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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이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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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앙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09회 작성일 16-04-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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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이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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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앙보르

 그 사고가 있은 이후, 부대는 생쥐집처럼 조용해졌다. 

그러니까 갓 일병이 된 녀석이 총구를 턱에 붙이고는 방아쇠를 당겨버린 것이다. 
후방이라서 경계근무나 심지어 한미스피릿 합동훈련 중에도 실탄은 배분하지 않았다. 
실사 훈련 때 타겟과 탄피를 소홀히 했거나, 무기고 일일점검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군수과장은 대대장한테 조인트를 불이 날 정도로 까인 다음, 
실무자인 양 병장과 함께 사단 군수사대로 넘겨졌다. 당연히 대대장은 연대장 진급을
포기해야만 했으나, 나를 비롯해서 다른 사병들은 그저, 국방부 시계야 제대로만 돌아라,
그런 기분이었다.

 소문은 일 주일 정도 지나서 안개처럼 병영을 뒤덮었다. 야간근무 때 자살한 김 일병이
철조망을 어슬렁거리다 사라진다고 했다. 사수인 정 병장은 나를 바라보며 킬킬
웃었다.

" 복인 줄 알아! 경계근무 면제 받는 거 아무나 되는 거 아니다. 내일 새벽까지 현황판
제대로, 오우케이? " 

 정훈교육은 인사과가 아니라 군수과로 넘어왔다. 연대전투단 평가가 목전이어서 인사과는
군수과로 넘겼고, 군수과는 자연 초상집, 아니 초상과라서 우리 정보작전과로 낙찰됐다.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나와 후임병 이렇게 둘이서, 새로 하달된 작전계획을 수정하고, 
대대장 상황판까지 전부 새로 작성하려면 이틀이 주어져도 모자랐다. 거기다가 핵무기대응요령,
정훈교육교재까지 작성하려면, 젠장, 이틀은 더 걸리는데 그걸 내일 새벽까지 하란다. 
뻔히 알면서도 꼬꼬댁 정 병장은 나 몰라라, 어디 후미진 구석에 처박혀 한 잔 땡기려고 사라졌다.
정작과장이 떡 버티고 있었으면 서브 자료라도 챙겨줄 텐데, 과장님마저 연대에 출장을 간
처지라서 그림의 떡이다.

 후임 최 일병은 나처럼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입대한 통계학과 출신이다. 두뇌회전이
빨라서 가르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던져주면 알아서 착착 하는 스타일이다. 더군다나 
수리에 약한 나는 제대 후 도전하고자 하는 시험이 있어서, 업무가 뜸한 시간이면 녀석에게
개인교습을 받는 처지라서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인성이 좋아서가 아니라 행정병은
가족이나 마찬가지라서 웬만한 훈련이나 손찌검이나 얼차려,라는 건 우리 역사에 없었다.

 꼬꼬댁(일은 안하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술만 퍼마시는 사수)은 어디서 알딸딸한 채로
홀딱 벗은 여자 사진을 보거나, 곰팡이 무성한 사타구니나 주무르고 있겠지. 
 역시 최 일병은 달랐다. 내가 잔뜩 늘어놓고 한숨을 쉬자, 녀석은 자료를 딱 세 등분시켰다.

" 한 상병님, 어차피 새벽까진 글렀잖아요. 내일 아침 대장님이 무얼 찾을까, 중요도로 따져서
일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

" 햐야, 너 맘에 든다. 일루 와라. 형이 뽀 한번 해주마. 그렇지. 핵무기 어쩌구 저쩌구는 대장님이
찾을 리 없고, 음, 먼저 대대장실 상황판이 제대루 됐는지 보겠지. 돼있다면 우리 정작과장님이
들어가서 브리핑 하려면 얼추 한 시간? 수정사항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 그래, 네 말대로
하자, 어이구 이쁜 내 똥강아지! "

 나는 정말 녀석이 기특해서 꼬불쳐둔 봉지커피를 한 잔 타서 후임한테 상납까지 했다. 그래
네 놈이 말했으니 적당히 하다가 나는 내무반에 올라가 잘란다. 크크. 

