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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제비꽃 무덤에 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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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앙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82회 작성일 16-02-2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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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엽편소설]           제비꽃 무덤에 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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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앙보르

 

 

  며칠을 두고 시커먼 장대비가 그칠 줄을 몰랐다. 집안을 번져가는

쿰쿰한 냄새와 지천에 널부러진 지렁이들이 지긋지긋했다. 나는 누

이와 함께 닳고닳은 만화책을 한번 더 넘기거나 지글거리는 텔레비

전을 보다가, 아버지가 홱 채널을 돌리시면 툴툴거리며 오목으로

넘어갔다. 누이는 오목에 귀신이어서 번번이 나를 이겼고 그럴때면

나는 복수의 일념으로 장기판을 꺼내어 졸부터 깔아놓고 누이를 채

근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이 사방이 물천지여서 놀러갈

곳도, 우리집에 마실을 오는 사람도 없었다.

 

 그 이튿날 장대비가 미안해서인지 기세를 잠시 죽인 사이 마을에

커다란 변고가 생겼다. 텔레비전에서 10.26 어쩌구,라는 제목과

더불어 무섭게 생긴 대머리 아저씨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알렸고,

답답한 양복차림의 어른들이 수상하게 생긴 장소에서 교장

선생님 같은 표정으로 서있어서 그날이 똑똑히 기억난다. 그때 아

버지는 감격에 겨운 듯 얼굴이 불콰해져서 혹시 아버지가 애국가를

4절까지 속으로 따라부르지 않았나싶을 정도였다. 그날이 그래서

더 똑똑이 확실하게 자세히도 기억이 난다. 그런 경건한 시간을 결

코 벗어나지 않는 우리 아버지가 동네를 들썩인 소리에 화라락 방

문을 박차고 뛰어나간 때문이었다.

 

 계집애의 시체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나와 동갑인 J는 한순간 이

쪽 사람을 포기하고 저쪽으로 넘어갔다. 육하원칙을 대충 빌리자면

, 언제 어디서, 무엇을 - 무엇을? 요건 빼고, 어떻게 왜 J가 사라

졌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장대비는 알고 있었을까? 내 생각에는

장대비도 물을 바가지채 퍼붓는 고역으로 인해 거의 실성한 상태라

서 몰랐다고 본다.

 

 이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심성이 곧고 착해서 어머니는 나와 누이

가 작은 실수라도 저지르면, J를 들먹이며 좀 본받으라는 말을 집

요하게 했다. 그래서 그건 반대로 나와 누이가 J 를 탐탁치않게 여긴다는

것과 같았다. 누이는 비겁하게도 가끔 J 를 따랐지만- J 가 딸기나

빨간 앵두를 눈앞에서 흔들 경우에 특히-  나는 거의 말을 섞은 적

이 없었다. 오다가다 J 가 나를 보고 헤에,거리면 나는 흥, 내품고

는 턱을 치켜든 채 그 앞을 지나치거나 J 가 쭈그린 채 아기자기 매만지던
제비꽃만 보이면 가차없이 짓밟고 도망치기도 했다. 

 

 자세한 내막은 어른들이 감추어서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여차저차

한 사정으로 잠시 부모님과 J 의 언니가 집을 비웠다가 늦게 집에

돌아오니 J 가 보이지 않았고, 당연히 가족들은 물에 빠진 새앙쥐

꼴을 하고 인근 일천 걸음 정도의 산야를 헤매었으나 찾지 못했다.

지경을 더 넓히려 해도 사방 물바다라서 어떤게 길이고 어떤게 도

랑이고 어떤게 냇강인지 서로 버무려져서 불가능했다.

 

 J 의 언니가 물 위에서 요동을 치는 단화 한짝을 건져올리고 울부

짖었다고 했다. 요행하게도 쓰러진 나무가지에 걸려 오도가도 못하

는 단화는 주인의 씁쓸한 비극을 암시할 따름이었다.

