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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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네
내가 마실을 나가거나 약수터를 간다거나 마을 끝자락에 있는 양피지를 간다 해도 돌아오는 길에는 정류장처럼 꼭 들리는 집이 하나 있다. 그 집은 윗대의 택호가 자방골댁이라고 하였고 지금은 80이 넘은 장자가 서울 돈암동에서 살다가 내려와 집을 지키고 있어 나는 늘 돈암동댁이라고 부른다. 서울에서 50여년이나 교류를 이어 왔던 긴 인연이기도 하고 먼 종친이기도 했다. 부친의 땅을 이어 받아 집마당 앞에 있는 문전옥전을 잘 일구고 갈아 엎어 가면서 5년째나 농사를 짓고 있으니 내게는 귀향의 한참 선배이다. 이러니 마실이라도 나갈라치면 돌아오는 길엔 나도 모르게 간이정류장처럼 들리는 집이였다.
안주인이 홍시를 네쪽으로 갈라 쟁반에 담아서 마루에 내어 놓는다. 국화차 한 잔을 곁들인 가을 반상이 풍요롭기 그지 없었고 마당에는 만화방초가 절기를 이기지 못해 시들어 가고 있었다.담장 밑에 석류가지도 잎을 다 떨군채 세월에 순응하고 있었고 모과나무의 노란 열매만 가을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는 내년 설날부터 차례나 기제사를 서울에 있는 아들에게 넘겨주기로 했어요! " 하며 내 눈치를 살핀다. "그래요!? 거참 ! 잘 생각하셨네요!. 그 동안 참 고생 많이 하셨는데 이젠 넘겨줘도 괜찮을 듯 하네요! 근데 며느리의 반응이 괜찮던가요? " 하며 나도 눈치를 살핀다. 천만다행으로 며느리가 두말없이 " 어머니 알겠어요!" 하고 단답형이었지만 순순히 응했다고 한다. 요즈음 시대에 참 괜찮은 며느리다라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과연 우리 며느리도 제사를 넘기면 순순히 받아드릴까하는 생각에 머물자 고개가 갸웃해지면서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다.
안사람이 제사를 물려 받을 때 어머니의 년세가 우리보다 조금 아래인 칠순이었다. 안사람이 20여년을 넘게 제사를 모셔 온 셈이었다. 다른 거 다 덮어 놓고 안사람이 기특한 것 중의 하나는 제사에 진심이라는 것이었다. 너무 꼼꼼히 챙겨 어떤 때는 삼색나물에 시금치가 귀한 여름에 시금치를 구하러 동분서주 했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를 정도로 철두철미 했다. 크고 질 좋은 것만 추구해서 찐 문어가 부풀어 편대가 모자란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시어머니에게 지혜를 받았는지 지청구에 시달려 서울여자가 쇠내를 받았는지 제사 하나 만큼은 누구에게 맡기지 않는 고정관념이 강한 家母였다. 제사가 많은 가계라서 속으론 웃어도 겉으로 즐거운 표정을 지은 적은 없다.
우리가 벌써 그런 나이가 되었는가. 안사람은 말이 없다. 간편과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하던 안사람도 우리도 이제 제사를 넘겨줄까 하는 나의 물음에 대답이 없다. 큰 아성이 무너지듯 얼굴에 깊은 시름이 어른거린다. 손자 손녀가 고등 들어 갈 때까지는 우리가 지켜야지 하는 안사람의 자백 같은 얼굴이 비장하다. 얻은 배추 한 포기를 안고 앞서가는 안사람의 뒤태가 오늘은 새삼 그리 무겁지 않고 새색시처럼 곱다.
서출지 연못에는 원앙이 산다. 다정한 원앙들이 차가운 하늘을 나른다. 매서운 찬바람이 겨울을 몰고 온다, 차갑고 힘겨운 인생길을 둘이서 간다. 누가 먼저 갈지도 모를 겨울길을 뒤뚱거리며 간다. 아내의 하얀 귀밑 머리가 햇살에 반짝인다. 황혼 같은 겨울길을 간다.
댓글목록
물가에아이님의 댓글

제사를 넘겨 줄까 물음에 대답이 얼른 없는건
萬가지 뜻과 생각의 江이 흐르는것 같습니다~
어부인 잘 만나신것 같습니다~
보배처럼 아끼고 또아끼며 사셔야 겠습니다~^^*
함께 하시는 시간 늘 행복 하시길예~~~~
계보몽님의 댓글

제사를 물려 받는다는 것은 그 집안의 역사를 물려 받는다는 뜻이겠지요
그 가문의 주인이 된다는 의미도 있겠습니다
넘겨주는 사람도 그 만큼 나이 든 세월이 허허로울 것이고요
과연 이런 문화가 얼마나 갈지요
감사합니다 정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