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소풍길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힘겨운 소풍길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시집살이를 할 수 있다는 중매쟁이의 꾐에 속아 대구로 시집가서 살던 춘자누님이 예순이 넘어서 고향인 안마을로 돌아왔다. 그것도 얼굴에 화상을 입고 소박을 맞아 무너진 삭신을 끌고 고향에 돌아왔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땅떼기 하나 없는 척박한 고향에 7평도 안되는 허무러진 스레트집으로 홑몸으로 이사를 들어왔다. 외아들 하나를 객지에 남기고 홀홀단신으로 태어난 집에서 여생을 보내겠다고 본향에 찾아온 것이었다. 그 춘자누님이 어제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고향에 돌아온 지 20여 년만의 일이었다.
휑한 부엌에는 아궁이에 땔감 하나마져 없어 마른 고춧대를 태웠고 마당에는 썩어빠진 쌀두지가 무너져 속바닥을 긁어도 쌀 한 톨을 구경할 수가 없었다.어머니는 아침부터 술에 취해 횡설수설 벙어리 남편을 볶고 있었고 아이들은 눈치를 보며 뗏자국 속의 하얀 눈길이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하지만 4남매가 다 학교에서 우등을 해서 저 집에는 누구를 닮아 저리 다 공부를 잘하는지 마을사람들이 부러워 마지않는 그집 아이들이었다. 과연 둘째 유순이는 학년 1등을 육년이나 지키더니 초등을 졸업하자마자 대구에 있는 전화기 부품공장에 취직이 되어 일찌감치 어린나이에 소년가장이 되었다. 첫달 월급을 타서 부모님께 보낸 붉은 내복을 받고 어머니와 춘자 누나는 밤새 울었다는 소문도 들었다.
마을이 떠들썩 했다. 대구에서 큰 공장을 하는 주인의 아들이 중매쟁이와 함께 춘자누님을 찾아 왔다. 중매쟁이의 날렵한 화술에 매료된 누님과 부모님은 대궐 같은 저택과 삼시 끼니를 해결해준다는 그 말 한마디만으로도 두 말 없이 허락을 하고 말았다. 나날이 무우밥에 누릉지를 상처처럼 긁어대던 절박한 나날들을 하루 아침에 훌훌 털어내는 기적 같은 일임에 그 누구도 거부할 의사가 손톱만큼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척박한 세월이 이어졌다. 큰 공장을 한다던 것은 중매쟁이의 화술이었고 저택 지하에 조그만 봉제공장을 하는 자영업의 모양이었고 며느리를 맞는 게 아니라 직원 한명을 들여오는 기분이 어린 신부의 느낌에도 싸늘히 스며들었는데 그래도 어찌하랴 출가외인이라 더우기 삼시세끼가 해결 된다니 그 이상 무엇을 논할 계제가 없었다. 허우대 멀쩡했던 남편은 생각이 조금 모자라는 성격 좋은 반편수였고 고양이 같던 시어머니는 신혼짐을 풀어놓기가 무섭게 삵쾡이 같은 발톱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시집살이가 다 그렇거니 열여덟 어린 나이에도 춘자누님은 자신과 가족을 생각해서 참고 또 참았다. 눈봉사 3년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이 지났건만 가혹한 시집살이는 도를 더해 갔다. 시집간 지 십 여년이 지난 어느 엄동설한에 지하공장에서 느닷없이 화재가 일어났다. 밤새 일을 하다 새벽에 화기를 감지하고 눈을 뜬 춘자누님의 눈 앞에 모든 삶이 활활 타고 있었다. 매캐한 냄새를 등에 업고 기어나온 춘자누님은 불을 끄려고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바가지로 미친듯이 물을 뿌렸고 들락거리는 화염이 결국 누님의 치마에 머리칼에 일시에 붙어올라 미친년처럼 허공을 돌다 마당에 쓰러져 버렸다. 깨어보니 병원이었다. 눈만 빼꼼히 뚫린 하얀 미이라가 되어 있었다.
내가 귀향을 하고 뒷산으로 오르면 늘 춘자누님집 앞으로 지나간다. 오늘도 산에 가나? 하면 누님아! 건강하게 살다 가야 안 되겠나 하며 웃으며 산을 오른다. 일그러진 얼굴에 옛날의 곱던 누님의 얼굴이 오버랩 되어 한숨만 길어진다. 산을 내려올 때도 지팡이를 집고 풋고추를 따서 낮에 고추장에 찍어 먹으래이! 하며 건네주던 그 인자한 얼굴이 새삼 먹먹해져 그립다. 요즘에야 80이면 한창이라는데 담벼락을 잡고 쓰러져 죽었다니 요양병원에서 미이라처럼 죽느니 차라리 행복한 죽음이라 여겨진다. 한 많은 세상이었다. 사람마다 다가온 인생의 언덕을 넘느라 생고생의 고통을 안고들 살아가기에 이 세상에 존귀하지 않은 죽음은 없다.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고 싶다. 이 세상에 제일 어려운 게 인생을 잘 마무리 하는 것일 게다.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비가 추적이는 싸늘한 아침이다.
댓글목록
안박사님의 댓글

