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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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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청산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10회 작성일 16-07-02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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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단편소설]"

청산

   나는 운명처럼 다가와 열병처럼 앓아보는 사랑이 내게도 한번쯤 일어나기를 바랬던 시절이 있었다. 총각시절 연애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중년의 나이에도 그런 불온한 기대가 나의 의식 밑바닥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때가 가끔 있었다.

그런데 나의 사전에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될 사건이 같은 한 아파트 그것도 바로 옆집에서 잉태되고 있었을 줄 그 누가 짐작이나 했으랴.

  그녀는 걸음 거리가 달랐다. 보통보다는 조금 큰 키에 허리 잘록한 그녀가 지나갈 때면 사내들의 눈은 이내 곡선이 선명한 그녀의 뒷모습에 시선을 빼앗기곤 하였다. 

늙은 아파트 관리인 아저씨도 그녀에게 한 눈 파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러다가 나에게 들킨 아저씨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 휴지를 줍는 척 하였다. 

낭창낭창 수양버들처럼 휘어져 걸어가는 그녀의 걸음걸이는 범상치 않은 그녀의 이력을 말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여자인지 전혀 모른다. 다만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 단 둘이 몇 분씩 시간을 보내곤 하였는데, 늘 고개를 돌리고 돌아서 있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한 번은 인사를 건네었더니 계면쩍은 얼굴로 
"아, 네, 안녕하세요" 
겨우 한마디 멋쩍게 대답해 왔다.

늘 그녀의 아파트는 조용하였다. 아이들 소리나 누군가 방문하는 인기척도 느낄 수가 없었다. 이웃으로 살고있지만 그저 점심시간쯤  되어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가는 모습을 몇 번 보여주었을 뿐 너무나 조용하였다. 그런데 너무 조용한 이웃을 둔 나로서는 그것이 오히려 나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곤 하였다. 아니 솔직히 그녀의 미모가 나의 마음을 끌었는지도 모른다. 

-저 여자는 분명 이혼한 여자일 꺼야
-아니라면 이제 막 30대 후반쯤 되는 나이에 홀로 살 리가 없지 않은가
-아이가 없는 것으로 봐서 아마 자식은 전 남편에게 주었을 거고
-아니지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독신주의 노처녀인지도 모르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나의 호기심과 궁금증은 갈수록 증폭되었다. 아예 이제 집에 들어갈 때마다 혹시 그녀를 맞닥뜨리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기대심마저 빵집 밀가루 반죽같이 부풀기 시작하였다. 만약 오늘 또 그녀를 만나게 되면 뭐라고 인사를 할까 생각하며 맞선보는 시골총각 처럼 설레이는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탄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내 나이 이제 40대 후반이다. 방울토마토 같은 아들 하나와, 늘 나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해바라기 같은 아내가 있다. 내가 아내를 만난 건 내 나이 36세 때이다. 미국에 있는 누나의 소개로 이리에 살고 있던 아내를 만났는데 그 때 아내는 여고에서 국사를 가르치고 있던 노처녀 였다.

  처음 만난 곳은 대전역전의 어느 다방이었는데 나는 대구에서 아내는 이리에서 각자 올라오고 내려와 만났다. 이제 결혼생활 10 여 년이 넘어가는 중인데 그동안 숱한 아픔도 있었지만. 이젠 서로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 제법 결혼생활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내가 지금의 아내에게 무슨 불만이 있다거나 서로간에 관계에 금이 가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린다거나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러나 옆집에 사는 그 여인에 대한 나의 호기심의 발동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어느 날 나는 여섯 살짜리 내 아들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 우리 집으로 올라가다 뜻 밖에 그녀와 마주쳤다. 가볍게 서로 인사를 나눈 우리는 역시 몇 분간을 엘리베이터 안에서 함께 있었다. 그 날 따라 그녀는 얼굴을 돌리지 않고 그냥 서있었다. 그리고 우리 부자가 나누는 이야기들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 때 우리 부자는 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들과 아내와 아들 셋이서 에버랜드에 간 일이 있다. 그 때 차안에서 아들에게 시를 지어보라고 하니까 간단한 문장을 아들이 만들었는데 그것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강산아 그 때 지은 시를 인터넷에 올려봐"
"싫어, 나 잊어버렸어"
"그래? 잊어버렸어? 그러면 아빠가 가르쳐 줄게. 그 때 뭐라고 했더라. 아, 맞아, 
-아빠랑, 엄마랑
에버랜드 가는 길
해하고, 구름하고
낙타 산이 뒤 따라 온다-
네가 그랬잖아."
"아, 생각났다"

그녀는 우리 부자가 주고받는 이야기들을 재미있다는 듯이 듣고 있었다.

