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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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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95회 작성일 16-01-21 05:44

본문

나는 내가 죽은 줄 알았다.

시를 쓸 수 없게 된 줄 알았다.

잘 살든 못 살든 계속 살면 살아 있는 것이고

살기를 그만 두면 죽은 것이다.

잘 쓰든 못 쓰든 계속 쓰면 살아 있는 것이고

쓰기를 그만 두면 나는 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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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 테잎을 켜놓은듯 종일 같은 말을 쫑알대며 일당 육만원을 받는다.

나도 태어나기 전에 내 삶을 좀 맛보았더라면

덜컥 엄마의 뱃속으로 들어 갔을까?

예수님은 나사로와 부자 이야기를 하셨다.

나사로가 지옥엘 잠깐 갔더니 지옥에 간 부자가 타는 불속에서

목이 말라 침 한 방울만 뱉아 달라고 매달렸다는 잔인한 이야기다.

굳이 예수님을 믿거나 말거나 이미 세상은 지옥이다.

형수에게 밥 주걱으로 뺨 한대만 더 때려 달라는 시동생이 있고

혹 때려고 갔다가 혹 붙이고 오는 혹부리 영감이 있고

다들 멀짱하게 입고 멀쩡하게 행세해도 마음 속에는

남이 뱉는 침이라도 달게 핥으려는 속타는 거지들이 득실거린다.

 

이제사 나는 알겠다.

내 시가 이 지옥불같은 세상에서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하나님이 뱉지 말라고 하신 침이 되어야겠다.

천국의 천사들에게 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나님이 더 좋은 걸 무진장 주셨는데

지옥의 악한들에게, 따끔하고 한 찰라 혓바닥을 축일

침을 뱉아 주는 것...

나 조차 빈혈인데 내가 피를 뽑아 주겠는가?

골다공증 걸린 뼈를 갈아 주겠는가?

노안 걸린 눈알을 뽑아 주겠는가?

내 침, 내 오줌, 내 콧물, 내 눈물,

도무지 참을 수도 속일 수도 없는 분비물이라도

이 지옥불같은 숨들을 잠시 돌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빛도 소금도 내겐 과분하다.

내 시는 형수의 밥주걱에 몇 알 생각 없이 붙은 밥 알 이였음 좋겠고

타는 혓바닥에 목이 탁해서 뱉는 가래침이였음 좋겠고

한개 더 붙이기 전의 혹에 대한 그리움이였음 좋겠고

밤 열두시만 넘으면 어김 없이 호박으로 돌아오는 엉터리 마차

쥐새끼로 돌아오는 마부, 재투성이로 돌아오는 공주라고 좋겠고

성냥 몇 개피만한 온기여도 좋겠고,

멀쩡하고 싱싱한 하체와 바꿔야 했던 인어공주의 병신다리여도 좋겠고

세상 모든 여자를 위해 독사과를 따야하는 세상에서 제일 못난 왕비의 거울이여도 좋겠고

낙타도 통과하는 바늘귀를 통과하지 못하는 부자의 천형 같은 곤궁이여도 좋겠고

나의 시는 이 모든 지옥에 바쳐지는 자학적인 자위여도 좋겠다

나의 시는 이 지옥에 바쳐지는 아무것도 아니여도 좋겠다

나의 혓바닥에서 이 모든 바램이 불타고 나면 나의 생도 끝나는 것이리라

진정한 시인에게는 독자와 평론가가 없다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을 누가 보아주고 평해주지 않아도

그는 살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윤회 따위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나를 바늘에 끼인 실처럼 계속 한가닥으로 이어 가며

생의 전면과 이면을 왔다 갔다 한다는 유치한 발상 따위를 나는 믿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나는 없거나

온 세상 전부가 나이거나, 본질적으로 내가 없어서 없거나

온 세상이 전부 나이기 때문에 나는 없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다음 생에는 시인으로 태어나고 싶다던가 미인으로 태어나고 싶다든가

웃기는 소리 하고 싶지 않다.

시란 지금 내게 주어진 세상과 함께 호흡하며 내가 내는 숨소리다.

이렇게 편안하게 기분좋게 때론 거칠게, 숨쉬다 숨이 멈추면

죽는것이다. 내가 누구를 위해 숨을 쉬어야 겠다. 내가 무엇을 위해

숨을 쉬어야 겠다. 다 거짓말이다.  숨은 나도 모르게 내가 나를

위해 쉬는 것이다. 그냥 이 지옥에서 함께 불타며 너도 나도 서로에게

침을 뱉고, 그 침으로 목을 축이고, 덕이 되면 다행이고

아니면 어쩔 수 없고, 그저 무심한 것이다.

이것으로 나는 뿔뿔이 흩어져 이곳 무덤이며 자궁이며 나이며 남이며

어둠이며 빛이고 지옥이자 천국인 이곳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우린 다시 태어날 수 없고

다시 태어나서도 않된다.

그래야 생이라는 기회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 말이다. 지금도 분자나 원자 원소 알갱이 먼지로 떠돌고 있는 우리 말이다.

계속 내가 나를 독점하며 태어나고 또 태어난다면, 꽃은 언제 사람이 되어보고

나무는 나비는 벌은 풀은 공기는 바람은 햇빛은 달빛은 흙은 먼지는 물은

지렁이는 언제 나라는 기회를 얻겠는가? 윤회도 천국도 야심이다.

그냥 다 놓아주는 것이다. 나를 나를 이루던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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