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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간짜장 귀신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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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앙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82회 작성일 16-03-31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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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간짜장 귀신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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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앙보르


  대입에 미역국을 먹은 그때는 정말이지 뒤돌아보고 싶지 않다. 
나는 20세, 올해 가까스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고 적으면 얼마나 좋을까.
불행하게도 하숙을 하며 또 삼수 째 접어들고 있다. 우리 집에서는 가문망신
이라며 절대 떠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렇지만 워낙 믿기지 않는
일이어서 떠들지 않을 수가 없다. 학원에서 종합영어나 수학의정석을 펼치고
나름 열심히 공부한다. 그러다가 잠깐 그 생각을 떠올리면 온 몸이 오그라들고,
정신이 달아난다. 학원 선생님이 던진 분필을 맞으면 그제서야 제정신이 돌아온다. 

 이건 믿어달라고 적는 얘기가 아니다. 요즘같이 벌어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에
누가 남 얘기를 들어주겠는가. 학원에서는 모두들 죽자살자 공부하고 먹고
화장실 다녀와서 졸다가 살자죽자 공부하다 집으로들 간다. 외롭다고 떠드는 건
아니다. 외롭다고 여길 짬이나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여학생에게 관심을 가질
나이긴 하다. 그러나 위로 누나가 둘이요, 밑으로 누이가 둘이라면 아마 내 심정을
알 것이다. 나는 그러니까 '여'자가 들어간 것은 무조건 피한다. 여관, 여행, 여보,
여걸, 여생, 여차저차, 여군, 여경, 여사, 여우, 여시, 여봐라 등등 정이 안간다. 
누나에게 시달리고 누이들에게 채이면서 나는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땀을 뻘뻘 
흘리시며 남자의 갈비뼈로 왜 여자를 만드셨을까, 불만일 때가 많다. 

 하숙집은 노량진을 벗어나 멋진 가옥과 아파트가 줄줄이 늘어선 곳에서 한참을
걸어와서 대방역 앞 오른쪽 골목을 한참 걸어가서 다시 왼편으로 꺽고 또 올라가면
끝에 나오는 허름한 2층 연립이다. 어딜가도 눈에 띄는 마을버스조차 회피하는
동네다. 마을버스도 비빌 구석이 있어야 들어가지.  대학에 합격했다면 번듯한 
하숙집에서 지금 쯤 치킨을 뜯고 있겠지만, 이게 언감생심이란 걸 안다. 

 각설하고, 골목 끝에서 페인트가 벗겨지고 여닫힐 적마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내지르는 대문을 통해서 하숙집에 드나든다. 오른편에도 대문처럼
찌그러지는 단층집이고, 왼편 또한 거의 무너져가는 2층 시멘트 집이다.

 그 집에서 하숙을 시작한 다음날, 비로소 동네 표정이 내게 들어왔다. 음, 이곳이
내가 기거할 동네군. 여기가 서울이 맞아? 머리를 들면 저 멀리 여의도의
휘황찬란한 빌딩군이 보였다. 정신차리고 공부해야겠지. 그래야 대학에 갈 테고,
저 여의도 제일 높은 곳에서 새로운 청춘을 시작하는 거야. 만약, 만약 떨어진다면,은
생각하기조차 끔찍했다. 공부란 책을 붙들고 늘어진다고 공부가 아니다. 
놀 때 놀고, 공부하다가 머리가 아프면 또 놀아줘야 공부가 잘된다. 그래서
대문 앞을 얼쩡거리다가 딱 마주쳤다. 그건 바로 무당집 깃발이었다.

 뭐라고 할까? 일단 기분이 꿀꿀해졌다. 하숙집 대문처럼 찌그러져가는 그집도
역시 폼만 대문이라고 볼 수 있는 문이 있었다. 철제 쪽문이라고나 할까? 
그 문 오른편, 그러니까 하숙집 담벼락에 거의 붙은 그집 대문에서 굵다란
대막대가 무단 도로점용을 한 상태였고, 위에는 스위스 국기는 아니고, 어쨌거나
빨간색과 흰색 깃발이 나귀 꼬리처럼 매달려 있었다. 바람이라도 분다면, 아니
바람이 불어도 내가 보기에 영원히 나귀 꼬리를 면치 못할 모양새였다. 

 '영험보살', 이 무당집 간판이었는데 간판으로 보자면 대체 영험이 없어 보였다.
영험 있는 무당은 준재벌급이라고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 영험 있는 무당이
찌그러지며 살 일은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서 나는 무당을 찾아가서 대입 운세를
한번 쳐볼까 장난스러운 상상을 했다. 복채를 달라고 하겠지. 그런데 무당은 눈빛이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서 마주쳤다가 기절하면 어쩌지? 아서라, 요즘 같은 정보통신
시대에 무슨 점이고 무당? 그런 건방 때문에 나는 더 용감해졌다.