그 후 여러 날이 지난 후 다시 한 번 우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조우를 하였다. 저녁 7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그녀는 막 출근하려던 참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저녁에 일하러 나간다는 것을 그제야 어렴풋이 짐작 할 수 있었다. 그 날 저녁 그녀의 얼굴은 가을 단풍이 들었다. 긴 바지에 허리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재킷과 목을 느슨하게 감아 돌린 마후라, 화사하게 화장한 얼굴이 그야말로 숨막힐 정도의 미모를 갖추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본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긴 머리에 크고 맑은 눈이 가을 날 깊은 호수같이 반짝거렸으며 오똑한 콧날과 가지런한 흰 이는 귀티가 나고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신비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옆집에 사시죠."

내가 먼저 인사했더니 모처럼 그녀는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상긋 웃어주었다. 정말 미묘하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단 둘이 남녀가 마주보며 있다는 것이, 

  손을 벌리면 닿을 거리에 서로의 숨소리도 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둘이 서서 마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날은 그녀가 피할 생각이 없었는지 눈을 전혀 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마주보는 나의 눈이 경련을 일으켰고, 그녀가 나의 긴장과 깊은 심호흡을 눈치채지 못하게 신경을 써야했다.

"시를 좋아하시는 가보죠?"

전혀 뜻밖의 질문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해오리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하였었다. 그렇게 묻는 그녀의 눈 빛 속에 어떤 오래된 슬픔 혹은 추억이 살짝 묻어났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두 번째 질문을 해왔다.

"시인이시죠?"

아니 이 여자가 나에 대해서 조금 알고 있는 모양이구나. 조금 당황해진 나는 대답을 더듬었다.

"아, 네.. 어떻게 아셨죠?"
"실은 댁의 아드님에게 전에 살짝 물어보았죠."
"아, 네.. 그러셨군요. 그러면 혹시 시를 좋아하시나요?"
"네, 전에 대학 다닐 때 전공이 국문학이었습니다. 그 때는 시인이 되겠다고 제법 설쳐대곤 했었죠."
"아, 네 그러셨군요. 아이구 반갑습니다. 바로 옆집에 시를 좋아하는 국문학 전공자가 사셨다니."

  흥분한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악수를 청하고 말았다.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단 둘이.. 내가 손을 내민 것은 그녀가 시라는 둘 사이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 보다는 아마도 남자의 미인에 대한 본능적인 야성이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간 나의 손은 2. 3초를 잡고 있다가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거두어 들였다. 서로가 멋쩍었던지 서로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며 웃고 말았다. 순간의 스킨쉽이 주는  야릇함과 학창시절에 느꼈던 이성이 주는 말초신경의 흥분과 떨림이 엘리베이터 안에 파동치고 있었다.

   13층으로부터 1층까지 불과 몇 분의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시간의 질이 달랐다. 흥분과 설렘임으로 보내는 시간은 마치 어릴 적 고구마엿과 같이 농축된 것이었다. 너무나 달콤하였다. 옆집 여인과의 엘리베이터 안의 데이트는 그렇게 너무 짧게 끝났다.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온 우리는 간단한 인사와 함께 헤어졌다. 그녀는 그녀대로 나는 나대로 갈 길을 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운은 결코 짧지 않았다. 그 날부터 나는 이상한 꿈에 시달려야 했다. 매일 밤 그녀를 꿈속에서 만났다. 이것은 사실상 불륜이었다. 

