아나면
그 풀을 뽑지 말아야겠다. 우리가 불에 굽는 것은 모양을 낸 흙덩어리가 아니라
이미 포화 상태가 된 다육이들의 숨통을 트여 주어야겠다는 우리들의 마음이다.
늘 불을 견딘 그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남은 날들을...
불을 잘 견딘 오카리나를 정말 잘 불어보고 싶다. 이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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