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 사랑엔 친구도 없다 > 소설·수필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소설·수필

  • HOME
  • 창작의 향기
  • 소설·수필

☞ 舊. 소설/수필   ♨ 맞춤법검사기

 

 

모든 저작권은 해당작가에게 있습니다.무단인용이나 표절을 금합니다

[연애소설] 사랑엔 친구도 없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98회 작성일 17-01-30 09:00

본문


 사랑엔 친구도 없다  / 김지명

 

 

   천성의 안식처인 치마바위 카페로 간다. 전망이 아주 좋은 카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볼 때 유람선이 노래를 흘리면서 한가로운 듯 천천히 지나간다. 오륙도가 보이는 곳에서 몇몇 여자들이 갈맷길을 밟으며 걸어오더니 치마바위 노천카페에 앉는다. 여인들은 넓은 바다를 보면서 끝없는 수다를 늘어놓고 시간을 녹인다. 천성은 여인들에게 다가가 모르는 상식을 가르쳐 주려고 말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이곳이 처음이신가 봐요?”
   “네 바다를 보니 감동이네요.”
   “내륙에 사시나요?”
   “네, 우리는 대구에서 왔어요.”
   “그러세요, 내륙지방에서 오셨다니 바다를 보면 속이 후련하시겠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 좋은 풍광에 흠뻑 빠져보이소.”
   “아저씨가 이곳에 대하여 잘 아시나 보죠?”
   “그래요, 무엇이든 물어보소.”
   “오륙도에 깊은 의미가 있나요?”
천성은 오른팔을 뻗어 오륙도를 가리키면서 육지에서 우삭도,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으로 나란히 있지만, 옛날에는 육지에 붙어 있었다고 했다. 좀 더 세밀하게 설하자면 우삭도의 일면이 Y자처럼 생겨서 밀물일 때 방패섬과 솔섬으로 나누어지므로 육 도가 되고 썰물이면 물이 빠져 하나의 섬으로 보일 때 우삭도라 칭한다고 했다. 대구 아주머니들은 좋은 상식을 알았다고 손뼉을 치면서 좋아한다.
   “아저씨 오늘 일일 안내자 하실 수 있는 거죠?”
   “제가 몸값이 좀 되는데요.”
   “값에 상관없이 결정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몸값을 해야겠네요.”
   “아저씨가 아는 것만 알려주세요?”
   “이 지역에 살고 있으니 기본이지요.”
   “오늘의 가이드를 잘 선정했다고 한다.”
한 여자가 손을 들면서 오늘의 안내자로 모시겠다고 동료들에게 전하자 박수로서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다며 웃음을 보인다. 천성은 하루 몸값이 아주 비싸다고 하면서 웃었다. 승두말에서 시작하는 해파랑길은 동해를 그쳐 속초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이다. 지역마다 오솔길이 중복되는 곳도 더러 있다고 했다. 여인들이 걸어온 길은 갈맷길 즉 부산이 지정한 오솔길이다. 이기대(二妓臺)는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수영성을 함락시키고 부근의 경치 좋은 정자에 앉아서 승리를 축하하는 잔치를 열었는데 그때 수영의 의로운 두 기녀가 자청해서 잔치에 참여했다. 기녀는 별난 춤추듯 몸을 흔들면서 치마를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였다. 왜장의 기분을 돋우면서 장군에게 술을 권했다. 왜놈의 장군을 술에 취하게 한 뒤 기녀들은 각각 한 명씩 그들을 안고 절벽 아래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두 기녀를 기리기 위해 무덤이 만들어진 곳을 이기대(二妓臺)라고 설명해 주었다. 천성은 동해와 남해의 분기점인 승두말은 해파랑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해파랑길은 승두말에서 동해를 그쳐 속초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이라고 했다.


   천성은 상세한 설명으로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인들이 좋은 상식에 감사하다며 인사하고 떠났다. 자영이 다음에 와도 안내자로 부탁해도 되나요? 네 언제든지 오시어 불러주세요. 그렇다면 연락처를 가르쳐 주세요? 네 저의 연락처는 010-**99-**77입니다. 자영의 손전화기에 나의 번호를 눌렀다. 자영은 고맙다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앞서 걷는다. 미숙이 맨 후미에서 고개 돌려서 윙크로 미련을 남기고 멀어져갔다. 치마바위 카페에 들렀던 많은 사람은 흔적도 미련도 없이 멀어져간다. 천성도 치마바위 카페에서 나오려고 일어나서 배낭을 잡으려고 허리를 굽혔다. 그런데 여인들이 앉은 자리에 작은 쪽지를 흔적으로 남겨놓았다. 천성이 보라는 듯이 쪽지에 적혀있는 연락처와 인사말이었다. 천성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꽃뱀인가? 아니면 이성을 떠나서 진솔한 친구를 원하는 순박한 여인인지 의아하였다. 가정에서 미리 작성하여 천성 앞에서 흔적을 남긴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작은 종이에 메모한 몇 글자가 천성의 마음을 흔들었지만, 연락처를 주머니에 넣고 전화하지 않았다. 천성은 그 작은 쪽지 때문에 오랫동안 고민에 빠졌다. 천성의 곁을 떠난 여인들처럼 하늘에 구름은 한순간 어디로 사라졌는지 밝은 햇살이 세상을 감싸 안는다. 천성이 고요한 바다를 내려다볼 때 은빛 윤슬이 눈을 부시게 한다. 여인들을 보낸 천성은 배낭을 챙기면서 다시 쪽지를 꺼내 보았다. 여인의 전화번호가 눈앞에서 아롱거린다. 문자메시지를 넣어야 하나 못 본채 참아야 하나 혼란에 젖었다. 쪽지를 뒷주머니에 넣고 잊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주머니 전화기를 꺼내어 인터넷 속으로 찾아들어 소설책을 펼쳤다. 주머니 전화기로 보는 글자가 눈에 아롱거려 오래 보지 못하고 그만 접으려 하는데 전화기에서 음악이 나오고 번호가 나타난다. 이름이 없는 번호다. 세월이 달라지고 시대가 급변하니 사기꾼의 전화가 날로 발전해간다. 천성의 친구가 낫은 전화는 절대로 받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말이 떠올라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같은 전화번호로 여러 번 울린다. 천성은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도 알면서 하도 궁금하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하는데 말도 끝나기 전에 안녕하세요? 조금 전에 만났던 여인입니다, 하면서 대화를 시작하였다. 천성이 준 음식물에 극약이 들어있었는지 궁금하다며 묻는다. 왜요? 누가 죽었나요? 다 함께 나누어 먹었는데 살아있다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가 하고 반문하였다. 친구 중의 한 명이 배가 아파 병원에 가야 한다며 어디로 갈까 하고 묻는다. 119 소방구급차를 불러서 가라고 했다. 알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혼자서 생각에 젖어보려고 했는데 나에게 걱정을 안겨준 아주머니들에게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중얼거리며 걷고 있는데 중년의 아주머니 두 명이 다가오더니 이곳의 지명과 유원지의 이름을 묻는다. 천성은 아주머니들과 함께 걸으면서 산의 유래와 바다의 무서움을 이야기하였다. 너울 마당 공연장을 지나 구리광산과 자연동굴을 자랑하면서 해녀 대기실 앞에서 멈추었다. 아주머니들은 해녀가 방금 잡아 온 해삼과 멍게를 맛보자며 자리에 둘러앉는다. 천성은 스쳐 가려고 하는데 기어이 잡아 앉힌다. 아주머니들은 바다를 보았으니 물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을 맛보아야 부산에 온 보람이 있다고 한다. 멍게와 전복 해삼 문어 등 다종의 회를 주문한다. 아주머니들은 시원소주의 안주로 회 한 접시를 금방 비운다. 아주머니들은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청순하고 순진해 보인다. 천성은 아주머니들과 섶자리로 걷고 있을 때 자영의 전화가 또 걸려왔다. 천성은 어떻게 되었는가 하고 물었다. 여인은 병원에서 수술해야 한다며 오라고 한다. 어디인가 하였는데 대학병원이라고 하면서 반드시 오라고 명령하듯 말한다. 천성은 자영이 아주머니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못 간다고 전했다. 대구에 가서 수술하든지 맘대로 하라고 하고는 통화를 끝냈다. 세상엔 별의별 인간들이 다 있네 하면서 생각을 잊으려 했다. 통화를 하는 사이에 두 아주머니는 천성의 곁에서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갔다. 이름이 없는 전화번호가 또 울린다. 어디서 많이 본 번호 같아서 오랫동안 생각하였다. 곰곰이 기억하니 쪽지로 남긴 여인의 전화번호였다. 잠시 후 다시 벨이 울리자 얼른 받았다. 여인은 우리와 만난 자리에 쪽지를 두고 왔는데 보지 못했어요? 하면서 상냥하게 질문하였다. 아! 네~ 뒤따라 나온다고 살펴보지 못했어요. 하였는데 아주머니는 병원 2층 화장실이라면서 여유 있게 통화해도 된다고 한다. 아프다는 친구가 응급실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위장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심장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며 수술을 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그런데 천성이 그곳에 갈 이유가 있는가 하였다. 여인은 어리석은 생각이라며 오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 친구는 평소에 지병을 갖고 있었다고 중얼거렸다. 전화하는 친구와 병원에 간 아주머니는 올케와 시누이 사이다. 환자는 너무나 가난한 삶에서 허덕인다고 덧붙였다. 계원이라면서 왜 친구 편을 들지 않고 나에게 호감을 주는지 이유를 물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믿어주지 않겠지만, 아저씨의 외모에 매료되어 짝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애원하듯 자기의 말을 믿어달라고 간청하였다. 앞으로 미숙이라고 자주 불러달라며 진실을 전하더니 다시 확인하려고 묻는다.

