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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보리밭 푸른 종달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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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앙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09회 작성일 16-03-1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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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보리밭 푸른 종달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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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앙보르

 

  한 학년 아래, 그러니까 4학년 그 계집애를 종달새라고 불렀다.

곱게 땋아내린 머리 때문에 더 동그랗게 보이는 이마, 반짝이는 동그란 눈,

내 곁에만 오면 쉬지 않고 재재거리는 아이였다. 커다란 난리를 겪고난 이후에

종달새는 뭐 뱀이 되었지만.

종달새 집은 마을에서 최고 부자였다. 부모님은 두 분이 인근 고등학교 교사였고,

종달새는 늘 또래와 다른 옷을 입었으며 성격이 밝고 이쁘고 활달했다.

번듯한 기와집 대문을 밀치고 안에 들어서면 우리집보다 너른 화단이 나타나고,

본체는 2층 동화책 속 같은 집이어서, 동네에서 부잣집은 곧 그 집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집 앞으로는 반듯반듯한 논들이 줄을 지어 건너편 야산을 향해 치달렸다.

논 사이에는 경운기가 오갈 정도의 투박한 길, 경작로가 나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은 이미

기운을 뽐내는 잡초에게 점령을 당한대다가,  논을 빼곡이 채운 보리들이 사방을 둘러싸서

어떤게 길이고 어떤게 논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방에 가방을 내던지고 나는 장화로 갈아 신었다. 잡초 속에서 뱀을 만나는 일은 끔찍해.

주머니에 호주머니 칼도 넣었다. 경작로를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면

농수로가 열십자로 만나는 곳이 나왔다. 어제 광주리에 된장을 조금 담아서 거기

십자로 물 밑에 가라앉혀 두었다. 집을 나서자 어디서, 오빠, 외치는 종달새 소리가 들렸다.

나는 개의치 않고 잡초를 헤치고 나가면서 군침을 꿀꺽 삼켰다.

김치를 쫑쫑 쓸어넣고 된장을 푼 송사리 매운탕은 나뿐 아니라 아버지도 군침을

꿀꺽꿀꺽 삼킬 정도였다. 엄마는 내가 송사리를 잡아올 적마다, 붕어도 아니고 그 어린 것을,

끌끌 혀를 찼지만, 막상 매운탕을 끓이고 나면 설거지 전에 밥 한술 더 넣고 냄비 바닥까지

혀로 싹싹 핥을 정도여서 대체 엄마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바람에 쓸려 이리저리 몸을 비트는 푸른 보리들 사잇길에는 노란 괭이밥이 이어지다 끝나면, 

다시 하얀 클로버꽃이 옹알거렸고, 질경이 군대가 발을 멈춘다 싶으면, 군데군데 원추리와 보랏빛 

난초들로 장관이었다. 향기가 밀려왔다 물러갈 때면 나도 모르게 현기증이 일었다. 

 

  예상대로 광주리 안은 송사리들로 야단법석이었다. 팔을 걷어부치고 광주리를 끌어올리려다가

그대로 뒤로 주저앉았다. 뱀이었다. 내 다리보다 긴 뱀이 광주리 건너편 잡초 사이에서

또아리를  튼 채 눈을 빛내고 있었다. 악마의 분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진저리가 쳐지는 뱀.

둘이는 한참 눈싸움을 했다. 교회 주일학교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순진한 이브, 내 생각에는

순진이 아니라 바보 같았지만, 그 이브를 유혹해서 세상을 망쳤다는 원흉, 뱀.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멍청하게 생겼지만 어딘지 귀엽고 착한 개구리, 특히 청개구리를 무척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그 착한 청개구리를 통채로 입에 집어넣는 뱀을 보았다. 머리부터 들어간

청개구리는 뒷다리마저 거의 빨려들어가는데 그때 힘없이 떨리던 다리는 잊혀지지 않는다. 내 친구를

집어삼킨 못된 뱀. 당연히 맞아 죽어야지. 그때 그 뱀은 그나마 운이 좋았다. 대가리를 때리자니 청개구리가

죽을 것 같아서 가운데 동강을 내고 물러섰다. 청개구리를 빼어내고 싶었지만 그건 내 목숨과 바꾸는

일이라서 포기했다. 친구를 위해 까짓거 목숨을 바칠 수는 있지만 뱀에게 물려 죽기는 싫었으니까.