 무당집은 대체 영업은 하는 거야? 아침에 학원에 갈 때 발로 깃발을 툭 찼다.
파르르 떠는 깃발이 재미 있었다. 하숙집에 돌아와 대문을 들어가기 전에도
깃발을 걷어찼다. 대막대는 뽀대만 굵었지 큰 소리는 나지 않았다. 또한 무당의
얼굴은 고사하고 그 집을 드나드는 사람이나, 염불 아니 주문인가? 암튼 북은
고사하고 괭가리 소리 한쪽 들리지 않아서 대체 사람이 살기는 하는거야, 의문이
들 정도였다. 

 깃발을 걷어차고 타타닥 골목길을 내려갈 때 즐거웠다. 학원에서 지친 몸(부모님이
읽으실까봐 이렇게 적었음)을 이끌고 대문 앞에 서면, 확인사살용으로 또 한차례
걷어차고 하숙집 골방에 기어들면 종아리에 피가 휙휙 돌아갔다. 그건 곧 일종의
습관이 됐다. 워낙 후미진 동네라서 대체 주말이나 휴일에도 나처럼 싸돌아 다니는
위인들이 없었다. 나갈 때 걷어차고 들어올 때 걷어찼다. 빨강과 흰색은 저 멀고 먼
스위스 (이건 너무 고상하다)가 아니라 일본군 깃발이 됐다. 2차대전, 반자이를 외치며
깃발을 앞세우고 돌격하다 몰살 당하는 바보 일본군들. 내가 조선인의 복수를 제대로
해주마. 나름 사명감을 가지고 걷어차니 그 맛이 색달랐다. 나갈 때 차고, 들어올 때
걷어찼다. 툭툭 대막대기에서 공명 소리가 튀어나오면 즐거웠다. 멈출 수가 없었다.
나갈 때 또 차고, 들어올 때 또 찼다. 그러니까 차고 차고 차고 차고 찼다. 계속 그런 식으로
차고 들락거렸다. 나중에는 깃발이 나를 걷어차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찼다.

 그날도 골목길을 내려가기 전, 딱 걷어차려는데 덜컹, 쪽문이 열렸다. 옥색 치마저고리
차림의 마귀할멈은 아니고, 우리 어머니보다 스무살은 더 들어보이는 할머니, 그래
몸집 좋은 할머니가 나타났다. 총알처럼 내린 다리를 뒤에 털면서 한손으로
어이구, 든실한 깃발이구나, 하는 표정을 힘주어 지어가면서 대막대기를 쓰다듬었다.
그때 딱 눈길이 마주쳤다. 쏘아보는 눈길이어서 얼른 몸을 돌리고 골목을 향해 튀었다.
다행히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다고 한번 들인 습관이 쉽게
바뀔 리는 없다. 하숙집으로 들어가기 전 걷어차고 들어갔다. 인사는 제대로 해야지. 

 그날은 주말이었다. 오라는 곳도 없고, 갈 곳은 많아도 용돈이 따라주지 않아
골방에서 스마트폰으로 텔레비전을 보다 게임을 하다 엎어졌다뒤집어졌다 했다.
빨래는 하숙집 주인이 세탁기 전기요금이 꽤 나온다면서 벌벌 떨면서도 잘 해주었다.
EBS를 볼까 하다가 벽을 꽉 채운 참고서들을 노려보다가 결국 최선의 선택을 했다.

컴퓨터를 켜고 영화 한 편을 보기로 한 것이다. 그것도 어제 사와서 먹다남은
치킨은 뼈만 남아서 그렇고, 팝콘을 싱싱 입에 던져 넣으며 애니메이션 한편을
플레이 시켰다. 영화는 의외로 재미가 없었다. 영화방에 올린 녀석은 별이 다섯개에,
올해의 최고 역작 운운하더니만 제대로 낚였다. 하긴 내가 바보지. 
그러다가 어느 순간 깜박 잠에 떨어졌다,가 아니고 꿈인가 생시인가 그런 뒤숭숭? 
어리둥절? 오락가락? 좌우지간 비몽사몽 같은 상태에 빠졌다. 

 큰 대자로 쿰쿰한 이불 위에 누운 상태였다. 그때 천장에서 시커먼 녀석을 보았다. 
하나가 아니고 둘이었다. 크기는 딱 원숭이 정도. 그런데 생김새가 세상에나 원, 
얼마나 끔찍하고 무섭던지 표현하기 어렵다. 지구에서 부딪힌 최초의 공포요 경악이었다.