  아내를 두고 있는 사람이 꿈속에서 매일 밤 다른 여인과 만나 데이트를 하며 사랑을 나눈다는 것이 어디 보통 문제인가. 그 짚 앞을 지나올 때면 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슬쩍 창문 안을 들여다봤다. 

혹시 그녀가 있을까, 눈이나 마주치지 안을까, 가슴 부푼 기대를 하며...더 나아가서는 그녀의 은밀한 집안의 어떤 모습이 기대가 되기도 하였다. 만약 그녀가 그런 은밀한 차림으로 눈이 마주친다면 그녀는 어떤 얼굴을 할까? 

망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엄청난 환상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러나 사실 그 후 그녀를 가끔 멀리서 보았을 뿐 전과같이 엘리베이터 안의 그 황홀한 만남은 더 이상 주어지지 않았다.  

한 번은 서점에 가서 시집을 한 권 사왔다. 물론 그녀를 혹시 만나면 선물로 주기 위해서 였다. 시집에는 나의 인터넷 홈페이지와 헨드폰 전화번호를 적어놓았다. 시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자는 메모를 남겨서 말이다. 

물론 거기에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 나의 심연 깊은 곳에 이미 그녀의 향기가 깊게 스며들어 이미 나는 그녀에게 나의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녀와 다시 은밀한 만남을 계속하고 싶었던 것이다.


염이 있으면 성취된다는 것이 나의 평상시 신념이다 . 아니나 다를까 다시 한번 퇴근해 오는 그녀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늘 시집을 끼고 다니며 그녀만을 만나기를 바라던 나는 마침 퇴근해 들어오는 그녀와 아파트 현관에서 마주치게 된 것이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나오고 그녀는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어,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눈 나는  엘리베이터를 나왔다가 막 잠기는 엘리베이터 문을 황급히 밀치고 다시 들어갔다. 그녀는 갑작스런 나의 행동에 조금 당황한 얼굴이었는데 그리 싫지는 않았는지 내심 반기는 얼굴이었다.

"저 다름이 아니라 이 시집 한 권 드릴려고 전에 사왔는데 그동안 뵐 기회가 없어서 못 드렸습니다. 전에 시를 써보셨다고 하셔서 서점에 갔다가 생각이 났습니다."
"아, 네, 어머나 저를 위해 사오셨어요?. 아유 감사합니다."

순간 나는 그녀의 눈에 어떤 빛이 스쳐간 것 같다고 생각하였다. 얼굴은 고마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누군가로부터 시집을 선물로 받아보기는 처음이네요."

책을 받아든 그녀는 잠깐 갈피를 넘겨보며 감격에 겨운 모습이었다.

그 날 엘리베이터는 다른 날보다 더 빨리 움직였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눈 후 그녀는 13층에 내리고 나는 다시 일층으로 내려왔다. 문이 열리고 나오자 어떤 시선 하나가 내 뒤통수에 꽃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뒤돌아보니 관리인 아저씨가 게슴츠레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얼른 눈길을 돌렸다. 나는 나의 마음이 들킨 것 같아 놀랐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 아파트를 나왔다.



가을은 시인의 계절이다. 내가 늘 들어가는 인터넷 시 사이트에는 수많은 시인과 예비시인들이 시로 가을을 찬미하였다. 시인들은 코스모스로부터 시작하여 단풍, 낙옆, 바람 등등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가슴에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 시심을 매일 수도 없이 토해 내었다. 거의 매일 그 시 사이트에 하루에도 몇 시간씩 출근하다시피 하는 나는 이미 그곳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의 필명을 거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새로운 이름하나가 눈에 띠었다. 필명이 "수선화"라고 하는 그 사람이 매일 시 한 편씩을 올리고 있었다. 대게 시를 올리는 사람들은 필명을 보아서도 그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있지만 시의 내용을 보면 여자와 남자가 조금은 구별이 된다. 심지어는 나이나 취향까지 추측해 볼 수 있다. 