   “아저씨를 믿어도 되나요?”
   “네 말씀해 보세요.”

   아주머니는 간청하듯 말한다. 아저씨가 인상이 좋고 마음이 너그러워 보였기에 믿음직한 친구로 사귀고 싶어서 미숙은 이름과 심금을 다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가끔 만났으면 합니다.”
   “좋지요. 언제든지 오시오.”
   “네 고마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미리 연락하소.”
   “네 이 번호 기억하세요, 미숙의 이름입니다.”

   용기를 내어 쪽지를 남겨놓고 왔는데 아무런 말이 없어 친구 전화기를 보고 번호를 머릿속에 입력했습니다. 답답함을 하소연할 곳이 없어 외로웠는데 이젠 친구가 생겼으니 마음이 놓인다고 한다. 천성은 언제든지 대화할 수 있으니 망설이지 말고 찾아오라고 했다. 미숙은 남자 친구가 없으니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덧붙였다. 상담이라면 언제든지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다린다고 했다. 시대가 바뀌어 여자가 남자를 선택하는 세월이 되었다. 천성은 미숙처럼 예쁘고 마음 좋은 여자분이 친구 한다면 여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미숙은 예쁘게 보아주시어 고맙다며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다고 한다. 친구들과 계 모임에서 개별적으로 빠지지 못하여 다음에 만나자고 본심을 말한다. 네, 미숙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겠습니다. 내일이라도 만나면 되니까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언제든지 달려오라고 했다. 게다가 날마다 오라고 해도 괜찮다고 하면서 친근감을 보였다. 천성은 미숙에게 그 친구의 상황을 잘 지켜보고 알려주라고 하고는 전화통화를 마쳤다.


   천성은 통화한 음성을 기억하면서 전화기에 대구 친구라고 저장하였다. 이튿날 친구 하자던 미숙 아주머니가 만남을 요청한다. 천성은 시간이 허락하면 당장에라도 달려오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여기 동대구역이라고 하면서 한 시간 후에 부산에 가도 되겠는지 물어본다. 천성은 항시 기다리고 있으니 당장 차를 타라고 했다. 혼자서 치마바위 카페로 가다가 다시 집으로 들러 승용차를 운전하여 부산역으로 갔다. 정확하게 한 시간 후에 부산역에 나타난 미모의 미숙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미숙은 생글생글 웃으며 천성을 알아보고 다가와 악수를 청한다. 천성은 미숙의 손을 잡았다가 다시 포옹하며 서양식의 인사를 했다. 미숙을 승용차에 태우고 감천만을 거쳐 몰운대 해변에 주차하였다. 여인과 함께 숲속으로 걸어갈 때 다종의 조류가 우리를 반겨주듯 조잘거린다. 천성은 미숙의 손을 잡고 숲속으로 걸으면서 서로를 알리려고 많은 대화가 이어진다. 미숙과 미담을 속삭이며 걸어가는데 오솔길 언저리에는 몰운대 정자가 보였다. 미숙은 어저께 걸음을 많이 걸어서 다리가 아팠는지 정자에서 쉬었다 가자고 한다. 전망이 아주 좋은 정자에 퍼지고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서 대화가 이어진다. 미숙은 어저께 이름을 밝히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가, 의아해한다. 어저께 친구와의 주고받는 대화에서 들었다고 했다. 허미숙이라고 하며 지천명이 가까워지는 시기라고 한다. 아! 그러세요, 어저께는 이름만 알았지 성씨는 몰랐는데 허씨군요? 김해 허씨라면 김해김씨와 이성동본이면서 수로왕의 후손이네요. 바람둥이 아저씨는 김천성이라고 합니다. 미숙은 뭐! 바람둥이라고요? 네 그래요. 그렇다면 앞으로 미숙이가 곁에서 바람을 막아줄 테니 고요히 지내세요. 하더니 좋은 이름이 등치와 잘 어울린다고 한다. 바람마저 고요한 몰운대 숲에는 따사로운 햇볕이 노송의 우듬지를 감싸고 있다. 곰솔 사이로 땅바닥에 내려앉은 햇살은 작은 미물을 감싸 안는다. 바다에는 은빛 윤슬이 눈부시게 아롱거리는 한낮, 천성과 미숙은 정자에 앉았으니 시조나 한 수 읊어보자고 했다. 미숙께 먼저 한 수 읊어보라고 권했다. 미숙이 좋다고 하면서 먼지 한 수 시작한다.
  
   “숲속의 꾀꼬리가 한쪽의 날개 잃고
   둥지를 벗어나서 아득한 남도에서
   엄마 품 같은 연인을 우연 중에 만났다.”

 


 천성은 아주 멋진 시조라고 칭찬하면서 답 시조를 읊는다.
  
   “산허리 감싼 안개 내 심금 울리더니
   촉촉이 젖은 계곡 샘물에 목축일 때
   산마루 흠뻑 적더니 시신처럼 퍼진다.”

 


   이렇게 답 시조로 미숙의 기분을 돋웠다. 미숙은 빙그레 웃으면서 천성이 있는 자리로 미숙이 팔짱을 끼며 궁둥이를 바짝 붙여 나란히 앉았다. 미숙은 천성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간다. 부끄러움도 없이 부부처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미숙은 흥분할 분위기로 이끌어간다. 연인처럼 다정한 천성과 미숙은 시간이 녹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미숙은 천성이 모텔로 유인하길 몸으로 표했는데 눈치를 채지 못하고 체면치레만 한다. 미숙은 처음 만난 사내지만, 성적인 갈증을 해소해 줄 거라는 기대감에 젖었다. 천성은 미숙을 모텔로 모시고 싶은 마음은 용암처럼 치솟지만, 순간의 쾌락에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여 참고 또 참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하여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천성과 미숙은 사춘기 아이들처럼 자신의 몸을 상대에게 던져 놓아도 잡아먹지 않고 감싸고 보호하기만 한다. 미숙은 천성의 따뜻한 마음에 매료하여 집에 가야만 하는 생각마저 잊고 있었다. 이토록 상대를 배려하는 천성이 잡아먹지 않아 밉게 보이긴 했지만, 따뜻한 정에 끌려들었다. 처음만나서 지나친 행동이라고 생각한 천성은 인내심을 양껏 발휘하였다. 이렇게 하루가 한순간 지나갈 때 천성은 삶이 즐겁다고 하지만, 먼 길로 떠나야하는 미숙은 하루의 시간이 너무나 짧다며 아쉬워한다. 미숙은 천성에게 왜 이곳에 왔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하고 묻기도 하더니 음극과 양극이 부딪치면 스파크가 일어나야 하는데, 하면서 모텔로 안내하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떠나기 싫어하는 미숙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손을 흔들며 고개 숙인다. 돌아서는 미숙을 얼싸안고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때 미숙의 눈가에는 이슬 같은 물방울이 고이고 있었다. 미숙은 흐르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 돌려 도망가듯 열차에 몸을 숨긴다.


