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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가 말하다(62회)ㅡㅡㅡ하필이면 식목일에 낙산사가 타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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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몽진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23회 작성일 16-02-1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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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식목일에

낙산사가 불에 타고 있습니다.

                                        계영    이상근

 

 이산의 본래 이름은 오봉산입니다.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창건하면서 이름이 바뀌었지요. 원명은 보타락가산(普陀落迦山). 이를 줄여서 낙산이라 부른 것입니다. 마치 설악산에서 동쪽으로 뚝 떨어져 나간 산의 형상이지요. 이에 유래하여 낙산이라고 부른다는 오해를 살만도 한 지형입니다.

아시아에는 대부분이 불교국가라서인지 관음보살이 살고 있다고 믿는 곳을 성지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곳도 관음보살의 8대 성지가운데 하나로 명성이 있는 곳이지요. 관음보살은 티베트의 포탈라산, 남인도의 포탈라, 스리랑카의 포탈람항인 포탈라, 일본 기이반도의 보타락과 닛코. 중국 저장 성의 보타산과 열하성의 보타락사, 그리고 한국의 보타락가산 등 여덟 곳의 성지에서만 살면서 속세에 불쌍한 중생의 고통을 구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의상대에서 북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관음굴이 있더군요. 바다를 향한 이 암굴 속에 관음보살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내려왔습니다. 신라의 의상대사가 굴 앞의 작은 암석 위에 앉아 관음보살을 친히 보고자 보름여를 기도했지요. 관음보살은 끝내 나타나지 않자 뜻을 이루지 못한 의상이 정성과 도의 부족함을 비관하여 바다에 몸을 던졌다고 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한 마리의 용이 나타나 물에 빠진 대사를 구하였다 하더군요. 용으로 변신해 의상을 구한 관음보살입니다. 관음보살은 수정으로 된 염주와 여의주를 의상 대사에게 내어주면서 저 굴 위의 둔덕에 두 그루의 대나무가 있다. 나의 정수리에 해당되는 곳이니 그 곳에 절을 지은 후 이 염주를 안치하고 불상을 모시어라하면서 사라졌습니다. 관음보살의 뜻에 따라 이곳에 절을 지으니 바로 지금의 낙산사입니다.

그런 낙산사가 지금 불에 타고 있습니다. 하필이면 식목일입니다. TV에서는 시시각각 불에 타들어 가는 과정을 생중계하고 있더군요. 수시로 비치는 영상을 보면서 가슴 아파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우리 민족의 역사와 혼이 담긴 문화재가 한줌의 재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잔불처리만 잘 했어도 낙산사까지는 피해를 보지 않을 화재였지요.

낙산사는 우리 부부가 설악산을 거쳐 신혼여행을 다녀온 인연으로 추억이 남다른 곳입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아내도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신혼여행의 추억이 수 천근의 동종과 함께 불길 속에서 녹아버리고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때도 4월이었어요. 설악산을 거쳐 내려온 봄은 온통 벚꽃과 푸른 솔로 장관을 이루고 있더군요. 특히 의상대에서 경내로 들어서는 바닷가의 흐드러진 벚꽃 길은 지금도 잊지 못하는 환상의 길이었습니다. 의상대 앞의 푸른 물결, 의상대 지붕 위로 가지를 늘어뜨린 관음송의 고고한 자태는 천하일품이었지요. 웅장하면서도 날렵한 자태의 원통보전과 동종, 그 당시 인상 깊게 보았던 수많은 문화재와 유적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며칠 밤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군요. 그처럼 육중하고 단단했던 동종이 순식간에 쇳물이 되어 물엿처럼 녹아내릴 수가 있을까요.

원통보전 앞의 석탑은 탑신부의 양식이 독특해 고려시대 이후 석탑예술의 또 하나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7층 석탑입니다. 화염에 휩싸인 모습은 마치 화형식을 당하는 처참함보다는 차라리 소신공양을 하는 생불의 숭고함으로 보였으니 어찌하면 좋을까요.