 

 뱀은 가끔 조우하곤 했다. 그런데 내게는 병이 하나 있었다. 다름아니라 그렇게 진저리를 치면서도

뱀만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꼭 죽이고 지나가야만 직성이 풀렸던 것이다. 평야 지대라서

독사를 만난 적은 없었고 물뱀이나 화사한 꽃뱀이 대부분이었다. 돌을 던진다고 내 실력에

백발백중일리는 없고, 어쩌다가 전날 밤 꿈자리가 뒤숭숭했을 뱀만 정확히 맞아 죽었다.

 

 나는 엉덩이 아래 깔린 클로버를 잡아뜯으며 멈칫거리다가 벌떡 일어섰다.

잡초를 재끼면 돌들은 많았다. 꽤 커다란 돌을 하나 찾아서 오른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돌멩이 여러개를 발로 툭툭 차서 한곳에 끌어모았다.

건방진 건지 정신이 없는 건지 뱀은 도망가지 않고 그대로 나를 째려보았다.  

오빠, 소리가 연거푸 들려서 돌아봤더니 저 멀리서 종달새가 기다란 막대를 흔들며 뛰어오고 있었다.

계집애가 미쳤나? 나는 팔을 흔들며 돌아가라고, 신호를 보냈으나 종달새는 룰룰랄라 지저귀면서

뛰면서 걸으면서 조금씩 커졌다.

 

 해바라기라도 즐기는 것처럼 뱀은 미동조차 없었다. 나는 정조준 한 다음에 돌멩이를 날렸다.

정통으로 머리를 맞은 뱀은 긴 몸을 풀더니 바르르 떨었다. 한 방에 목표물을 맞춘 적이 없었던

나도 꽤 당황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어머니는 미물들, 그러니까 메뚜기든

개미든 잠자리든 뱀이든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했다. 인석아, 특히 뱀은 죽이는 게 아냐, 죽이면

뱀꼬리가 살아서 집안 장독대에 기어들었다가 이 엄마가 뚜껑을 열면 손가락을 콱 깨문단다.

그래서 내 고통은 늘 거기에 있었다. 알면서도 뭐에 혹한 것처럼 뱀을 죽이고나야만 그 말이

떠올랐다. 뱀꼬리는 팬티 고무줄이나 빨랫줄보다 질겨서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나는 매번

뱀을 죽이고나면 뱀꼬리를 잘라낸다고 무척 생고생을 했다. 굵은 꼬리를 만날 적에는 혼자서

풀을 깔고 앉아 훌쩍훌쩍 눈물을 훔쳐가며 꼬리를 자른 적도 있었다. 그런데 또 알면서도 일을 내고

만 것이다.

 

 이까짓 것, 콩대를 하나 뽑았다. 늘어진 뱀의 중간 아래에 콩대를 밀어넣어 뱀을 들어서는

 십자로 시멘트 평판으로 옮겼다. 으깨진 뱀의 머리가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내 손을 물어뜯을 것만

같았다.  꼬리는 연신 부르르 떨어대서 그냥 물러섰다가는 죄 없는 엄마를 잡을 수가 있었다.

끝이 뾰족한 돌을 골라내서 뱀 꼬리를 찍어댔다. 그런데 내릴 칠 때마다 헛방이 났다. 꼬리는 계속

떨었다. 마치 내 손을 놀려대고 있는 모습이었다. 주머니칼을 꺼낼까 하다가 도리질을 쳤다.

그 칼에 뱀의 피를 붙이는 일은 곧 칼을 버리는 일이나 똑같았다.

 

 눈물이 질끔질끔 나왔다. 어쩌다 꼬리가 찍혀도 꼬리는 더 요동을 쳤다. 무뎌진 돌을 바꾸고

또 찍었으나 팔목이 아팠고 눈 앞이 흐려졌다. 그러다가 툭 꼬리가 짤렸는데 조금 이상한

모양새였다. 잘리긴 했는데 무슨 실 같은 게 이어져 있었다. 포기할 까 하다가 연신 돌을

찧었으나 계속 빗나갔다. 너무 겁이나서 그 정도에서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도 찝찝했으나

뭐 어쩔 수 없었다.

