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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아오자이 그 여대생은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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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앙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54회 작성일 16-03-21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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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아오자이 그 여대생은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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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앙보르    (자유게시판 메모한 것을 이쪽으로 옮겨 다듬었습니다.)

 

 이건 베트남에서 청춘을, 귀국해서는 -베트남과 한국을 뺀 - 세상에서 쓸쓸하게 

종말을 맞이한 작은 아버지를 위한 작은 기록이다.

 

" 전쟁의 기억보다 추하고 더러운 기억은 없단다. "

 

나는 작은 아버지의 이 말을 여태까지 기억하며, 앞으로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무겁다.

괜히 엿들었던 얘기 때문에 무겁고, 그 기억을 떨굴 수 없어 무겁고, 그 기억을 짊어매고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해야 하는게 무겁고, 여자의 동그란 입 속에 바싹 마른 내 혀를

밀어넣는 기분이라서 더 무겁다. 어쨌거나 그러면서도 나는 친구를 만나서 잘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고 두둑한 상여금을 타면 멋진 곳으로 여행을 갈 생각에 들뜬다.

그러나 베트남, 베트남만은 가고 싶지 않다. 왜냐면 내 지도에서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전쟁의 이별, 죽음, 신음, 전투, 씨레이션, 불발탄, 화염방사기, 곡사포, 수류탄,

부비트랩과 베트콩의 개미굴, 사이공과 펜트하우스와 비쩍 마른 어린 창녀, 미군의 츄잉껌,

스트라이프 성조기, 말보르, 지옥의 묵시록과 플래툰과 굳바이 베트남, 건쉽과 적십자 마크의 헬기,

팬톰, 물러터져서 운반하기 힘든 사체, 사체를 담은 긴 빽, 울부짖은 채 벌거벗고 도망치는 소녀,

불에 까맣게 타면서도 염불을 하던 승려, 경적소리들, 월맹폭격, 구정공세, 파리 평화협상.

 

 그렇다. 많은 전쟁 영화를 봤다. 내게 있어서 전쟁은, 단어와 단어의 나열이다. 거기에 특별한 이미지는

없다. 복합된 이미지란 어쩌면 전쟁이라는 괴물이 흘리는 '눈물' 같은 단어로 압축이 된다. '슬픔'이라

해도 들어맞겠다. 특히 네 번을 본 영화는 '플래툰'이 유일하다. '지옥의 묵시룩'은

비장하지만 젠장, '말론 브란도'가 화면을 너무 압도해서 두 번으로 그쳤다. 나머지 영화는 그저

울고불고 터지고 죽고 죽이는 영화라서 시시하다.  

 

호치민 슬리퍼와 갓뎀 베트남, 아군을 살상하는 아군의 M60 기관총의 벌겋게 달아오른 총신,

새끼들아 어디다 갈기는 거야? 챨리 챨리 안들려? 새끼들아 멈춰, 멈추라고. 한국말 몰라?

구더기가 파먹은 시체, 베트콩이 아내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와 한국에서 날아온 펜팔 편지,

하얀 칼라깃의 단발머리 여학생과 아오자이 차림의 여대생, 야자수와 허벅지 굵기의 구렁이,

살을 파고들던 독한 거머리, 초지를 통채로 증발시킨 고엽제, 폭발, 아수라장, 비명과 고함소리,

승리와 패배, 앞을 가리는 밀림과 잡목을 쳐대는 정글도, 무좀, 모기약, 야자나무에 걸린  해먹,

주인 잃은 칼빈과 철모, 전진하라, 오버오버 좌표 부르겠다, 야이 개새끼들아 어딜 폭격하는거야,

혼자 살았어, 새꺄 나 박하사다, 개새끼 늬가 대대장이야 돌아가면 넌 죽었어, 

제발 제발 폭격 중지, 중지, 중지, 우리애들 다죽어, 어디다 포 때리냐 좌표 좀 확인해 오폭 오폭 야 삼삼공.

 

 작은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 총은 내가 쐈는데 훈장은 줄 좋은 놈이 받더라. 그것도 전쟁이었다. "

 

 그때 나는 창밖에서 바람을 타는 낙엽과, 여자와 같이 발에 밟히던 낙엽의 촉감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건 낙엽을 빙자한 사치였다. 한 사람은 모서리가 헤진 침대끝에

앙상한 볼기짝을 걸치고 멀고 먼 여행을 준비하는데, 나는 결혼을 약속한 여자와

가까운 곳에서 하룻밤을 보낼 여행지를 결정하고 짜릿한 뒷맛을 상상하고 있었다.

몸을 둘로 나눈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좌뇌는 웃었고 우뇌는 울었다.

 

" 썩은 두엄자리처럼 뚝뚝 떨어지더라. 날씨 탓이었지. 팔을 잡으면 팔이 쑤욱 빠져나오고,

다리를 붙들면 정강이가 쑤욱 빠져나왔지. 바닥에 흘러내린 살점에는 이미 파리들이

새카맣게 달라붙었고 냄새는 얼마나 징하던지. 사체를 수습할 들것이 모잘라서 나중에는

까만 봉지에 막 쓸어담았다. 울지 않은 놈이 없었지. 그때 우린 전부 미쳐버렸다.

