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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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71회 작성일 16-02-13 08:39본문
법정 스님이 친절이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라고 이야기 했던 까닭을 알 것 같다. "언니! 내가 화 내는 것 아니예요. 원래 말투가 그래요." 원래? 어쩌면 모든 폭력은 원래의 충동인지도 모른다. 내가 편하기 위해 내 충동을 조절하지 않는 것이 폭력이라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닐까? 그녀가 자신의 원래를 다스리지 못해서 나는 아팠다. 원래 그렇다면 좋지 못한 원래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해야하는 것이다.
나는 가진 것이 없다. 돈으로 또 다른 물질로 내게 인연된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도움이나 기쁨을 줄 수 없다면(왜 내가 그들의 좋은 감정에 관여해야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따뜻한 이해와 배려, 친절을 베풀려고 주의를 귀울여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남에게 불행감을 유발하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도 썩 행복한 기분을 들게는 하지 않는다. 까닭은 잘 알 수 없지만 나의 배려나 웃음으로 상대방이 즐거움과 감사의 감정을 느낄때 나 역시 물질적인 보상과는 차원이 다른 보람이라는 감정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웃음이나 명랑함, 사랑이나 감사는 그 반대의 개념들에 비해 섬세하고 정교한 감정이다. 발견의 능력이 없으면 도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젊은이들이 보는 개그 프로에 노인들은 웃지 않는다. 개그맨들이 발명하고 개발한 웃음의 장치를 노인들은 감지할 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인들은 웃음이 적어지는 것이다. 세상 노인들이 자비롭고, 이해의 폭이 넓다는 것은 여성이 자애롭고 따뜻하다는 환상처럼 오래고 오랜 편견이다. 그들은 약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뿐이다. 그들의 낡은 뇌는 상황이나 감정에 대한 수용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이해라는, 따뜻하고 섬세한 계산 능력이 부족하다. 이해를 계산 능력이라고 하니 딱딱한 느낌이 들긴하지만, 그것도 일종의 계산 능력이고 상상 능력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차근차근 상대방의 입장을 나의 입장에 대입시키고 헤아려서 따뜻한 결론을 도출하는 능력이 이해력이다.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은 머릿속이 좁은 사람이다. 끊임 없이 인간의 감정과 감성에 대한 계산능력과 상상능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노인의 여생은 자꾸만 사회가 아닌 요양시설로 밀려날 것이다. 기억을 잃는 것처럼 사랑을 잃는 것도 치매다. 내가 말하는 노인은 나이나 몸의 상태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젊은이들도 치매 환자들이 많다. 치매에 걸렸음에도 버젓이 사회를 활보하다가 결국 사고를 치고 이른 나이에 국가에서 운영하는 요양시설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나마 그기라도 들어가 있으면 다행인데 감쪽 같이 정상인 행세를 하며 이웃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하면 사는 이들이 진짜 많다.
새해다. 새 것이 되려면 원래라는 상태를 버려야한다. 원래 내가 불친절하고 혀를 주먹으로 휘두르는 사람이라면 원래의 나를 더 원래의 나로 돌이키고 치유해야하는 것이다. 언제부터의 원래였는가를 헤아려 본다면 나는 근본적으로 그렇게 구제불능인 사람이 아닐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상처와 트라우마가 나의 원래를 왜곡시키고 상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찾지 않던 시절, 티벳의 동물이나 새들이나 물고기는 사람이 접근을 해도 도망을 가거나 경계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원래를 바꾼 것은 바로 인간이다. 내가 날마다 하는 일은 사람들이 허기를 채우는 일을 돕는 일이다. 나의 친절이라는 종교 생활이 어떤 일보다 필요한 신성한 일인지도 모른다. 추가 주문을 해도, 다 큰 아이에게 아기 의자를 달라고 해도, 이미 포스를 넣었는데도 다른 자리를 바꿔 달라고 해도, 두세 조각 남은 음식을 포장해 달라고 해도 화내지 말아야 겠다. 노인의 뇌기능으로 그들을 대하지 말아야겠다. 냉면 한 그릇 비우는 짧은 시간이지만 나의 모든 뇌기능을 그들의 식사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데 사용해야겠다.
출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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