 내가 나 자신을 어디가서 제대로 표현을 못하는 위인이 처음 보는
망가진 원숭이 같은 녀석, 아니 종자를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그래도 억지로 그리자면,
원숭이가 차에 받혀서 몇 미터를 쉬잉 날아가다가 하필 거기 서 있는 가로수에 정통으로
받힌 다음, 바닥에 굴러떨어진 녀석을 짜장면 오토바이가 들이받아서 흘러내린 짜장면이
녀석을 온통 원숭이 짜장으로 만들었다,고 하면 맞겠다. 

(내가 적고나서 다시 읽어보니 이렇게 완벽한 표현은 내 생애 처음이다. 
그래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내 글 탓이 아니다. 억울하겠지만 본인의 상상력 빈곤을 탓해야 한다. 
저 문장은 대입 에세이에 꼭 써먹을 생각이다.)

 나는 화등잔만한 눈이 되어서 천장을 노려보았다. 녀석들은 영화에서 뽕 맞은 애들처럼
오락가락 하더니만, 한 녀석이 곧장 내 목을 향해서 떨어졌다. 그리고는 사정 없이
내 목을 졸랐다. 숨을 전혀 쉴 수가 없었다. 비명소리조차 내지를 수가 없어서 나는 이불을
손가락으로 박박 긁으려는데 손조차 굳을 것처럼 움짝달싹 할 수 없었다. 태권도와 유도를
몇 달 배운 실력이 있었지만 대체 한 주먹 감도 안되는 녀석에게 어처구니 없이 당하다니.
이건 가문의 망신이다. 그러나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눈동자만 간신히 돌아갈 뿐 온 몸이
마치 결박당한 것처럼, 정말이지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눈 앞에서 녀석은 까만 송곳니를 세우고 계속 내 목을 졸랐다. 비겁하게도 또 한마리가
내 위에 떨어져 몸을 깔고 앉았다. 이건 페이플레이 정신이 아니다. 하긴 간짜장 원숭이가
페이플레이를 알기나 할까. 내 머릿속에는 오직 한 생각 뿐이었다. 

죽어가고 있구나. 죽음은 이런 거구나. 

 나는 온 힘을 다해 주일학교에서 배운 하느님, 예수님, 마리아, 모세, 삭개오, 베드로, 안드레,
빌라도, 유다 기억나는 대로 떠들었다. 사실 말이 안튀어나오니 떠들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여전히 죽어가는 중이어서 나중에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전신에서 힘이 쭈욱 빠졌다.
죽을 때는 지나간 과거가 영화 필름처럼 주르르 흘러간다더니, 정말 흘러갔다. 잘한 짓은 없고,
모조리 나쁜 짓, 험한 짓, 불량스러운 짓, 못된 짓, 하필 그런 과거가 선명하게 흘러갔다.
정말 죽는구나. 3류 극장처럼 필름이 좀 끊어졌으면 싶었다. 죽을 맛이 아니라 죽어갔다.
아버지, 어머니, 누나, 누이들아, 이모, 고모, 삼촌, 선생님, 저 가요, 용서하세요. 
슬퍼져서 눈물을 좀 흘리고 싶었으나 간짜장이 계속 눌러대서 명색이 사내가 찌질한 모습은
보이기 싫었다. 음악 선생님, 잘 계세요. 우린 인연이 없나봐요. 

입술이 풀린 건 그때였다. 하느님, 예수님, 마리아 까지 튀어나왔다. 그 순간, 한마리는 손바닥만한
창문으로 타닥 튀었고, 다른 녀석은 어두운 방문을 통해 바로 사라졌다. 자세히 보자 창문과
방문은 꼭 닫힌 상태였다. 손으로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다행이 목 위에 머리가 정상으로
붙어 있었다. 내 몸뚱이도 그대로였다. 살았구나. 살았구나. 비로소 안도의 숨이 터져나왔다.
죽음을 이긴 사나이. 그래, 이 정도면 죽음, 아니 악마, 사탄, 마귀, 좀비, 드라큘라, 프랑겐슈타인과
싸워 이긴 사나이가 되고도 남는다. 그때 방문을 열고 주인 아주머니가 계란 노른자로 범벅된
얼굴을 디밀었다. 매너도 없다. 그렇게 하루에 한 차례 노크 좀 하시라 해도 도무지 노크를
하는 적이 없다. 손은 멀쩡하고 쌩얼은 아무리 다듬어도 그 얼굴이 그 얼굴인데 그 쉬운 노크를
도무지 할 줄을 모른다. 어쨌거나 대들면 나만 손해다. 반찬과 국이 달라질테고, 컴퓨터가 전기를
많이 먹는다며 군시렁댈 게 분명했으니 나는 즉시 꼬리를 내리고 몸을 일으켰다.

