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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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연주
시니어 클럽 홍보이사께서 전화가 왔다. 송년회 무대에 설치할 음향기기가 한 차에 다 실을 수가 없으니 나누어서 싣고 가자는 부탁이었다. 저녁 5시부터 하는 송년회인데 2시에 전화가 왔다. 깔끔하고 치밀한 성격이라 그리고 내가 오늘 파트타임에 오카리나 연주를 하기로 되어 있어서 미리 장치를 하고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서둘러 차를 몰았다. 집에서 독학으로 3년여를 소일 삼아(노년의 시간 떼우기) 오카리나를 가지고 놀던 차에 홍보이사가 소문을 듣고 나의 연주를 요청한 것이었다. 사실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첫 연주라 초보의 가슴은 노년이라도 물색 없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미리 정해진 순서이니 아니할 수가 없는 노릇이니 마음을 다잡고 송년회장이 있는 목화웨딩몰로 향했다.
2024년 시니어 클럽 송년회란 프랑카드가 보란듯이 정면에 크게 나 붙었고 홍보이사의 재빠른 손놀림으로 음향기기의 설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완성이 되었다. 시연이 끝나고 연습에 들어가니 더욱 더 가슴이 설레고 목이 말라 뜨거운 물을 몇 잔이나 들이켰다. 지역 유명인사인 홍보이사는 노년의 봉사도 많이 다니고 이 방면의 전문인이라 거의 프로에 가까운 섹소폰 연주자다. 그러니 이런 행사의 모든 프로그램이 그의 손 안에 있는 것이었다. 리허설이 시작 되었다.
공연 전에 미리 리허설을 해 보는 것으로써 각 연주자나 공연자들의 자기의 차례에 대한 이해와 마음의 자세를 새삼 다 잡아주는 것이니 실제 공연처럼 진지하였다. 맨 처음 순서에는 홍보이사의 섹소폰 연주 두 곡이 있었고 미운 사내와 사랑은 아무나 하나가 웨딩홀의 천정을 울리고 있었다. 그 다음은 여성회원의 어우동이라는 민속춤과 자진방아등 민요 두 곡이 귀곡성처럼 홀을 울렸다. 10여분의 2파트가 끝나고 문제의 생애 첫 공연이 될 나의 오카리나 연주의 리허설이 있었다. 첫 곡은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스피커의 하울링(울림) 소리와 오카리나 소리가 뒤 섞여 집에서 불던 청아한 소리는 간 곳 없고 전혀 색다른 경험이라 도중에 중지를 하고 홍보이사께 오카소리가 나긴 나느냐고 물으니 듣기가 오히려 좋다하니 비몽사몽 정신 없이 한 곡을 끝냈다. 내가 연주한 곡을 내 자신이 들을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라 상대방에게 들어 묻는 색다른 경험을 쌓고 있는 중이었다. 두 번째 곡은 진성의 힛트곡 안동역에서를 길게 길게 불어 냈다.
원래 오카리나는 이태리에서 건너 온 흙으로 만든 도자기 악기이다. 이태리어로 작은 오리라는 이름의 이 악기는 맑고 청아한 소리가 일감이다. 나도 그 소리에 반해서 손아귀에 쏘옥 들어오는 이 오카리나를 연인처럼 사랑했다. 원래가 클래식이나 동요 가곡등에 어울리는 악기이기는 하나 나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곡에 대해 도전중이라 트롯트고 발라드고 닥치는 대로 연습을 한다. 그러다 보니 오카리나 본래의 음이 자꾸 트롯트화 되어가기도 해서 그녀에게 늘 미안한 생각이 든다. 5년 전 폐암 수술을 하고 호흡에 좋다는 얘기를 듣고 생소하고 생경한 그녀를 사귄지가 벌써 3년을 넘어 간다. 매일 그녀와 사랑이 깊어 가는 중이다.
한 곡이 끝나자 테이블 마다 늙어진 박수들이 서툰 연주자에게 위로의 박수를 보내 듯 힘을 돋구어 주었다. 안도의 숨을 몰아 쉬며 조금은 신나는 노래인 안동역 앞에서를 이어서 연주 하자 해거름의 노인들이 너나할 것 없이 청년처럼 일어나 박수를 치며 흥을 돋우고 소리를 질러댔다.
손가락 하나라도 삐끗하면 음이탈이 나는 악기라 자칫 흥분하면 연주를 버린다. 진땀이 나는 생에 첫 연주였다. 어떻게 연주시간이 지나 갔는지 내가 어떻게 연주를 했는지 하얗게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엄동에 땀을 훔치며 무대를 내려 왔다.
임 감사! 이제 봉사하러 따라 다녀도 되겠는데! 하며 홍보이사와 민요가수가 웃는다. 아이라예! 저는 공이나 치며 놀랍니더! 체질에 맞지 않는 것 같아예! 하지만 광대승천 기분이 강을 넘친다.
긴 세월 살면서 오랫만에 보람찬 하루를 살았다. 뿌듯한 마음으로 애마의 발을 꾹 밥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겨울 차창에 무수한 별들이 내려 온다. 그져 하늘을 나르는 기분이었다.
댓글목록
물가에아이님의 댓글

오카리나~
언젠가 서울역 앞에서 인디언 추장 차림을
한 연주자가 연주 했던걸 들은듯 합니다
굉장히 맑고 청아한 소리 였던거로 기억 합니다
기억이 맞다면예~
하루 하루를 알차게 보내시네예~
뭔가를 배운다는것은 삶의 의욕이 있다는 뜻이고예
참 모범 환우님 이십니더예~
고택에서 들리는 오카리나 소리 주변 사람들도 행복 하시겠어예~
늘 화이팅입니다 ~!!
계보몽님의 댓글

호흡이 많이 달리지만 최선을 다해 삽니다
신년 초에 정기검진이 있어 병원 순례길에 나서는군요
검사후 일 주일 후에 결과가 나오니 서울 스케줄을
두루두루 다 마치고 내려 올려고 합니다
크리스 마스 이브에 검진 잘 다녀오시고
세밑 푸근한 나날 되시길 빕니다!
초록별ys님의 댓글

오카리나 쉬운 거 같은 데 전혀 쉽지가 않더라구요
저는 오카리나와 플륫을 초보만 삼 년을 배우다가 두 손 들었어요
소질이 없나 봐요
멋진 연주 후에 행복해 하시는 모습
가슴에 와 닿고 상상이 됩니다.ㅎ
계보몽님의 댓글

저도 플룻과 오카리나를 5년째 독학중이랍니다
두 악기가 다 관악기라 호흡이 많이 달리죠
세월이 더 흐르면 음량이 잘 나올까 벌써부터
불안합니다.
경험을 많이 쌓아 보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초록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