  필명을 보아서나 시를 보아서나 분명한 여자였다. 그것도 인생의 풍랑을 많이 경험한 여자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그 사람이 올린 시는 모두 읽어보았다. 시의 소재나 시상을 봐서 분명 어떤 큰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람의 시를 보면 꼭 밑의 메모란에 시평을 달아주곤 하였다. 그

  녀도 내가 올린 시에 역시 시평을 달아주곤 하였다. 인터넷이란 참으로 묘했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교감을 나누고 은밀하게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어느 날 인가 그 사람이 또 시 하나를 올려놓았다.

"아버지"

-아버지,
-낙엽 지고 찬바람 부는 이 계절은
-바로 당신의 계절이었는데
-일곱 살 딸아이 손을 잡고
-붉게 물든 뒷동산을 오르며
-딸아이에게 시를 지어보라고 하시던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아버지,
-당신이 안 계시는 가을은 
-제겐 너무나 시리고 가슴아픈
-빛 바랜 가족사진처럼 
-고운 색깔들을 잃어버린 채
-길거리에서 파닥거리고만 있답니다 

이 시를 읽으며 내 머릿속엔 섬광처럼 누군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로 옆집 여자였다. 
나의 수선화는 가슴속에 그렇게 꽃피기 시작하였다. 

사랑은 사람의 나이를 잊어먹게 하는 묘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사랑의 감정은 동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유치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날부터 나는 옆집여자를 '수선화'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물론 나는 확인해보지 않았다. 내가 그저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 것뿐이었다. 그 날부터 내가 좋아하는 꽃은 수선화가 되었다. 한 번은 수선화라는 제목의 시를 써서 시 사이트에 올렸다.

- "수선화"

-목에까지 차 오른
-수많은 사연을
-애써 없는 듯 감추고, 다소곳이 
-피어있는 너 수선화여


-속에 불붙는 정열 다스리고저
-네 머리에 차거운 만년설을 이고
-늘 네 사랑으로 한 줌씩 녹여 
-네 산에 머무는 토끼랑 고라니랑
-불러 마시우게 하는구나

-늘 너의 시선은 울 넘어 저 어드메쯤
-아니면 구름 넘어 저 먼 하늘인가
-내가 아노니
-너는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보기 위해 얼굴을 내밀었지

-벌과 나비는 
-이미 너를 알고 네 향기를 찾느니
-너 청초한 여인 수선화야, 귀엣말로
-너의 속말을 내게 들려주려므나

흰 수선화 꽃과 아름다운 음악을 테그로 곁들어 올렸더니 재깍 수선화의 답 글이 올라왔다. 어쩜 자기를 보고 쓴 시처럼 그렇게 마음에 와 닿느냐는 것이었다. 자기가 바로 사연이 많아 누군가에게 자기 속을 털어놓고 싶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 날 이후로 우리는 얼굴도 모른 채 점점 마음으로 가까워져갔다. 

  물론 옆집 수선화를 나의 아파트에서 어쩌다 가금씩 보면서 말이다. 그 때마다 그녀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보여주며 인사를 했는데 그럴수록 내 마음속에 그 꽃은 더 아름답고 신비해져 갔다.

어느 날인가 나는 드디어 일을 만들어 가기 시작하였다. 편지를 써 접은 다음 그녀의 아파트를 지나며 열린 창문 안에 던져 넣어버린 것이다. 한 번 만나면 어떻겠느냐고..책에 적어놓은 헨드폰 전화번호로 전화한 번 달라고..

그 편지는 그러니까 데이트를 신청한 연애편지, 아니 본격적인 불륜의 시작을 알리는 편지였다.

편지를  띠운 후 이제나저제나 전화가 오기만 기다렸다, 전화가 올 때마다 긴장과 설렘임 그리고 떨림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때마다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그녀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 어쩌다 아파트에서 그녀를 만나곤 했는데 항상 알 듯 모를 듯 미소가 담긴 겉치레 인사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들어가던 나는 깜짝 놀랐다. 혹시나 하며 몇 미터 앞에서부터 가슴이 뛰던 나는 거의 숨이 멎을 뻔 했다. 그녀의 아파트 창문에 노란색의 예쁘게 접은 편지가 창문사이로 귀를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야호!'라고 거의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 얼른 다가간 나는 누가 볼 새라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재빨리 훔치듯 편지를 꺼내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집에 들어간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심호흡을 한 다음 그 편지를 꺼내었다. 혹시 아내가 갑자기 들어오면 들킬까봐 책을 한 권 편 다음 그 사이에 편지를 넣고 읽기 시작하였다.