 새 벽 두시 정도로 기억한다. 대대장실 상황판을 정리한 후, 작전과로 돌아올 때 최 일병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수정사항 욧점 정리는 전동타자기로 두드려서
책상에 올려놓아서 최 일병도 별 어려움은 없을 듯 싶었다. 내 책상을 대충 정리한 후,
내무반으로 올라가려다 녀석을 기다렸다. 

 사방을 안개가 뒤덮어서 경비등마저 기가 잔뜩 죽었다. 그때 저쪽에서 거친 발자욱 소리가
들려왔다. 최 일병이었다. 섬뜩했다. 표정이 전혀 최 일병, 녀석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보작전과 사무실 문을 지키고 서있던 나를 안으로 밀어붙이더니 와락 끌어안았다.

" 똥 막혔니? 왜 이래, 최 일병!! "

 어깨를 밀어내며 녀석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맙소사. 눈동자가 돌아간 상태였다. 인사과에
바로 전화를 했다. 새끼들, 지들도 야근한다더니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최 일병을 거칠게 흔들었다. 그러다가 결국 따귀를 한 대 갈겼다.

" 한, 한 상병님!! 김 일병, 김 일병이... "

" 새캬, 먼 말이야? 정신 못 차려? "

" 내무반 앞 화장실에, 화장실에... 거울에... "

 녀석이 입에 거품을 흘리며 손으로 화장실을 가리켰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떠도는 소문을 나는 믿지 않았다. 귀신 따윈 무시했던 것이다. 거칠게 따귀 한 대를
더 갈겼다. 그리고 위병소에 딸딸이 전화를 걸었다. 대낮도 아닌 한밤중에 한적한 군부대에
출입자가 있을 리 없었다.

 하는 수 없었다. 꼬꼬댁을 찾았다. 다행히 꼬꼬댁은 불콰해진 얼굴로 팬티 바람에
뗏국물이 꼬질꼬질한 벼게를 허벅지로 꼭 껴안고 내무반에서 푹 곯아떨어진 채였다.
잠에 떨어진 꼬꼬댁을 깨운다는 짓은, 정말이지 미친 짓이다.
옆구리를 몇 차례 쿡쿡 쑤신 다음 멀찌감치 떨어졌다. 아니나다를까 
잠을 깨지도 않으면서 팔다리를 사정없이 휘둘렀다. 말년 갈참이라 이거군.
나는 열이 뻗쳐서 발끝으로 툭툭 옆구리를 걷어찼다.

 " 니, 뭐꼬? "

" 충서엉, 임무수행 완료, 보고하러 왔습니다! "

" 니기미, 잠 좀 자게 놔둬라. 꺼지그라! "

" 우씨, 정말 난리났어요. 대대장님,  우리 과장님이랑 확인한다고 지금 와 계시지 말입니다! "

 역시 대장님 최고시다. 꼬꼬댁, 양말부터 하의, 상의, 군모, 머리 만지면서 군화까지 꿰차는데 30초? 

 정작과 사무실에 내려오자 하수가 보이지 않았다. 뜻밖에도 녀석은 위병소에 내려가
찬물 맞은 병아리처럼 떨고 있었다.  그제서야 꼬꼬댁은 이성을 되찾더니 하수의 어깨를
껴안고 정작과 사무실로 올라갔다. 물론 내게도 역정을 내지 않았다.

 화생방 교안을 남겨두고 시계를 보자 새벽 네 시경이었다. 희붐한 새벽은 안개에 파묻혀서
오전 10시나 지나야 가라앉을 듯 싶었다. 나는 그제서야 밀린 소변을 보러 화장실로 향했다.
내무반 아래 화장실은 꺼림칙해서 위병소 뒤 간이 화장실로 내려갔다. 불꺼진 위병소는
암구호만을 확인한 후 다시 적막한 어둠에 휘감겼다. 짜식들, 제법이군. 나 같으면 엎어져 잘텐데.
간이화장실은 딱 일인 용이다. 푸세식이라서 숨을 멈추고 쓰러지는 편이 나았다. 
누군가 그래도 화장실이라고 손거울을 하나 걸어두었다. 물이, 말라비틀어진 잠지에서 나오는
소변처럼 찔찔거렸는데 그 소리조차 반가웠다. 

 정신도 멍하고 해서 수도꼭지를 틀고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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