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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3/5] 블랙 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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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앙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23회 작성일 16-02-29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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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3/5]  블랙 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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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앙보르

 

3.

 

 다음날 새벽, 해밀튼은 소파에서 사라졌다.

빈 술병 하나가 풀죽은 과일 안주 옆에서 쓸쓸하게 뒹글었다. 담요는 단정하게

개어져 있어서 우는 조금 안심하고 새벽기도를 드리려고 뒤편 예배당에 들어섰다.

한국과 달리 여기는 새벽예배가 없어 홀가분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새벽기도까지

두리뭉실하고 싶지는 않아서 매일 그렇게 했다.

 기도가 흘러나오지 않는 새벽녘의 답답함이라니. 해밀튼과 미리암의 얼굴만 떠올랐다.

 

 어젯밤, 술을 사가지고 오자 해밀튼은 자기가 손수 뚜껑을 따고는 한모금 주욱 들이켰다.

손등으로 입을 쓰윽 문대고 해밀튼은 그 커다란 눈을 부라리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술맛 좋군. 흐리멍텅한 정신은 돌아오게 만들고, 말짱한 정신은 헤작거리는게 술이지 암.

자네 목사들은 아마 이런건 모를꺼야. 술맛을 모르는 치들이 인생이 저럽네 세상이 이럽네

하는 게 싫어. 자네 같은 사람들은 책에만 파묻히고 바이블만 읽어서 대체 무얼 알겠나.

가방끈은 짧지만 나는 말야, 우리 선조들처럼 목화를 따면서 대지를 배웠고, 사탕수수를

가꾸며 바람을 배웠고, 옥수수와 오렌지를 따면서 개네들과 대화를 하지. 아프리카의 조상

'함'에 대해서는 나도 들었어. 그 망할놈의 할배 덕택에 우리 조상들이 고생을 꽤 했으니까.

하지만 우리 함의 종자들은 강하지. 우리는 죽지 않고 어딜 가도 살아남았거든. 링컨 할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유를 찾았을거야. 우리는 용감했으며 총과 활을 잘 쏘았고,

칼을 잘 썼으니까 말이지. 내 굵은 허벅지와 탄탄한 이 팔뚝을 보라구. 힘에 있어서도 우리는

결코 처지는 사람들이 아냐. 나는 지금 백인을 미워하는 얘길 하는게 아냐. 다만 우리가

그런 사람이란 걸 알아줬으면 해. 우리 조상들이 바보라서 양보다 못한 노예로 살았던것도 아냐.

순박한 탓이지 암. 등에 박히는 채찍을 맞아본 적이 있나. 아마 없을거야. 갓뎀 지저스라는

사내는 왜 사서 그런 고생을 했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어릴 때, 사복음서를 읽다가, 세상에 원 이런

텍도 안되는 이야기가 있다니 하구선 팽개쳤지. 그 양반이 자기 나라 백성이나 걱정하지

왜 우리 흑인들까지 걱정을 하고 대신 채찍을 맞냐 이거야. 그리고 거 양반이 왜 내 마누라를

대신해서 귀싸대기를 맞고 채찔질을 당해야 했느냔 거야. 착하게 살아온 내 마누라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죄인이라고 판단을 하고 자기를 믿지 않으면, 빌어먹을, 고우 투 헬, 이라

하냐 이거야. 이해할 수 있겠어?

 

 우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아니 해밀튼의 귀를 붙잡고 떠들고픈 얘기는 많았으나 잠자코 들어주었다.

이런 사단은 처음이었으며, 그동안 정신 없이 공부를 하고 목회에 전념하다보니 미처 헤아리지 못한

세상살이가 있구나, 싶은 이유도 있었다. 아니지, 샌프란시스코 번듯한 예배당에서는 사방에 수없이 박힌

창문처럼 얼마나 애환들이 많았으며 풍문이 많았으며 말이 많았으며 눈물 젖은 고해성서가 많았던가. 


저자거리 남자라면 몰라도 적어도 고만고만한 인생사에 대해서는 나름 당신보다 많이 알아. 

그러면서도 줄곧 말대꾸를 하지 않은 건 총이 무서워서가 아니고 행여 잘못되면 그 여파가 보나마나

집에서 안절부절, 오 지저스, 두손을 비비고 있을 미리암이 걱정돼서였다. 


