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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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사랑이 푸짐하다면 자식의 사랑은 인색하기 그지 없습니다.
부모가 아침 일찍 차린 밥상을 받은 학원 가는 아이는 한살을 더 먹더니 밥풀 묻은 제 밥그릇과 수저를 설거지통에 담습니다.
그걸 보는 부모의 마음은 참 기껍습니다.
그 작은 마음에 부모는 가진 모든 것을 내어 놓는가 봅니다.
이미 세월은 부모의 몸이 병들고 지치면 자식에게 의지하는 대신에 요양원에 맡겨져 더 이상은 희망 없는 마지막을 기다리는 때입니다.
자식은 이제 더 이상 보험도 노후대책도 아닙니다.
자식은 이렇게 바뀌어들 가는데 부모는 예나 지금이나 바뀐게 없습니다.
말로 주고 되로도 못받는 밑지는 장사를 하면서도 부모는 자식을 위해 더 퍼주지 못해 괴로워합니다.
자식들은 따뜻한 말 한마디로도 부모의 마음을 모두 살 수 있는데도 박정하게도 그리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식처럼 이것 해달라 저것 달라 하지 않을 것인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부모가 된 것을 후회하거나 그 자식을 결코 원망하지 않습니다.
몸이 진흙에 빠질지라도 자식의 앞길에 행복만이 가득하길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부모 자식간의 전생의 인연을 빚 준 자와 빚쟁이의 관계,혹은 주인과 종의 관계라 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마저도 맞지 않는 말입니다.
빚을 준 사람은 원금은 물론 이자를 되돌려 받으면서도 은혜를 베풀었다는 교만의 마음을 품기 쉽지만 부모는 이유없이 사랑으로 모든 걸 다 주니까요.
자식을 낳아 길러 본 부모들은 모두 성인의 마음을 가졌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타인을 위해 부모의 마음을 가졌던 성인들의 마음이나 자식을 위한 부모의 마음이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 자식을 위해서라면 죽음마저 달게 받아들이겠지요.
슬픈 것은 자식은 부모 살아생전에는 부모의 마음을 알 길이 없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마저도 부모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자식은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자신의 과거이자 자신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이런 운명을 슬퍼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그러했듯이 그건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인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댓글목록
베르사유의장미님의 댓글

사랑 잘 보고 가옵니다 감사드리옵니다
님께서도 달콤한 사랑처럼 솟아나는 행복처럼 유머처럼 신나게 . . . 잘 보내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