편지에서는 크레오파트라 라고 하는 이짚트 산 향수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옛날 이집트에 갔을 때 그 향수를 산 적이 있었다. 노란 은행잎 색의 편지지는 파란색 볼펜으로 쓰여진 글씨와 함께 더욱더 내 마음을 설레이게 하였다.

편지에는 시 한편이 적혀있었다.

-"인연'

-산봉우리에  걸려있는 구름 한 조각
-서로 인연이 닿았을까요

-괴목 옆에 서있는 단풍나무
-옆에 심기운것이
-인연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가을이 왔다고 
-잎들을 다정히 물들이는 모습이
-모양은 다르지만 마음만은 하나인가 봅니다

-님, 
-만일 가을을 사랑하신다면
-잎이 지기 전에
-추색이 짙어 가는 가을단풍나무 아래서 
-우린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밑도 끝도 없는 아리송한 시 한편이 전부였다. 다만 만날 수 있다는 여운만이 진하게 풍겨나고 있었다. 

가을단풍나무 아래서라.. 그 날부터 나는 시간이 나면 아파트 뜰에 나가 가을나무 아래서 서성거리기 시작하였다. 특히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점심시간이나 퇴근해 올 무렵쯤 해서 늦은 저녁시간에 홀로 서성이기 시작하였다. 

누가 보면 아마 가을을 무척이나 타는 남자로 보였으리라.. 아내는 내가 시를 쓰기 위하여 그런 것이리라 생각하고 아예 관심도 없었다.

어느 날 저녁 그녀가 퇴근해 돌아오는 모습이 아파트 입구에서 번뜩거렸다. 나는 잔뜩 무드를 잡고 아파트 놀이터 옆 벤치 위에 앉았다. 

드디어 또각또각 그녀의 발자국 소리가 가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가려면 놀이터 옆으로 지나가야 한다. 

나는 일어서서 그녀가 잘 볼 수 있도록 조금 몸을 내밀었다. 저기서부터 그녀는 이미 나를 알아 본것 같았다. 시선을 나에게 고정시킨 후 걸어왔다. 드디어 놀이터와 현관의 갈림길에 그녀가 다다르자 나의 가슴은 방방이처럼 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 갈림길에서 나를 1.2초 응시하더니 역시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만 보인 채 그냥 들어가 버렸다. 

나의 가슴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조금전 가지만 해도 오월의 꽃피는 정원같이 온갖 화사한 꽃이 피어났던 가슴은 금방 황무지 같이 변해버리고 말았다. 

마치 총각시절에 겪었던 실연의 아픔처럼 썰렁한 바람 한 줄기가 가슴에 몰아쳐 갔다. 얼마나 긴장과 실망이 컷던지 내 몸 안의  힘은 모두가 쭉 빠졌고 나는 축 처진 어깨로 터덜터덜 돌아왔다. 저녁내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새벽녘쯤에서야 깊은 잠이 들었다.




    인터넷 시 사이트에서 가을문학행사를 가지게 되었다. 가을 산의 정취에 빠져 시 낭송회도 갖고 즉석 시 백일장도 갖는 행사였다. 장소는 대구 팔공산이었다. 나도 신청하였다. 모처럼 바람도 쐬고 마음도 다잡으려는 심산이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시인들과 예비시인들이 모였다. 인터넷에서만 얼굴도 모른 채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만난다는 이 설렘임은 정말 초등학생시절 소풍가서 보물찾기하는 심정과 다를 바 없다. 특히 평상시 눈여겨보았던 호기심과 신비감으로 가득 찬 멋진 시인들을 직접 만난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문학인들만의 낭만이요 즐거움이었다.

전 날 저녁부터 부터 설레이던 나는 저녁잠을 설치고 당일 날 일찍이 대구로 출발하였다. 모처럼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여행이었다. 