 

 비가 그치고 볕이 슬금슬금 기어들자 마른땅이 아주 조금씩 늘어

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볕이 본격적으로 생얼굴을 내밀던

날, 넋을 건진다는 굿거리가 마을을 뒤흔들었다. 어머니의 만류에

도 불구하고 나는 쏜살같이 그곳으로 뛰어가 어른들 틈새에 머리를

박았고, 누이 또한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리나케 쫒아와서는 내

곁에 선 채 내 손을 꼭 붙잡았다.

 

 엄마, 무당은 사기꾼들이지.


그런 말 하면 부정탄단다.

 

집을 탈출하기 전 나는 엄마가 제일 흡족해 하는 모션, 그러니까

엄마의 바로 눈앞에서 교과서를 탁 펼쳐놓고서는 몇 분 열심히 하

는 척 하다가 엄마를 올려다보면, 에구 내새끼 좋아죽는 그 표정을

보자마자 슬그머니 물었던 것이다.

 

진짜 넋이 건져져?


시체도 못 건졌대며.


인석아 말 조심하렴. 얼마나 속이 아프면 그런 굿까지 하겠니.
 
엄마는 한숨을 포옥 내쉬면서 눈가를 손으로 부볐다.

 

학교에서 굿거리는 미신이라고 했어.


 누이조차 눈을 반짝이며 엄마 품에 기어들었다.


아버지와 같이 가면 안될까?


느그 아버지랑 동네 어른들은 지금도 아일 찾고 있어.


그럼 굿을 하면 진짜로 몸이 두웅 떠오르는거야?


정말이지. 그런데 아이들이 가면 위험하단다.

 

왜? 왜? 나와 누이가 동시에 작은 비명을 외쳤다.

 

물에 빠진 넋은 대신 누군가를 그 자리에 집어넣어야 하늘로 올라

간댄다. 그러니 물가에 갈 생각 엄두도 내지마렴.

 

 누이는 잔뜩 엄마 품에서 오그라들어 어깨를 가볍게 떨었다. 나

또한 겁이 났지만 사내자식이어서 속으로만 떨었다. 그러나 고백하

건대 나는 꽤 오랫동안 그 진통에 시달려야 했다. 왜냐면, 내가 J

를 대놓고 싫어했으므로, 누군가를 제 자리에 채워넣어야 한다면

그건 내가 일순위이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어른들은 허리춤에 걸린 나와 누이의 머리를 밀쳐내다가 결국 지

쳤는지 관람을 허용했다. 다행히 아버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무당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이어서 무당과

눈을 마주쳤을 때, 지금도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눈에서 파란 불

빛, 도깨비 불빛 같은 거, 아니면 잡풀 더미 속의 꽃뱀의 사악한 눈초리와 마주쳤을 때,

나를 휘감던 그 눈빛이라니 맙소사.

나는 눈을 질끈 감았지만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집요하게

좀 더 가까이 무당 쪽으로 나아갔다.

 

 귀를 멍멍하게 만들던 징소리, 장고소리와 무당의 넋두리라니. 정

신이 혼미해지면서 하늘과 땅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때 바지춤에

오줌까지 지렸던가 모르겠다. 이어서 송경이 귀를 할퀴었고 곧추선

신장대는 하늘을 향해 얌전히 있더니만 별안간 요동을 쳤다. 신장

대를 붙잡은 어른이 신장대와 함께 부르르 떨다가 함께 장대춤을

추었다. 그 와중에서도 나는 혼미한 정신 끝을 놓지 않았다. 누이

가 내 팔을 잡아끌며 언니, 언니, 훌쩍였지만 나는 누이의 손을 풀

어 뒤로 밀어냈다.

 

 무당의 하얀 옷깃이 너울너울 신바람을 탔다. 덩실 더덩실 덩실 징징징징징.

 쌀됫박이 준비되자 그 안에 하얀 쌀을 쟁여넣고 무당은 무명포로 됫박을 칭칭 감았다.

지켜보는 사람들의 목울대에서는 꿀꺽 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저게 뭐대여. 머리카락이 나온대. 사람들이 한편에서 웅성거리자 그 웅성거림은 금새 번져갔다.

참말로 머리칼이 나온대여? 그렇다는구먼. 어머 징혀라. 머리칼이 안나오면 여그가 혼빠진 곳이 아니지.