   천성은 부산역 게이트를 빠져나면서 힘없이 걸었다. 미숙이 사라 저간 천성의 마음은 적막강산이었다. 미숙은 이틀이 멀다 하고 전화로 대화하면서 수없이 아픈 고통을 숨김없이 털어놓는다. 미숙은 성에 대하여 상담하고 싶다고 한다. 열흘이 지나자 미숙은 모두를 개방하듯 사생활의 아픈 사연을 낱낱이 이야기한다. 서로 마주 보면서 대화하지 못하는 미숙이 보이지 않은 곳에서 부끄러운 이야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한다. 전화통화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미숙의 아픈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미숙은 아저씨가 있으나 마나라고 하면서 잠자리의 갈등을 하소연한다. 천성은 미숙의 남편이 무슨 병인가 하고 물었다. 남편은 당뇨가 심하여 성 기능이 완전히 불가능하여 몇 년째 독신자와 같은 생활을 한다고 중얼거린다. 지천명에 가까운 나이라면 여자는 발악의 나이인데 하면서 답답한 심정을 노골적으로 털어놓는다. 미숙은 아직도 꽃을 피우는 젊은 여인이라고 성적 갈증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였다. 불구의 남편 때문에 오랫동안 갈증에 시달리다 보니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고 호소한다. 천성은 미숙의 심리에 대하여 상담했다. 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고 알려주었다. 성은 마약과 같은 것이라며 미숙의 문제점을 함께 고민하자고 했다. 체질에 대해 어려움이 있다면 언제든지 해결해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내담자의 상담을 충분히 설득시켰다. 미숙의 기분을 풀어주었지만, 천성은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미숙을 완전히 알지 못하고 말했지만, 미숙이 대중 속에 자라온 꽃뱀이 아닌가 하고 의아하면서 언행에 주시하기로 했다. 요즘 주변에는 꽃뱀이 아닌 꽃뱀에게 물린 남자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천성에게도 그런 경우가 생길 수 있을 거로 생각하여 고민해본다. 맑은 하늘에 구름은 보이지 않았지만, 가늘게 불어는 바람에 안개비가 옷을 적셨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서 미풍에 일렁이는 물결 따라 일렁이는 파도 위에 은빛 윤슬은 천성의 눈을 부시게 한다. 미숙이 온다는 말에 천성은 오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내가 그곳으로 가겠다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숙은 사춘기 아이처럼 들뜬 기분에 사로잡혀 부산으로 오고 있다고 한다. 잠시 후 역에서 만난 미숙에 반가움을 전하려고 악수를 청하더니 가까이 다가와 얼싸안고 반가워한다. 승용차에 앉아 암남공원으로 가면서 두 사람은 진지한 대화가 이어졌다. 천성은 미숙이 어저께 전화로 말 못한 사연을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참을 수 있는 것이 있고 참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고 했다.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은 무조건 해결하라고 방법을 알려주었다. 성적 감정이 쌓이면 자위라도 하면서 마음 편하게 살지 왜 그렇게 사는가 하고 물었다. 미숙은 그런 것에 대한 방법을 몰라서 늘 고민해 왔다고 한다. 천성은 부산을 잘 모른다는 미숙을 데리고 암남공원에 들러 의자에 앉았다. 천성은 운전하면서 백미러로 뒤따르는 차를 자주 살핀다. 미행자가 있는지 버릇처럼 행해지고 있었다. 오늘도 예측을 빗나가지 않았다. 택시가 천성의 차를 계속 미행한다. 천성은 민주공원에 앉으니 택시에서 내린 사내는 멀리서 지켜본다. 천성은 미숙에게 저 사람이 역에서부터 따라온 것 같은데 아는가 하고 물었다. 미숙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다. 저 사내가 대구에서 미숙을 따라온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미숙이 달리 생각하지 말고 고개 돌리라고 한다. 미숙은 수상한 느낌은 전혀 없다고 태연한 행동을 보여준다. 천성은 알았다고 하면서도 심도 있게 지켜본다. 미숙의 마음속에는 들킬까 걱정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미숙은 천성을 만나 자리에 앉을 때마다 어깨에 비스듬히 기대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오늘은 좋은 구경을 미루고 새로운 도전에 최선을 다하자고 했다. 미숙은 깜짝 놀라듯이 네! 하면서 바로 앉는다. 그렇게 빨리 제 마음을 알아주시나요? 음과 양이 부딪치면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하고 웃었다. 미숙은 얼마나 좋았는지 빙그레 웃으며 당장 출발하는 신호로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거린다. 천성은 발정을 참지 못한 짐승처럼 몸이 달아올랐다. 미숙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사랑을 꽃피울 둥지를 찾아보자고 했다. 미숙은 어서 가자고 조루면서 팔짱을 끼고 끌다시피 팔을 잡아당긴다. 미숙을 데리고 다시 승용차에 올랐다. 암남공원 언저리로 한 바퀴 휙 돌아서 산복도로로 주~욱 달렸다. 도심지를 벗어나려고 하는데 미숙은 저기 좋은 곳이 보인다며 저곳으로 가자고 조른다. 천성은 알았다며 바로 모텔로 들렀다. 차에서 내린 미숙은 곧장 다가와 팔짱을 끼고 천성의 걸음에 발을 맞춘다. 열쇠에 달린 방 호실을 찾아서 705호실 문을 열었다. 방에 들러서 느낌이 이상하여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택시가 들어오더니 사내가 혼자 내린다. 모텔에 혼자서 들어올 리가 없는데, 수상하게 여긴 천성은 잠시 멈추었다가 자리를 옮기자고 하고는 미숙을 데리고 9층으로 갔다. 방이 비어있는 곳이 많아 905호실에 들렀다. 사내는 프런트에서는 조금 전에 들어간 손님과 일행인데 몇 호실이요? 안내실 아주머니는 방 호실을 알려주었다. 사내에게 705호실이라고 했는데 잘못 들어 703호실 문 앞에서 최첨단 장비로 문틈으로 흐르는 음성을 녹음하려고 틈 사이로 끼워놓았다. 아주 작은 CC 카메라로 문틈을 이용하여 깊숙이 밀어 넣고 촬영을 시작하였다. 천성은 방안이 음울하다며 불을 켜고 의자에 앉았을 때 포근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방으로 들어온 천성은 분홍녀 같은 미숙을 쳐다볼 때 고혹적인 음성에 혼신을 잃고 온몸이 흥분하였다. 게다가 화장대 위에 놓인 성인용품까지 천성의 흥분을 도와 완전히 매료되었다.


