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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지금 어디에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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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앙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66회 작성일 16-03-17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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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지금 어디에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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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앙보르

 

  제시카는 건네준 책을 휴지통에 처넣더니 목소리를 높혔다.

" 마이클, 제발 이딴 거 쓰지 마. 세상에 읽지 않는 책이 얼마나 많은 줄 아니?

그건 전부 쓰레기들이야.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지껄이는 이들은 칼맛을

전혀 맛보지 못한 자들이라구. 칼에 한번이라도 베어본 치들은 그딴 말

하지 않아. "

" 이봐 제시카. 넌 미모와 재능에다 돈까지 많아.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떠나면 되잖아. 월스트리트와 헐리우드 대로변에 죽치고 앉은 멋진

사내들이 많으니까. 떠나라구!! 떠나기 전에 그 책 도로 꺼내줬으면 좋겠어 !! 

아, 마지막 키스는 사양하겠어. 보나마나 며칠 지나면 돌아올텐데..."

 

  소년은 군인들이 물러난 언덕을 쳐다보고 있다. 먼 나라에서 왔다는 군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염소를 죽이고 닭장을 깨부수고 파릇하게 올라오는 홍당무 밭을

폐허로 만들었다. 염소를 몰고 오가던 오솔길에 지뢰를 파묻은 군인은 '출입금지'

표지판을 세웠다. 군인 한명이 씨익 웃으면서 껌 하나를 건네줄 때 소년은 팽개치고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때 먼지가 잔뜩 묻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 제이콥, 밥은 먹어야지. 먹어야 잊지 않을 수가 있단다. 자 이리오렴.

네가 좋아하는 완두콩에 염소젖을 섞었단다. 양초가 다 떨어진 거 알지?

에미는 걱정하지 않는단다. 제이콥, 네가 우리 양초란다. 이리오렴 ! " 

 

  카운터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종아리에서 곤두선 핏줄이 감각조차 없다.

밀린 집세, 아이들의 학원비, 남편의 약값, 죽을 날만 기다리는 친정 어머니.

코너에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들이 요염하다. 카운터는 종일 손님과 씨름하고

돈과 씨름하고 물건과 씨름해야 했다. 싸구려라 뭐 살 게 없네, 돌아서던

건너편 아파트 사모님의 등이 멀다. 그러다가 동전을 헤아리다 슬몃 웃었다.

동전 같은 아이들, 후즐근한 남편은 그래 색 바랜 만원 짜리?  친정 어머니는 

그러면 구겨진 5만원권?

목덜미에서 한박자 멈춘 웃음이 와르르 터졌다.

종아리가 점점 살아온다. 손에 잡히는 실핏줄이 활기차다.  카운터는

손님이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흥얼댄다. 아직 죽지 않았다 이르거라.

 

  안네의 일기,를 덮은 소녀는 편지를 썼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소녀는 그래도

늦은 밤이면 꼬박꼬박 편지를 썼다. 그리고 잠들기 전, 침대 모서리를 껴안고

기도를 했다. 꿈 속에서 우체부는 환하게 웃었다.

다음날 진짜 우체부가 왔다.

" 마리안느, 요즘 우체통을 뒤지는 우체부가 어딨니?  전부 스마트폰으로 하잖니?

네 집 앞을 지나는데 네 우체통에서 소근대는 소리가 들리더구나.

글쎄 몇 년만에 만나는 요정들인지 원. 그리고 꼬마 아가씨, 네 우체통을

늘려야 할 것 같구나. 답장이 오면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말야. "

 

  "언니, 이제 그만 수유하고 잠시 쉬었다가 요가 준비하세요. "

" 알았어요. 우리 아가, 잘 살펴줘서 고마워요. 저기, 힘들지 않아요? "

" 에이, 힘들긴요. 갓 태어난 아기들을 보면 행복해요. 지린내 젖내도

사랑스럽기만 한걸요. 그래도 한여름엔 조금 힘들기는 해요. 아기들 땜에

냉난방을 함부로 조절할 수가 없거든요. 언니도 무척 덥죠? "

" 조금, 조금 덥긴 해요. 그래도 참아야죠. 초산이라서 궁금한 게 많아요.