동서울에서 동대구까지 약 세시간 남짓 시간이 걸렸다. 산야는 이미 불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계절은 때때로 아버지의 추상같은 불호령같이 다가오기도 한다. 생이 그렇게 빨리 지나가고 있다고, 무엇하고 있냐고 묻고 꾸짓는 것이다. 오십이 다 되어 가는데 이룬 것은 없고 중년의 가을은 더 홀쭉해지는 것이다.

  드디어 행사장에 도착하였다. 팔공산 동화사 입구에는 우리 참가자를 모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시 동네 가을 문학행사"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현수막 가까이 다가갔다. 벌서 미리 온 문우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야단이었다.

드디어 행사가 시작되고 시 사이트에 글을 올릴 때 사용하는 필명을 서로 소개하는 시간이 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소개 될 때마다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도 순서에 따라 나의 필명인 '청산'을 소개하였다. 많은 분들이 박수를 치고 반갑게 환영해 주었다. 

그 때였다. 빙 둘러앉아 소개하는 우리들에게 코스모스처럼 청초한 한 여인 하나가 다가왔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 뛰어난 미모의 여인에게 쏠렸다. 그녀는 단숨에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 버렸다. 바로 가을 단풍 그 자체였다.  

-앗, 바로 그 옆집여자다.

나는 거의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 아니 저 여자가.. 나는 고압선에 감전된 사람처럼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눈을 그녀에게서 띠지 못한 채 그저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녀도 이러한 나를 보았던지 그 여전히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로 눈인사를 하고는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 순간부터 나는 그 여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단어가 마음속에 떠올랐다. 

  '수선화' 바로 저 여자가 수선화 아닐까? 거의 소개가 끝나갔지만 나의 마음은 급하기만 하였다. 드디어 옆집여자의 차례가 되었다. 그녀는 정갈하게 일어서더니  두 손을 앞에 모으고 말하였다. 

"저는 '수선화' 예요." 

으악!  

'수선화'다. 저 여자가 수선화다. 나의 숨은 거의 막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기가 여기 이 문학행사에 오게된 동기를 설명하였다.

바로 나에 대한 이야기 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옆집 아저씨와 아들과의 대화를 듣게된 사연, 그리고 그 옆집 남자가 선물한 시집을 보고 여기까지 오게되었노라고..

듣던 모든 사람들은 탄성을 지으면서 그 남자가 누구냐고.. 혹시 여기 왔느냐고 묻고 야단이었다. 물론 나는 붉어지는 얼굴을 속으로 다스리며 시치미를 뚝 떼고 앉아 있었다.

행사는 즐거웠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나타난 순간부터 이미 문학행사나 단풍나무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나의 관심은 오직 그녀가 내게 답장으로 보냈던 그 알송달송한 시 한편의 마지막 연,

"-님, 
-그대가 만일 가을을 사랑하신다면
-잎이 지기 전에
-추색이 짙어 가는 가을단풍나무 아래서 
-서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뿐이었다.

-단풍나무 아래서.., 단풍나무 아래서.,. 추색이 짙어 가는 단풍나무 아래서..
나는 산행을 하면서도 그녀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저 그녀의 뒤에서 그녀의 크레오파트라 향수 냄새가 섞인 팔공산의 가을 공기를 마음껏 마시면서 뒤따라 가다가 가끔 뒤돌아 보내는 그녀의 그 신비한 미소에 취해갈 뿐이었다. 

어서 행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단 둘이 단풍나무 아래서 만날 수 있기만을 노심초사 빌면서 기다렸다.

드디어 전체 행사의 일정은 끝나고 각자 흩어져 돌아갔다.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을 위해 좀 빨리 행사를 끝냈다. 나는 사회자의 마지막 멘트가 끝나자 마자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도 이미 나와 같은 생각을 하였는지 나를 웃으며 반겼다. 나는 그녀에게 인사하였다.

"제가 바로 '청산'입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별로 놀래는 기색이 없었다. 다만 한마디,

"시가 무척 순수하데요. 어린아이처럼." 

하고 정면으로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도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서로 바라보면서 발길을 옮겼다. 사람들이 시야에서 뿔뿔이 흩어져 갈 때를 기다렸다.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랐다. 

