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패션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노년의 패션
나는 고리타분한 성격탓으로 칼라풀한 옷이 없다. 옷장을 열어 보면 밝은색의 옷은 거의 없고 곤색이거나 블랙이 주류를 이루고 밝아 봐야 브라운 정장 정도이다. 이제 나이들어 가끔 옷장을 열어 보면 거기 우중충한 나의 인생이 쌓여 있다. 내가 보기에도 색상이 무겁고 지루하다. 얘기들 들어 보면 나이들어서는 밝은 칼라의 옷을 입는 게 좋다고 한다. 하여 운동장에라도 가 보면 나이 지긋한 여자나 남자 노인들이 울긋불긋한 무대의상 같은 옷들을 입고 뽐을 내며 다닌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빨간 바지에 하얀 점퍼는 공짜로 준다고 해도 입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고루한 성격탓이겠지만 죽어도 용기가 나지 않는다.
지인의 동생이 하는 골프웨어 샵에 들렀다. 환하게 펼쳐진 매장을 들어서니 그야말로 밝은 색상의 옷이 거지반이었고 한쪽 구석에 검은 색이나 곤색의 옷들이 왜소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칠십 후반의 오랜지족 같은 지인은 오랜지 바지를 씰룩거리며 핑크빛 바지나 하얀 바지들을 재껴가며 무엇에 홀린 듯 늙은 눈을 찡그리며 옷을 고르고 있었다. 용기가 나지 않아 머뭇거리는 나 에게 뭐해! 임 사장! 하나 골라 보지! 하며 빨간 바지 하나를 검은 바지를 입고 선 나 에게 선뜻 내민다. 깜짝 놀라 아뇨! 아뇨! 하며 물러서는 나 에게 아니! 임 사장! 이런 바지 언제 입어 보겠어? 죽기 전에 한 번 입어 봐! 하며 눈을 부라린다. 죽기 전에?! 쿵하고 뒤통수를 한 방 맞은 듯 정신이 멍해졌다. 그렇구나! 그래서 저 노인네가 요상한 옷을 입고 그렇게 멋을 부리고 다녔구나. 머리도 뽂고 브라운 칼라로 물들인 머리칼도 그래서 그랬구나에 이르니 일시에 깨달음이 와서 세상이 갑자기 밝아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시험문제 하나를 오랜 생각 끝에 정답을 찾아낸 듯 마음마져 가벼워 지고 있었다. 남이 뭐라하든 내 영혼이 자유롭다면 그 것을 쫓아가며 사는 노년의 세월, 그는 자기의 인생을 자유롭게 살고 있었다.
한 시간도 넘는 고민 끝에 진달래색 바지 하나를 껴 입어 보았다. 거울을 보는 순간 아찔했지만 속으로는 내 인생이 이렇게 화려하게 변할 수도 있네 하는 붉은 마음이 스물스물 몸 전체로 퍼져 오름을 느꼈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구나 하는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내친 김에 지인이 선호하는 오렌지색 바지 하나를 더 껴 입어 보았다. 덜 익은 홍시 같은 칼라가 한겨울에 포근하기도 하지 하며 물색 없는 마음이 요사를 떨어 우쭐대기까지 한다. 눈치를 보아가며 좀 어색한데 진짜 괜찮아요!? 하니 역시 나이가 한 두살이라도 어리니 틀리네! 잘 어울린다야! 하며 연신 부채질을 해댄다. 그래! 여기 저기 무너진 삭신에 새로운 영혼을 입혀보자! 그래서 이번 겨울은 아프지 않는 밝은 영혼으로 살아보자!
안사람의 큰 산을 넘어야하는 난관이 있지만 핑크빛 사랑과 오랜지 색 행복이 담긴 봉투가 젊음처럼 싱그럽다. 옷장의 우중충한 칼라의 옛 기억들을 밀쳐내고 내 인생의 새로운 손님 밝고 맑은 오랜지와 핑크를 모셔두고 알지 못할 인생의 비거리를 힘껏 날아 보자. 클럽에서 송년회가 있다하니 과감하게 오랜지색 바지에 하얀 점퍼를 입어 보리라. 어떤 행동을 해도 손가락질을 받을 나이가 아니라 하니 그러려니 하고 푼수처럼 젊음처럼 살아 보리라. 노인들이여! 몸은 늙어도 마음만은 젊게 살기를!
댓글목록
물가에아이님의 댓글

화이팅입니다 ~
잘 하셨어예~
나이들수록 밝은 옷이 옳다는 1인 입니다
그래서 초록 부터 빨간 노란 색들의 옷이 많아예~
그렇게 어색하지 않게 잘 소화 하는것은
어느날 갑자기가 아니고 옛부터 그렇게 입은 탓 이지예~
카메라 가방을 매고 다니다 보니
정장은 안 어울리고예 ~ㅎ
특히 빨간색 계통은 건강에도 좋다 던데예~ㅎ
추울날씨에도 좋은듯 하네예~
매일 매일 변신의 즐거움도 가져 보셔요~^^*
계보몽님의 댓글

죽기 전에 한 번 해보라는 지인 선배의 한 마디에 갑작스런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 만큼 제가 고루하거던요, 제가 좀 변화를 싫어하는 성격인 줄 늙그막에 알았습니다
그 것이 진실인 줄 알고 살아 왔거던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ㅎ
봄에 입으려 산 핑크빛 바지도 맘에 걸리지만 생각의 개조에 모든 걸 겁니다
입고 나갈 수 있을지 며칠을 고민을 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정아님!
안박사님의 댓글

#.*계보몽*詩人님! & "정아"作家님!!
本人도 "물가에"任처럼,밝은色을 좋아하는 사람예`如..
밝은色을 입어면,몸과 마음까지도 밝아지는것 같습니다`요..
現職時에는 正裝을 하였으나,退職한 以後에는 캐쥬얼Style로..
"계보몽"詩人님!&"정아"作家님!昏沌時代에,늘 健康+幸福하세要!^*^
계보몽님의 댓글

안박사님 말씀이 옳습니다
나이 들면 밝은 옷이 좋을 듯 합니다
이번 기회에 마음마저도 한 번 바꿔 보고 싶습니다 ㅎ
정이든 옷장의 저 농색의 옷들을 어떻게 할 지 고민을 좀 해 봐야 될 것 같습니다
늘 건강한 노년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박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