이곳 산모들과 떠들면서 많이 배워가는 중이에요. 조금 두렵기도 하고요. "

" 아기들은 금방 자라죠. 방긋방긋 웃는 걸 보면 모든 게 잊혀질거에요.

신랑들은 그걸 잘 모르지요. 엄마 아빠의 차이랄까, 그런 거요. "

" 아기 아빠도 바쁘니까 왔다가 금방 갔어요. 잠깐 유리창 너머에서

아가를 바라보고 사라졌어요. 아, 요가 준비할께요. "

 

  젠장, 사방이 바다 뿐이야. 이참에 돌아가면 배를 내릴 꺼야. 나는 몰랐어. 지중해를

건너면 젠장, 술 취한 미녀들이 매달릴 줄 알았거든. 일이 힘든 건 참을만 해. 하지만

세이렌마저 이제 없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어. 군대에 들어가겠어. 총을 들고

정글을 헤치고 적을 쓰러뜨리겠어. 드드드득. 적이 쓰러지면 연기가 채 올라오는

총구를 후우 식혀야겠지. 그래 또 모르지. 누군가를 죽이고나면 바다가 생각날지도.

머리통을 쥐어박던 그 꼰대가 생각나는군. 그래, 물정 모르고 날뛰던 학생 때가

좋긴 좋았어. 그땐 갈 곳이 무지 많았잖아. 그런데 갑자기 그 꼰대가 보고싶어지는군.

 

  침대에 올라온 남자는 여자에게 허겁지겁 올라탄다. 남자의 행동은 의무적이다. 여자는 이 모든

시간이 어서 끝나기를 빈다. 정전기를 일으키지 않는 살과 살의 마찰을 떠올린다.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던가. 아니 내가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던가. 사랑했었던가, 우리는.

하나 둘 태어난 자식들이 그저 신기하다. 뜨거웠던 적이 있었던가. 여자는 고개를 모로 돌리며

남자의 찌든 술냄새와 담배진을 피한다. 그럴수록 남자는 집요하다. 마치 끝장을 내려는 듯 남자는

온 힘을 다해 돌진한다. 여자는 홀로 걸었던 해변가를 떠올린다. 갈매기와 절벽의 마른 나무를

떠올린다. 새들이 떠난 빈 둥지와 관광객이 버리고 간 라면봉지를 떠올린다. 바닷가 정류장에서

혼자서 울고 있던 젊은 가시내를 떠올린다. 절벽에서 마른 눈물이 한방울 툭 떨어진다.

 

  "제발 집에 좀 들어가라. 부모님한테 전화도 한 통 하고... "

"새꺄, 죽고 싶어? 강요하지마! 그냥 잠만 좀 재워주라. 집에 들어가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아니 언젠가 이 손으로 꼰대 멱을 따고 말겠어. 씨발, 공부, 공부, 공부, 공부, 공부, 공부, 공부...

염증이 난다!! 대체 어떤 새끼들이 우릴 이렇게 숨도 못쉬고 살게 만들었냐? 너냐? 새꺄, 농담이다.

졸업만 하면 떠날란다. 같이 가자. 모히또 가서 몰디브나 밤 새워 마시자. 거기서 학교 없는

마을을 만들란다. 새꺄, 같이 가자! 같이 만들자. 꿈과 희망 따윈 가르치지 않아도 좋은 그런

마을 만들어보자. 새꺄, 우리 아빠 엄마 부자잖아. 가진 게 돈 밖에 없어. 돈 밖에 없다구, 씨발!

그래서 그래! 돈만 가진 바보라고 무시당할까봐 자식들만 죽이는거지!! 

미친 꼰대, 글쎄 일류가 아니면 상대를 안한대니깐!! "

 

  노인은 석양을 등지고 앉아 먼 나라로 떠나간 아들과 딸을 생각했다. 그래 그들은 편지를

보내왔지. 아버지 오셔서 이제 저희랑 행복하게 살아요. 그래 그래 너희들 마음 안단다.

하지만 내겐 비밀이 있어. 네 엄마는, 저기, 에펠탑 뒤에서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에

묻혀 있단다. 매일 아침이면 중절모를 쓰고 지팡이를 의지한 채 거기로 가지. 골목길에

아담한 서점, 빵가게, 꽃집, 쵸콜릿숍, 구두가게를 지나고 채 문이 열리지 않은 우체국을

지나면 스무 걸음 정도의 꽃밭이 나온단다. 그게 네 어미가 사랑했던 전부였구나. 내가

떠난다면 그 모든 게 떠나지 않겠니?

