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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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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왓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892회 작성일 16-05-28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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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출세했다. 늘 서서 뛰어다니거나 사다리를 타거나 스텐바이를 하던 내가 종일 앉아서 일을 했기 때문이다. 이모들이 똥판이라 부르는 부착용 의자에, 다시는 앉지 않아도 여한이 없을 만큼 앉아서 돈을 벌었다. 흙은 포실포실하고 지렁이가 살고 찰기가 있는 것이, 흙의 나이가 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늘 뿌리들은 제 머리통보다 열배나 큰 흙덩이를 매달고 찰흙을 매단 인형 뽑기 기계속의 인형들처럼 어렵게 땅위로 들어올려졌다. 마늘 줄기를 한 웅큼 잡아 올려서 박치기를 시키듯 흙덩어리 둘을 부딪혀서 흙을 털어 내었다. 내가 그 들판에서 제일 젊은 탓이라 제대로 일을 못할 거라 싶었던지 마늘 농장안주인이 내 옆에 바싹 붙어서 일을 했는데 , 처음에 내가 마늘을 뽑던 이랑보다 훨씬 뒤쳐진 이랑에서 마늘을 뽑아 오더니, 얼마가 지나자 나를 훨씬 추월해 갔다.  창피한 마음에 들판과 뜯고 싸우기라도 하듯 무리를 했더니 마늘 뿌리에 매달려 있던 흙덩이들이 죄다 내 어깨에 옮겨 붙은 것 같다.

 

시란 최악의 내게 언제나 한가닥 최선이다. 내 손이 마치 전기 코드 같다. 어떤 낯선 사물에 닿으면 그 사물이 가진 시의 회로들이 불을 켜고 내게로 전류를 흘려 보낸다. (사실 어찌 들으면 재수 없다고 말할 이야기다) 그래서 니가 시로서 이룬게 뭐냐고 묻는다면, 인식의 전환으로서 얻는 용서다. 내게 주어진 최악에 대해,  자주 최악에 직면하는 나에 대해.

 

몸살인가보다.. 남편의 털잠바를 꺼내 입고, 전기 장판을 5단에 맞췄다. 난 역시 앉아서 하는 일이 체질에 맞지 않나보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렸다. 눈에 땀과 썬크림과 흙과 햇빛이 함께 들어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시를 쓸 수 없어 일기를 쓴다. 안도현은 자신의 감정에 관해 쓰고 싶으면 시를 쓰지 말고 일기를 쓰라고 야단쳤다.  지금은 시가 아니라 내 감정을 쓰고 싶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시가 사람에게, 인생에게, 세상에게 무슨 힘이라고 되어야 한다고...그렇다면 나도 사람인데. 내 인생도 인생인데, 내 시가 나를 구원하는 것은 나쁜가? 세상은 예수님이 구했다.  그리고 생로병사의 답은 부처님이 구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서자의 후예들인 아랍인들의 자존심은 마호메트가 구했고, 죽은 조상님들의 이름과 산자들의 도리는 공자가 구했다. 대통령은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을구하지 못했고, 링컨은 노예들을 구했고, 누가 누구를 구하는데는 위대함이 필요하다.  나는 위대함이 없어 나!라도 구해 보고 싶다.  다리가 아프다. 허리는 펴나, 숙이나, 앉으나 서나 똑 같은 느낌으로 아프다. 만약 시가 없다면 정말 나는 얼마나 아플것인가?  죽으면 흙에 묻어야 한다. 아니면 흙에 뿌려야한다. 그것도 아니면 나무의 먹이로 던져 주어야한다. 어쨌거나 죽을 것이다. 그런데 내 몸이 아무 골병도 들지 않아서 너무 멀쩡하다면 얼마나 묻고, 흩기 아까우랴? 만약 내 평생 모은 것도 가진 것도 많다면 얼마나 죽기 아깝고 안타까우랴?

 

오늘 눈에 자주 흙이 들어갔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않된다던 많은 일들이 이루어질 것 같다.

시는 내게 성취의 장르가 아니라 용서와 이해의 장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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