   천성은 실내의 공기를 바꾸려고 창문을 열었다. 순간 옷을 벗던 미숙은 깜짝 놀라면서 얼른 문을 닫으라고 한다. 창문을 닫고 텔레비전을 켰다. 화면이 깨끗하지는 않아도 포르노 영화가 나오는 화면에 채널을 고정했다. 미숙은 샤워장으로 들렀지만, 천성은 포르노 영화에 빠져들었다. 천성은 이상한 생각을 한다. 방문이 잠겨있어야 하는데 열려있으니 무언가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전에 뒤따라온 사내와 한통속이 아닌지 의아해했다. 이불을 걷었다. 깨끗하게 청소하지 않아 사람이 누운 느낌이 들었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누구세요? 했는데 방 청소하려고요. 아~ 괜찮아요. 방을 잘못 들렀지만, 그냥 사용하겠다고 했다. 혼자 투숙하고 간 자리라 젖은 수건 한 개와 이불 아래가 약간 구겨져 있을 뿐이다. 천성은 사춘기 청소년처럼 영화에 혼신을 잃고 있는데 샤워를 마친 미숙이 다가와 어깨를 툭 친다. 놀란 천성은 얼른 옷을 벗고 샤워장으로 들렀다. 샤워장에는 샤워시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목욕시설이 아주 멋지게 꾸며진 모습에 놀라워했다. 집에서 샤워하고 왔기에 대충 몸을 헹구고 가운을 걸치지도 않고 바로 나왔다. 미숙은 이불 속에 숨어서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천성은 불을 끄고 텔레비전마저 끄려고 하니 그것은 그냥 두어도 좋겠다고 한다. 아마도 미숙은 소프라노를 심하게 노래할 모양이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와 미숙의 앓는 소리가 합쳐져 색다른 소리로 유도하려고 한다. 천성은 장난기가 발동하여 이불 속에 숨은 미숙의 발을 간질였다. 미숙이 발을 움츠리면서 돌아눕는다. 천성은 이불 속에서 미숙을 끌어안았다. 숨소리가 거칠어지더니 천성을 얼싸안고 입맞춤을 개시한다. 천성은 오래 머물 시간이 없었다. 수상한 놈이 들어왔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미숙은 상체부터 하체까지 가볍게 애무하지만, 천성은 간지러워 그만하라고 했다. 천성은 봉긋한 젖가슴을 어루만지며 행복감에 눈을 지그시 감으며 미숙을 흥분시켰다. 천성은 키스와 애무로 미숙을 긴장시키고 용광로에 불을 질렀다. 미숙은 몸을 떨면서 천성을 끌어안고 좋아서 죽겠다고 앓는 소리가 방안을 꽉 메운다. 좋아서 죽겠다고 앓는 소리가 끝없이 치솟던 노랫소리는 순간순간 끊겼다가 다시 이어진다. 분위기를 위해 억지로 연극을 하는 소리 같았다. 천성은 더 욱더 이상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흥분한 순간에도 두 사람이 짜고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아하였다. 미숙은 있는 힘을 다하여 가슴을 조이더니 두세 번 오르가슴을 느끼고는 죽은 오징어처럼 푹 퍼진다.


   한 시간이 넘도록 허리운동에 지친 천성은 몸에서 안개가 피어난다. 샤워장에서 찬물을 한참 동안 덮어쓰고 몸속에 이글거리는 열기를 쫓아버렸다. 죽은 오징어처럼 푹 퍼진 미숙을 안은 천성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에 취해 있을 때 구군가가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천성을 긴장시킨다. 천성은 놀란 듯이 일어났다. 미숙의 신랑이 왔는가 하고 머리끝을 세우고 놀라며 의심하였다. 천성은 놀란 토끼처럼 눈을 댕그랗게 뜨고 빠른 동작으로 옷을 입었다. 미숙도 남의 방이라는 것을 알고 얼른 옷을 입고 천성을 따랐다. 대문에는 취객이 방문이 안 열린다고 하면서 씨름을 하고 있었지만, 천성은 미숙을 데리고 얼른 방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미숙은 왜 놀라워하는지 알 리가 없었다. 우리를 미행하던 그놈은 로비에서 일행이라고 하고 호실을 물어서 가르쳐 주었는데 만나지 못했는가 하고 묻는다. 천성은 만났다고 하고는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천성은 급하게 차를 몰고 모텔을 빠져나왔다. 우리를 미행하던 그놈은 차량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차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재빠르게 지나던 택시를 타고 다시 미행한다. 천성은 그놈을 따돌리기 위해 모서리를 돌아 모텔 앞문으로 들렀다가 앞에서 보이지 않은 옆문으로 빠져나와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놈은 또 모델 앞에서 기다리다 주차장에 들러 아무리 둘러보아도 천성의 승용차가 보이지 않았다. 천성은 미행자를 따돌렸지만, 그놈은 바로 부산역 매표소 앞에서 반드시 기다리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


   천성은 네거리에서 신호를 보면서 속도를 줄이다가 적색등이 꺼지기 직전에 유턴하였다. 택시 기사는 차를 멈추었지만, 뒤따르던 사내가 기사에게 모두 책임질 테니 앞차를 따라가자고 힘주어 말했다. 택시 기사는 무심코 신호위반 하면서 앞차를 따라가려고 유턴하였다.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면서 택시를 세워 신호위반이라고 했다. 택시에 타고 있던 사내는 차에서 내려 도주한다. 기사는 저놈을 잡으라 하면서 쫓아갈 때 경찰도 합세하여 따라간다. 사내는 인도로 열심히 뛰는데 앞에서 아가씨 세 명이 나타났다. 그중 한 명이 길목을 열어놓고 뛰어오는 사내를 살핀다. 사내가 앞으로 스쳐 갈 때 아가씨가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아가씨는 넘어진 사내 곁으로 가서 머리털을 잡고 땅바닥에 사정없이 쳐버린다. 사내는 턱에 구멍이 나서 붉은 물이 흐른다. 달려오던 기사와 경찰관이 사내를 잡아 쇠고랑을 채우고 데려간다. 미숙을 태우고 달리던 천성은 멀리서 사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승용차에 앉은 미숙이 한 장면의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이라고 한다. 미숙이 천성에게 이토록 멋지게 해결해 주시니 무엇으로 보답할까요? 하면서 좋아하였다. 대구에서 자영이가 전화하여 병원에 있으니 오라고 독촉 전화였다. 곁에서 듣고 있던 미숙이 화를 내면서 절대로 가지 말라고 다짐한다. 환자가 가난하여 돈을 요구하려고 그러는데 그 말에 말려들지 말라고 충고한다. 천성은 미숙을 태우고 자갈치로 갔다. 자갈치에서 가게마다 돌아다니며 각종 어류를 구경시켰다. 미숙은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를 보지 못하여 이름을 전혀 모른다고 하면서 어류가 신기하다고 하였다. 날것으로 먹으면 몸에 좋다고 하니 회를 맛보자고 부탁한다. 처음 보는 고기나 어패류를 골라 구워 먹기도 하고 회로 맛보기도 했다. 미숙이 해변에서 생선을 맛보니 그 감회가 새롭다면서 맛이 다르다고 한다. 천성은 미숙을 데리고 부산역으로 가려고 하다가 구포역으로 갔다. 미행하는 놈이 경찰서에서 풀려나 부산역에서 지키고 있을 거로 생각하여 방향을 바꾸었다. 미숙을 데리고 구포역 언저리에 숨어서 열차가 움직이기를 기다리다 출발하려는 순간 열차에 뛰어올랐다. 미숙은 창밖으로 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천성도 잘 가라고 양손을 들어 올렸다.