#.*계보몽* 詩人니-ㅁ!!!
"人生`70 ~ 告`來喜"라눈,옛`말도 있눈데`如..
故鄕의 "春子"누님은,80歲에 逍風을 가셨으니..
本人도 於焉間 80歲 되었으니,逍風길이 보입니다..
"계보몽"詩人님!人生은,未完成이라..늘,健康+幸福요!^*^
계보몽님의 댓글의 댓글

옛날에는 인생 칠십이면 참으로 희귀한 일이다해서 잔치도 크게하고
수복을 빌었던 시절이 있었지요
안박사님처럼 후덕한 인품의 여생은 복 받은 것이 아닐런지요
더구나 80을 넘기셨으니 마음만 편안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늘 어지러움에 담벼락을 잡고 서 있던 춘자누님이 그립습니다
사람은 한 순간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이네요
늘 행복하고 건강하십시오!
물가에아이님의 댓글

읽어 내려 오면서 저절로 눈물이 맺힙니더예~!!
옛날 무식한 중매장이들이 얼마나 감언 이설로 남의 인생을 망쳤는지
실제 그런 사례가 참 많더라고예~
삶과 죽음의 차이가 꼭 행복과 불행의 차이가 아닌것 같아예~
죽음으로써 놓여나는 힘듦의 시간이 있으니까예~
요양 병원 가서 사람 취급 못받고 살다 가는니
큰병이라도 걸려서 호스피스병동에 있다가는것도 참 행복이겠다 싶은 적이 있는데
그것도 바램이라고 이루어 주시는지....ㅎ
겨울비 그치고 쌀쌀 하더니 오늘 오후는 바람없이 포근 합니다
감기 조심 하시고예
춘자 할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편안 하시옵기를예~~~~~
계보몽님의 댓글

가뜩이나 고요한 시골마을에 하나 둘 죽어나가는 생들을 보며
한숨만 가득한 아침입니다
어제는 산을 내려 오다 안부인사차 동네 노인정을 들렀는데
한달 사이에 세분이나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네요
침울한 노인들이 사형수가 자기차례를 기다리는 듯 숙연합디다
이것이 우리네 인생의 마지막 장면인가하고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지요
늘 다정한 마음으로 찾아주시는 정아님!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메밀꽃1님의 댓글

계보몽작가님 이사연을 읽으면서 가슴이 미여지는듯한
서러움이 복받치네요
춘자누님이 80대라면 그시절엔 시대적으로 어렵고 발달되지못해
정보 망도 없고 다만 중매쟁이 말만 따라간곳이 인생의 짠 맛을 보았네요
저는 이글을 읽어보는순간 넘 분하고 속상해서 멍하니 천장을 주시해봅니다
저도 춘자누님연쇄의 준하지만 모진세월을 헤쳐나왔어요
지금은 세월이 많이 발전해서 모든삶이 밝아 졌고 또한 자기만 똑똑하면
문화혜택을 받고 즐겁게 살수가 있었을것을요 .
아직 더 살으셔도 될것을 가슴아프게 떠나가신 춘자누님의 명복을 빌곘어요 .
수고하셨습니다 .
계보몽님의 댓글

메밀꽃님 안녕하세요, 이야기에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시대의 팔순이면 다 한 많은 세월을 살았겠지요
그래도 건강하고 즐거운 노년을 보내시는 메밀꽃님은 행복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자기개발에 열심이시고 자기애가 강하셔서 늘 밝은 모습의 일상이 부럽습니다
첨단의 80대가 되어 사시는 모습 늘 응원합니다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메밀꽃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