"오늘은 시간이 있으시죠?"

"네, 단풍나무 아래서요." 하고는 그녀는 싱긋 웃었다.

택시 한 대가 마침 지나갔다. 나는 얼른 택시를 불러 세웠다.

"타시죠." 그녀의 팔을 끌어 얼른 택시를 탔다.

"기사양반, 파계사로 갑시다." 

그녀는 의외라는 듯이 나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았을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 주었다.

"파계사에 오르는 길이 아주 좋거든요."
"자주 와 보셨는가 보죠."
"네, 총각 때요."
"어머, 그럼 데이트하러 오셨나요?"
'아, 네..한 때 열병을 않은 적이 있지요."

택시에서 내린 우리는 마침 태양이 서산을 붉게 물들이며 건너편 산봉우리에 걸쳐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산에 올랐다. 

나는 산 위에 걸린 구름과 그 뒤에서 빛나는 황혼 무렵의 태양을 보면서 연방 그녀의 청초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저녁때 출근하던 그녀는 단풍 물이 짙게 물들어 있었다. 또 그녀의 걸음걸이는 분 명 범상치 않은 이력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만큼은 전혀 전의 그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청초한 가을여자였다.

누구라도 남자라면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한들한들 피어있는 코스모스 같은 여인이었다. 

-이게 그녀가 말한 인연인가?
-나의 운명을 한 번 흘러가는 대로 맡겨봐?

나는 나도 모르게 살 짝 그녀의 손을 잡았다. 
흠칫 놀란 듯 하던 그녀는 그러나 손을 빼지 않고 그냥 그대로 맡겼다. 
손은 따뜻했다. 

오래 전에 바로 이 산을 오르며 잡았던 어느 교회에서 피아노 치던 아가씨의 손, 바로 그 옛 애인의 느낌이 전달되어 왔다. 그러니까 내가 30대 초반이었을 때 나는 교회에 다니며 한 아가씨와 사랑을 나누었었다. 

교회에서 성가대 피아노를 연주하던 막 대학을 졸업한 아가씨였다. 마치 영화 크레오파트라에서 크레오파트라 역으로 나왔던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닮았던 단발머리의 아가씨였다. 바로 이 산에서 우리는 손을 잡았고 달콤한 키스를 나누었던 것이다. 

  순간 나는 나의 옆에 있는 이 여인이 바로 그 때 그 '연경'이라는 애인으로 착각이 들 정도로 이상한 무드에 사로잡혔다. 나는 어께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녀는 일체의 저항이 없었다. 드디어 그 옛날 숨어들었던 단풍나무가 저만큼 보였고 그 앞에 평평항 바위도 보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바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아무도 없는 산,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가을산에 단 둘이 남녀가 있다는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나의 심장은 마치 시한 폭탄의 타이머 처럼 째깍 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혼한 여자였다. 
대학에서 강사를 하다가 어느 부잣집 아들과 결혼한 후 아기를 못 난다는 이유 때문에 이혼을 당했고 지금은 친지와 친구들 아무도 모르게 구리로 흘러 들어와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직업은 결코 말하지 않았다. 나도 더 이상 묻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만약 더 깊이 알아서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이미지에 손상이 갈 수 있다면 차라리 모르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저녁 출근 할 때 단풍이 들어 출근한다는 한가지 사실만으로 그녀의 처지를 짐작할 뿐이었다. 

  바위에 앉아있자 조금 추워졌다. 우리는 좀더 바싹 앉았다. 나의 팔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께를 감싸고 있었고 우리 둘 사이에는 뜨거운 본능에서 흘러나오는 전류가 저릿저릿 흐르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가 나를 바라보더니 뜬금없이 내 아들 이야기를 하였다.

"아드님이 참 귀엽게 생겼데요."
"네, 이뻐요. 자식이란게 뭔지..."

갑자기 그녀는 고개를 돌렸고 작은 한 숨을 쉬었다. 나는 순간 분위기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가 지금 여기가지 아들이야기를 나누려고 온것은 아니지 않는가. 

나는 우리의 공통주제가 될만한  시와 문학 그리고 종교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갑자기 물었다.

