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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오래된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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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서지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87회 작성일 16-03-2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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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동화 (수필 ) / 서 지숙  
 


  버스는 거의 동물의 내장 같은 골목길을 돌고 돌아 마을 정상 즈음에서 멈췄다버스에서 내려 잠시 둘러보는 시안으로 가을바람에 맑게 씻긴 시리도록 파란하늘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거기 감천마을 색색의 지붕으로 늦가을 햇살이 바리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어릴 적 동네풍경을 원색의 크레파스로 색칠해놓은 도화지속 그림 같았다. 멀리 떠나와서 그런지 순간적으로 허기가 지기도 했지만 시간상 점심때도 되었기로 먼저 잔치국수 한 그릇을 주문하고 앉아있으니 주인아주머니가 마을전경을 돌아보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청춘의 깊던 골짜기를 지나올 때 취미로 사각의 조그만 곽성냥을 모은 적이 있었다. 감천마을이 바로 그랬다. 형형색색의 조그만 곽성냥을 요밀조밀 끼워 세워놓은 듯 했다. 그것은 또 소인국에 온 듯 착각마저 들게 했다. 그 사이사이로 몸을 틀어야만 길을 내어줄 수 있는 골목은 우리가 살면서 바짝 죄임도 너무 커다란 간격도 져버릴 수 없다는 이치를 헤아리게 하는 듯 가느다란 미로로 소통의 끈을 잇고 있었다. 비탈진 골목길을 오를 때는 다소 현기증도 일었는데 이런 중턱에 햇살 한 가득 그림 같은 마을이 있다니 신기하면서도 왠지 모를 이방인이 느끼는 설렘의 한기가 가슴을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안내서 한 장을 손에 들고 천천히 돌아보기로 했다.


손바닥만 한 담 벽을 따라 아기자기하게 그려진 벽화들이 이색적이면서도 따뜻했다. 활활 타오르다 뜨거운 불씨를 안고 조용히 스러져가는 아궁이속 장작 숯처럼 고요함속에서도 이따금 타닥타닥 움찔거리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마을이라고나 할까. 강열한 빛은 그 그림자도 짙은 법, 숙명 같은 가난 이였기에 삶은 더 끈질겼고 매서웠으리라. 골목마다 음영의 농담이 확연하게 대비되는 이유도 그런 연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의 벽마다 친절하게 그려진 안내화살표를 따라 걷는데 외진 곳 들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내미는 풍경들이 내 발길에 자꾸 체이는 것이었다. 측은하게 늘어진 빨랫줄에 삶아서 널어놓은 눈 시리도록 새하얀 속옷하며, 감물 든 것처럼 얼룩한 수건들이 마치 노역을 마친 노동자의 겨릅대 같은 얼굴을 닮은 것 하며, 스티로폼 사각 상자 안에 한 포기 옥수수대를 희망의 푯대처럼 키워낸 그 지극함이 온 가슴을 껴안고 뜨겁게 목메게 했다. 질풍노도와 같은 한 시대를 지나온 발자국마다 나직나직하게 배겨있는 저 겹겹의 투명한 가난이여! 늦가을 잔광을 받으며 한없이 애상에 잠기게 하는 뜨거운 행로여!  검은 비닐봉투가 빵빵한 바람을 한껏 품은 채 날아오르는 저 골목 어디쯤에 분명 살고 있을 민들레 포자 꽃 같은 감천마을지그재그로 혹은 수직으로 그 해맑은 삶의 통로를 오가는 중에도 정작 원주민보다는 여행자의 발길이 더 분주했다.


해안가를 품고 돌아가는 가파른 산자락으로 삶의 터전을 잡았던 그 옛날 피난민들의 삶에의 절실함이 손바닥 금을 보듯 또렷하게 새겨진 감천마을은 무한히 푸르고 푸른 하늘을 지붕 삼고 담과 담이 서로서로 등을 맞대고 기댄 것처럼 서로를 껴안고 이웃하며 살아왔으리라. 이 골목 저 골목을 느린 달팽이처럼 걷는 동안에도 수척하게 마른 깊은 고요뿐이었다. 손바닥만 한 대문과 꼬막만한 옥상, 흡사 장난감 살림 같은 오밀조밀한 삶의 장식들이 꼭 그 자리마다 붙박이로 자리 잡고 있었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어둑어둑 밟히는 삶의 질곡들이 내 가슴으로 뭉클뭉클 내려앉는 듯 했다. 저 멀리 바다위로 햇살이 부서지고 그 바다 건너편에는 세기를 달리는 빌딩과 최첨단의 문화가 밤하늘별처럼 휘황히 빛나고 있지만 감천마을 이 곳은 옛 고전에 아득히 잠겨있는 서 너 줄 잠언처럼 새겨지며 한없이 겨웠다. 그 풍경 앞에서 문득, "물은 바삐 흘러도 그지없이 고요하고  꽃은 점점이 떨어져도 지극히 한가하다" 라는 옛 고전의 글귀가 생각났던 건 왜였을까. 감천마을은 그랬다. 세상이 아무리 바쁘게 변화해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오히려 여유롭기까지 느껴졌다. 견주려고 부수고 억지로 변화하고 덩달아 따라가지 않았다. 다만,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한 채 현재를 불러들이고 그 시절을 그대로 간직하고자 했던 것이 남달랐던 것 같다. 누구나 감추거나 숨기고 싶은 내 부끄런 뒷면의 치부들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줌으로서 더 당당한 자유스러움을, 빗줄기 긋고 지나간 초여름 날의 풍경처럼 산뜻하고 환한 여유를 느끼게 해주었다.


너무 헤프게 풀어져버린 날들을 조금은 단단히 고쳐 메거나 자의반 타의반으로 옥죈 일상의 끈들을 조금은 느슨하게 하기위해 떠나오거나 떠난 여행 아니었던가. 삶의 근골들이 시린 늦가을 하늘로 오래된 동화를 쓰고 있는 부산 감천문화마을을 뒤로 하고 나는 마저 참았던 한 숨 한 덩어리를 미소로 화답하고 보수동 헌책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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