   내가 집으로 가고 있을 때 미숙이 전화가 왔다. 달리는 열차 속에서 자리에 앉은 미숙은 아직도 아랫배가 뻐근하다며 무리한 애욕을 부렸다고 실토하였다. 미숙은 남편이 남자 구실을 하지 못하여 이혼하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생각이 바뀌었고 한다. 남자친구를 구하려고 많은 노력으로 대구에 사는 한 젊은 사내를 알았다. 그 사내가 조루증도 아니면서 오랫동안 즐기지 못했다. 욕구를 충분히 해소해주지 못하고 돈을 요구하여 그만 접었다는 이야기까지 낱낱이 털어놓는다. 조금 전에도 전화가 왔다는 등 소꿉친구처럼 이야기한다. 미숙은 나이가 어린 사내라서 동생처럼 생각하고 지냈다. 성관계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협박하였기에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천성아저씨처럼 나이가 많고 점잖은 분을 만났기에 안정제를 맞은 것처럼 마음이 아주 편안하다. 미숙이 찾는 사람은 천성아저씨 같은 분이라고 판단하고 깊은 생각을 달리하겠다고 한다. 미숙은 천성을 생각하며 황홀했던 시간을 추억하고 있을 때 젊은 사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부산에서 행동한 것을 사진과 녹음으로 증거를 갖고 있다며 만나자고 협박한다. 즐기는 영상도 갖고 있다면서 만나지 않으면 남편에게 알리겠고 한다. 미숙은 부산서 의심했던 사내가 그놈이 보냈다고 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맞아 그놈이 수상해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천성은 미숙도 그들과 같은 무리가 아니냐고 의심했다. 미숙은 놀라는 말투로 절대 그런 일은 없다고 한다. 천성이 보기엔 같은 패거리가 아니냐고 의심했는데 정말 그들과 같은 무리가 아닌가 하였다. 점잖은 아저씨가 미숙을 실망하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한다. 영원히 미숙의 갈증을 해결할 것 같아서 너무나 믿었기에 앞으로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덧붙인다. 미숙은 성불구인 남편과 잠자리도 따로 한다며 불평을 털어 놓는다. 때로는 죽고 싶은 심정뿐이었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미숙을 이토록 황홀한 분위기에 젖도록 욕구를 해결해주었으니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이제는 마음이 완전히 달라졌다면서 가정생활의 불편했던 점을 소상히 털어 놓는다. 바라던 소원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주니 생각을 바꾸겠다고 실토한다. 천성은 미숙에게 충분히 보시할 수 있다면서 자주 만나자고 요구했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좋아한다. 권태기에 있는 미숙의 삶이 즐거워지고 행복한 가정이 될 거라고 미소 짓는다. 미숙은 그 말이 진심으로 들린다며 지금은 스트레스가 완전히 소멸하였다. 미숙은 우울증을 치료해준 은혜는 반드시 갚아드리겠다고 하였다. 열차표를 구매하여 좌석에 편안하게 앉아서 가고 있었다. 천성은 다음에 대구로 가겠다고 만날 날을 약속하자고 하였지만, 미숙은 망설였다. 미숙은 다음에 반드시 연락하겠다고 하고는 통화를 마친다. 천성은 집으로 와서 자리에 앉을 때 전화기에서 음악이 울린다. 미숙이다. 집에 도착하여 소파에 누웠는데 아직도 구름 위에 앉아있는 느낌이라고 한다. 천성은 오늘의 황홀한 기분이 가정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미숙은 황홀했던 추억에 빠져들어 저녁 할 시각을 놓쳤다. 하루 시간이 왜 이토록 짧은지 놀라워하며 다음에도 함께 시간을 녹여보자고 한다. 미숙은 고맙다며 모두를 잊고 천성만을 사랑하겠다고 다시 다짐하고 헤어졌다.


   천성은 집에서 편히 쉬고 있는데 밖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누군가하고 물었다. 경찰이라고 하면서 잠시 보자고 한다. 천성은 태연하게 다가가 왜 그런가 하고 물었다. 대구에서 아주머니가 살해 미수라고 신고가 들어왔다면서 함께 가자고 한다. 경찰차를 타고 그들과 함께 경찰서에 조사실로 들렀다. 형사과 조사실에서 진술서를 작성하고 서명을 요구한다. 형사 앞에서 진술서를 써놓고 신고자 네 명에게 진술을 받아 보라고 했다. 진술서에서 그 여인의 진료내용 증명서를 반드시 첨부했는지 확인해 보라고 하였다. 천성은 경찰관에게 그 여인을 무고죄로 신고하여 접수를 마쳤다. 확인하고 연락하겠다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천성은 여기까지 끌고 왔으면 처음에 있던 자리로 옮겨주어야지 하고 고집을 피웠다. 형사가 나서 큰 소리로 말하지만, 천성은 조용히 말한다. 보소 형사님 요즘 세상에 큰소리친다고 통하겠어요? 천성은 검찰을 불러놓고 법으로 따져보겠다고 했다. 수사과장은 시끄럽게 하지 말고 집 부근에 태워주라고 순경 형사에게 지시한다. 하급형사는 천성을 마을 앞까지 태워다 주었다. 천성은 차에서 내려 미숙을 그리워하면서 골목으로 걸었다. 집으로 돌아온 천성은 생각할수록 괘씸하여도 어디에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바람둥이에게 스쳐 가는 바람이라고 생각하고 잡념을 버렸다. 양지바른 담 위에서 고양이가 사랑을 즐기는 모습을 보니 천성도 미숙이가 생각난다. 그때 미숙은 천성이 걱정된다며 연락이 왔다. 미숙은 통화하면서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라고 안심시킨다. 천성은 미숙을 오랫동안 안아주지 않았는데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친구들과 연락하여 확실한 정보를 전해주니 참으로 고마운 미숙이다. 보름이 지난 후에 형사가 집으로 찾아왔다. 아무런 이상 없이 해결되었다는 말이다. 미숙은 며칠 후에 대구 형사가 연락할 거라고 미리 정보를 전해주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자 대구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피해자가 친척의 가난함을 들어주려고 천성께 돈을 요구하려고 행동했다는 진술서를 받았다고 한다. 원고가 속죄하고 있으니 왕림하시어 합의를 보라는 연락이었다. 천성이 무고죄로 고발하였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 하고 물었다. 경찰관은 무고죄가 접수되어 있다고 한다. 천성은 합의해줄 수 없으니 감옥에서 반성하고 나오라고 전했다. 미숙은 그 일에 빠지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나서게 되었다. 합의금을 일천만 원을 청구하라고 미숙이가 권한다. 천성은 미숙의 말에 동의하겠다고 하고 조건을 달았다. 합의금이 작으면 무조건 무효라고 했다. 미숙은 자영에게 합의금 1천만 원을 요구하더라고 했다. 자영은 울면서 하소연하지만, 미숙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며 두 사람이 만나서 합의하라고 했다. 미숙의 친구들은 한자리에 모여서 친구를 구해보려고 애써보지만, 천성은 들어주지 않았다. 미숙으로부터 들어주지 말라는 간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숙은 자영이가 자주 그런 행동을 하였기에 버릇을 고쳐주려고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천성은 미숙을 만날 때마다 갈증을 해소해 주려고 성적인 욕구를 넘치도록 베풀었다. 미숙은 신혼살림을 시작한 기분이라고 한다. 천성은 멀리 있는 한 여인을 건성으로 사랑하지만, 미숙은 남편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미숙은 친구들 몰래 천성을 만나러 다닌다. 어려움이 많은 만큼 행복도 넘친다고 한다. 천성을 만나지 않았을 땐 얼굴이 찌그러진 상태로 살았다. 천성을 만나러 갈 때는 활짝 핀 꽃처럼 입초리가 양 귀에 걸리듯 미소가 이어진다. 미숙은 천성을 만나기만 해도 오르가슴을 느낄 정도로 온몸이 흥분한다. 마음껏 즐긴 후에는 환한 미소가 밝은 햇볕처럼 느껴진다.


