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디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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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디딘 인생
병원 비상구의 계단에 서 있는 난간을 붙잡고 내려오던 노구의 헛발이 휘청거리더니 허공이 갑자기 얼굴로 다가왔다. 하얀 날에 번갯불이 튀었고 무엇을 움켜 잡긴 했는데 뭉근한 평화로움이 찝질해지고 아내의 찢어지는 외마디 비명소리가 공간에 사라졌다. 허공에 떠 있던 공간이 졸지에 누워 버렸다. 이게 뭐지 하는 안온한 믿음이 의식 속으로 조금씩 사라져 가고 통증은 아침 안개처럼 편안해져 갔다.
뭔가 거부감이 가는 이마에 이물질이 흥건하고 귓불 밑으로는 꿔매야지 하는 말들이 남의 얘기처럼 스쳐 갔다. 고향으로 달려갈 열차 안에 있어야 할 몸이 눈이 부신 전등 밑에 누워 말초신경까지 곤두서는 실밥소리를 듣고 있는 자신이 믿기워 지지 않는 현실에 아연이 실색을 하고 의식을 놓아 버렸다. 그 후로도 깊은 잠은 통증과 함께 깨다 말다 하기를 반복하다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눈을 안 다친 게 불행중 다행이고 얼굴을 피해 귀 밑으로 그어진 상처가 다행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의사의 회진을 받고 안도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며 회로가 얽힌 복잡한 마음이 더욱 헝클어지고 있었다. 고급 병원의 수 많은 엘리베이터와 에스칼레이터가 하루에도 수백 번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하필이면 뭐가 씌었지 비상계단을 내려오다가 그런 사고를 당했느냐는 아내의 잔소리가 시작 되고 일생을 헛디디며 살아온 생이 부질없어 헛웃음만 공허하게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5년을 다스려 온 암세포가 잦아지고 반년마다 정기검진을 받던 것을 1년으로 연기해도 좋다는 의사의 차분하고 감미로운 음성이 귓전을 맴돌았다. 나보다 더 환호성을 지르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저으기 놀라기도 했지만 5년을 쫓아다니며 노심초사했을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었다. 진료의사의 방을 나서자마자 아들네와 딸네의 집에 전화로 자초지종을 알리며 1년마다 진료를 오라는 것은 완치나 다름 없다는 아내의 자가확진성 발언이 도를 넘는 듯 했으나 기분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 그래서 저 만치 에스칼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있는데도 한 층만 걸어 내려가면 헤화동 지하철역으로 바로 갈 수 있으니 바로 옆에 있는 비상구로 서둘러 내려가다 일어난 돌발적사고 였다. 아무리 서둘러도 바늘 허리 매어 못 쓴다는 말이 헛웃음처럼 떠올랐다.
지하철에서 내려 병원에 오르는 길은 여늬 때처럼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반년 전에 좌판에 귤을 놓고 팔던 노파도 그대로이고 선교사의 하느님의 복음도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서로를 스치는 겨울의 패딩들이 건강해 보였고 아내의 밍크털모자도 살아 있는 것처럼 보드라웠다. 오르막길을 한참을 올라 본관 서편에 있는 2층 진료실 앞 대기석에 앉았다. 병원 특유의 온기가 목덜미를 감싸 안았다. 한참을 기다리다 나의 접수번호가 떴다. 잠시 후에 간호사가 나를 호출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의사와 마주 앉았다. 참 짜임새 완벽한 하루였다.
댓글목록
안박사님의 댓글

#.*계 보 몽* 詩人니-ㅁ!!!
顔面治療는 잘 回復이,되시눈지 窮굼합니다`如..
本人과 같은 老年에는,每事에 조심을 해也합니다`요..
食口들의 말씀마따나,6個月에서 1年이니 完快하신듯`여..
本人의 內者도,"癌病"치료中요!"계보몽"任!快兪하시옵기를!^*^
계보몽님의 댓글

예, 치료는 잘 받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돌다리도 두들기는 마음으로 조심을 해야겠습니다
부인 께서 암병치료라하시니 걱정이 많이 되시겠습니다
빠른 쾌유를 빕니다
늘 여여한 모습으로 노정을 향유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안박사님!
물가에아이님의 댓글

안 그래도 오실때가 되었는데 하고 윗집(?)에 오르는 순간~
아이고 무슨 일 이래예~
많이 아프시고 속 상하시겠네예~
그래도 헌 해에 (음력) 다치셔서 다행 이라고 생각 하이소예~
설날 쉬고 그랬어면 더 속 상하지예
가는 해 안 좋았던 것 다 끌고 간다고 생각 하시고 마음 편하게 잡수시기를예~!
마음 아픈 아침 입니다
얼른 쾌차 하시길예~~~
계보몽님의 댓글

그러게요 엄벙덤벙대거던요 ㅎ 제가 좀 푼수끼가 있나 봅니다
오랫만이네요 정아님!
그 동안 별일은 없으셨겠지요
감긴 한 쪽 눈이 불편하긴 합니다만 견딜만 하니
시마을 여기 저기 돌아 봅니다
새로운 약은 몸에 잘 맞는지 궁금하군요
이 번 진료때 물어보니 양산도 상당한 수준의
병원이라 하던데요 그 분야에,,,열심히 치료 받으면 되실 것 같습니다
포근한 날씨가 이어집니다
독감 조심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