해밀튼은 다시 술을 한모금 들이키더니 캬야 거구의 몸을 떨더니만 턱으로 세탁실을

가리켰다. 아내를 풀어주라는 뜻이었다. 우의 아내는 문을 열자마자 자뭇 침착을 되찾은 모습으로

해밀튼에게 슬몃 미소를 머금은 후 주방으로 달려가 과일안주를 내왔다. 해밀튼은 우의 아내에게도

턱으로 소파를 가리켰으나, 우는 해밀튼의 눈치를 살피며 안방으로 아내를 밀어넣었다.

 

" 아이구, 내가 긴장된다야. 그래 해밀튼이 가만히 있어? "


" 으응, 뜻밖에도 얌전히 있더라. 그렇잖아. 아내와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 "


" 그러니 내가 뭐래. 너 옛날에 신학대학 간다고 할때 내가 팔잡고 말렸잖아. 너 같은 녀석은

오히려 법대를 가서 약자를 도와야 한다고 말이지. 목회자들이 많은데 준법정신에 투철한

법관은 드물다면서... 기억나니? "


" 악마의 유혹을 내가 어찌 잊으랴, 크흐흐. 넌 인마, 네가 가지 왜 나를 강요하고 그랬어? "


" 알잖냐, 내 실력. 법대는 고사하고 전문대나 갈까 부모님들 걱정하던 거. "


" 야 언제 시간이 흘러서 우리가 이런 중년이 되었니. 세월이 유수다, 그렇지? "


" 그러게 말이다. 그나저나 중생들 구제하느라 욕 많이 본다야. "


" 욕은 무슨, 밥 값은 하고 살아야지. "


" 몇 명이나 모여? 촌동네가 휑해서 내 보기에 얼추  열 명? "


" 우리 가족 빼고 열 댓? 물론 미리암 보태고 해밀튼은 재끼고. "


" 어디서들 오는거야? 양키들 아니 네이티브? "


" 으응, 말이 서툴러서 첨엔 애 많이 먹었어. 마침 가까운데 공군부대가 있어. 거기서

조종사와 군속 가족 두 팀하고, 나머진 근처 오렌지 농장주, 실리콘밸리에서 몇 오구 그래. 군인 중에는

한국 오산비행장하고 군산비행장에서 팬텀을 몰던 조종사도 한 분 있어. 한국말 잘해서 내가 도움을

많이 받았지. "


" 다행이군. 그런데 미안하지만 생활은 어찌 돼? "


" 왜, 헌금 두둑이 하고 가려구?  돈 워리. 집사람이 다행히 유치원 교사를 얻어 큰 어려움은 없어.

큰 교회 빼고서는 목회자라 해도 직업들이 있어. 나도 평일에는 이것저것 파트타임을 해. "


" 헌금은 무슨. 두둑하면 내가 좀 빼앗아가려고 했거든. 너 꼬셔서 라스베이가스 한번 가볼려구.

참 박사 언제 끝나는데? 올 가을학기에 마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


" 응, 이제 한학기 남았어. 에구, 공부만 하면 뭐하니, 해밀튼 말마따나... 목회학이 아니라 심리학을

했어야 맞지 않았나 싶어. 나두 타락하는 중이다. 그까짓 학위, 종이 나부랭이에 탐닉한다는 건

예수가 내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도 되니까. 네가 예전에 삼지창으로 찔러댈 땐 몰랐는데 지금은 그래. "


" 어이 우목사님, 나도 한때 악마 꼬붕 노릇 후회하고 있어. 심란한데 자꾸 삼지창 하지 마라. 크크.

나는 그래. 물에 빠진 사람 건지기 위해 학위가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구조원 자격증이 있다면 뭐 

더 나을꺼라 생각해. 아울러 의과대학처럼 각각 정해진 과정을 거친 후 전문가가 된다면야 나쁠 필요는 

없겠지. 물론 나는 언젠가 네 말처럼, 베드로 어부학교를 수석졸업한 베드로를 좋아하고, 또 갈릴리

사막대학을 졸업한 세례요한을 존경해. 잘 알다시피 신앙은 버렸지만 두분을 좋아하는 건 여전해.

