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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5/5] 블랙 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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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앙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46회 작성일 16-03-05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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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5/5]              블랙 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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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앙보르

 

5.

 

  기억이 난다. 구툼 마후 할루메. 하늘이여 저는 죄인입니다. 언제였던가. 아메리카 원주민의

신성한 기도문. 아마 저번에 방문했을 때 우에게서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사실 중학교 때부터 우를 부러워했다.

공인 범생이였지만 보통 범생이들과는 다른 유별난 구석이 우에게는 있었다.

불 꺼진 차가운 예배당. 혼자서 세상의 모든 질고를 짊어지기라도 한 비장한 모습으로 기도하던

우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그날 예배당 근처에서 여학생을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가 생전 처음

바람을 맞은 터라 애꿎은 돌멩이를 걷어차며 걷고 또 걸었는데 어느새 내 발은 예배당으로 오르는

 계단을 밟고 있었다. 돌아설까 하다가 이왕 온김에 진정으로 기도나 드리고 가자, 하고 예배당의

육중한 문을 조용히 밀었다. 우에 비해서 뭔가 내게 진정성이 모자라서 우가 진정으로 사모하는 예수

라는 분이 나를 외면하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들어서였다.

 

 예배당 안은 조용했으며 전등 대신에 손바닥만한 스테인드글래스를 통해 알록달록한 빛이 은은하게

우를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세웠으나 기도 소리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숙연해진 채 운동화를 벗을까말까 한참을 망설였다. 2층에는 학생부실이 따로 있어서 그리로

올라갈까 하다가 나는 조용히 물러나왔다. 우의 기도하는 그 모습, 압도 당해서 물러나왔다고 해야

맞겠다. 내게는 그때 우는 이미 중학생이 아니었다. 혼란스러웠다. 예수는 내게 아니 학생부 모두에게

'구찾두' 선생님이셨으니까. 구하라 주어질 것이요, 찾으라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라.

왜 내게는 열리지 않는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성령 강림은 어떻게 해야 체험할 수 있는가.

목사님에게 게걸음으로 다가가 물은 적이 있었다. 학생은 단순해야 돼. 공부 열심히 하고, 주일성수 잘하고,

나쁜짓 하지마. 그리고 오직 열심히 아멘으로 믿어야 돼. 그건 내가 찾는 답이 아니었다.

 

우는 알고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내 자존심,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우를 쪼아대고 공격하는 것. 그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같은 학교에 진학하면서

구체화됐다. 옆구리에 알지도 못하면서 니체나 쇼펜하우에르를 끼고 예배당을 들락거렸다.

배고픈 자에게 너희는 빵 대신 늘 맛있는 빵 만드는 법만 가르치는군.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빌어 공격하는 건

나로선 많이 봐준 편이었다.

 구약과 신약, 그 사이 그러니까 말라기에서 신약 사이에 400년의

공백기가 있어. 신앙은 거기 그 공백에서부터 출발하는 거 아닐까?

왜 교회들은 서로 땅따먹기에 열중하지? 어떤 건물을 봤어. 1층에도 교회, 2층에도 교회, 3층에도 교회.

그게 예수님이 말한 땅끝까지의 복음전파일까?  신사참배에 굴복한 조선 기독교와 히틀러에게 굴복한

독일 그 잘난 목회자들이 다를 게 뭐람. 왕은 하느님이 세우셨으니 무조건 굴복해라? 그가 설령 독재자라

할지라도? 

 

 구툼 마후 할룸메, 하늘이여 저를 용서하소서. 우는 그럴 때마다 묵묵히 들어주었다. 내가 혼자 떠들다가

재풀에 지치면, 야 우리 제과점에서 빵이나 먹고가자 배불러야 진리도 논하는 거 아닌가, 내 손을 끌고

제과점으로 들어갔다. 나는 말이지 성경에 의문을 갖지 않는 건 아냐, 아마 너보담 많을 수도 있어,

그래서 그걸 깨닫게 해주십사 기도에 매달리는지도 모르겠다야. 우상으로서의 기독교가 아니라 진리로서의

기독교, 거기 다가가고 싶은데 어렵다야.  어느날은 내 등을 떠밀고 변두리 삼류극장에 가기도 했고,

또 어느날은 내가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책을 빌려달라고 했다. 다행히 우는 책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한 적이 없었다. 후에 돌아보니 그게 우의 커다란 장점이었겠다. 나는 끼고만 다녔지

제대로 소화는 커녕 읽어내지도 못한 책을 우가 나름의 독법으로 소화한 다음에 내 앞에서 들먹였다면

아마 우정은 거기서 끝이 나지 않았을까. 아니 내가 우를 피해다녔을 것이다.