 

  전봇대와 씨름하던 사내가 도로 들어와 의자를 걷어찼다.

" 술 내와! 돈 주면 될 거 아냐? "

언니는 불안한 눈으로 순희를 만류했다. 외면하고 길다란 술병을 사내 앞에 내어밀었다.

술 시중은 몸 시중보다 더 힘들단다. 화류계 30년에 단물 모조리 빠졌다는 언니가 영업 쫑친다며

하나 둘 불을 껐다. 사내는 점점 인사불성이다. 동사무소 임시직이라 했던가. 아니 글 나부랭이를

쓴다고 했던가. 순희는 안다. 사내의 빈 지갑을. 내일이면 떠나야지, 라고 입술을 깨문다.

깨물기만 하면 뭐해. 순희는 쓸쓸하게 웃었다. 담배를 한개비 입에 빼어물었다. 언니가 금새 채간다. 

야 이년아,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살 늘어가는 거 안보여? 사랑한다,고 떠버리던 작자들은 전부들 떠났다.

좁은 골목을 떠날 줄 모르는 가로등이  쓸쓸하다. 

 

  야 새꺄, 이걸 성적이라고 받아왔냐? 이 새꺄, 우리 가문 망치는 새끼.

느그 에비, 에미 둘 다 명문대 출신야. 형 누나 번듯하게 잘 나가는 거 봐봐.

무어 아쉽게 한 게 하나라도 있었냐? 원하는 건 다 해주었다. 새꺄, 근데 이걸

내참, 성적이라고 받아왔냐? 이 때려죽일 놈의 새꺄. 집안 망신을 시켜도 유분수지,

이게 성적이야? 애완견이 뒷발질해도 이것보담은 잘 나왔겠다. 그러니까 새꺄,

먼 나라에 가서 너 꼴리는데로 공부하래니까 왜 여기서 뭉그적거리는거야.

새꺄, 너 오늘밤 잠은 다 잔 줄 알아!! 새꺄, 집안 말아먹는 새끼.

 

  휴스턴, 여기는 셔틀 8번이다. 그쪽은 광학계로는 보이지 않는다. 적외선 모드로

전환하겠다. 태풍이 그쪽으로 몰려가는 중이다. 중심좌표는 데이타와 똑같다. 지구는 

마치 사라진 것 같다. 스크린에는 나타나지만, 창 밖으로는 성난 뇌운에 덮혀 있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다. 돌아오면 뭐 할거냐구? 욕탕에서 땀을 푹 흘리고난 다음에  

자네랑 같이 텍사스 변두리 리오그란데 강에서 낚시를 즐겨야지. 김 빠진 버드와이저를 

쪽쪽 빨아가면서 말야. 아, 주차장에 내 할리, 캬브레타 손 좀 봐줘. 그거 타고 가야잖나.

그런데 우주선 화물 보낼 때, 꼬박꼬박 컬러콘돔 보내주는 작자가 누군지 궁금해.

관제센터 캡틴이 장난 친거지?  다음번에는 캡틴 와이프 찢어진 팬티 한장 보내달라고 전해라.

뭐라구? 지금 방송국이랑 핫라인 연결돼서 생방송 중이라구? 이런, 잘됐군. 오바마 대통령께서 

들어줬음 좋겠어. 미셀 사모님이 백악관 텃밭에 가꾼 방울 토마토 좀 나눠먹었음 한다고. 

맨날 식은 죽만 먹자니까 젠장, 지구가 태양처럼 보일 때가 많아. 아까 들었다시피 말도 헛나오잖남.

여전히 지구가 안보이는군. 친구, 하나만 더 부탁을 하마. 마누라에게 전해라. 

24시간 지켜보고 있으니 딴 맘 먹지 말라구 말이지. 어느때는 지구는 하나의 추상이 된다. 

뭐야? 시 쓰지 말라고? 이건 시가 아냐.  이담에 자네가 올라와서 확인하기 바란다. 이상. (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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