   자영은 합의를 이루지 못하여 감호소에서 보호받는다. 자영의 남편이 친구들 앞에서 합의를 도와 달라고 간청한다. 자영의 친구들은 애써보겠다며 의논하여 미숙에게 위임했다. 미숙은 자영에게 친구를 대표하여 면회를 갔다. 자영은 애절한 목소리로 미숙에게 묻는다. 남편이 간청했는데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걱정이다. 미숙이 직접 만나서 합의를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미숙은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하고 자영에게 물었다. 자영은 모두를 미숙에게 맡기겠다고 한다. 남자끼리 만나며 해결이 어렵겠지만, 여자와 만나면 쉽게 합의될 것이라고 했다. 자영은 어서 합의를 요구하지만, 금시 초면인 사람에게 합의를 이루어 내는 일이 상당히 어렵더라고 했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처럼 미숙은 이틀이 멀다고 부산으로 오가면서 합의를 하는 척했다. 합의하기 위해 부산에 찾아간 미숙은 이불 밑에서 천성과 속삭인다. 미숙은 합의를 연출하면서 성적인 욕구를 해결한다. 미숙은 자영의 남편에게 노력하면 쉽게 풀릴 수 있겠다는 희망적인 말을 전했다. 미숙은 합의한다는 명목으로 부산에 자주 들렀다. 부산에 올 때마다 육체적 쾌락에 탐닉하여 파멸하더라도 인생을 즐겼다. 아무리 줄다리기하면서 간청했지만, 삶은 고구마에 이도 안 들어가더라고 자영의 남편에게 말했다. 자영의 남편은 미숙에게 반드시 좋은 결과를 이루어 내리라 믿는다고 한다. 천성은 미숙과 데이트하면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하고 물었다. 미숙은 천성에게 합의금을 7백으로 결정하라고 한다. 일단 7백에 합의하고 나중에 자영에게 2백을 돌려주면 좋겠다고 미숙이 연출한다. 천성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미숙의 의견과 일치하였다.


   천성은 대구로 가서 미숙과 자영의 남편을 만났다. 자영의 남편은 합의금을 묻는다. 천성은 십 원도 깎아 줄 수 없다고 했다. 곁에서 듣고 있던 미숙이 수없이 찾아가서 용서를 빌 때 7백에 합의해 주겠다고 했잖아요? 하면서 서로 화해시킨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는 몰라도 지나치게 물고 늘어져 억지로 합의에 동의한다고 했다. 미숙의 지나친 애절함에 못 이겨 합의금을 낮추어 결정했다. 자영이 남편은 합의에 동의해주어 고맙다며 고개 숙였다. 천성은 합의금 7백만 원을 받고 합의서에 서명하였다. 천성은 2백만 원을 미숙에게 주었는데 기어이 받지 않는다. 천성은 미숙이 덕분에 7백이란 돈을 받았지만, 혼자 가지기에 부담스러웠다. 미숙에게 절반씩 나누어 가지자고 했는데도 기어이 싫다고 한다. 미숙은 돈보다는 천성을 가지려는 마음이 굳어있었다. 천성은 미숙을 만날 때마다 크고 작은 선물로 기분을 돋웠다. 미숙을 만날 때마다 앓는 소리가 목청을 다듬었지만, 천성은 온몸에 땀을 흘렸다. 미숙은 더 이상의 행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며 좋아한다. 미숙은 사흘이 멀다 하고 찾아와 즐기며 성적 욕구를 해소하지만, 천성은 미숙의 명에 움직였다. 천성은 가끔 만날 때는 좋아서 늘 그리워했는데 미숙의 지나친 애욕에 성의 노예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지나친 요구는 이별을 의미하는데 미숙은 완전히 빠져있기 때문에 알 리가 없다. 미숙은 천성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영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자영이 전화하면 좋게 받아주라고 미숙이 암시해준다. 그러던 어느 날 자영이 천성에게 전화하더니 지난 일에 미안하다며 깍듯이 사과한다. 자영은 감호소에서 풀려나 집에서 반성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게다가 합의에 동의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와 지난 일에 속죄한다는 전화였다. 천성은 수일이 지난 후 대구로 가서 미숙을 불렀다. 천성과 미숙이 만나면 반드시 스파크가 일어났다. 오늘도 예외가 아니었다. 축 늘어진 미숙은 또다시 연출에 머리를 쓴다. 천성이 두 사람을 불렀다고 하고 자영을 부르라고 한다. 천성이 자영과 어색한 자리에서 머물고 있을 때 미숙이가 나타났다. 세 사람은 커피숍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미숙은 합의를 붙인다. 자영에게 얼마의 금액을 돌려주는 예의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고 하면서 아양을 뜬다. 천성은 미숙의 끈질긴 권유로 합의금도 낮추어 주었는데 그날부터 지금까지 같은 말을 되풀이하였다고 투덜거렸다. 미숙에게 전화하면 반가워해야 하는데 인사말마저 듣지 않았다. 오로지 자영의 합의금 낮춰주라는 말만 끝없이 반복하였다. 미숙은 자영과 어떤 사이인데 천성의 말을 무시하고 합의금에만 매달리는지 궁금했다. 미숙은 천성에게 시종일관 합의금 깎아달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두 사람 관계는 완전히 무시한다고 중얼거렸다. 천성은 미숙에게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라고 했다.


   자영은 말없이 앉아있지만, 미숙은 각종 언행으로 아양을 떨면서 돈을 되돌려 받으려고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천성은 말씨름을 수없이 하고 나서야 백만 원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미숙은 주려면 화끈하게 이백을 주지 남자가 쩨쩨하게 논다고 놀려댄다. 천성은 미숙의 말을 무시하고 자영에게 백만 원짜리 수표를 전해주었다. 자영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미숙의 덕분에 다수의 돈을 돌려받아 흐뭇한 마음 감출 수 없다고 한다. 천성은 자영에게 전화비와 수고비로 조로 미숙에게 얼마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영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미숙 아주머니처럼 끈질기게 매달려 괴롭히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고 자영이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미숙은 빙그레 웃으며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결과가 어디 있는가 한다. 미숙은 멀리까지 와서 호의를 베푸는데 자영이가 오찬이나 대접하는 것이 어떠한가 하였다. 자영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하면서 좋은 곳으로 안내하겠다며 앞선다. 카페에서 나오면서 천성은 미숙 앞에서 자영의 손을 잡았다. 자영도 천성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자영은 친구 미숙이 앞에서 손을 잡아주니 사랑인가? 우정인가 헷갈려서 망설였다. 뒤따라오던 미숙은 혼자서 미소를 짓는다. 미숙은 우정과 사랑이 무르익으니 일거양득이라는 멋진 연출 했다고 좋아한다.


   미숙은 핸들을 잡고 호수를 지나 산기슭으로 달려가지만, 천성은 자영과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미담을 나누었다. 자영의 손이 따뜻한 것을 보니 정이 많은 사람 같아요. 하면서 자영을 아주 좋은 쪽으로 평하였다. 자영은 부끄러운 듯 고개 숙이고 양손으로 천성의 손을 꼭 잡는다. 듣고 있던 미숙은 손을 잡는 것은 좋으나 마음은 잡지 마세요. 하면서 질투의 말을 던진다. 운전하는 미숙은 질투심이 올라오지만, 참지 않을 수 없었다. 산속의 멋진 가든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미숙과 자영은 나란히 앉았지만, 천성은 두 여인 앞에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미숙은 화에를 붙였다고 흐뭇해 하지만, 자영은 연정을 느껴야 하는지 우정으로 받아주어야 하는지 헷갈리는 모습이다. 천성은 오랜만에 염소 불고기를 맛보고 이렇게 맛좋은 고기는 연인과 함께 먹어야 하는데 하면서 중얼거렸다. 말이 끝나자 자영은 애인 데리고 오시면 대접할게요. 천성은 말만 들어도 고맙습니다만, 애인이 없어 다시 못 오겠네요? 하였다. 미숙은 보기엔 애인이 있어 보이는데 그 말이 진심입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둘 중 한 사람이 나를 선택해 주신다면 이런 만남은 자주 이루어질 것인데 하면서 또 혼자서 중얼거렸다. 자영은 주인에게 매실주를 주문한다. 천성은 술잔을 받고 미숙에게 잔을 권했는데 한마디로 거절하였다. 아! 운전 때문에 그렇구나, 맞아 음주운전은 있을 수 없다. 하고는 자영에게 술을 권했다. 미숙은 음료수로 잔을 채우고 세 사람은 잔을 높이 들었다. 잔을 부딪치면서 만나자! 친해지자! 마시자! 구호를 외치며 우애를 돋웠다.