미쳐버렸다. 죽은 놈이나 살아도 불알 나간 놈이나 도찐개찐... "

 

부하의 시신은 쌓여가는데 스타 진급을 걱정하는 연대장, 젖은 딱성냥, 땡볕 화장실에서 담뱃불을 당기다가 

변기통에 고인 가스폭발로 하늘로 날아간 이등병, 턱에서 광대뼈까지 통채 날아갔지 개새끼 자살하긴,

방향이 거꾸로 설치된 채 아군을 말아먹은 크레모어, 고향 초가집과 흑백 속에서 입을 꾹 다문

부모님 사진, 소니 텔레비전과 샤프 카세트와 캐논 사진기, 다 죽었어, 빨리 포 때려줘 새끼들아, 비명, 절규,

십자가와 불상 그리고 석탑, 지옥, 천국, 하나님 예수님 공자 맹자 부처님 염라대왕 극락천도,

 

제발 살려주세요 착하게 살께요, 어머니 엄마 엄마, 살려줘......

 

기적적으로 살았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살아남았다,라고 했다. 베트남어를 가르치던 아오자이

여대생은 구정 월맹 공세 후 나타나지 않았다. 월남군 장교였던 그녀의 오빠는 그때 저세상으로 갔다.

사이공에서 한 시간 거리 딴띠안 촌락에 가봤다. 온 동네가 보이지 않았다. 온 동네가 통채로 네이팜탄과

고엽제에 날아가서 어디 물어볼 사람도, 염소도, 물소도, 우체통도 남아있질 않았다. 눈물도 안나왔다. 

주고받았던 편지에 불을 당겼다. 연기는 오래가지 않았으나 서체의 기억은 아주 오래갔다.

차라리 그편이 나았다. 전쟁이 없는 나라에서 편히 살기를.

 

채명신 주월사령관 용장 이세호 장군, 개새끼 디엠 정권, 전쟁광 워싱턴과

호치민 시티, 뉴스위크, 시바스 리걸과 시원한 버드와이저, 티켓, 콘돔과 매독과 페니실린...

싸우다 죽은놈 다친놈 훈장 상신 좀 해라 병신들아, 후방에서 내 훈장 쌔빈 놈 배때기에 철판 깔고 기다려,

문선대 위문공연 딴따라 삼류여가수 선임하사가 따먹고 중대장이 따먹고 대대장이 따먹고 연대장이

따먹으려고 헬기타고 껄떡거리며 날아오다가 베트콩 대공화기에 공중에서 불바다 애꿎은 미군조종사 사망, 

걸레같은 년 다리 잘리고 팔목 달아난 죽어가는 총각한테나 주지, 총각귀신은 고국행 디나이,

브라보 꽁까이 한마리 생포, 까주는 콩보다 까먹는 콩이 맛있어 고참순 나부텀 먹는다,

미친 새끼들아, 늬들 미쳤어!! 늬들은 누이도 없냐? 들어봐, 꽁두 꽁두-염소를 찾으로 왔다 그러잖아!

미친놈들!! 니 누이가 염소 찾으러 왔는데 덮치냐? 니들도 나도 전부 미친거야!!

 

첨 마주친 베트민 어린놈의 겁먹은 눈 뜨드드득 아카보가 불을 내뿜자마자 M16의 반격,

어 이 새끼 맞았잖아 불알 다 날라갔어, 위생병 위생벼엉 개새끼 위새앵병 니가 맞으면 어떡하냐,

 

엄마, 엄마, 나 살고 싶어요, 나 좀 살려주세요, 오 하나님 부처님 예수님, 니기미 씨팔, 닉슨 개새끼,

호치민 개새끼, 베트콩 개자식, 평화여 엿 먹어라, 포판 안보여 둘둘공오삼 제대로 쏴라, 새끼들아

색깔 구분도 못해 붉은색 연막에 갈겨줘 파란색은 아군쪽이다, 사격금지, 씨스 파이어 씨스 파이어.

 

 병상에서 쪼그라든 작은 아버지는 내 눈길을 피하면서 담담히 말했다.

 

" 아군 오폭으로 죽은 놈이 제일 불쌍타. 사고로 죽은 놈도 그렇고. 개값만도 못한 청춘이었지. "

 

떼어먹은 내 전투수당은 어떤 짜식이 삥처먹은거야, 전투용병, 욕설, 구타, 기합, 줄빳따, 곡소리,


고엽제 세례를 받은 작은 아버지, 조카 한명 남기지 못하고 군번줄 매만지며 경적소리만 들려도

책상 아래 기어들어가 벌벌 떨다가 죽었지, 이런 개같은. 그 퀭한 눈, 온 몸의 징그러운 반점들.

화상의 흔적과 깊은 흉터. 혼자 살아서 비겁한 처지로 전락, 나머지 40명 중대원은 어디로 갔을까.

죽어도 죽지 못하고 호치민 시티를 떠도는 혼백들, 녹조차 슬지 않는 스테인레스 군번표.


사이공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다던 작은아버지의 유일한 사랑, 아오자이 여대생, 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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