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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댄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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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앙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52회 작성일 16-03-06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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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댄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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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앙보르


 다른 동기들이 모두 돌아가서 나도 몸을 일으키려는 찰라, 김이 불콰해진

얼굴로 나를 의자에 다시 주저앉혔다.

 

" 웃긴다 이거지? 그래, 나는 믿어달라고 하소연 하는 거 아냐. 들어달라는 거야.

야 친구란 놈이 그래 오 분도 아까워 그냥 내빼려고 해? 니가 내 친구냐? "

 

녀석의 술주정이 시작되었다고 다시 일어서려는데 친구가 벌개진 눈을

내 얼굴에 가까이 붙였다.

 

" 제발 오 분이다, 오분! 오 분만 들어달래니깐. 맥주값은 내가 낼꺼야. "

 

나는 하는 수 없이 나무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맥주를 한모금 마신 후

3년은 묵었을 오징어다리를 씹다가 포기하고 의자 아래 탁 뱉어냈다.

 

" 얀마, 여신 투, 걔가 어젯밤 찾아왔었어. 너두 잘 알잖아. 그 계집애를 두고 너랑

나랑 아니지 모두가 껄떡거렸잖아. 정말이지 기분 묘하더라. 20년 조금 못되게

지났는데 그리고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어젯밤 꿈에 찾아왔더라고. "

 

그 말을 듣자마자 나 또한 잊고 살았던 S 의 얼굴이 고스란히 내 안에서

살아났다. S 는 한마디로 우리 과에서 여신이었다. 여신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워서는 아니었다. 여학생이 워낙 드문 공과대라서 우리들은 모두

달랑 두 명에 불과한 동기 여학생을 키가 큰 애는 여신 원, 키는 작지만

귀염성 붙임성이 좋은 애는 여신 투라고 불렀다.

 

" 겁이 덜컥 나더라. 좋아하긴 했지만 제대로 대쉬한 적이 없었으니까.

어쩌다 레포트나 대신 적어주고 가끔 쭈쭈바나 사고 그 정도였지 화끈하게

사귀자, 못하겠더라. 동기생들 눈치도 보이고, 또 잘난 애들이 워낙

많았으니 그럴 수 밖에. 나는 그때 여신 투가 너랑 사귀는 줄 알았거든.

캠퍼스 커플처럼 도서관 식당 강의실 심지어는 대학로 연극까지 보러

가는 너희 둘 모습을 가끔 보았으니까 말이지. 일찍 자포자기 했다고나

할까? 암튼 부럽기도 했지만 한쪽에서는 네가 죽기를 바랬다가, 반대쪽

에서는 여신 투가 죽거나 사라지기를 원했지.

물론 나중에 네가 정식으로 사귀는 애가 있다면서 단체 미팅을

시켜주겠노라 그래서 청파동 그 여자대학 앞으로 우르르 몰려갈 때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뭐 달라진 건 없었어. 여신 투 옆에는 항상 누군가

뒤따르는 시종들이 있었으니 말이지. 너도 투덜거린 적 있잖냐. 우린

우리끼리 여성을 대하는 취향을 서로들 잘 알았으니 말이야. 여신 투가

부디 과 선배 중에서 물찬제비 혹은 날라리로 소문난 개바지, 그래 개바지랑은 제발

엮이지 않기를 말야. 전혀 아닌데 자칭 지저분한 수염에 남루한 베레모 하나 쓰고서

체게바라 흉내를 내던, 그래 게바라는 오직 자기만 불렀지 선배가 안보이면

우린 모두 개바지라고 불렀잖아. '항상 승리할 수 있도록 - 언틸 빅토리 올웨이스- 를

지꺼리고 천식을 앓던 게바라를 흉내 내느라고 멀쩡한 양반이 콜록거리며

새내기 여자애들만 보면 군침부터 흘리던 선배.

기억나지? 우린 그 선배를 개바지라고 부르던거. 

여신 원이 한달만에 녀석한테 채였다는 풍문에 우린 환호하면서도 여신 투가

제발 개바지랑은 스치치 말기를. 그렇다고 대놓고 선배인

개바지를 여신 투 앞에서 대놓고 씹어대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했잖냐. "

 

 시계를 들여다보니 5분이 아니라 무려 20분을 넘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스레 여신 투와 관련된 얘기를 듣다보니 저간의 소식이 내가 더 궁금해졌다.

어디서 담배꽁초를 모아와서는 신문지에 털어놓고 침을 쓰윽 바른 다음에

둘둘 말고서 입에 물고는, 게바라는 시가를 사랑했지, 온갖 폼은 다 잡던

개바지 선배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 누가 그러더라. 좋아했던 사람은 설령 짝사랑일지라도 자기가 세상을

떠날 때 그 사람을 찾아온대더라. 사랑에 대한 답례를 하고 간다는 거지.

