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問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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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問喪)
나는 늘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침이 되면 정자의 문을 열어 놓고 거미줄을 걷거나 일 주일 내내 새들이 천정을 날아다니며 마루바닥에 싸 놓은 새똥을 치운다거나 둥지를 짓다 흩어져 헝클어진 새집 부스러기들을 싸리빗자루로 쓸어낸다. 관람객들을 위한 행위일 수도 있는데 사실은 주말에 이틀이라도 대문을 열어 놓으면 날짐승이나 족제비들이 많은 관람객들 때문에 덜 들어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만큼 사람냄새가 독하기 때문일거라 생각을 하면 미소가 번지지만 문을 개방해 놓으면 폐단이 하나 있기는 하다. 유람객들의 쓰레기 투척이다. 요즘은 예전에 비하면 훨씬 그 의식이 높아졌지만 예전에는 쓰레기 때문에 폐문을 결정하기도 했다. 갖가지 쓰레기로 몸살을 앓은 셈이다. 요즈음은 주말에 개방을 하는 것을 아는지 어제는 20여명이 한꺼번에 대청마루에 올라 사진을 찍고 난간을 건너고 하는 것이 위험해 보여 몇 번을 조심하시라고 당부하는 그런 일도 있었다. 외국인들도 많이 와서 400년 정자의 정취를 느끼며 우리문화유적에 대한 손가락 추켜 올림을 보면 지난 4월의 도지정문화재를 성취한 보람이 크다고 자위하며 웃음 짓는다.
문중의 회장이 전화가 왔다. 준혁이가 어제 죽었다 카네. 어저께 시장에서 만났는데 자세도 꼿꼿하고 죽음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데 그 것 참 찬바람이 부니 낙엽처럼 사람들이 여기저기 맥 없이 떨어지네. 감흥도 슬픔도 없는 건조한 언어가 한참을 허공에 흩어지고 있었다. 이따 저녁에 문상이나 같이가세 하니 예 그러지요 하고 끊었다.
준혁이는 정자할배의 자손이었다. 말 없이 문사에 참여하고 있는 듯 없는 듯 모든일을 물밑에서 물 흐르듯 물꼬를 잡아주는 역할을 잘 했다. 타 종친들이 자기 생각에 돌아 입에 침을 튀길 때 조용히 중심을 잡아 종회를 이끌어 가는 조용한 리더쉽의 소유자여서 함부로 종인들이 덤비지도 못했다. 늘 분위기가 평온한 그런 인품이었다. 門會의 거목이 또 하나 쓰러졌다.
수 많은 조화들이 늘어 서 있고 저 많은 조화들이 고인의 저승길에 무슨 도움이 될까하는 실 없는 생각이 수그릴 때쯤 빈소의 젊은 상주와 아내가 곡을 유도하며 우리도 고인을 그리는 넋두리 같은 곡을 한다. 분향재배를 하고 문상을 하니 산 사람은 산 얼굴이고 영정에 빙긋이 웃는 얼굴도 산 사람이더라. 자네 아베가 참 문중을 위해 무던히도 고생하다 돌아 가셨네 하니 머뭇거리던 상주가 지난 번 인터넷 족보 수단접수 때 참여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한다. 아니야 이 시대에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나. 다른 성씨들이 유행처럼 다 하니 우리도 거름지고 장에 가듯이 한거지. 관심 없으면 안 해도 되. 그져 이렇게 얘기하고 일어선다.
전립선 때문에 평소에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 고인은 온 몸으로 전이 된 암송이를 소홀이 다루다 갑자기 불귀의 객이 된 것이었다. 테이블에서 두런두런 돌아가는 얘기를 보면 참 잘 죽었다가 의외로 대세였다. 80중반이니 살만큼 살았고 중병에 목숨을 부지하더라도 남의 손 의지하고 사는 삶이 무슨 삶의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 중론이었다. 하기사 스위스인가 어떤 나라에는 자기의 죽을 날자를 미리 택일하여 신청하는 개인의 죽을 권리를 보장하는 나라도 있다하니 우리나라도 하루속히 도입해야한다는 보건복지부 장관 같은 준엄한 목소리도 있었다. 어찌보면 우리네 노년이라는 것은 풍전등화도 아니고 이제는 조석의 일도 가늠치 못 하는 천애의 벼랑에 매달려 하늘만 바라보며 매일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치자 갑자기 인생사 허무로움이 구름처럼 피어 올랐다.
싸늘한 저녁 이른 가을 밤 주차장에는 나를 싣고 갈 애마가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참 기분 좋은 가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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