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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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세월
집 앞 주차장에 지친 하루가 쓰윽 들어선다. 휘청거리며 내리는 정자 담벼락 넘어로 사람의 머리가 언뜻언뜻 보이는 것 같아 누군가 하고 열쇠를 찾아 자물쇠를 열었다. 아니! 대문을 열지 않고 어찌 들어 오셨소! 하니 저수지 쪽 난간 벽으로 서로 손을 맞잡고 도벽을 하여 겨우 들어 왔다는 것이었다. 철없이 놀던 유년의 시절에도 누구랄 것도 없이 손에 손을 엮어서 담벼락을 타고 넘었다. 50이 넘은 여성 문화유산원 계장과 설계 사무실 직원이 허물어져가는 정자의 훼손 상태를 조사하러 온 것이었다. 몇 차례의 지진과 폭우와 폭풍등에 300년 정자의 중앙을 받치고 있는 주기둥이 정면에서 보면 5도 정도 기울어져 있는 것이었다. 귀향 후 우연히 정자 내부의 훼손을 뜯어보다 발견한 주기둥의 기울어짐을 몇 번에 걸쳐 여러 문화재 관리소를 통해 건의를 넣었더니 이제서야 현장 조사를 나온 것이었다. 구석구석 보수의 흔적들을 확인하고 2번에 걸친 重修의 역사도 설명을 곁들이니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년 서출지 준설공사 때 예산이 반영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하였다.
현종실록에도 나와 있듯이 1664년 전후로 조선의 여름은 한발이 너무 심해 마을에 있는 우물들이 말라 버린지 오래고 저수지에는 한 홉 기를 물이 없어 농사는 커녕 온 동네가 오랜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물동이를 이고 동분서주했으나 사방 오리에 물 한방울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러한 난리통에 나의 13대조 임적(任責力)께서 메마른 저수지에 지팡이로 수맥을 찾아 온 동리의 오랜 가뭄을 일시에 해갈 시켜 주셨다. 이웃에 너그러운 베품과 덕망으로 소문이 자자하셨고 서당에서 학동들을 가르치면서 벼슬에 나아가지 않으신 향중에 儒人이었다. 이 어른이 떠나가시고 수맥이 터진자리에 저수지를 이루고 마을이 예전처럼 웃음이 피어날 때 아드님 5형제가 뜻을 모아 저수지 가변에 청3칸 정자를 올려 오늘에 이르렀다. 후손들이 선조를 기려 섬섬히 정자의 기왓장을 올리게 된 것이었다. 상량문에도 있듯이 이 정자가 우연한 일이 아니니 후손들이 오래오래 보존해 주기를 당부 하셨다.
신라 천년의 유적지인 서출지와 조선의 문화재인 이요당정자가 어우러져 사계절 다른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맞는다. 주일마다 대청을 청소하는 일이 번거롭기는 하지만 위대한 선조의 유산이라 언제나 흥감하여 내 소임을 다 한다. 못에 가득한 겨울철새들이 먹이 사냥에 바쁘다. 새로 단장한 새봄의 연못을 어서 보고 싶다. 백발이 되어 연못을 도는 것이 요즘은 일상이 된 기쁨이다.설날에 손자라도 오면 고 고무라운 손을 움켜쥐고 못둑을 돌 것이다. 천방지축으로 묻는 질문에도 엄숙히 대답할 것이다. 이 못과 정자는 네가 영원히 지켜야 한다고,
싸늘한 새벽 바람이 살을 에인다. 참 미더운 아침이다. 선조가 있어 참 행복한 아침이다.
댓글목록
물가에아이님의 댓글

마치 전설의 고향 같은 사연이 있었네예
백성을 사랑 하시는 마음을 지금 위정자들이 배워야 하는데예
어색하지 않는 전통을 살려
신라 천년의 유적지인 서출지와 조선의 문화재인 이요당정자가 오래 오래 유지 되기를빌어봅니다
귀향 하셔서 참으로 뜻깊고 의미 있는 일을 하셨습니다
훌륭한 선조님은 후손들을 자부심으로 가득하게 하지예
행복하신 날들이 주욱 이어지시길예~
계보몽님의 댓글

제가 내려와서 이요당정자를 도지정문화재 598호로 등재하게 된 날
큰 잔치가 마을에 벌어졌지요
뿌듯했습니다 문화재를 가진 후손이 되었으니까요 ㅎ
아침에 일어나면 담 넘어 날마다 보는 정자가 300여년 전의 선조를 보듯
경외롭습니다 문화재 등재를 하니 훼손된 정자의 구석구석을 확인하러
수시로 문화재위원들이 들리는군요 정자의 품격이 달라져서 그렇겠지요
공감의 말씀 따듯합니다 정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