"혹시 연애결혼 하셨었나요?"
"아니요, 중매로 만났었어요."
'그럼 연애는 안 해보셨나요?"
"아뇨, 대학 때 풋사랑은 좀 해봤죠."
"그럼 격렬한 사랑의 감정을 느껴본 적은 있으시나요?"
"아뇨, 그런 적은 없었어요.."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나의 가슴에 대었다. 
"느껴지나요? 심장의 고동이.. 정말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감정입니다. 

'수선화' 

나는 무드를 잡고 그윽한 눈초리로 그녀의 눈을 삼킬듯이 바라보았다. 심상치 않은 나의 태도와 분위기에 그녀는 조금 긴장한듯이 보였지만 그녀의 입술에도 촉촉한 물기가 묻어 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도 지금 어떤 타오르는 감정을 애써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침이 입안에 차 오르는 것을 애써 숨기다가 결국 꼴깍 작은 소리로 삼켰다. 

그녀의 흰 목줄기가 개구리 볼따구니 처럼 부풀었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이 그것을 말해 주었다.
나는 이 때를 놓치기가 무섭게 

"사랑해요 "

뜨거운 숨소리와 함께 토해내 버렸다.

그리곤 순간 나의 입술을 그녀의 입술에 덥치듯 포개어 갔다.

당황할 법도 하였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조금도 저항이 없이 받아 주었다. 

이미 둘 다 이성의 경험이 있었던 터라 막힘도 거리낌도 없었다. 그렇게 뜨거운 키스는 계속 되었다. 

우리는 비스듬히 편편한 바위위로 무너져 내렸다. 포옹과 키스가 계속되고 정적만이 감도는 가을 산자락은 그렇게 붉게 물들어 갔다. 단풍나무 아래서..


꿈은 항상 깰 수밖에 없는 것이 운명이던가!

피곤한 월요일이 또 다시 시작되었다.
아침시간, 아들녀석을 유치원에 보내며 잔소리하는 아내의 쇳소리가 울려 퍼지는 아파트.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었다. 몽롱한 상태로 계속 시간이 흘러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내가 저지른 저 불륜이라는 소설 속의 이야기가 나에게 현실로 일어나 버린 것이 꿈만 같았다. 

나의 관심은 오직 옆집뿐이었다. 옆집에서 들려오는 어떤 소리든 다 잡고 싶었다.

그 날부터 나는 아내의 얼굴을 피하였다. 아들의 얼굴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죄란 참으로 무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아침에 오래된 관계를 깨버린 것이다.

사실 나는 나의 가정을 버리면서까지 누구와 사랑을 나누고 싶은 생각은 없다. 

우리 강산이는 세상에서 나를 제일 존경한다. 
나의 아내도 자기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것은 상상도 해본 일이 없을 것이다.
나는 부모님에게도 그런 실망스런 아들로 보여드리기 싫은 사람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단 말인가.

이것은 로맨스인가 불륜인가.  
나는 경우가 바르기로 자타가 공인할 정도의 사람이었는데, 남에게는 그렇게 정확히 옳고 그른 것을 판별해주고 충고해주던 내가 이젠 도저히 나 자신에게 있어서는 멍청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내가 그럴 수가..
-내가 원래부터 그런 놈이었던가
-늘 정조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가정의 소중함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내가..

죄의식을 해결하기 위해 교회에 나갔다.
설교시간에 목사님은 열변을 토하였다. 

"여러분 하와가 죄를 짓게 된 이유는 바로 그 선악과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와가 바라보니 선악과가 보암직하고 먹음직했다고 성경은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마귀는 우연을 가장하고 시각과 청각으로 유혹합니다." 

다 맞는 말씀이었다. 사실 나와 수선화도 단둘이 밀폐된 엘리베이터라는 공간 안에서 마주 바라보게된 그 운명적인 몇 분이 여기까지 오게 만든 것이다. 

맞아 기회를 주지 말았어야 했어. 시선을 피했어야 하는데 .. 그렇게 후회를  하면서도 한 편 내 마음속에는 그 달콤했던 불륜의 끈적끈적한 여운이 계속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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