" 학생, 무신 잠꼬대를 그렇게 심하게 한다야? "
" 잠꼬대를 했다고요? 에이 설마. 전 코도 안골아요 !! "
" 잠 자는 사람이 우찌 그걸 아남? 코골이 땜에 내가, 아냐, 아무 일 없으면 됐어. "

 콧잔등에 걸친 노른자가 떨어지려고 하자 서둘러 문을 잠갔다. 아까운 노른자. 대체 내게 후라이를
하나 더 해주는 게 낫지, 매일 똑 같은 얼굴에 노른자와 오이를 떡칠하는 이유가 뭐람. 나는 투덜대면서
컴퓨터를 끄고 물리책을 집어들었다. 공부를 하려고 했다면 부모님이 얼씨구 춤을 추시겠지만, 
물리책을 밑에 깔고 손톱과 발톱을 깍았다. 따각 따각 소리를 들으니 좀 진정이 됐다.
그렇구나. 몸에서 덧자란 것들이 사라지는 건 좋은 거야. 대학입시도 손톱깍기로 손발톱을 깍는 것처럼
경쾌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에이, 말을 말자. 

 경쾌한 날은 그날까지였다. 다음날 아침 나는 온몸이 절절 끓어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다행히 휴일이어서
큰 누나가 와서 아버지가 건네주었을 용돈을 자기가 주는 것처럼 잔뜩 생색을 내며 건네주고, 열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남동생을 남겨두고 즉시 떠나버렸다. 야속한 누이여. 꼬박 사흘을 앓았던 모양이다.
나중에 눈을 떠보니 어머니가 세상 근심은 다 짊어진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공부보다 몸이 우선이야. 당장 병원 가자!! "
" 병원은 무슨.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합격해야죠. 날밤 새며 무리를 해서 며칠 쉬면 돼요. "

 어머니는 내가 당장에 서울대나 KAIST에 합격이라도 한 것처럼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졌다.

" 그래 그래. 울 아들 최고지. 엄마는 널 믿어. 그래도 몸이 우선이니 쉬어가면서 공부하렴."

 딸기를 내 입에 넣어주고, 오렌지를 까고 바나나도 까지고 사과도 깍아지고 입이 정신이 없었다.

 결국 어머니에게 실토를 했다. 어머니는 갑자기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 아니 이런 마귀 새끼들. 이 에미가 기도를 소홀히 했더니 울 아들을 괴롭혔구나. 일어나라,
기도하자! "

 아 이런, 괜히 말했다. 어머니 기도 한번 시작하면 가정예배 드리던 멤버들 모두 나자빠지는데.
할 수 없지. 나는 몸을 세웠다. 최소한 30분은 각오해야 했다. 

어머니는 머리 벗겨진 목사님, (나는 목소리를 늘 최저음으로 깔아대는 이분이 정말 싫었다.
믿습니까, 라는 표준어를 안쓰고 꼭 미이씹니까! 아 두드러기다.) 이 공인 여집사 1호라고
입에 침을 튀면서 인정할 정도였다. 30분, 지옥이 따로 없었다. 이 정도는 사실 약과였다. 

오죽했으면 무신론자인 아버지가 어머니가 구역 식구들 모셔와서 2시간을 기도하는 바람에 
몇 차례 쫄쫄 굶더니 자진해서 교회에 다니겠다고 했을까. 물론 집에서 기도 시간이 30분을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어머니는  중간중간 얼얼딸딸 방언기도까지
보태서 죽을 맛이었다. 내가 보기에 성경에서 (원하는 대학에 붙으리라 확신하던 예전에는 좀 읽었다)
보여주는 정상적인 방언은, 알아듣지는 못해도 정상적인 문장, 걸맞는 통역, 그리고 가급적이면
골방? 그렇지 골방은 맞다, 혼자 하라고 했는데 우리 어머니는 막무가내, 전투형이다.
이 지옥도 견뎌야 했다. 물론 내 꿍꿍이는 조금 후에 밝혀지겠다.

 지옥에서 살아온 나를 놔두고 어머니는 내 이마를 손으로 한번 짚은 후 대문으로 나갔다. 