꿈을 깨고나니 진짜 기분 묘하더라? 혹시 네 꿈에도 나타났었냐? "

 

 나는 아니라고 조용히 머리를 저었다. 푸훗. 개꿈 집어치우라고 만류를 하려다가

얘기를 계속하라며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 정말이지 나는 걔랑 팔짱 끼고 둘이서만 강변을 거니는 게 소원이었다.

거닐다가 걔 허리를 내 팔로 안은 채 비잉 한 바퀴 왼쪽, 한 바퀴 오른쪽,

그 여파가 어땠는지 알아? 결혼 전에 말이지 줄창 강변에서 팔짱만 끼니까

지금 아내가 그러더라. '뭔가 숨기는 거 있지?' 라고. 나는 아무 대답도

안했어. 아내는 지금도 강변 팔짱이라면 아주 경기를 일으킨다야. 참

우리 졸업하고 군대 갔다오고 취직하고 몇 년은 동창회나 사석에서

가끔 만났잖아. 전부 결혼들 하고 외국으로 지방으로 흩어지면서 모임은

쪼개졌지만 말야. 혹시 그 후에 소식 들은 적 있었냐? 여신 원, 여신 투,

그 개바지 선배?  " 

 

 대답 대신에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여신 원이나 투나 남학생들

등쌀에 시달리면서도 잘 버텨주었고 성격도 좋았는데 말이지 그저 어디에선가

잘 살았으면. 누굴 잊었다고 해도 잊고 사는 건 아니구나. 나는 혀를 굴려

여신 원, 투, 개바지를 불러보았다. 마지막 그 선배와의 조우가 언제였던가.

그래, 3학년을 마치고 선배가 군대에 입대할 때였구나. 내게는 친형처럼 잘 대해주었지.

머리를 빡빡 민 그 선배는 시퍼런 미루나무 대열을 등 뒤편에 세운 채 말했다.

사랑했다, 잘들 지내라. 내게 '개바지'라고 명명해주어 고맙다, 그런 정신으로

군대 생활하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염려마라. 늬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나는

여신원이나 투 손가락 하나 대질 않았다, 내 누이라고 늘 여겼으니까,

자대 배치되면 그때 면회와라, 늠름한 개바지를 보여주마.

아쉽게도, 아니 미안하게도 나와 개바지 선배는 그게 마지막이었다. 물론

그 자리에는 김은 없었다. 나는 김에게 머뭇거리다 입을 닫았다.

 

그때 김이 내게 맥주잔을 부딪히며 다시 입을 열었다.

 

" 짝사랑? 햐아 고운 말, 이쁜 말이지. 내게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다.

설레는 가슴, 타들어가는 목, 여신 투를 제외하곤 모든 게 무기력이었다.

뒤에 여러 풍문들이 떠돌더라. 개바지랑 결혼해서 잘 산다는 둥, 항공사에

취직했다가 외국으로 떠났다는 둥, 을지로 지하상가에서 아담한 숍을

운영 중이라는 둥, 지방에서 중학교 교사로 잘 지낸다는 둥 별별 소문이

많았지만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더라.  

 야 너는 그래도 여신 투랑 친하게 지내서 뭣 좀 알고 있을 꺼 아냐?

아니라구? 너 내가 네 마누라한테 이를까봐 겁내는 거 아냐? 잘 생각해봐.

걔한테 꼭 무슨 일이 생겼을 것만 같아서 말이지. 요즘 젊은 여자들도

이런저런 암에 걸리거나 사고사도 많고 그러잖아. 나는 그러니까... "

 

빈 맥주잔을 들어서 김의 정수리를 눌러주고 나는 계산대에서

카드를 긁은 다음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 재수 없는 소리 작작하고 그만 일어서라, 가자. 그때는 그때로 그대로

간직했으면 좋겠다. 근거 없는 개꿈으로 한조각 추억마저 망가뜨릴 필요가

있을까? 내 생각에는 넌 잊었다고 여겼지만 너는 아직도 잊지를 못한거야.

며칠 지나봐. 여신 투가 또 꿈에 나타날 테니. 술값 내기하자.  분명히

나타날꺼야. 대신 나타나면 내 안부나 좀 전해주라. 주의할 것은, 이름은

부르지 말 것. 난 네가 잠꼬대하다가 네 아내에게 쫒겨나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거든... "

 

김을 만나면 무어라 말하지?  그날 밤, 내 꿈에 S 그러니까 여신 투가 나타났고

내가 당황하자 여신 투는 예전 그 환한 웃음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어딘지모르게

쓸쓸한 웃음이어서 내가 무슨 말이라도 던져야지 싶었는데 도무지 말이 안나왔다. 

그러자  여신 투는 잠시 내 앞에 서 있더니,  이젠 갈 시간이라며, 초봄의 잔설처럼

내 앞에서 아주 천천히 사라져갔다.

[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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