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달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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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달밤
둥근달이 환하게 비치는 정자에 이르는 오솔길에 트럭 한 대가 멈춰서 있다. 담배를 꼬나문 두목의 검은 세단이 멈춘다. 부하가 앞선 트럭을 확인을 하러 차창 가까이 가서 손잡이에 손을 대는 순간 트럭에 탔던 서너 명의 상대편 조폭들이 일제히 각목을 들고 뛰어내려 일전을 전개한다. 부하와 단 둘이 된 두목은 한 때 우리 모두가 좋아 했던 황야의 무법자 클린트이스트우드 처럼 인상을 구기며 담배를 지긋이 씹으며 내려선다. 앞선 부하가 달빛을 가르며 하늘을 치솟았고 각목이 피를 튀기며 달밤에 춤을 추고 있었다. 부하가 날린 돌려차기에 상대편 졸개들은 연못으로 날아 들었고 돌아서는 순간 옆구리에 명중한 각목에 용맹하던 부하도 아이쿠! 하며 고꾸라졌다. 이 광경을 주시하던 두목은 씹고 있던 담배를 훽 뱉아 내더니 순식간에 허공을 날아 남은 두명의 머리통을 박살내고 한 손으로 코를 훔치며 돌아보자 고택의 뒷골목으로 졸개들은 사라져 갔다. 이때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은 조용해지고 낡은 바바리의 은퇴한 늙은 형사가 싸움을 평정한다. 영화의 한 장면이지만 실감나는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고 집앞 정자 옆에서 찍은 영화라 무시로 심심하면 돌려서 보는 신라의 달밤의 한 장면이다.
내가 살던 고장의 옛날 중등 고등 초입 즈음에는 조직적 폭력조직이 읍내에 파를 가르며 횡행했다. 협성파니 성동파니 하면서 학교 선배나 고향 선배들이 폭력조직을 만들어 싸우며 세를 불려 나가기도 했다. 그러니 학교에라도 가면 자기보호를 위해 끼리끼리 연락을 하며 학교가 파하자마자 옹기종기 모여서 정보를 교환했다. 자기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이들이 자전거 체인이나 송곳 같은 것을 가방에서 꺼내어 자랑삼아 휘두르기도 하고 가방에 무기의 종류가 많을 수록 그 친구가 강해 보이기도 했다. 하나의 영웅 심리이기도 하겠지만 실지로 학교에서 송곳으로 상대 학생의 어깨를 찌르는 것도 눈앞에서 보았다. 그러면 그 아이는 학교에서 징벌을 받고 소문이나면서 그 용기를 가상히 여겨 조폭의 똘마니로 픽업이 되어 조폭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실제 그런 선배가 조폭의 중간 두목이 되어 교정에 나타났을 때 아이들은 영웅처럼 그를 우러러 보았고 그 무섭던 체육선생님도 눈치를 보아가며 들고 있던 막대기를 내리시며 교정 뒷켠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어린 눈으로 보았다. 약골인 나도 영웅심에 들떠 청도관이라는 태권도 도장에 등록을 하고 속성으로 붉은 띠까지 따며 조폭무리의 일원으로 등극하는 꿈을 꾸며 희망을 불태워 마지않던 그런 시절이었다. 무지개 같은 거품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마을에도 남쪽마을과 안마을이 서로 나뉘어져 밤이 되면 서로의 마을을 공격하며 목적 없는 싸움을 벌였던 시절이었다. 싸움의 원인은 단순해서 읍내에 나갈려면 남쪽마을 사람들이 안마을을 거쳐야 나갈 수 있기 때문에 그 것을 트집잡아 말 같지 않은 싸움을 캄캄한 밤에도 달 밝은 밤에도 끊임없이 싸웠다. 싸움도 험악해서 말린 참나무나 오리나무 같은 단단한 재질의 나뭇가지를 잘 다듬어 목검을 만들어 허리에 동여맨 새끼사이로 비스듬히 꽂고 출정식을 하듯 싸움에 나섰다. 남쪽마을 아이들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있는 날이면 길가 에 있는 보리밭에 엎드려 몇 시간을 기다리기도 하였다. 과연 남쪽마을 아이들이 밤 9시나 되어서 저 멀리 기척이라도 들리면 보리밭에 엎드려 있던 안마을 아이들이 들불처럼 와!하고 뛰어 나간다. 목검을 이리 휘두르고 저리 휘두르고 하다 보면 자기칼에 자기가 다치기도 하고 저쪽에서도 몇명이 아이고! 하며 통증의 신음 소리가 들리고 보리밭이 난장판이 되고 나서 그제서야 등짝에 맞은 목검자리가 욱씬욱씬해짐을 느낌으로 알아채고는 우리의 아지트인 서출지 못둑으로 모두 복귀하는 것이었다. 씩씩거리며 땀범벅이 된 아이들이 풀밭에 쓰러져 한 동안 일어나지 못했던 무법의 시대가 영화처럼 펼쳐졌던 시절이 있었다.
한 동네에 살면서 패를 갈라 치열히도 싸웠던 그때 그 아이들, 그래도 아군은 집성촌 아이들이라 패거리의 숫자가 많아 싸움에 진 적은 별로 없었다. 머리가 허예서 귀향을 하고 그때 그 남쪽 몇몇 아이들이 아직도 본향을 지키고 있어 내가 몇 번 인사차 찾아간 적이 있다. 고희의 고개를 한참도 더 넘은 그들을 보며 그때 그 시절의 철 없는 무용담에 파안대소를 하고 막걸리가 줄어가는 달밤이 그리도 정겨울 수가 없었다. 정든 고향 정든 땅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그들에게 얘기했다. 그리고 신라의 달밤을 구성지게 불렀다.
댓글목록
물가에아이님의 댓글

신라의 달밤~
영화가 있었군예
지금이나 소싯적이나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해서 평생 본 영화가 몇편 안되고
드라마도 역시 안보는 편이라 사진담으러 가서 무슨 드라마 촬영지라고 해도
그 드라마와 현재 서 있는 풍경 좋은곳이 매치가 안되지에...ㅎ
옛날 조폭들은 그래도 의리(?)같은게 있은듯 합니다
낭만도 있은듯 하고예~
그러나 폭력은 무섭고 또 무서운 일인것 같아예
사람을 해코지 하는것은 사람 밖에 없으니....
날씨 차겁습니다
감기 조심 하시고예
다가 오는 봄날 행복을 생각 하시면서 오늘도 즐거우시길예~
계보몽님의 댓글

옛날 시골에는 한 때 그런 문화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개화의 눈을 뜨고 자막도 희미한 조선의 전쟁 영화들이
둥그렇게 포장을 친 동방역시장 마당에서 상영을 하면 밤이 이윽토록
신세계에 빠지기도 했지요 그 병졸들의 창을 들고 싸우는 모습을 따라했지요
생각만해도 웃음이 절로 배어 나옵니다.
먼 길 다녀 오셔서 녹잔하시겠습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방콕 추천 드립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