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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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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진흙피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3회 작성일 23-06-06 08:20

본문

요즘 흰머리 여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아직도 흰 단발머리 여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팬이다.

그녀가 했던 어떤 좋은 일들보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녀가 바람에 흩날리던 그 흰머리였다.

검은 빛으로 충분히 물들이고 감출 수 있는데

그냥 흰머리인 그녀가 텔레비젼이 보여줄 수 있었던 어떤

여자보다 젊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거의 한달에 한 번, 좀 게으럼을 피우면 두 달에 한번은 염색을

하는 나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처음에는 야금야금 나중에는

노골적으로 닥치는 세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나인 것에 아무 꺼리낌없는, 바위표면에 끼인 이끼가 푸르고

마르는 것에 대해 연연하지 않는 큰 바위 같은 그녀의 존재에 대해

아이돌 스타의 공연을 보려고 밤잠을 설치는 소녀처럼 나는 열광했다.

백상 시상식이나 영화 텔레비젼 시상식에 나오는 상품들은 모두

한 공장에서 찍어낸듯한 모습이다. 긴 생머리, 드러난 가슴과 어깨,

잘룩한 허리 엉덩이, 바람에도 날려 갈 듯 가녀리고 약한, 예쁜

나는 어쩌면 폭탄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그런 숨막히는 미의 진열대에

던져지는 폭탄!


내가 새로 다니는 식당의 여사장은 흰머리 여자다. 요즘 오십대 육십대의

흰머리는 용기와 신념의 깃발 같은 것이다. 내게 깃들어 오는 모든 시간에

대한 포용이며 내가 될 수 있는 모든 나에 대한 존중이며 고착화 되지 않은

자유로운 미학의 표현이고, 보여지는 내가 아니라 존재하는 나에 대한 주인

의식이다라고 거창하게 포장할만한 일이 아닐수도 있다. 그저 귀찮고, 시력을

나쁘게 하고, 머리에 그렇게 독한 약을 칠한다는게 무서을수도 있다. 그런데도

과감하게 브레지어를 벗어던지고, 힐을 벗어 던지고, 펄렁이는 자루 같은 바지를

입는 요즘의 젊은 여성)들의 증상 중 하나로 읽히는 것을 어쩔수 없다. 더이상

나 자신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나로 살지 않을 거라는 선언 같은 것을 나는 듣는다.

그녀는 그 또래 여성 치고는 상대히 큰 키다. 마르거나 살이 쪄서 그런 것이 아니라

골격 자체가 잘 빠졌다. 늘 입고 있는듯한 청바지와 반팔 티셔츠가 참 잘 어울린다.

그리고 솔직하고 분명하다. 다분히 감상적이고 실제보다 나의 감상으로 대상을 각색해서

바라보는 나와는 완전 다른 사람 같다. 욕심이 많을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믿을수

있는 것은 엉큼하지 않다는 것이다. 머리카락이 하얀데 검은체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달에 한번, 길면 두 달에 한번, 보는 이들을 위해 머리 카락 색깔이 변할만큼 독한 약물에

나를 담그는 사회적인 의례를 거부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거다. 머리카락은 아픔을 표현하지

않지만 죽은 인초(人草)가 아니다. 마약 성분을 검출할 때도 머리카락을 사용한다. 사람이

아프거나 피곤하면 머리카락이 푸석푸석해진다. 머리카락은 생각보다 많은 의사표현을 한다.

속세와 인연을 끊고 구도자의 삶을 살겠다는 선언은 머리카락을 밀어버리는 것으로 대신한다.

군대에 갈 때도 머리를 민다. 예전에는 귀밑 오센치 단발머리가 되는 것으로 중학생이 되었다

는 선언을 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처녀는 귀밑 머리를 땋고, 유부녀는 비녀로 쪽을 졌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할 때 가장 먼저 했던 것도 상투를 자르는 단발령의 실행이였다. 

여자들은 기분이 좋거나 나빠지면 머리를 볶거나 지진다. 머리카락은 대부분 어떤 결의를 하거나

앞으로 한동안 마음의 흐름을 바꾼다. 우리 나이에 흰머리를 검은머리로 물들이지 않는 것은

한 올 한 올 내게 물들어오는 지금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보듬고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 같다. 

한 살이라도 어리게 보이고 싶어 처음보는 비슷한 또래의 여자가 나를 보고 언니라고 하면

괜히 기분이 잡치는 나 같은 속물은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지금을 사는 사람 같다. 옛날 신성일과

최무룡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괜히 건들거리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고, 대사가 판에

박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진정한 우리의 영화가 아니라 서양의 영화를 흉내내던 수준의 영화판

이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나는 한다. 내가 나일때는 어떤 짓을 해도 자연스럽고 담백한 것이다.

내가 남의 나를 흉내낼 때는 조미료를 친 나물처럼 느끼해지는 것이다. 진정성 없는 흉내가

그만의 아름다움을 죽이는 것 같다. 지금 우리들이 접어드는 노년은 동안이 되려고 안달하고

젊은이의 옷과 젊은이의 스타일을 흉내내며 그 시대의 젊은이들처럼 느끼하고 겉멋만 들어

있는 것 같다. 사람이 되지 못하고 원숭이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또 그놈의 출근 시간이다. 그녀, 흰머리 그녀에 대해서는 오늘 하루를 더 겪어보고 이야기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나는 가르마 밑이 가렵다. 이미 흰머리와 검은 머리의 전쟁터가 된 곳이다. 이번에도 나는 흰머리들이 모두 없어지도록 독극물을 들어 부을 것이다. 언제쯤이면 나는 한가닥의 속임도 없이 나를 온전히 이 햇볕 속에 드러낼수 있을까? 한 가닥의 속임도 없는 나를 바람결에 흩날리며 자유로울수 있을까? 내가 외교부 장관이라면 이미 그럴수도 있겠지만

식당에 다니면서 감히 희끗희끗하기란 정말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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