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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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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앙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48회 작성일 16-03-04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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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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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앙보르


  중늙은이 장씨는 말을 할 적마다 빠진 이빨 사이로 말이 줄줄 새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야 했다. 배를 탄 지 꽤 오래란다. 그러나 마누라 집 나간 후

혼자서 두 딸을 키워냈다는 말에서는 말이 새지 않았다. 

 

 " 언젠가 엔진이 고장나서 무작정 떠내려 간 적이 있었지. 파도가 없어서

천만다행이었지. 하루를 무작정 떠내려 갔어. 비상 배터리까장 완전 방전이라

구조신호는 고사하고 갑판 아래 불꺼진 쪽방에서 라면조차 찾기 어렵더군. 새벽에

설핏 잠이 깨었나 싶었을 때 선장이 불러내더라고. 갑판으로 나오라고.

총을 든 군인 몇이 서있는데 우리 쪽 군인이 아냐. 우리 배 옆에는 시커먼

고속정이 부릉거리고 있었지. 그대로 끌려갔어야, 이북으로. 어린 두딸의 얼굴만

보이더라고. 처음에는 앞이 캄캄하더군. 그런데 딸의 얼굴을 떠올리다보니

힘이 불끈 나더라고.  "

 

7톤 연안어업 통발선의 위계질서는 심플하다. 선장, 갑판장 격인 앞잽이 장씨,

통발 투척 담당인 입감, 그리고 궂은 일은 도맡아야 하는 말단 화장이 전부다.

선장은 선장실은 고사하고 몸 하나 들어가면  꽉 차는 조타실에서 졸고 있다.

장씨 표류기를 귀 닳도록 들었다는 입감 미스터 최는 뱃고물 난간에 엉덩이를

걸친 채 한숨만 폭폭 쉬고 있다. 개노무 가시나. 처바른 돈이 얼만데 도망을 쳐?

막내 격인 그를 붙잡고 어젯밤에 최는 울다가 웃다가 떠들다가 잠이 들었다.

 

뱃놈 돈은 막장 돈이야. 귀하게 써. 선장의 말을 흘리더니 꼴 좋다. 장씨는 조금전

기관실 옆에 경사진 그물을 붙잡고 바다에 엉덩이를 깐 채 볼일을 보고 있는 최를

힐끔거리더니 그를 돌아보며 흉을 봤다.

 

지금 배는 표류 중이다. 그는

흔들거리지 않던 지난 날의 삶을 돌아본다. 흔들리지 않을 거라 믿었던 도시의 삶.

장씨의 빠져나간 이빨 사이로 말들이 다시 새어나온다. 그는 귀만 내어주고 눈은

먹구름이 몰려오는 수면을 응시한다. 장씨의 눈에는, 젊은 놈이 어쩌다가 배를

타게 되었누, 호기심이 연민과 동정과 더불어 빼곡하리라. 그는 결코 말하지 않으리라,

도시의 삶, 그 흔들리지 않고 평이롭던 삶에 대해서. 이를 악문다.

 

" 일주일은 줄창 사상 교육을 받았지. 대신 호텔에서 잘 재워주고 잘 먹이더라고.

고된 뱃놈에게는 딴 세상이었지. 나름 괜찮더라고. 관광버스에 태워서 이곳저곳

구경도 많이 시켜주더구만. 매일 고기 밥상에 고운 처자들이 옆에서 시중을 들었어.

깡쇠주만 마시다가 이북술맛을 보니 좋더군. 재미는 없지만 지들 선전하는 영화도

많이 보았어. 그땐 이런 주먹배 말고 조금 큰배라서 열두 명이 잽혀갔어. 그렇게

지내니까 얼굴들이 뽀애가지고 서로 마주보며 킬킬대기도 많이 했지. 한달 쯤

지나니까 본격적으로 작업 들어오더라구. 직업도 정해주고 새장가도 보내줄테니

그냥 살으라고. 그땐 몰랐어. 남한에서 이북에 대고 어부들 송환 협상이 돼가는 걸

알 수가 없었지. 그냥 눌러살고 싶은 마음도 들더라고. 그런데 어린 딸 둘이 그 모습이

떠올랐어. 견딜 수 없었던 건 사실 딸보다는 고깃국이야. 뱃놈이 생선을 먹고 비린똥을

싸야지 뭍에서 괴기 먹고 무른 똥 싸고 살려니 죽겠더라고. 우리 같이 흔들리면서

살아온 놈들은 뭍에서는 살지 못해. 자네가 무슨 연고로 흔들리는 삶을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생각하라구. 한번 길을 들이면 쉬이 떠나지 못하는 게 우리 뱃놈이거든. "

 

어느틈에 곁에 다가온 최가 역정을 내며 장씨 입을 막았다.

 

" 그렇게 떠들 바에야 왜 왔수? 북쪽에 걍 눌러 사시지. "

 

배는 하염없이 흘러가고 물결은 점점 거칠어졌다. 그는 먹구름이 집어삼킨 수평선, 어디메 쯤, 수평선을

눈대중하면서 흔들리지 않던 대도시의 삶을 떠올린다. 아내가 떠난다고 했을 때, 그는 한순간에 기울어진

도시에서 살 자신이 없어서 시집 한권을 제외하고 모든 소유물을 넘겨주고나서 떠나기로 했다. 

그때 아내가 원했다면 심장까지 꺼내주었으리라. 

다행히 아이들은 달에 한번 꼴로 원하면 만날 수 있다고 떠나던 아내는 선심을 썼다. 

무너진 둥지, 그래서 이후 나무 꼭대기에서 홀로 붙박힌 까치집이나 까마귀집을 보면 고개를 돌렸지. 

어둠이 깃들면 하나 둘 번져가는 주택가의 따스한 불빛들.

배낭에 평상복 몇 개와 시집 한권을 구겨넣고 어찌어찌 바닷가를 향해 떠났다.

 

그러다가 선주를

소개 받고 배에 오르겠다고 하자 선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바다는 결코 낭만이 아냐. 젊은 사람이

 잘 생각해. 뉴스에 안나와서 그렇지 다치고 죽는 사람도 많아. 얼굴 보니까 뭍에서만 산 양반인데 뱃일은

아무나 못해. 더군다나 안경잽이는 우린 받은 적이 없어. 그때 바짓가랭이라도 붙잡고 늘어지려고 했다.

말빨에 있어서 대한민국 최강이라는 미스터 최가 아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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