   천성은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하여 자영을 보아하니 아주 멋진 여인이라고 칭찬하였다. 자영이 천성을 사랑할 수 있다면 백만 원을 더 돌려주고 싶은데 오늘은 돈이 없다고 했다. 자영은 두 말도 하지 않고 내 말에 무조건 따르겠다고 한다. 자영은 돈을 받기 위한 말인지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의아하였다. 천성은 자영에게 사랑과 돈을 바꾸었으면 참 좋겠다고 했다. 미숙은 곁에서 그 말이 진심이라면 손뼉 치고 싶다고 하면서 웃는다. 속마음은 질투심에 불이 붙었지만, 말 못하는 미숙은 폭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영은 말만 들어도 고맙다며 눈물을 걸신 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서 큰절한다. 천성은 자영에게 빈 잔을 전해주고는 사랑을 가득 부었다. 그리고는 군대 생활 때 부르던 노래를 불렀다. 지상의 멋쟁이는 자영이라며 예쁜 여인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세 명은 기분이 좋아지자 술병이 쌓였다. 온갖 눈짓으로 가자고 표하던 미숙은 자영이 화장실 가고 없을 때 지나친 친절은 독약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충고한다. 미숙은 참는다고 속이 썩어 내리는 것 같다고 한다. 천성은 미숙을 믿는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자영은 미숙에게 그렇게 술을 잘 마시는 친구가 운전 때문에 자제하니 보기가 좋지 않다고 한다. 돈은 자영이 줄 테니 대리운전 부르라고 큰소리친다. 천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취하기 전에 집으로 가자고 했다. 미숙은 좋다고 함께 일어났다. 자영은 더 취하고 싶지만, 상대가 없어 함께 일어났다. 자영이 계산하고 나가면서 넘어질 듯 허우적거린다. 미숙이 자영을 바라볼 때 천성은 다가가 허리를 안고 차에까지 부축하였다. 미숙은 둘러가면서 자영이 집 앞에서 차를 세웠다. 자영이 집 앞 골목엔 쥐죽은 듯 고요하였다. 자영을 내려주면서 천성을 역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든 자영이 다시 차에 올라앉으면서 함께 가자고 한다. 자영은 돈을 받기 위함이 아닌 것 같았다. 여인의 질투가 아주 심했다. 미숙은 즐기지 못한다고 화가 났지만,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자영은 천성을 보내고 미숙과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기어이 같이 가려고 한다. 자영은 두 사람의 사이를 알 리가 없었다. 미숙은 동대구 역에서 내리라고 한다. 천성은 역에서 두 여인을 남겨놓은 채 승용차에서 내렸다. 역에는 고향으로 가는 사람 연인을 만나러 가는 사람 별의별 사람들이 대기실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울산으로 둘러가는 차 밀양으로 가는 열차 다양하지만, 밀양으로 가는 열차를 선택했다. 천성은 손을 흔들고 부산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며칠이 지나자 미숙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천성은 미숙에게 그동안 많이 바쁜 시간으로 보냈구나? 지루하도록 기다렸다고 했다. 미숙은 자영과 늘 함께 있으니 연락할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전에는 그런 일 없었는데 요즘은 왜 함께하는 거야? 아마도 눈치를 챘는지 자영이가 천성을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다면서 미숙은 투덜거린다. 미숙은 천성에게 엄포를 놓는다. 미숙을 따돌리고 두 사람이 사랑한다면 절대로 그냥 두지 않겠다고 목에 힘주어 말한다. 미숙은 남편 같은 천성을 절대로 빼앗기지 않겠다는 뜻으로 미리 경고한다. 천성은 충분히 알아들었으니 마음에 여유를 가지라고 했다. 미숙은 불안하고 믿지 못하겠다고 내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만나러 오겠다고 한다. 미숙이 왜 저토록 화를 낼까? 생각하고 있을 때 자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기로 음성이 들리기 시작하자 첫마디부터 칭찬으로 시작하여 끝날 때까지 듣기 좋은 말만 한다. 천성은 자영에게 사랑한다면 받은 돈 5백만 원도 되돌려 줄 수 있다고 했다. 자영은 몸과 마음을 바쳐 사랑하겠다고 한다. 나는 자영에게 다시 말한다. 돈을 떠나서 그렇게 사랑해줄 자영이라면 낮이면 날마다 아내처럼 대하겠다고 했다. 자영은 남편 빌미로 생각해 보자고 한다. 자영은 내일이라도 만나자는 뜻으로 말하지만, 천성은 시간이 있을 때 연락하겠다고 했다. 자영은 내일이라도 시간이 되면 대구로 오라는 간절한 부탁이다. 천성은 자영의 마음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 자영이가 돈을 회수하려고 저렇게 친절을 베푸는 것인지 순진해 보여 진심으로 애정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마도 돈에 매이는 것으로 보였다. 자영의 오빠가 거지처럼 사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을 보아 사랑엔 의미가 없어 보였다. 천성은 3일 후에 자영에게 만나자고 했다. 자영은 좋아하면서 부산으로 오겠다고 한다. 사흘 후 역에서 기다리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이튿날 부산역에서 미숙을 만났다. 미숙을 태우고 송도에 전망이 아주 좋은 모텔로 바로 달렸다. 천성은 미숙에게 며칠 전에는 무슨 오해를 그렇게 하는가 하고 기분을 상하게 했다. 미숙은 빙그레 웃기만 하고 아무런 말이 없었다. 천성이 미숙에게 이해의 달인이지만, 성적으로는 철근을 녹이는 용광로를 가졌다고 과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숙이가 좋아하는 바나나를 입에 넣어주면서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송도 해변의 어느 모텔에 들렀다.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방에는 창문이 닫혀 있어도 철썩이는 파도 소리는 연이어 들려온다. 오늘도 예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좋아 죽겠다고 앓는 소리는 방안을 꽉 메운다. 바람둥이인 천성은 이런 소리를 듣기 위해 여인을 만났다고 한다. 미숙을 만나면 반드시 등에 땀을 흘리는 이유가 서로 사랑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천성은 어떤 여인을 만나더라도 사타구니에 정액을 묻혀야 직성이 풀리는 바람둥이다. 흐뭇한 느낌으로 미소를 보이면서 미숙과 함께 자갈마당 해변으로 내려왔다. 파도 소리 밟으며 해안선으로 밀려오고 밀려가는 물결을 바라본다. 미숙은 육지와 맞닿는 소리가 지형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는 것도 알았다. 미숙은 천성의 팔짱을 꼭 껴안고 짠물을 밟으며 걷는다. 천성은 미숙에게 저 신비로운 자연의 움직임을 보라고 했다. 자연의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들려오는 해변에 선 미숙은 감동이라며 좋아한다. 미숙은 대구에서 둘러싸인 도심지만 보다가 천성을 알고부터 새로 태어난 기분이라도 한다. 바다도 보고 사랑도 하니 금상첨화라고 아주 좋아한다. 잡아먹을 듯이 우렁찬 파도가 몽돌을 안고 밀려왔다가 파도가 죽으면서 힘없이 사라진다. 미숙은 물거품이 사라지는 소리를 처음 들어보니 아주 신기한 듯 넋을 잃고 바라본다. 밀렸다가 당기기를 반복하는 파도는 몽돌을 안고 바다로 끌고 간다. 몽돌끼리 스킨십을 강요시키는 파도를 바라보는 미숙의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한참을 바라보더니 둥글게 달아버린 몽돌에 감동하여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에 감탄한다. 미숙은 바다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서 신비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미숙은 바다의 여운을 버리지 못하여 부산에 살고 싶어 한다. 이렇게 좋은 부산을 떠나야 하는 이 순간을 매우 아쉬워한다. 자주 올 것을 약속하고 태종대 자갈마당을 멀리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항시 시간에 쫓기는 미숙은 천성에게 점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미숙은 천성 없이는 도저히 살아가지 못하겠다며 이 마음 변치 않기를 신신부탁을 하였다. 천성은 충분히 알아들었으니 마음 놓고 오가자고 했다. 천성은 미숙에게 심각하게 상담할 말이 있다고 했다. 미숙은 자영이 이야기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좋다는 뜻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천성은 자영에 대하여 의논하고자 한다고 했는데 미숙은 놀란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워서 가까이 다가왔다. 자영이가 자꾸 만나자고 하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하고 미숙에게 물었다. 미숙은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된다. 만약에 만나기만 하면 머리가 터지도록 싸움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숙을 차에 태우고 부산역으로 갈 때 시종일관 미숙을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미숙은 남편이 식물인간처럼 누워있으니 없는 것보다 못하다며 투덜거렸다. 미숙이 살아있는 한 자영은 만나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대구의 자택으로 돌아간 미숙은 신경이 예민하여 밤이 깊어도 잠이 오지 않아 뜬 눈으로 날이 밝았다.


