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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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드니 달콤한 새벽잠이 없다. 稀壽를 넘어가면서 아침 늦은 시간인 7시까지 자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다들 들어 보면 새벽 네시면 누가 시킨 것처럼 마음이 먼저 일어난다고 한다. 붙은 눈이 떨어지지도 않는데 초란이처럼 마음이 먼저 부산을 떤다. 머리맡에 자리끼를 한 모금하고 새벽부터 깨톡거리는 카톡을 열어 본다. 덜 깬 눈이 손가락 끝으로 이리저리 헤쳐 보는데 000부고라는 글이 가물가물하더니 어느새 선명한 활자로 찡그린 눈을 부릅뜨게 만들었다. 그저께 멀쩡하게 안부를 주고 받던 그 선배가 졸지에 저 세상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말이 좋아 하늘이 불러서 갔으니 소천이라고 부고에 떠 있지만 돌연히 교통사고처럼 떠나버린 선배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청춘의 시절 우연히 선배와 같은 섬유공장 염색부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지만 같은 기숙사에서 동고동락을 같이 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선배는 현장에서 근무를 했고 나는 실험실에서 현장의 레시피를 만드는 실험을 했다. 2년 먼저 시골에서 올라 온 선배가 2년이나 되는 후배가 올라 왔으니 반갑기도 했던지 기숙사 방 배정이나 기숙사의 생활 규칙들을 다정히 알려 주었고 수월한 회사생활의 전반을 카펫처럼 깔아 주었다. 그 위로도 선배님들이 계셨으나 유독 이 선배가 홀홀단신 올라온 시골뜨기 후배를 살갑게 대해 주었다. 그 후로도 꿈 같은 서울에서의 첫 공장생활이 꿈처럼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군생활이 끝나고 남은 4학기를 열심히 다니는 동안 선배의 소식은 아무리 수소문을 해도 알 길이 없었다. 중동에 갔다는 소문도 들리고 원양어선을 탔다는 소리가 근거 없이 떠 돌았다. 어떤 선배는 비구니와 눈이 맞아 충청도 어디에서 절을 중창하고 평화롭게 산다는 해괴한 소식마져 들리는 지경이었다. 그 선배를 만나고 싶었지만 결국 세월은 기억을 았아갔고 우리들은 그렇게 늙어 갔다.
그 동안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고 치열했던 삶이 좀 가라 앉을 쉰의 언저리가 되니 옛날의 추억들이 아스라히 찾아들고 옛 사람들의 기억이 선명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서 그 때 공장생활 하던 몇 몇 마음 맞는 선후배간 동문들이 의기롭게 뭉치고 손을 맞 잡아 고등동문회가 결성이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승장처럼 우뚝한 그 선배가 호기롭게 웃으며 나타난 것이었다. 앉자마자 돌리는 그 선배의 명함을 보니 제법 규모가 있는 건설회사 대표의 명함이었다. 다들 자기의 성공처럼 기뻐해 주었고 속으로는 부러운 마음도 가지는 눈치들이었다.
늙으막에는 술 때문에 지친 삶 때문에 생떼 같은 동문들이 속절 없이 쓰러졌고 이재 서너명만 남아 그 젊은 날의 기억의 상자를 안고 가고 있다. 기온이 급강하하고 마음도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언제 삶의 대열에서 끌어 내려질 지도 모르는 오리무중의 삶을 이어 가고 있는 차디찬 인생살이. 사람은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진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주섬주섬 내릴 준비를 한다. 삐뚤어진 베게를 바로하고 이부자리를 가지런하게 한다.
선배가 호탕하게 웃고 있을 영안실로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고통의 한 세상을 잘 마무리한 선배를 생각하며 즐겁고 가벼운 여행을 다녀오려 한다. 창문에 제법 성에가 하얗다. 바로 겨울인가 보다. 겨울이 틀림없다.
댓글목록
물가에아이님의 댓글

고인의명복을빕니다 ~
호탕하게 웃으시며 안아주실것 같아예~
가벼운 마음이 될수는 없겠지만 살아 있는 생명의 피할수 없는 숙명이니 여행 잘 다녀 오십시요~
초겨울 같은 쌀쌀함이 어깨를 움츠리게 합니다
윗지방 더 추으니 단도리 잘 하시고 다녀오시길예~
계보몽님의 댓글

세월이 좋아 하루만에 다녀온 弔問 나들이
녹초가 되었습니다. 오랫만에 보는 얼굴들, 그들은 옛 얼굴이 아니었지요
왠지 불안한 우리시대의 몰골들을 하고 있었지요
그래도 잘 살았다고 우리는 서로 위로하며 헤어졌답니다
위로의 말씀 고맙습니다 정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