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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초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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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앙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1,112회 작성일 16-05-08 21:10

본문

 

[엽편소설]       초콜릿                               / 시앙보르

 

 

 

  오늘은 다섯 명뿐이다. 주문 받은 간식거리는 빵과 우유를

벗어나지 않는다. 과일이 필요할 듯 하지만, 영양사의 치밀한

계산 가운데 제공되는 식사가 좋아서인지 예외다.

 

  재경은 장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보호소로 올라갔다.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라서 까다로웠지만, 담당 직원은 출입카드를 건네주고,

미소를 머금은 채, 선선히 안내를 해주어서 어려움이 없었다.

뭔가 빠뜨린 게 있었어, 그게 뭐였지? 그 생각도 잠시뿐, 이리저리

복도를 돌고 계단을 올라갔다.

 

 가까운 곳에서 뱃고동 소리가

창문을 넘어왔다. 떠나가는 배에는 미련이 없다.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귀항하는 배는 차마 마주치기

싫었다. 접안시설에 트랙을 내린 카페리호의 마지막 승객이 나오고도

얼마나 오랫동안 지켜보았던가. 그는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 트랙을

걷어올린 페리호가 물러설 때, 난간에서 육지로 훌쩍 뛰어넘는 그를

상상하는 일은 부질 없었다. 그런데도 항구를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는

것이다. 다음 번 배에서는 그가 내릴 것이다. 가무잡잡하고 균형 잡힌

얼굴과 몸이 뛰어내려 달려올 것이다. 그 다음 번 배, 그 다음의 다음의

배에서 그는 내릴 것이다.

  아냐, 그는 결코 오지 않을꺼야. 재경은 머리를 흔들며,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올 수 없고, 갈 수 없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슬픔은 일상적이어서 얼굴의 점이나 손등의 가벼운 상처처럼 곧장

잊혀지거나 사라진다.

 

  밀입국자나 불법체류자는 출입국사무소 보호소에 구금됐다. 짧게는

하루, 길면 일 주일 정도 그들은 행동반경을 제약 받았다. 크고 작은

8개의 룸은 중앙을 기준으로 양편으로 갈라진 채 노출이다.

여성보호실은 어제와 달리 한가롭게 보였다. 수용자의 국적은

재중동포가 압도적이고, 파키스탄, 대만, 네팔,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인도, 중국, 드물게는 미국, 일본, 독일, 남아공, 스페인 등이다.

독일이나 미국 국적은 갇혔다가 대사관에서 전화를 몇 통 걸어오면

보통 하루를 넘기지 않았다.

 

다 나갔어. 쟤네들도 내일 쯤 나갈꺼야.

 

제복이 잘 어울리는 김 언니가 환하게 웃었다. 재중동포 1명, 네팔에서

왔다는 여자는 철창 너머에서 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재경을

내려다봤다. 몸을 낮추고 빵과 우유를 건네주다 문득 아이를 챙기지

못했다는 게 속상했다. 얼굴이 하얀 아이는 투박한 한국어로 어제

재경을 향해서 말했던 것이다.

 

초콜릿, 초콜릿 하나요.

 

이목구비가 선명한 아이 엄마도 부탁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 아빠는 한국인이 아닐까 싶었다. 중국인이나 일본인일 수도 있지만

그런 사연이야 이곳에서는 일상다반사라서 그냥 그랬다. 취업비자나

관광비자로 들어와서 불체자 신분으로 지내다가 임금착취 그리고 

한국인 남자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고 헤어지고 도망가고 다치고 죽고...

 

  아이가 재경을 향해 손을 내어밀자 엄마가 팔을 끌었다. 눈을 피하려다가

재경은 아이를 향해 손을 내밀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내일, 꼭 챙겨올께.

 

쇠창살로 구분된 세계는 필요악이다.

일본 요코하마 보호소에서 3개월을 버틴

재경에게는 사실 길어봤자 일주일에 불과한 한국의 보호소는 낯선 장소를

체험하는 여행 비슷한 거였다. 재중동포는 다소곳하게 재경을 향해

수고했다고 머리를 숙였다. 이쁜이. 유흥가를 전전하다 붙잡혀서

강제송환될 처지인 젊은 처자들을 이곳에서는 이쁜이라 불렀다.

눈에 띄게 이쁜 얼굴은 아니지만, 표가 나는 기미와 누런 황달기, 그리고

지친 눈매에서 염세적인 기운이 조금 묻어나왔다.

재경은 잠시 몸서리를 쳤다.

 

  대기공간을 둘러싼 커다란 화분들을 뒤로 하고, 위층 남자보호실로

올라갔다. 어제는 열 명이었는데 오늘은 세 명 뿐이어서 한가롭게

보였다. 텔레비전을 보던 남자 셋이 쇠창살 틈으로 간식을 건네받으며

누런 이를 내보이며 웃었다. 비누향이 진하게 넘어왔지만, 그 틈에서

번지는 악취는 갇힌 공간의 냄새이리라. 


요코하마 보호소에서도 그랬다. 동해가 내다보이는 대신에 도쿄만이

호수처럼 고여 있어서 7층에서 내려다볼 때마다 아득해지곤 했다.

중국인과 한국인이 거의 절반이었고, 드문드문 필리핀, 파키스탄 국적이

머물다가 떠났다. 요코하마 보호실에서는,

샤워장에서 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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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두무지님의 댓글

profile_image 두무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휴~~
고매한 품격을 가진 소설이라는 생각 입니다.
심오한 내용 뭐라고 감히 평할 수 없는 안타까움 입니다.
몇번 읽어보며 배우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시앙보르님의 댓글

profile_image 시앙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반갑습니다, 두무지 시인님.

심오한 '시'는 있어도 심오한 '소설'은 없습니다.
평범한 잡문에 불과한데 과찬에 얼굴이 뜨뜻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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