낙산사는 참으로 수난도 많은 절입니다. 특히 화재에 약한 특징이 있더군요. 고려 때 몽고의 난으로 전소한 것을 세조 때 학열대사가 지금의 규모로 낙산사의 사세를 키웠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은 낙산사를 또 다시 폐허로 만들었지요. 조선 후기에 들어 일부는 중건을 하면서 낙산사는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6.25는 그런 낙산사를 다시 허물어 버렸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어수선 하던 시절에 원통보전과 범종각은 당시 이 지역 사령관인 이형근 장군이 복원했습니다. 이형근 장군은 알려진 대로 우리 군의 [군번 1]으로 상징적 존재이기도 하지요. 상원사와 월정사의 소각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 김백일 장군은 명령직후 전사했으나 낙산사를 복원한 이 장군은 대장까지 진급하고 예편한 헁운아가 되었으니 시사하는 바가 크군요. 이렇듯 모든 건물이 대부분 최근에 건축된 전각들인데 이 낙산사가 또다시 불에 타고 있으니 이 기구함을 글로 표현하기도 민망스럽습니다.

낙산사를 창건한 의상 대사는 관음보살이 살고 있다고 믿고 있는 관음굴을 성지라 여겼지요. 이를 기념하여 굴 위에 법당을 지어 올리니 이곳이 홍련 암입니다. 낙산사는 전소했으나 다행히 낙산사의 상징인 홍련 암은 피해를 면했습니다. 일설에는 관음보살이 의상 대사를 구할 때 바다에서 붉은 연꽃을 타고 솟아올랐다 하여 이를 기려서 홍련암이라 불렀다고 하지요. 또 다른 설은 의상이 관음보살을 참배할 때 한 마리 파랑새(관음보살의 화신)가 나타났는데 그 파랑새가 굴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의상이 7일간 기도를 올리자 갑자기 붉은 연꽃이 떠오르고 관음보살이 나타났다고 해서 홍련암이라 했다고도 합니다.

신혼여행 때 일이었습니다. 홍련암 아래의 관음굴에 들러 장엄한 파도소리를 듣고 가파른 절벽을 올라오니 아내는 숨이 찬다며 난간에 주저앉더군요. 앉아 바라보니 처마 끝이 날렵하게 치올린 홍련

암이 깎아지른 절벽을 품에 안고 있었습니다. 유명한 경봉스님이 썼다는 현판이 수려한 필체와 함께 다가오더군요.

홍련암 안으로 들어가면 여느 암자와는 사뭇 다른 특이한 점을 볼 수 있습니다. 법당 마루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더군요. 가로, 세로 약 10cm 정도의 작은 구멍이지요. 마침 암자에 스님이 계셔 부탁해 보았습니다. 연세 지긋한 스님은 웃으면서 젊은 신혼부부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법당에 들어와 네모난 구멍에 귀를 대고 들어보라고 하더군요. 시원한 바람이 비릿한 바다 냄새를 안고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암자 아래 약 100여 자까지 바닷물이 밀려와 출렁거렸습니다. 파도소리까지 은은하게 들려 그 소리가 매우 아름다웠지요. 이 네모진 구멍이 바로 해조음(海潮音)을 듣기위해 만들어 놓은 통로라는 것입니다. 꿈속에서도 해조음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영혼이 맑아지면 그는 부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하였지요. 즉 깨달음을 얻는다 하는 것입니다. 지나쳐 흘려보낸 바닷소리에도 이처럼 깊고 오묘한 이치가 있었음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원래 관음(觀音)이라하는 것은 음, 즉 소리에 집중한다는 뜻이지요. 관음사상의 경전인 능엄경과 법화경에서는 4가지 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묘음(妙音), 관음(觀音), 범음(梵音), 그리고 해조음(海潮音)이지요. 해조음은 바닷가에서나 들을 수 있는 소리입니다. “노스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으셨나요?” 하고 물으니 한없이 맑고 깊은 눈가에 인자한 웃음을 머금은 스님은 합장을 하더군요. “나무관세음 보살하면서 답을 대신했습니다. 저 모습 그대로가 부처인 것을 구태여 깨달음을 물어 무엇 하겠습니까. 조금 전에 관음굴 입구에서 들은 웅장하고 거친 파도소리가 홍련암에서 들으니 이처럼 아늑하고 묘한 해조음으로 변하더군요. 과연 부처의 깨우침이 있음에도 어리석은 내가 모르고 있었는가 봅니다.