무당이 영험이 모자라서 그럴 수도 있고. 영감 부정타는 얘기 하지마소 귀가 몇개인데...

 여기저기서 웅성웅성이 늘어나며 나중에는 침 삼키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제서야 누이가 도망쳤다는 걸 알았지만, 뭐 상관 없었다.

 

 무당의 넋두리가 거푸 이어지고, J 의 엄마가 울부짖고 하늘을 몇차례 할퀴다가 끝내 실성했다.

바람 맛을 맛본 신장대는 때를 만났다는 듯이 미꾸라지처럼 더욱 요동을 쳤다. 용왕이 등장하고 이어서

염라대왕 무슨 장수, 극락천도, 명부주인님네들 내가 모르는 용어들이 사방에 메아리쳤다.

됫박은 명주포를 낚시줄 삼아 물에 풍덩 잠겼다. 이어서 이미 흘러간 앞쪽 비슷한 소리, 비명,

넋두리가 다시 두판 세판 이어지고 섞이어서 머리가 지끈해졌다.

무당의 이마에 줄줄 흘러내리는 땀은 내 주먹 안에서 같이 고여가서 질퍽였다.

 

 사람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분명히 보았다. 눈을 비볐지만 내 눈은 정상이었고,

내 눈앞에서 열린 됫박 위에 까맣고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 몇 올이 선명했다.

내가 전율했던가, 아니면 사람들의 전율이 나를 휘감았던가, 그건 분명치 않다.

잠시 정신을 차린 J 의 엄마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다시 뒤로 넘어갔다.

신장대는 기다렸다는 듯이 점점 대나무의 본성을 찾아 얌전해졌고 징소리도 잦아들었다.

무당은 진이 빠진 얼굴 위에 자신만만한 영험을 보태어 잔잔한 뒤풀이를 이어갔다.

이제 넋을 건졌으니 본굿이 J 의 집에서 계속될 거라고 사람들이 묻지도 않은 보충설명을 곁들였다.

 

 며칠 후 넋건짐 굿거리장단에서 열걸음 정도 되는 곳에서 J 의 몸이 떠올랐고,

어른들은 서둘러 혀를 끌끌차고 눈시울을 붉히며 뒷산에 매장을 했다.

나는 본굿을 보지 않았고 J 의 주인 떠난 몸을 보지도 않았고 정말이지 이제 몸서리칠만한 그 무엇도 외면했다.

누이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이 J 가 몸을 담근 그 자리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건 동네의 모든 아이들, 심지어 개나 닭조차 마찬가지였다. 다만 꽤 오랫동안 J 의 빛 죽은 단화 한짝은 나를 따라다녔다.

 한짝은 어디로 갔을까 궁금했으나 그건 천만다행이라고 여겼다.

어린 나이였지만 먼길의 고달픔 정도는 텔레비전이나 동화책 혹은 만화책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훗날 굿은 미신이지만 모듬살이 굿이 전부 사이비는 아니다,란 요상한 이설을 풀었지만

무슨 말인지 어린 내가 어찌 알랴. 다만, 길이 그것도 똑같은 길이 매일 변한다면

누가 초등학교 4학년에 불과한 나를 믿을까나. 그러니까 그날 이후 내 길은 이전의 길이 아니었다.

늘 오가던 길이 갈때와 올때가 달랐고, 걸어갈 때와 뛰어갈 때 또한 폭과 깊이와 넓이가 시시각각 변했다.

아마도 그때, 어느날 무심코 누이의 손을 붙잡고 J 의 무덤가를 지나다가 보았던 진보라 제비꽃,

그 황홀함에 잠시 넋을 잃었을 때 나는 아득해져서 내 머리 위에서 흔들리던 신장대가 잠시 보였다가 사라지고

 J 의 헤에 하던 얼굴이 내게서 멀어져갈 때, 그제서야 나는 용서를 받았다는 심정으로 감격에 겨워서

그때 J 의 이름을 처음으로 아주 조그맣게 부르면서 쌀한톨만한 눈물이 아니 눈물을 흘렸던가 안흘렸던가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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