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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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나와야곱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255회 작성일 16-05-26 14:21본문
혀
성경에서 혀에 관한 구절은 여기 저기 많고. 신명기를 읽다보면 이런 구절도 있다. 칼에 맞
아죽은 사람보다 혀에 맞아 죽은 사람이 더 많다!.., 몽둥이에 맞으면 흉터가 남지만 혀에
맞으면 허리가 부러진다!.., 는 구절도 있다.
모세 오경 중 신명기가 쓰인 시기는 기원전 7세기경 이라고 알려져 있는 율법서이다. 이스
라엘 율법의 최고 권위자인 모세의 입을 열어 이스라엘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을 제시
한 것이다. 그러니 그 시대에도 혀로 인해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나 보다? 아니 사람
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기 이전부터.., 아담과 이브도 수 백년을 함께 살았으니 어땠을
까?... 아마 서로에게 자잘한 상처를 주며 살았을 것 같다. 사실 부부간의 말다툼은 때로는
하루가 멀다 않고 애증(愛憎)이라는 미명(美名)으로 사랑하며 다투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내 삶이니.., 그래서 부부는 생전에 원수가 현세(現世)에 만나 부부가 된다는 불교에서 하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해마다 천주교 신자의 그 숫자는 많아진다고 하지만 대부대모와 대자 대녀의 관계뿐만 아
니라 모든 소 공동체역시 신앙과 친교(親交)를 기초로 이루어 질 때 그들 사이가 자연스럽
고 신앙생활도 재미스러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새신자도 기존의 신자도 길 잃은
양 중에는 대부 대모에게 그리고 소 공동체 안의 신자들에게서 상처를 받고 냉담 하는 경우
가 냉담사유 셋 중에 두 번째로 많다고 하는 조사가 나오기도 하였다. 왜 그럴까?.., 깊이 생
각 할 것도 없이 그것은 바로 내 혀! 때문이다. 사람의 오관(五官)이란 두개의 눈과 두개의
귀와 코, 그리고 입과 혀를 말하는 것인데 이 오관중 입과 혀만큼은 하나뿐인데 혀가 입안
에 숨어있는 듯 한 것은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 라고 하여 입은
화를 불러들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라고 하는 것처럼 서로 보완 관계에 있어
하여야 할 말을 제때 잘 가려서 하라는 숨어있는 의미라고 생각하고 싶다.
말이란 자신의 입안에 있을 때는 내가 주인이 되지만 그 말이 나를 벗어 날 때는 그 말이 나
의 주인이 되고 그 말에 끌려 다니게 되기도 한다.
때로 우리는 나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는 경우가 있다. 돌아보면 지워지지 않는 어두운 그
림자 처럼 해 묵은 지나간 옛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지난 날 그때 그 사람에게 왜 그렇
게 말하였었지?... 왜 내가 그때 나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하였을까?.., 하며 자신(自
身)을 놓쳐버린 지난 일에 후회(後悔)하는 아픔이 나를 흔들때가있기도 하다는 것을 모든 사
람이 알아주었으면 싶다. 그래야 뒷날에서라도 용서가 쉬어질 것이니 말이다. 우리의 마음
안에는 나 아닌 또 다른 내가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아주었으면 싶다. 사람이란 저런
가? 하면 이렇고 저런가? 하면 이런 모습을 보기도 하는데 어느 것이 그 사람의 참 모습인
지?... 그래서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되는 사람의 마음은 알 길 없는 것이 우리 내 삶이
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중에 남에게 용서를 청해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
면 거의 모든 원인은 내 혀에서 나간 내말 때문이다. 그래서 남에게 내 잘못의 용서(容恕)를
청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첫 번째가 바로 그것일 것이다. 나도 물론 그중에 한사람이며 앞
으로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에게도 마주치면 겨우 고개 숙여 인사나
하며 지내는 그런 사이인데 ... 어쩐 일로 의도적(意圖的)으로 여러 사람 앞에서 나에게 저
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말을 듣기도 하였지만 따져 묻지도 않았고 상처로 키우지도 않
았다. 마주치면 예전처럼 내가 먼저 손 내밀어 손을 잡고 지낸다. 깊은 상처로 만드는 것은
내 자신이다.
참된 용서는 무척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만약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일 경
우,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더 용서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용서를 해야
하는 이유가 꼭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 때문이기도 한 것은 용서하지 않으
면 내 죄가 용서 받을 수 없고 그런 인간적인 감정 안에 머물러 있을 경우 교회 내에서는 하
느님과 등을 지고 냉담까지 하는 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도 용서에 관한 구절은 구약(舊約)에서도.., 복음서와, 바오로 서간 등 에서도 여기저
기 많이 쓰여 있으며 때로는 그 잘못이 나에게서 먼저 나가는 경우가 있어 예수님이 우리에
게 이런 한마디 말씀도 있었다. (마태, 7:3.)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
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과 용서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말에 관한 경구(警句)도 많은데.., 말할 때를 아는 사람은 침묵할 때도 안다! 말을 배우려
면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려면 60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해인 수녀님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트위터 메시지를 묵상하며 썼던 글 중에는 교황의
기도가 있는데..,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가 힘듭니다! 주여, 당신의 자비를 허락하시어, 저
희가 늘 용서할 수 있게 하소서!" 하는 글인데 용서는 참 쉽지 않은 일인가 봅니다. 교황님
조차 이런 기도를 올렸으니 말입니다.
우리의 스승이신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친히 가르쳐주신 단 열 줄
도 안 되는 유언과도 같은 주의 기도! ...오늘 저희에게 잘 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 하오
니... 인간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채찍으로 때리고 가시관을 씌워 마침내는 자신을
못 박아 십자가에 매달게 한 그 사람들을 위하여 아버지를 부르며한 절규(絶叫)도 용서(容
恕)였었다! “아버지 저들은 저들이 하는 잘못을 모르오니 저들을 용서하소서!” 라고하신 그
마지막 절규가 지금도 그리고 세상 끝날 까지도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것에 모르쇠로 외면
하며 돌아서지 말아야 할 것 이리라!...
믿는 이들에게 보상(報償)으로 주어진 부활 주간이다. 꽃피고 새가 울며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나름대로 폼을 내는 시절이기도 하다. 자! 이런 시절에 나 홀로 조용히 길을(나
를) 찾아 산과 바다로 사랑도 미움도 모두모두 벗어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 보자!
심 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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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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