관음보살은 이렇듯 명승지만을 골라 기거하므로 사람들은 이곳을 성지로 여겼습니다. 국내에도 3대 관음성지가 있지요. 서해안 강화군의 보문사와 남해안의 금산 보리암, 그리고 이곳 동해안의 낙산 홍련암입니다. 여기에 여수시 돌산읍에 있는 향일암을 더하여 관음4대 성지, 또는 관음 4대 기도처로 부르기도 하더군요. 공교롭게도 이 4대 도량은 3면의 바닷가에 위치한 점이 매우 특이하고 흥미롭습니다. 관음신앙에서 말하는 네 가지 소리 중 해조음(海潮音), 즉 바다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조수가 흐르는 소리를 듣기위해 바닷가에 위치한 것이라고 하였지요. 관음도량을 해변에 지은 이유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홍련암에서 내려오면 관동 8경중의 으뜸인 의상대가 있지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담한 정자였습니다. 만해 한용운은 산과 바다를 양쪽에 끼고 형성된 천하절승의 해변에 누각 하나가 없어 의상이 수도하던 이곳에 누각을 지어 대양을 오가는 배들을 보며 때로는 갈매기나 산새가 무리지어 날아오르는 모습을 즐기는 자리라고 하면서 의상대를 세웠다고 하더군요. 이 자리는 의상이 관음보살을 친견하고자 7일 동안 기도를 하여 끝내는 백의관음상을 보았다는 기도처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정동진의 해돋이가 유명세를 타지만 전에는 의상대에 올라 일출을 보는 것이 선비들의 소망이기도 했지요. 이곳이 얼마나 장관이었으면 송강 정철도 관동별곡에서 이렇게 노래를 하였을까요?

상운이 끼었는지

육룡이 떠받히는지

바다에 떠오를 때는

만국이 눈부시고

중천에 떠오르니

호발을 헤일 수 있겠구나.

아무래도 저 엷은 구름이

해를 가릴까 걱정이다.

의상대 옆에 높이 솟아 의연히 서있는 관음송은 또 하나의 명물입니다. 관음보살을 지키며 의상대에 기대어 오가는 이들의 여독을 풀어주던 관음송이지요.

이 관음송은 의상과 당대 쌍벽을 이룬 원효대사에 대한 사연을 안고 있더군요. [삼국유사]에 보면 원효대사가 낙산사에 가서 관음보살을 친견하려 하였다. 낙산 남쪽 근처에 이르니 흰옷 입은 한 여인이 논에서 벼를 베고 있었다. 원효가 농 삼아 그 벼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여인도 장난삼아 흉년이 들어 벼가 열매를 맺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원효가 길을 재촉해 가는데 다리 밑에서 한 여인이 서답(월경대)을 빨고 있었다. 원효가 먹을 물을 달라고 청하니 여인은 서답을 빨던 물을 퍼 주었다. 원효는 말없이 그 더러운 물을 버리고 냇물을 다시 떠 마셨다. 그 때 들 가운데에 있던 소나무 위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휴제호화상아하고 외치고는 사라져 숨어 버렸다. 파랑새가 날아간 소나무 밑에는 짚신 한 짝만이 남아 있었다. 원효가 낙산사에 이르러 보니 관음상 자리 밑에는 소나무 아래서 보았던 나머지 짚신 한 짝이 놓여 있었다. 이때서야 원효대사는 그 여인이 관음보살의 현신이었음을 알았다. 원효가 관음굴에 들어가 관음의 진신을 친견하고자 했으나 풍랑이 크게 일어나 굴에 들어가지 못하고 낙산을 떠나갔다고 전하였습니다. 이때의 냇물을 냉천이라 하고 소나무를 사람들은 관음송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원효대사를 비하하는 듯한 내용이라서 뒷맛이 개운치가 않습니다. 6두품 출신의 원효에 비하여 의상은 왕족출신이었으니 그러할 만도 하지요. 그 관음송이 화재로 그을리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문화재가 사라지려 하는군요. 후세들은 원효와 의상의 사연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이십육 년 전의 신혼여행 때 찍은 빛바랜 사진들을 찾아 펼쳐 보았습니다. 낙산사 신앙의 중심지인 홍련암이 불길을 면한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할 것 같군요. 의상대사의 깨우침에서 비롯하여 수많은 선남선녀들이 사랑을 익히던 의상대이지요. 시인 묵객들과 나그네들이 한 번쯤은 지나쳤을 법한 곳, 다행히 홍련 암과 의상대가 남아 있어 오가는 이들에게 첩첩이 쌓인 사연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00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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