하나 더, 뽕나무 영농학교를 졸업한 삭개오도 한 인물이지. "


" 어, 내가 그런 얘기도 한 적이 있었나? 후훗. 너랑 참 많이도 싸웠지. 중학교 때부텀 시작해서

대학 들어가서도 싸우다가 대체 언제 전투를 그쳤는지 기억나니? "


" 글쎄다 휴전이지 종전은 아니니 안심하지 마라. 후후후. "

 

차는 어느덧 고속도로를 숨가쁘게 질주하는 중이었다. 나는 해밀튼에게 다시 빠져들어갔다.

 

 술은 긴장을 풀어줄 뿐 아니라 목적지마저 헷갈리게 만든다. 해밀튼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지껄이다가 중얼거리다 갓뎀 지저스를 연거푸 뱉어냈다. 그러다가 망할놈의 여편네

떠들고서는 다시 술을 한모금 들이켜고 커다란 손바닥으로 입을 닦고 말을 이어갔다,라기 보다

횡설수설에 들어섰다. 그러나 우는 잠자코 들어주었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자신에게 하는

얘기라 여기고 귀를 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탁자 위 섬뜩한 권총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리볼버 권총은 차가운 금속성을 누런 불빛으로 감추며 본능을 억제하고 있었다. 군대에서 만져본

콜트 권총보다 총신이 길었다. 탄창에는 반짝거리는 구리 총알이 들어있겠지. 공이가 뇌관을 때리면

탄알이 순식간에 튀어나와 누군가를 향해 돌격하면 상대방은 쓰러지겠지. 무섭지 않았다. 그러나

만일 아내와 후에 돌아올 아이들을 향해 발사된다면 그건 견딜 수 없었다.

 

 해밀튼의 눈꺼플이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꾸벅꾸벅 졸고있나 싶으면 머리를 흔들면서 고개를 쳐들고

붉어진 눈으로 우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다시 꾸벅꾸벅 졸았다. 다시 눈을 부릅뜬 해밀튼은 술병을

거꾸로 쳐든채 입에 대고 탈탈 털었다. 너희들 갓뎀 지저스, 내 마누라 돌려놔. 너희들이 신경쓰지

않아도 내 마누라는 이미 착한 양이야. 병원에서 나를 돌보던 그녀는 천사였단 말이지, 암. 천사가

무엇 때문에 또다시 나쁜양이 되고 갓뎀 지서스를 믿어야 천국에 가냔거야. 내 말 이해할 수 있어?

어이 목사 양반. 이해할 수 있어, 당신? 나는 말이지, 끄억, 병원에서 육 개월을 쫑쳤어. 그때 내

절망을 이해할 수 있겠어? 가진 건 쥐뿔 붕알 두 쪽이고 비지네스는 개판에다가, 더군다나 내가

차를 들이받아서 한마디로 상거지 신세였다구. 그때 내 어둠을 당신이 조금이라도 맛봤다면 좋겠군.

갓뎀 지저스. 아내는 예수라는 그 작자놈이 빛이요 생명이라고 떠벌리더군. 우리들 입술이 보통 두터운가.

하지만 입술이 두텁다고 우린 말도 안되는 얘기까지 두텁게 하진 않아.

 해밀튼은 빈병을 들어 입에 턴다는 게 빗나가서 뺨에 털더니 탁자에 조용히 내려놓고서는 대신 오렌지 한쪽을 씹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병 더 갖다바치고 싶었지만 안방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을 아내가 반대할 듯 싶어서,

그리고 상황으로 보건대 해밀튼 이 인간, 뽀대만 컷을 뿐 술에는 젬병이어서 조금 안심했다.

 

 해밀튼이 소파에 모로 기댄 채 코를 드르렁거리자 우의 아내가 담요를 가져와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말없이 우의 어깨에 두손을 얹은채 눈을 들여다보았다. 평안한 두 눈이 거기에 있었다. 우는 일어서서

조용히 아내를 안아주었다. 탁자 위를 치웠지만 권총은 반듯하게 한쪽에 놔두었다. 살의를 감춘 권총은

전의까지 상실한 것 같지는 않았다. 아득한 저 먼곳에서 히브리인을 추격하는 애굽 기병대의 말발굽 소리가

지축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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