   천성은 친구에게 전화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여인을 소개해줄 테니 다른 약속 하지 말라고 했다. 아홉 시 반이 되었는데 호주머니 전화기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 들여다보니 자영이 전화였다. 어디냐고 물었는데 부산역이라고 한다. 천성은 부산역으로 가서 자영을 태우고 을숙도 쪽으로 달렸다. 자영이 전화기에서 계속 벨이 울린다. 누구냐고 물었는데 미숙이라고 한다. 전화를 받을 수가 없다고 한다. 다시 문자가 왔다. 천성은 무심코 무슨 문자고 하니 미숙이가 어디냐고 묻는 문자라고 한다. 천성의 낌새가 좋지 않아 틀림없이 미숙이가 부산으로 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천성은 자영을 태우고 모텔로 가려고 저곳이 어떤가 하고 물었다. 자영은 처음만나 모텔로 바로 간다니 이상하다며 다음에 가자고 한다. 천성은 자영이 몰래 친구 차경에게 전화해 달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친구가 즉시 전화했다. 천성은 운전하면서 한 손으로 전화기에서 드리는 소리를 약하게 하고 통화하였다. 뭐 오늘이냐? 계약서 적어놓아라 있다가 갈게 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친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듣고만 있었다. 천성은 자영이 앞에서 멋진 연출로 빠져나게 되었다. 천성은 자영에게 모처럼 왔는데 어쩌나 아주 중요한 계약이 있다고 하였다. 모처럼 왔는데 친구를 불러줄 테니 천성이 올 때까지 함께 있으라고 했다. 자영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혼자 있으면 안 되겠나? 친구와 있어도 되는가 하고 묻는다. 친구가 믿을만하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그때 미숙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얼른 문자메시지로 회의 중이라고 보냈다. 천성은 차경에게 전화하여 차를 가지고 송도해수욕장으로 오라고 했다. 알았다고 하더니 즉시 달려왔다. 차경과 자영은 서로 반갑다며 인사하지만, 천성은 자리를 떴다.


   천성은 미숙에게 전화하였다. 회의가 끝났으니 말해보라고 했다. 미숙은 느낌이 이상하다며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고 한다. 그래 잘했다고 했다. 자영이 아무런 연락이 없던데 왜 그러나 하면서 능청을 떨고는 통화를 끝냈다. 역시 내 느낌은 적중했다고 하면서 사전에 작전이 없었더라면 들통이 났을 거로 생각하니 아찔한 순간이다. 자영과 함께 있는 친구에게 문자를 넣었다. 암남공원에서 놀아라. 나는 해운대 백사장에 있다고 했다. 친구는 내가 바람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미숙은 열두 시에 부산역에 도착이라고 하며 반드시 만나야 한다고 신신당부한다. 사내다운 거짓말로 순간을 모면하면서 미숙이가 오는데 당연히 나가야지 하였다. 부산역 주차장에서 한 시간에 가깝도록 기다렸다. 도착시각에 맞추어 역 출구로 올랐다. 미숙은 손을 흔들면서 미소를 보인다. 왜 갑자기 나타나는가 하고 물었다. 미숙은 자영이가 반드시 천성과 같이 있으리라 믿었는데 그것도 아니면 자영은 왜 전화를 받지 않았는지 의아해했다. 천성은 미숙을 차에 태우고 해운대 백사장으로 갔다. 천성이 미숙에게 예전에 대통령이 묵었던 비치 호텔로 갈까? 아니면 광안리 파라다이스 호텔로 갈까 하고 물었다. 미숙은 오늘은 진이 빠져 아무것도 싫다고 한다. 만사가 귀찮다는 사람이 왜 왔는가 하고 물었다. 여우 같은 계집애가 어디서 무엇 하기에 전화를 받지 않았는지 답답하여 숨이 터져 죽는 줄 알았다고 한다. 아니 천성 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있는가 하고 물었다. 미숙은 그러니까 그 계집애와 같이 있는 줄 알고 이토록 급하게 달려왔다며 답답했던 심정을 털어놓는다. 천성은 미숙이 있는 한 절대 그런 일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달랬다.


   천성은 미숙을 데리고 광안리 파라다이스 호텔커피숍에 들렀다. 커피숍의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조금은 음울하면서도 의자마다 비추는 작은 전구는 다양한 색깔로 반긴다. 미숙은 광안대교를 바라보면서 광활한 바다 위에 세워진 다리가 장엄해 보인다고 한다. 시월의 마지막 주말에는 저곳에서 불꽃축제가 한 시간 동안 펼쳐진다고 했다. 그때 여기서 함께 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했다. 일억 원짜리 불꽃이 터지는 순간에는 함성과 함께 펼쳐지는 밤하늘에 피는 꽃이 장관이라고 했다. 호텔에서 나와 해변으로 걸을 때 미숙은 팔짱을 꼭 끼고 발걸음에 보폭을 맞춘다. 파도 소리는 미숙의 마음을 달래주듯 모래 위로 올라오다 사라지기를 반복하였다. 오가는 파도를 바라보던 미숙은 지나친 애욕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숙은 천성의 팔짱을 끼고 파도 소리 헤치며 거닐다가 광활한 수평선을 바라본다. 속이 후련하다며 본인의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바다에는 은빛 윤슬이 눈을 부시게 하지만, 미숙은 한순간 사라지는 시간을 잡을 수 없어 안타까워한다. 천성이 미숙의 아픈 마음을 알 것 같다며 위로의 말을 했다. 천성은 미숙에게 카페에서 술이나 한잔하자고 했다. 미숙이 오늘은 무엇이라도 먹으면 속이 터질 것 같다고 하면서 다 알았으니 집으로 가겠다고 한다. 천성이 여기까지 왔으면 사타구니에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768건 37 페이지
소설·수필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688 김영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80 0 04-04
687 시몬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83 0 04-01
686 장 진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84 0 03-27
685 손계 차영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75 0 03-27
684 베르사유의장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75 0 03-26
683 그린Choo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90 0 03-21
682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50 0 03-12
681 김상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18 0 03-10
680 BBA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76 0 03-06
679 구식석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99 0 03-05
678 손계 차영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35 0 03-03
677 10년노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61 0 03-01
676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59 0 02-27
675 백원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75 0 02-26
674
동행 댓글+ 1
크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72 0 02-22
673 김영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47 0 02-21
672 여정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14 0 02-19
671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70 0 02-18
670 백원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80 0 02-15
669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20 0 02-08
668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68 0 02-07
667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37 0 02-06
666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39 0 02-05
665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74 0 02-04
664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67 0 02-02
663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1 0 01-31
열람중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99 0 01-30
661 손계 차영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17 0 01-28
660 솔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 0 01-27
659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21 0 01-25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