 

" 오빠, 뭐해? 응, 뱀 잡았구나. "

" 여긴 왜 오구 그래. 돌아가 ! "

" 심심하니까 그러지 뭐. 엄마 아빤 매일 늦게 오잖아. 할아버지 할머니랑 노는 것두

재미 없어. 오빠랑 같이 그림 그리려고 가는데 오빠가 이리로 도망치잖아. "

" 잡초 속에 가끔 뱀이 또아리를 치고 있어. 너 구두 신고 오는 거 아냐! "

" 피히, 무섭지 않아. 밟아버리면 되잖아 ! "

 

 어느새 다가온 종달새가 길다란 막대기로 뱀을 콕콕 쥐어박았다. 인정머리라곤 쥐뿔도 없는

계집애. 나는 속으로 종달새를 비웃었다.

 

" 사람을 놀래키니까 죽지. 미워 미워! "

 

종달새는 마치 내편이라도 들어준다는 듯 막대질을 하다가 나를 올려다보고 큭큭 웃었다.

호주머니를 뒤지던 나는 아뿔싸, 외쳤다. 군인들이 쓴다는 잘 생긴 주머니칼이 없었다.

주변을 휘둘러 보았지만 잡초 투성이였다. 눈을 부릅뜨고 발로 잡초를 헤쳐가며 왔던 길을

굼벵이 걸음으로 걸어갔다. 최대 비극은 그 참에서 벌어졌다.

 

오빠, 소리가 들려서 종달새를 뒤돌아봤다. 종달새가 막대기로 나를 가리키는 그 순간,

공중에서 내 눈 앞으로 끊어진 동아줄 같은 게 날아왔다.

어, 어, 어. 그리고는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자, 엄마 얼굴이 보였다. 그 정도로 천만 다행이다, 너 죽은 줄 알고

부잣집 딸내미가 울고불고 난리가 아니었어야. 네 아버지가 어디 크게 다친 줄

알고 놀래서 너 업어왔단다. 내 몸은 아랫목에 눕혀져 있었고 머리 위쪽에서는

아버지가 헛기침을 했다. 다시는 부잣집 딸이랑 그런데 가면 안된다. 어리지만

보는 눈들이 많으면 말들만 많아지니까, 알았니? 아버지는 조용히 다짐을 놓았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50가구라고 했는데 두 집이 이사 가고 한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 47가구, 평균 4인 식구로 치면 약 200명에 눈깔 2개면

400개구나. 셈을 해보고나서 아버지 말도 일리는 있다고 쳐주기로 했다.

엄마, 그런데 송사리는? 인석아, 지금 송사리가 문제야? 지금 푹푹 끓이고 있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나를 구하러 달려온 건 아닌 듯 싶었다. 엄마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있지만 침을 삼키는 걸로 봐서 이 아들보다는 송사리겠다.

 

그날 밤, 꿈 속에서 간장독으로 슬며시 기어들어가는 뱀을 봤다. 그때 엄마가

간장 뚜껑을 열길래 나는 안된다고 안된다고 외치는데 도무지 말이 튀어나오지 않고

숨이 콱콱 막혀서 혼이 났다. 

 

 다음 날 학교에 가자마자 나는 급우들의 등쌀에 시달려야 했다. 에이 바보 그래

뱀 땜에 기절했다면서?  한 아이가 계속 떠들었다. 너 종달이랑 보리밭에서 뭐 했지?

뽀뽀했냐? 나는 아니라고 도리질을 쳤다. 뱀을 얼굴에 뒤집어 썼다면서? 다른 아이가 말을 받았다.

아냐 아니래 뱀을 막대기에 걸어서 버리려고 확 흔들었는데 뿅 날아가다가 이 자식

면상에 떨어졌대. 또 다른 아이가 더 큰 소리를 질렀다. 그 가시내가 그랬어, 이 자식이

보리밭으로 끌고 들어갔대 ! 녀석들은 나를 둘러싸고서 허리를 꺽어가며 깔깔댔다.

나는 울상이 된 채 씩씩대기만 했다. 싸워봤자 밑에 깔릴 것은 분명 나였으니까.

그때 나는 이상스럽게도 나를 노려보던 뱀의 눈과, 그 앙큼한 종달새의 눈이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몸을 잠시 떨었다가,  책상 위에 이마를 가져다 붙이고는

찔끔거리는 눈물을 행여 다른 녀석들이 볼까봐 이를 악물고 또 악물었다. (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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