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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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오 학년인 내 손녀의 식성은 참으로 까다롭다. 까다롭다는 표현보다는 괴이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아서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왜 그렇게 되었을까를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기는 마찬가지인데 더 답답한 이유는 그 식성의 연유를 알 수 없다는 점에 있다.
그 아이의 아버지인 내 아들과 아들의 아내인 그 아이의 어머니와 그들의 연으로 맺어진 양가를 통틀어 봐도
그런 식성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손녀의 식성은 점차 미궁으로 빠져들 전망이다.
손녀는 쌀로 지은 밥과 고기를 제외하곤 일절의 채식을 하지 않는다. 그리니까 밭에서 생산되는 채소나 나무에
열리는 과일은 일체 입에 대지 않는다.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식사를 할 때 흔히 식탁에 오르는 김치나 상추, 오이,
감자,기타 나물 등의 야채는 일절 입에 대지 않을 뿐 아니라 사과, 배, 바나나 등등의 과일 역시 입에 대지 않는다.
아이의 식성이 하도 괴이하기에 이를 개선시켜 볼 요량으로, 미인이 되려면 편식을 하지 말아야 되고 특히 과일에는
피부에 좋은 비타민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여성은 과일을 많이 먹어야 된다며 바나나 한 개를 까서 건네니 아이는
바나나를 혀에 살짝 대보고는 바로 내려놓는다.하도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서 더는 권하지 않았는데, 하기야
제 부모도 포기한 아이의 습성을 내가 무슨 수로 고치겠느냐는 자괴감 때문에 이젠 완전히 포기한 상태다.
나는 슬하에 딸 둘에 마지막으로 본 아들 합하여 삼 남매를 두었고 사내만 둘씩을 낳은 딸들과는 달리 남매를 둔
아들 덕분에 유일무이하게 본 손녀라 그 아이는 우리 부부에게 샛별 같은 존재로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는데
제 부모인 아들 내외도 그 아이라면 껌벅 죽는시늉까지 하며 세 살 터울인 아들보다 더 끔찍하게 기르는 터였다.
갖고 싶은 것, 먹고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등등 그 아이의 장래까지 설계하면서 교육에도 열성을 기울이는 모양인데
그런 모습이 우리 부부의 눈에는 과하게 보이기는 하나 제 자식 저들이 알아서 하는 걸 어쩌겠느냐며 관망만 하는
처지다. 이젠 제법 소녀 티가 나는 손녀가 집에 오는 날이면 요즘 유행하는 걸그룹의 춤을 선보이기도 하는데 할머니는
그 모습이 예쁘다고 박수를 치며 정육점에서 미리 떠온 소고기를 구어 육식주의자인 손녀의 미각을 돋우어준다.
몸이 늙어가면 장성한 자식들보다 손주가 더 귀엽고 애틋하게 느껴진다는데 우리 부부도 이런 인간의 감정을 체험하며
인생 후반기를 걷고 있는 중이다.
요즘 세간의 화제로 떠오른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그의 대표작인 "채식주의자 "를 읽었다.
작품 " 채식주의자 "는 소설이다. 알려진 대로 소설은 픽션(Fiction)이다. 픽션은 사실이 아닌 상상에 의하여 쓰인 이야기다.
즉 " 사실이나 허구의 이야기를 작가의 상상력과 구성력을 가미하여 산문체로 쓴 문학의 한 갈래 " 라고 사전은 정의하고 있는데
한강 작가가 쓴 채식주의자 역시 한강 작가의 상상력에 의하여 씌여진 소설이기 때문에 이 소설에 대한 왈가왈부로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 적시한 시대적 배경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우리 손녀가 육식주의에서 벗어나 모든 음식을 골고루 먹는 잡식주의자가 되어 무럭무럭 예쁘게
성장하기를 바랄 뿐이다.
댓글목록
들향기님의 댓글

우리들은 6 25를 격은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좋은 것 나쁜 것
가리지 않고 부모님께서 주시는 데로 먹고 자라고 성장했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부모도 늦게 결혼해서 하나 둘만 놓는 세상이다
보니 아이게만 맞추고 사는 세상입니다
이것은 어느 가정이나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입고 싶고 하는 것을
거의 맞혀주는 추세이지요
요즘아이들이 육식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이다음에 손녀가 여자의 미를 알게 되면 그때는 채식주의
바뀌지 않을까요
안산님 좋은 글잘 감상했습니다
안산님의 댓글의 댓글

우리 손녀가 제발 골고루 먹는 잡식주의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편식은 정신과 육체 모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걱정이지요
어쩌면 부모가 자식을 잘못 키운 결과물일지도 모릅니다만 아직은 개선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어쨌건 제 부모가 알아서 할 일일 수밖에 없겠지요.
들향기 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