" 기도 했으니 이제 얼씬도 안할꺼다 !! 못된 마귀 새끼들 ! 걱정 말거라. "

늘씬한 어머니가 언제 몸이 저리 불었을까. 피부도 꽤 상한 것 같았다. 나는 속이 짠했다.
이 못난 아들 탓에 괜히 어머니가 고생하는 게 아닌가. 효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내 속셈은
보나마나 뻔했다. 어머니 메이커제 코트 자락을 붙잡고 늘어지자, 결국 어머니는 지갑을 열고
두둑한 용돈을 내게 건넸다. 징그럽지만 이럴 땐 과감한 제스처가 필수다. 나는 어머니 손에
입을 맞추고는 열 걸음 정도 배웅까지 한 후에, 공손히 잘 가시라고 인사까지 했다. 

 다음 달, 좀 더 번듯한(대문만)  하숙집으로 옮겼다. 마귀가 쫒겨 가는 대신 내가 쫒겨났다.
아니, 내가 기분이 좋지 않다고 이사를 가겠다고 하자 부모님은  묵묵히 허락을 했다.
아버지는 이삿짐 센터에서 차를 같이 타고 오신 후, 바쁘다며 내 어깨를 두드린 다음 
돈봉투를 찔러주고 곧장 사무실로 돌아갔다. 
서울에 상경한 친구 몇이 달려와 이삿짐 나르는 걸 도왔다. 
대신 나는 거금의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의리 없는 친구들. 치킨 못 먹고 죽은 귀신들.
마지막으로 하숙집을 떠나면서 나는 깃발을 돌아보았으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대막대기
조차 뿌리가 뽑혀 어디로 달아난 것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의아하면서도 섬뜩했다. 내가 
이사 가는 걸 알고 혹 따라붙는 건 아닐까? 벼라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대로 떠난다면 혹
후환이 돌아오는 건 아닐까? 그때 대문 밖에서 섭섭한 얼굴로 나를 전송하던 주인에게
턱으로 무당집을 가리켰다. 

" 상도동으로 어제 이사갔대. 여기가 그렇지 뭐. 나도 안가는데... "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후 다행히 후환이나 후유증 같은 건 없다. 이제 할 말은 다했다.
후유증은 없다. 정상이다. 정상이니까 이렇게 멀끔, 아니 멀쩡하게 글을 쓰고 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믿든 말든 이건 내게 벌어진 일을 그대로,
사실 없이, 아니 사심없이 모두 밝혔다. 나는 교회를 다닐 때도 천사와 악마 따윈 믿지 않았다.
 
그때 천사라면 모교 음악선생이요, 악마라면 툭하면 내 머리를 분필로 갈겨대던 화학 선생이다.
그러나 지금은 변했다. 천사? 아니 우선 악마는 믿는다. 분명히 존재한다. 생긴 건 간짜장 원숭이다.
그 모습을 그리라면 지금도 그릴? 아니다 그림 솜씨가 따라주지 않아 아쉽다. 분명 악마는 존재한다.

 깜박 놓친 얘기가 있다. 새 하숙으로 이사가 끝난 후 돌아가던 한 친구가 내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 짜식, 너 그 하숙집에 몰래 여자 데려왔었지? "

" 여자는 무슨? 내가 여자 알러지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냐. 살 떨리는 얘기 마 ! "

" 아줌마가 관 두라는데 마지막 방 청소는 내가 했잖아. 길다란 머리칼이 수북하더라. 
많은 정도가 아니라 미용실 쓰레기로 착각할 만치. 그런데 이상하지? 뻣뻣하고 윤기도 없고
냄새도 불쾌하고 기분이 진짜 묘하더라. 그런데서 대체 어떻게 살았냐?  전혀 몰랐어? "

  그때 나는 눙치지 말라며 놈의 등짝을 한대 쥐어박으면서도 모골이 송연해졌다.

  악마 조무래기라는 귀신이 있으니, 천사도 존재하리라 믿는다. 
 음악선생, 그 아리따운 여 선생님, 제기럴, 5년만 기다리지 아마 어떤 놈팽이 같은 녀석이 
벌써 채갔을 지 모르겠다. 그 천사말고 악마를 상대하는 진짜 천사가 있다고 믿는다. 
물론 내 친구들 몇은 나를, 이 앙마 같은 놈, 이라고 놀린다. 걔들은 내가 번듯한 대학에
입학해서 복수? 아니지, 그러면 진짜 앙마가 된다. 갑자기 내 친구들이 보고 싶다.
 
벚꽃 만발한 지금 미팅한다고 머리칼에 무스 발라 세우고, 남성용 향수까지 
찍찍 뿌리고 있을 텐데. 기다려라, 진짜 사나이가 간다!  (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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