 

 우는 사실 뭘 강요하는 인간은 아니다. 내가 목회자가 되려는 우를 만류한 것은 진심이다. 우의 성격으로

볼 때, 무얼 보여주는 면에서는 탁월했지만, 반면에 무얼 어찌어찌 하라고 말하는 쪽에서는 젬병이니까.

예배를 몇 차례 빼먹고나면 우는 나를 불러내어 고작 한다는 소리가, 야 나두 너처럼 가끔 개기구 싶어 그런데

잘 안된다야, 하면서 웃거나, 신학대 진학을 앞두고 목회자 자격이 없다며 내게 고민을 토로하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 시청앞 카페에서 컵에 파란병이 새겨진 마키아토 커피를 한잔 마신 우는 후배와 악수를

하고 곧장 되돌아갔다. 후배가 부담을 느낄까봐 우만의 독특한 배려. 반면에 후배인 정은 신경을 안쓰는 눈치였다.

 

" 오늘 수요일이잖아. 우 목사님 저번에 찾아갔더니 없어서 기다리다 돌아온 적이 있었어요. 요양원에 갔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노인네들 말벗 돼주고 똥 닦아내고 시중든다고. 이곳 어르신들 알츠하이머 앓으시는 분들이

좀 많아야죠. 사모님이 저녁 먹고 가라고 붙잡는데 밀린 논문 땜에 그냥 왔어요. "

 

" 그래, 왼손이 하는 걸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아마 팔의 이격거리로 따지자면 우 목사 같은 사람도 없지. 대체

뭘 해도 표도 안내고 그냥 묵묵히. 어떤 때는 답답했지만 지금은 조금 이해할 것 같아. 나는 말이지. "

 

 후배 정이 뜻밖에도 금발머리 낸시라는 아가씨를 달고와서 카페에서는 그 정도로 얘기를 끝냈다.

 

낸시는 마침 집이 샌프란시스코라서 후배가 그 아가씨 집에 내려주고는 나를 태운 채 오클랜드 버클리로

향했다. 그리고는 대학촌이 한국과는 딴판이라며 변변한 식당 하나 없으니 자기가 머물고 있는 리치몬드로

가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후배는 조금 긴장한 얼굴로 내가 결론부터 말해주기를 바래는 눈치였지만

나는 머뭇거리고 있었다. 대체 요 친구를 어떻게 한국으로 끌고간담?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나도 모르게 해밀튼 얘기를 해주었다.

 

 해밀튼은 며칠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미리암이 우가 집에 없을 때 다녀갔다고 우의 아내가 알려주었단다.

한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야생딸기가 지천이었다. 검붉은 야생딸기를 가득 담긴 광주리를 현관에

내려놓은 미리암은 슬픈 얼굴로 더듬더듬 말을 했다.

 

나는 어떻게 되어도 괜찮아요. 하지만 가정사 때문에 목사님과 가족분들이 피해 받는 걸 원치 않아요.

목사님께 전해주세요. 저는 당분간 나타나지 않을 꺼예요. 해밀튼의 상처는 사실 깊어요. 나도 알게 된 지

얼마되지 않아요. 전에 이라크에서 지옥을 보았다고 말했어요. 저를 만나기 훨씬 전, 이라크에서 2년을

보냈대요. 거기서, 거기서 작전 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아무 죄도 없는 민간인과 어린이가

미군의 폭격으로 산산조각 나는 걸 보았다고. 곧잘 얘기를 해요. 지옥을 맛보지 않은 머저리들이 꼭 천국은

요란하게 떠드는 법이야, 라고요. 해밀튼은 병원 치료가 필요한 환자예요. 기도해주세요.

 

 미리암이 다녀간 지 사흘 뒤던가, 해밀튼은 속된 말로 머리 꼭지가 돌아버린 모습으로 또 쳐들어왔다. 물론

가슴팍에 한손을 깊숙이 파묻은 예전의 모습 그대로. 그때 우는 아내와 같이 막 기도를 끝낸 후였다. 기도를

마친 후 아내는 조용히 우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었다. 용기를 잃지 마세요. 나는 당신 편인 동시에 해밀튼과

미리암의 편이기도 해요. 성직자의 아내로 죽기를 원치 않아요. 하지만 당신의 아내로 죽는다면 결코 여한이

없어요. 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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